66화. 아스트라칸의 흔적
"토르시스템 자료를 보내줄테니 홀로그램으로 출력해."
- 홀로그램 지도를 출력합니다.
그 순간 1호 차량의 우측 라이트 옆에 설치된 홀로그램 빔 프로젝트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빛은 나와 조셉 메를린의 눈앞에서 홀로그램 지도가 됐다.
토르시스템은 능숙하게 내가 원하는 크기와 축적으로 홀로그램 지도를 변화시켰다.
- 사용자님의 현 위치는 X자로 표시하였습니다.
- 세부좌표는 [PN 00139, PE 00531]입니다.
- 지난 여섯 곳의 포인트는 숫자로 표시하였습니다.
X자 위엔 코소브 바이오 랩이라는 글자가 출력되었다.
"이렇게보니 명확하군. 기록에 의하면 유적은 지하에 있다고 하네."
조셉 메를린은 홀로그램 지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하 몇 미터라는 정보도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렇게 자세한 정보는 없네. 단순히 지하라고만 명시되어있어."
"그럼 지하를 탐색하겠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동의하네."
난 그의 대답을 듣고 난 후 명령했다.
'아치스. 지하에 정말 연구소가 있는지 탐색해봐.'
내가 아머드 소울리퍼로 다시 태어난 아치스에게 명령한 순간이었다.
"저, 저건 뭔가?"
조셉 메를린이 내 오른쪽 뒤를 보곤 깜짝 놀라 손가락질을 해댔다.
***
조셉 메를린이 좌표를 확인하자, 용병 아서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아무도 없던 용병 아서의 오른쪽 뒤편 허공에서 새까만 배틀슈트 한 기가 나타났다.
칠흑빛 망토차림의 배틀슈트는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져버렸다.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저, 저건 뭔가?"
조셉 메를린이 묻자, 용병 아서는 그가 가리킨 곳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은신호위입니다."
"은신호위?"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였다.
어떤 호위가 투명화기능까지 써가면서 대상을 보호한다는 말인가?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활동하는 부류죠. 잠시..."
용병 아서는 대답하다 손을 들어 조셉 메를린의 질문을 막았다.
그러더니 한결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지하유적을 발견했습니다."
***
- 지하 50미터 지점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발견했습니다.
땅이나 벽 따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영계이동 능력을 사용한 아치스의 정신파가 전해진 순간이었다.
내 눈앞에 흙더미에 파묻힌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마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위해 건물 위에 콘크리트를 두껍게 매설한 원자력 발전소 같은 모습이었다.
아머드 소울리퍼 아치스가 정신파를 통해 자신이 본 장면을 보내온 결과였다.
'정말 아스트라칸이라는 도시가 있긴 있던 자리였나보군.'
조셉 메를린이 보여준 작전지도가 사실이란 뜻이었다.
'그럼 연구소만 발굴할 필요가 없잖아?'
아스트라칸이란 도시가 실존했다면?
조셉 메를린이 보여준 작전지도 속에 그려진 수 많은 건물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럼 당시 군부대가 공략한 시청이나 전력시설 같은 기간시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백화점이나 정비소 같은 상점도 남아있을 수 있었다.
'다른 건물들도 남아있을 수 있을까?'
< 아치스가 전달한 건물구조를 토대로 분석합니다 >
< 발견된 구조물은 50미터 깊이의 모래에 묻혀도 버틸 지하용 건물로 건축되지 않았습니다. >
< 이것은 당시 [아스트라칸]이라는 도시가 지하도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
< 대부분의 건물은 과거에 쌓인 모래에 파묻혀 붕괴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 발견된 연구소 건물은 이례적으로 두꺼운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있어 구조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붕괴되지 않은 건물도 있을 수 있겠어. 그리고 붕괴된 건물에서도 유물은 건져낼 수 있겠지.'
원자력 발전소도 아닌데 그만큼 두터운 콘크리트를 매설한 연구소가 있다?
현대의 상식으론 건축비를 낭비하는 돈지랄이었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런 건물이 있다는 걸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가 증명하고 있었다.
코소브 생명과학 연구소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연구소나 시설도 이만큼 튼튼히 짓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었다.
난 설레는 마음을 감추며 조셉 메를린에게 말했다.
"발견했습니다."
"뭘 말인가?"
조셉 메를린은 주변을 살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연구소 말입니다."
"코소브 생명공학 연구소를 발견했다고?"
"네."
"농담하는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날 의심하던 조셉 메를린은 내가 부정하지 않자 말을 멈췄다.
