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05화 (102/152)

105화. 레이첼 무어

밀러쉴더스 소속 용병의 안내에 따라 내게 배정된 텐트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 주인님, 오래된 영혼을 발견했습니다.

아치스가 정신파를 보내왔다.

'오래된 영혼?'

내가 묻자 아치스의 시야가 내게 전해졌다.

그건 사막모래 위를 빠르게 비행하는 아치스의 시야 같았다.

그리고 그 앞에 청금석 목걸이가 빠르게 앞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목걸이 중앙에 달린 호두알만한 블랙 다이아몬드가 인상적이었다.

그 순간, 블랙 다이아몬드 안에 갇힌 백발의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 놈이 갇힌 목걸이가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면... 에어로트럭이나 비행선에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파를 보내는 아치스 앞엔 목걸이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그 앞을 빠른 무언가가 지나가듯 거센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래가 좌우로 튀었다.

< 투명화한 비행체로 추정됩니다. >

- 강대한 망령입니다. 어떻게 모습을 숨긴 건지 모르겠지만, 공격해보면 놈이 반응할 것 같습니다. 공격해도 될까요?

아치스는 손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비행체가 향하는 방향이 정확히 우리 야영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 지켜보기만 해.'

난 텐트에 들어오자마자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 5층 정비실에 입고시켰던 워슈트 1호기부터 꺼냈다.

"미상의 비행체 한 대가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그리곤 텐트를 나오며 전술 통신망을 통해 사냥 1팀장 휴고와 2팀장 세사르에게 보고했다.

- 뒤늦게 합류하는 용병인가?

휴고는 그새 잠들었었는지 조금 잠긴 목소리였다.

"투명화한 채 접근 중이라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습니다."

- 투, 투명화? 그건 지휘관용 건쉽에나 들어가는 옵션인데?

휴고는 투명화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잠이 확 깬 것 같았다.

- 아서, 위치정보 공유해주게. 일단 손님 맞을 준비는 해야지.

그때, 세사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곧바로 투명화한 채, 야영지로 다가오는 에어로트럭의 위치정보를 전술 통신망을 통해 공유했다.

***

- 여긴 밀러쉴더스의 야영지입니다. 에어로트럭을 멈추고 방문 목적을 말씀하십시오.

영파가 터져나온 방향을 따라 이동하는데,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어떻게 할까요?"

미카엘은 목걸이를 꺼내며 물었다.

신분을 숨길지 아니면 무어 학파의 학파장과 4대 기사로 이름을 날린 자신의 신분을 공개할지 묻는 것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순 없으니... 이대로 접촉해."

레이첼 무어가 명령하자, 미카엘이 에어로트럭을 세우고 스텔스 기능을 해제했다.

그러자 동쪽 모래언덕 위에서 배틀슈트 두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 에어로트럭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미카엘이 북, 동, 남 세 방향의 모래언덕 위에 배치된 저격수들을 발견했다.

"경계가 삼엄하군."

- 어제 오늘 사이에 수만 명이 죽어나갔습니다. 정체도 밝히지 않은 손님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상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다.

미카엘은 레이첼 무어와 눈을 한번 마주친 후 스피커를 향해 말했다.

"미카엘 레오다. 너희가 용병이라면 내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 고, 공간기사?

그 순간 통신망에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채 2,3초도 지나지 않아, 서쪽 모래언덕 위로 십여 기의 배틀슈트가 튀어올랐다.

그들은 앞다투어 미카엘이 앉은 조수석 창문 옆으로 내려섰다.

"레오 경. 오랜만입니다."

가장 먼저 착지한 배틀슈트는 헬멧부터 해제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해왔다.

상처투성이 얼굴이었다.

하지만 상처입지 않은 얼굴이 눈에 익었다.

"가르시아라고 했던가?"

"7년만인데 제 이름을 기억하시는군요."

그때 가르시아 뒤에 서서 헬맷을 해제한 채로 기다리던 4단계 강화시술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과 기대가 어린 얼굴들이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길 기다리는 용병들을 보곤 미카엘이 말했다.

"귀한 분을 모시고 왔다. 조용한 자리에서 대화하고 싶군."

"귀하신 분이라면... 억!"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던 휴고 가르시아는 조수석에 앉은 보랏빛 머리카락의 혼혈여인을 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어 학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4단계 강화시술자 휴고 가르시아입니다."

