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집단광기
에어로트럭 조수석에 올라 돌아보니,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에 의해 찢어진 지층과 좀비의 썩은 피로 더럽혀진 땅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다섯 마리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4레벨과 3레벨 좀비들의 영혼이었다.
난 조수석 창문 밖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혼령탑 가동.'
그리고 속으로 명령했다.
< [혼령탑]의 [영혼수확 마법진]을 가동합니다. >
그 순간 내 손에서 뻗어나간 검은연기가 올가미가 되어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 한 마리의 영혼과 3레벨 좀비 머슬 네 마리의 영혼을 향해날아갔다.
다섯 영혼들은 죽음의 기운으로 만든 올가미에 닿자마자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 [혼령탑]에 다섯 마리의 영혼을 수용했습니다. >
< 영혼들이 서로 포식하지 못하도록 [혼령탑]의 내부 구획을 분리하시겠습니까? >
'그래, 서로 닿지 못하게 격리해.'
그 순간 시스템이 내 시야에 사방팔방이 검은 철망으로 가로막힌 감옥과 각자 다른 방에 갇힌 다섯 마리의 영혼들을 보여줬다.
그건 죽음의 기운으로 만들어 영혼조차 통과할 수 없는 철망이었다.
***
86기의 워슈트를 이끌고 비행하는데, 시스템 메세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 T-85구역을 벗어나, 북쪽 구역인 T-84구역에 도착했습니다. >
< T-84구역에 배치된 용병들은 [가프키 용병단]을 중심으로 뭉쳐 [가프키 용병연합]을 구성했습니다. >
< 현재 [가프키 용병연합]의 지휘권은 4단계 강화시술자인 한스 가프키가 가지고 있습니다. >
- 가프키는 저도 한번 들어본 적 있는 자입니다. 고압의 전류를 다뤄서 썬더볼트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데스윙이 정신파를 보내왔다.
'유명한 인물인가보군?'
-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오래 전부터 수중전에서 이름을 날렸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론 그 자식과 싸워서 한번 패배한 적이 있는 자입니다.
아론 다린은 밀러쉴더스를 배신하고 내부정보를 4군단에 팔아넘긴 사냥 3팀장이었다.
휴고와 세사르 다음 번대인 3팀장 자리를 꿰찼으니 제법 강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19명의 사냥팀장들이 디스트로이어 한 마리에게 어떻게 농락당했는지 코앞에서 지켜본 나로선 아론 다린이라고 그렇게 대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썬더볼트라...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닌가보군.'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스템이 내 시야에 T-84구역의 현황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 전술 통신망으로 공유된 정보에 따르면 T-84 구역 가프키 용병연합의 인원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총원 : 14,095명 >
< 전투 가능인원 : 5,156명 >
< 부상자 : 8,086명 >
< 사망자 : 853명 >
용병들 대부분이 배틀슈트를 착용한 덕분인지 궁지에 몰린 전세였음에도 사망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3킬로미터 북쪽에 거대한 산과 그 위에서 혈투를 벌이는 좀비와 용병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가프키 용병연합이 사냥한 좀비는 이미 파묻혀있어서 수효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
< 현재 전투 중인 좀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
< 3레벨 좀비 머슬 : 13 마리. >
< 2레벨 좀비 스프린터 : 4만 5천 마리 이상. >
< 1레벨 좀비 스토커 : 54만 마리 이상. >
< 시체와 몰려드는 좀비들에 파묻힌 좀비가 많아 추정치를 산출했습니다. >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는 없었지만, 그 아래 레벨의 좀비들은 우리가 만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총 좀비의 수가 무려 60만 마리에 달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였다.
그때 전술 통신망으로 에어로트럭을 타고 한발 늦게 뒤따라오는,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서 단장, 방금 교전영상 확인했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은데, 이대로 접전을 벌여도 괜찮겠나?
- 그래, 1팀장 말이 맞아. 자네 용병단은 싸운지 10분도 안됐잖나?
사냥 2팀장 세사르까지 내가 걱정되는지 우려를 표했다.
"용병들을 많이 살릴수록 우리가 살아서 팔미라 시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 건 팀장님들이셨잖습니까?"
- 그건 그렇지. 다 죽어버리고 우리만 살아서 돌아가다간 4군단의 추격자들에게 잡힐 가능성이 높아질거야.