그후 갑자기 모래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양손 검지손가락으로 모래바닥을 쿡! 하고 찔렀다.
그 순간 조셉 메를린의 눈알 전체가 황색으로 물들어버렸다.
그건 마치 사막의 모래와도 같은 색감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하를 조사해 온 건가?'
난 그 동안 조셉 메를린이 우리가 지나쳐 온 6곳의 사막땅에서 어떻게 유적을 탐색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니 조금은 짐작이 갈 것도 같았다.
- 테리 양이 특이능력을 사용할 때와는 달리 마력유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때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마법을 사용했다면 내가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데스윙과 마찬가지로 어떤 마력의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다.
'마력의 움직임을 숨길 수 있는 아티팩트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 지난 3일 동안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는 걸 감안한다면 자신의 모습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데스윙의 대답을 들은 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랐을 것처럼 생긴 귀공자가 바로 조셉 메를린이었다.
난 그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험에 몸을 던졌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위험을 감수할만 한 능력도 있고 준비도 갖춘 사람이었군.'
도대체 마력의 움직임을 숨길 수 있는 아티팩트를 어디에 숨긴건지 유심히 지켜볼 때였다.
"후욱!"
모래먼지가 일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쉰 조셉 메를린이 일어나 간이의자에 앉았다.
"저, 정말이군. 아스트라칸의 유적... 들은 현대의 레이더로는 가, 감지되지 않는데 무슨 수로 발견한 건가?"
조셉 메를린은 힘겨워보였다.
말을 더듬는 것뿐만 아니었다.
그는 하루 종일 막노동 하느라 진이 다 빠진 사람처럼 팔다리가 경련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지난 이틀... 너무 무리했나보군."
그건 지난 3일 동안의 야영때문이 아니었다.
삼일이 아니라 이틀이라고 말한 건, 병원 6곳을 돌던 어제부터였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특이능력을 남용한 대가입니까?"
"특이능력? 푸하하! 자, 자네 눈에는 내가 강화시술자로 보이나보군? 끄윽..."
특이능력이란 말을 듣고 갑자기 미친 듯이 웃던 조셉 메를린의 눈이 뒤로 돌아가버렸다.
마치 발작이 시작되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제니퍼가 외쳤다.
- 과도한 능력사용으로 인한 발작 같아요. 기도를 확보해야 해요!
제니퍼는 이런 현상을 자주 접한 것 같았다.
조셉 메를린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난 반사적으로 그의 입에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넣어 혀가 말려들어가는 걸 막았다.
"끄륵...!"
잠시 발버둥치던 조셉 메를린은 내가 기도를 확보하고 데스윙과 제니퍼가 사지의 근육을 안마하자 안정적인 호흡을 되찾았다.
하지만 의식은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다.
- 주인님, 아무래도 이 자는 초상능력을 각성한 귀족 같습니다.
그때 제니퍼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초상능력?'
- 귀족들의 혈통에 따라 유전되는 능력이라고 들었습니다.
"테리가 순간가속 능력을 사용하고 힘들어하던 모습과 비슷한데? 이쪽이 조금 더 심하긴 하지만..."
난 매립지에서 20명의 사이보그를 혼자 베어버리고 힘겨워하던 테리의 모습과 조셉 메를린의 모습이 비슷한 것 같았다.
"비슷할 수 밖에요."
테리는 착찹한 표정으로 조셉 메를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뜻이지?"
"강화시술 자체가 귀족들의 초상능력을 따라가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일 뿐이에요. 사실 그마저도 아직 귀족들을 넘어서진 못했죠."
테리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 테리 양의 말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작 이틀 간의 능력사용으로 기절하는 걸 보니 조셉 메를린은 초상능력을 각성한지 얼마 안됐거나 혈통이 열화된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때 데스윙이 정신파로 말을 보탰다.
'벨루치 가문의 피를 이었다고 했었지?'
- 조셉 메를린의 어머니인 다니엘라 벨루치는 망명귀족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알렉스 메를린 회장은 초상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 아무래도 어머니 쪽의 귀족혈통이 아버지의 평범한 피와 섞여 열화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제니퍼와 데스윙은 각자의 의견을 정신파로 보내왔다.
피가 희석되면 조상의 특징이 사라지는 것은 보편적인 개념이라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외쳤다.
"의뢰주는 8호차로 모시고 방벽을 설치해라! 발굴을 시작한다!"
내가 명령하자 게릭슨이 조셉 메를린을 8호차 운전석 뒤에 눕혔다.