- 아서 단장, 그런 문제는 다 나중 일이네. 우리가 무리하다 좀비 떼에 몰살당하면 다 부질없는 걱정이지!
사냥 1팀장 휴고와 사냥 2팀장 세사르가 연이어 대답했다.
"용병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고, 4군단이 쫓지 못하도록 남쪽으로 우회해서 팔미라 시 서쪽 엘리베이터로 복귀한다. 그렇게 정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건 T-84구역으로 북상하는 동안 이미 논의가 끝난 일이었다.
- 그렇게 정하긴 했었네. 하지만 막상 저 좀비 떼를 보니... 차마 자네에게 앞장서라고 할 수가 없군.
휴고 가르시아는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60만 마리에 달하는 좀비떼는 내가 보기에도 전율할 정도로 많은 수였다.
'T-84구역엔 저레벨 좀비집단이 많이 모여든 모양이군.'
고작 3레벨 이하의 좀비들을 상대로 고전하는 걸 보니,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가 한 마리만 더 있었어도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몰살당했을 것 같았다.
"아직 여력은 충분하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이 전술 통신을 듣고 있을 밀러쉴더스 산하 용병들을 생각하며 사냥 1팀장 휴고에게 말했다.
싸우기도 전에 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 자네가 만든 로봇이니, 누구보다 자네가 워슈트에 대해 잘 알겠지. 내가 주제 넘었네.
그때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가 미안함과 걱정이 뒤섞인 목소리를 전해왔다.
하지만 난 단순히 우리와 함께 4군단의 표적이 되줄 용병들을 살리기 위해서 고생을 자처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저만한 양의 시체면... 시체보관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겠어.'
난 배틀슈트를 만들 때, 항상 증식장갑이 들어갈 자리를 비워놓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알로 변한 19기의 워리어와 라이더 20기 그리고 게릭슨만 증식장갑을 갖췄다.
나머지 65기의 아머드 스켈레톤들은 등급을 막론하고 증식장갑을 입어보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엔 산처럼 쌓인 좀비들의 시체와 그 위를 짓밟고 올라가는 60만 마리의 좀비들이 보였다.
'이번 기회에 시체보관실도 가득 채우고, 모든 언데드들에게 증식장갑까지 입힌다.'
시체산에 1킬로미터까지 다가가자, 30미터 이상 쌓인 좀비 시체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용병들의 모습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가 있었다.
탄약은 진작에 소모해버렸는지, 수천 명에 달하는 용병들이 산 정상에 둥그렇게 늘어서서 미친듯이 칼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때, 레이저커터의 칼날이 치직! 하고 꺼지더니 좀비 떼에 파묻히는 한 용병의 모습이 보였다.
'베터리가 다 된 모양이군.'
내가 생각한 순간 초진동소드가 날아들어 좀비들을 쳐내고 쓰러진 용병을 뒤로 이송하는 모습이 보였다.
용병들이 둥그렇게 늘어선 전선 뒤엔 수천 명은 족히 되어보이는 부상자들이 쓰러져있었다.
사방이 좀비 천지라 배틀슈트도 벗지 못하고 눕거나 앉은 채로 방치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내가 쉴 새 없이 칼질하다 체력이 다했는지 경련하며 쓰러지는 용병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전술 통신망을 통해 사냥 1팀장 휴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서, 어떻게 할텐가?
일전의 전투에서 제법 활약한 덕분인지, 지휘권을 가진 휴고 가르시아가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내 의견부터 물어왔다.
"가프키 용병연합의 부상자가 너무 많고, 남은 용병들도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밖에서부터 좀비떼를 소탕해서 들어가다간 가프키 용병연합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 그렇겠군. 시간을 끌면 사망자만 늘어나겠어.
"팀장님이 허락하신다면 좀비떼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서 가프키 용병연합의 숨통을 틔워주고 싶습니다."
- 워슈트들이 앞장서주면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가프키 용병연합에 합류하겠네.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는 내가 의견을 내자마자, 호응해줬다.
"워슈트 전 기, 최고속력으로!"
내가 외친 순간, 87기의 워슈트들이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허공에서 콰아아아! 하고 파공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 기, 기간트인가?
- 우린... 살았다!
그때 전술 통신망을 통해 가프키 용병연합 소속 용병단장들의 통신이 들려왔다.
키가 6미터에 달하는 기간트에 비하면 워슈트는 반토막 수준인 3미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화려한 은청색 로봇이 날아가자, 자신들을 구하기위해 출동한 기간트라고 오인한 모양이었다.
그때 전술 통신망을 통해 동굴이 울리는 것 같은 호통소리가 터져나왔다.
- 기간트는 무슨 기간트? 우릴 이 지옥에 몰아넣은 게 4군단인데, 놈들이 우릴 구해주러오겠어? 다들 정신 안 차려!
그와 동시에 좀비들과 맞서는 전선에서 콰자자작! 하는 파열음과 함께 파란 전깃불이 튀었다.
그러자 반경 10미터 안의 좀비들의 몸이 통나무처럼 경직되더니 하나둘 무너져내렸다.
쓰러지는 좀비들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치솟는 걸 보니, 내부가 모두 타버린 모양이었다.
그때, 전깃불을 내뿜은 배틀슈트가 빠르게 접근하는 우리 워슈트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 내가 가프키 용병단 단장, 한스 가프키요! 그쪽은 어느 용병단 소속이오?
그는 검은 바탕에 푸른 색 선으로 장식한 배틀슈트를 입고 있었다.
"밀러쉴더스 산하 아서용병단입니다."
- 미, 밀러쉴더스? 그쪽은 생존자가 몇이나 됩니까?
"8천 명 이상입니다."
- 8천? 밀러쉴더스가 20팀 정도 운용하니까... 거의 완편이잖아?
- 사, 살았다!
- 빌어먹을... 하마터면 자폭할 뻔 했네!
가프키 용병연합의 용병들이 환호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난 한스 가프키 앞에 착륙했다.
그가 푸른 전깃불을 뿌려 한바탕 좀비들을 쓸어버린 덕분에 착륙이 쉬웠다.
하지만 60만 마리에 달하는 좀비떼는 순식간에 그 틈을 매우려고 들었다.
내가 울트라소닉 소드를 한번 휘두르자, 십여 마리의 1레벨 좀비 스토커들의 머리가 단칼에 잘려나갔다.
그 순간 쿵, 쿠구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 시체로 이루어진 산비탈에 86기의 워슈트들이 거칠게 착륙했다.
시체산을 오르는 좀비떼를 짓밟으며 착륙한 워슈트들은 미친듯이 울트라소닉 소드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87기의 워슈트가 일렬로 늘어서서 쉴 새 없이 칼질하자 500미터가 넘는 길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가 만들어준 길로 밀러쉴더스 소속 용병들이 이동하긴 어려워보였다.
"팀장님! 워슈트 머리 위로 이동하셔야겠습니다!"
난 1초에 대여섯 번 씩 울트라소닉 소드를 휘두르며 전술 통신망에 소리쳤다.
- 그 정도는 문제없네!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의 대답이 들리고 우리 뒤를 따라온 에어로트럭들이 워슈트 머리 위로 비행하기까지는 채 5초도 걸리지 않았다.
87기의 워슈트들이 초당 5,6번씩 울트라소닉 소드를 휘두르자 워슈트 주변이 좀비들의 시체로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아치스, 용병연합의 눈을 피해서 사격할 수 있겠어?'
- 워슈트의 어깨나 다리 근처에서 사격하면 언데드웨폰이 저절로 사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워슈트에 장착된 무기인 척 하겠다는 소리였다.
'사냥을 시작해라.'
내가 명령한 순간, 영체 형태인 아치스가 워슈트들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워슈트들의 허리와 어깨 위에 두세 대의 헤비머신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치스가 레이쓰 헤비머신건이 된 망령군을 워슈트에 배치하고 지나간 것이다.
레이쓰 헤비머신건들은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티딩팅팅! 하고 탄피 떨어지는 소리를 쏟아냈다.
레이쓰 헤비머신건 제작과정에서 소음마법진을 추가한 덕분에 와라라락! 하는 20mm 헤비머신건 RT-9 특유의 발사음이 사라진 결과였다.
그 순간 한줄로 늘어서서 울트라소닉 소드를 휘두르던 워슈트들 좌우로 몰려들던 좀비들이 퍼버버벅! 하는 타격음과 함께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치스의 망령군 소속 레이쓰 헤비머신건 200명이 1레벨 좀비의 머리를 정조준한 결과였다.
2,3 초 사이에 1만 마리에 달하는 좀비들이 쓰러지자, 워슈트들이 할 일이 사라져버렸다.