그 와중에도 수송차량인 8, 9, 10호 차량은 각자 20미터 씩 간격을 두고 삼각형으로 포진했다.
워리어들은 세 차량의 짐칸에서 쇠막대기를 꺼내 연결하고 땅에 박아넣었다.
다른 워리어들은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쇠막대와 쇠막대 사이에 천막을 걸어 외부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때 위잉!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1호에서 7호차량이 사일런스스톰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사일런스스톰들이 변신을 막 마친 순간이었다.
게릭슨이 정신파로 보고해왔다.
- 위장기능 활성화합니다.
그 순간 답답하게 막혀있던 천막이 투명하게 변해 주변 경관을 비추기 시작했다.
테리의 은신처를 숨겼던 카모플라쥬 천막의 위장기능을 발전시킨 결과였다.
- 위장기능 이상 무!
그때 뻥 뚫린 천막 천장을 넘어 천막 외부에서 위장기능을 확인한 워리어가 보고해왔다.
'사일런스스톰 3호까지는 외부경계하고 4호에서 7호는 굴착기 착용하고 발굴시작한다.'
내가 명령하자 사일런스스톰 세 기가 세 방향으로 향했다.
해당 위치의 천막은 이미 기관포와 시각센서를 확보할 수 있게 세팅된 상태였다.
- 발굴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데스윙이 양손에 굴착삽을 착용한 사일런스스톰의 머리 위에서 보고했다.
'소리와 진동부터 차단해야겠군.'
내가 양손을 펼치자 붉은 마력입자가 순식간에 소음과 진동방지 기능을 갖춘 마법식을 완성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방벽으로 세운 수송차량 3대와 사일런스스톰 7기의 몸에 똑같은 마법식이 활성화되는 모습이 보였다.
***
조셉 메를린을 깨운 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었다.
"으으..."
- 정신이 좀 드십니까?
조셉 메를린이 좌석을 짚고 일어나자, 용병 아서의 안드로이드가 스피커로 안부를 물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군. 내가 기절했었나?"
- 2시간 47분 31초만에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다행히 창밖은 아직 밝았다.
조셉 메를린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본 순간이었다.
한 기의 배틀슈트가 제 몸보다 큰 포대를 매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문제는 무게가 아무리 못해도 500킬로그램이 넘을 것처럼 보이는 모래포대를 매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배틀슈트가 한두 기가 아니란 점이었다.
"저, 저게 뭐지?"
그가 창문 밖을 날아다니는 배틀슈트들을 보며 묻자, 조수석에 앉은 안드로이드가 기계음으로 대답했다.
- 코소브 바이오 랩을 발굴하는 중입니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라..."
조셉 메를린은 안드로이드에게 묻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차문을 열고 나왔다.
하지만 그곳엔 배틀슈트의 비행기능을 모래 나르는 데 사용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 내가 아직 잠이 덜 깼나?"
사주경계하듯 등을 보이고 선 아이언스톰이 세 기나 있었다.
문제는 양손에 굴착삽을 착용한 아이언스톰 네 기가 더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십니까?"
"이건... 꿈인가?"
***
정신을 차린 조셉 메를린은 쉴 새 없이 모래를 위장막 밖으로 나르는 워리어들과 사일런스스톰을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저희 용병단은 용병이 적은 대신 기갑전력을 확충했습니다."
"그... 그건 알고 있었네만, 혹시 저 안드로이드들이 입은 게 정말 솔져급 배틀슈트인가?"
새카만 배틀슈트를 입고 1톤에 가까운 모래 포대를 나르는 비행체들.
조셉 메를린이 그들을 보고 놀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행기능을 갖춘 배틀슈트는 솔져급 이상뿐이었고 솔져급 배틀슈트는 중고라도 20억 크레딧 이상에 거래되기 때문이다.
"뭐 비슷합니다."
"솔져급 배틀슈트만 80기가 넘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언스톰을 7 기나 운용하다니... 자네 정말 부자였군?"
"아직 정규 용병단으로 인정도 받지 못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당장 저것들만 팔아도 2천억 크레딧은 받을텐데 겸손이 과하네!"
조셉 메를린은 내 병사들을 보고 마치 자기것인 것마냥 환호했다.
< 조셉 메를린의 생체반응과 행동양식을 토대로 감정을 분석합니다. >
< 동공반응, 심장박동, 호흡길이 등을 분석합니다. >
< 안도와 깊은 신뢰를 확인했습니다. >
< 신뢰수준은 93%입니다. >
난 시스템 메세지를 보고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안도? 뭐에 대해 안도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