"워슈트 전 기, 우측으로 돌면서 사냥한다!"
난 곧바로 좀비 시체를 박차고 올라 시체산의 산비탈을 타고 우측으로 돌기 시작했다.
1레벨 좀비 스토커들은 헤비머신건이 처리하고 2레벨 이상은 워슈트가 베어넘겼다.
- 주군, 3레벨 좀비 머슬의 머리를 획득했습니다.
그때, 게릭슨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머슬의 머리와 몸은 샤를에게 넘겨라.'
내가 명령한 순간, 전술 통신망을 통해 사냥 2팀장 세사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 아서 단장, 위쪽 방어선은 밀러쉴더스가 맡았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 현재 남은 좀비는 약 47만 마리 이하입니다. >
교전한 시간을 1,2 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워슈트와 레이쓰 헤비머신건이 근거리와 중거리에서 좀비들을 쓸어버리니, 짧은 시간 안에 저레벨 좀비를 12만 마리나 처치할 수 있었다.
'탄약은 얼마나 남았나?'
- 평균 5천 발 이상 씩은 남았습니다. 좀비 사체에서 죽음의 기운을 보충하면 냉기탄환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200대의 레이쓰 헤비머신건이 각자 5천발씩 남았으면 총 백만 발도 넘게 남았다는 소리였다.
'죽음의 기운은 넘치니, 저지력이 강한 냉기탄환을 사용해서 탄약을 아껴라. 우리가 구해야할 용병연합이 한두 곳이 아니다.'
난 멈추지않고 달려나가며 오른손으론 좀비를 베고 왼손으론 걸리적거리는 좀비시체들을 짚었다.
< 2레벨 좀비 스토커의 시체를 [시체보관실]에 보관했습니다.>
< 2레벨 좀비 스토커의 시체를 [시체보...
내가 손댈 때마다 좀비의 시체가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속 시체보관실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전장을 정리하는대로 워슈트는 기계보관실로 입고 시키고 증식장갑부터 입혀주마!'
울트라소닉 소드로 베어넘기고 레이쓰 헤비머신건들이 쏴 죽일수록 좀비 시체로 만든 산은 높아졌다.
그리고 내 눈에 그 시체산은 마그니움 주괴만큼이나 값비싼 전리품으로 보였다.
***
1시간 후, T-73구역.
50미터 높이의 야트막한 산.
그 산은 좀비로 뒤덮여있었다.
그리고 그 좀비들은 하나같이 사체가 된 좀비조각을 씹어먹고 있었다.
우드득, 쩝쩝하고 살과 뼈까지 씹어먹는 소리가 산 전체를 뒤덮었다.
그때 산 정상에서 끼끽! 하고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그건 마치 쇠 우그러드는 소리 같았다.
그 순간, 10만 마리가 넘는 좀비들의 시선이 일제히 산 정상으로 향했다.
산 정상에선 키가 9미터에 달하는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 한 마리가 배틀슈트째로 용병들의 시신을 뜯어먹고 있었다.
- 그륵, 그...
놈은 단지 숨 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놈의 코와 입에선 담배라도 피는 것처럼 하얀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놈이 남은 여섯 기의 배틀슈트를 어거지로 입에 밀어넣었을 때였다.
코와 입도 모자라 귀, 심지어 눈에서조차 하얀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그 연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디스트로이어가 모든 배틀슈트를 씹어삼켰을 땐, 놈의 온몸 모공에서 하얀연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기이한 건, 연기가 마치 무게가 있는 것처럼 날아오르려다 디스트로이어의 피부에 엉겨붙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번 엉겨붙기 시작하자, 모든 연기가 하늘로 날아가지 않고 디스트로이어의 몸을 타고 돌았다.
잠시 후, 디스트로이어였던 괴물은 사라지고 하얗고 둥근 고치만 남았다.
- 크와아악!
그 순간 좀비들이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먹던 시체를 내던지고 제놈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단지 치고박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를 물어뜯고 팔이 뜯겨나가는데도 상대의 살점을 씹어삼켰다.
딛고 있는 야트막한 산이 좀비 사체로 이루어졌음에도 놈들은 사체 대신 움직이는 좀비를 공격했다.
몇몇이 아니라 10만 마리의 좀비가 동시에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물어뜯었다.
그건 집단광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