"휴고... 인비져블 블레이드면, 프리드리히 학파에서 시술받았죠?"

"마, 맞습니다. 이미 수십년도 더 지난 일인데..."

"4단계 강화시술에 관한 기록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4단계 강화시술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무어 학파장의 눈에 들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미카엘의 눈에 모래언덕을 넘어오는 셀 수 없이 많은 배틀슈트들이 보였다.

5단계 강화시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현존하는 단 네 명뿐인 네크로맨서!

그녀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용병이란 용병을 모두 몰려드는 것 같았다.

모든 용병들은 5단계 강화시술을 꿈꾼다.

그리고 레이첼 무어는 그들을 5단계 강화시술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네 명뿐인 신의 손이었다.

대부분의 용병들은 3대 귀족보다 그 네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할 정도였다.

귀족은 용병을 견제하지만, 네크로맨서는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곳에서 얘기했으면 좋겠군."

운전석에 앉은 미카엘은 용병들의 반응이 익숙한지 에어로트럭의 운전석 문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미카엘의 말을 들은 휴고 가르시아가 에어로트럭을 댈 곳을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휴고 가르시아는 차를 주차하고 나오는 두 사람을 자신의 텐트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보랏빛 머리카락을 지닌 레이첼 무어와 짧은 금발의 미카엘이 텐트로 들어가자 휴고 가르시아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모두 들어가면 번거로울 수 있으니, 세사르와... 아서 자네도 함께 들어가지?"

"그러죠."

"나머지는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하라!"

"예!"

그가 말하자, 수만 명의 용병들이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레이첼 무어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

"아... 용병연합 수장들만이라도 들어가게 해주지!"

디미트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하자 한스 가프키가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가 무어 학파장님과 맞상대할 레벨인가?"

그 순간 디미트와 가프키가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장 주먹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분위기였다.

"어허! 무슨 말들을 그렇게 험하게 하나?"

그때 프렌켈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며 시선교환을 차단했다.

"그래. 괜히 날 세우지말고 각자 맡은 구역의 경계에 집중하세!"

그러자 퀼러까지 나서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결국 12명의 용병연합 수장들은 각자가 배정받은 경계구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프렌켈은 11명의 수장들이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그는 텐트 문을 닫고 주변의 소음을 경계했다.

그리곤 보온수통을 꺼내 열었다.

그가 수통의 중앙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길다란 안테나가 튀어나왔다.

"여기는 프렌켈입니다."

그가 안테나 옆의 작은 스피커를 향해 소곤대자,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홀로그램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홀로그램창엔 군복차림의 하사가 비춰졌다.

- 위치보고.

그는 프렌켈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위치부터 물었다.

"현 위치는... U-66구역입니다. 상세좌표는 0573-9430입니다."

- 9430이면... 국지전 당시 접전지역 중 하나로군. 특이사항은?

20살 이상 어린 하사가 말끝마다 반말을 찍찍 뱉어대는 모습을 보자, 프렌켈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내가 상대하는 건 저 하사나부랭이가 아니라 4군단이다. 난 4군단과 거래 중이다.'

그가 속으로 화를 가라앉힐 때였다.

- 이봐, 특이사항!

이름도 밝히지 않은 하사가 프렌켈을 노려보며 따져물었다.

"휴... 레이첼 무어와 공간기사가 용병 수뇌부와 접촉했습니다."

- 뭐?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턱턱 반말을 뱉던 하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

"학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밀러쉴더스에서 일하고 있는 휴고 가르시아입니다."

휴고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보랏빛 머리카락의 혼혈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세사르를 바라봤다.

"밀러... 쉴더스에서 사냥 2팀을 맡은 세, 세사르 알마챠입니다."

세사르는 어울리지않게 말까지 더듬으며 휴고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이쪽은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때, 서늘한 인상의 공간기사라는 자가 날 보며 물었다.

"아, 이 친구는 저희 회사 루키 중의 루키입니다."

"루키? 강화시술자처럼 보이진 않는데...?"

미카엘은 워슈트에 탄 나와 휴고를 번갈아보며 눈쌀을 찌푸렸다.

"아서, 내려서 인사드리게. 무어 학파장님은 강화시술의 정점에 오르신 분이시고 여기 공간기사 레오 경은 무려 5단계 강화시술자시네."

난 휴고의 호들갑에 워슈트의 콕핏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위잉~ 철컥! 하는 기계음과 함께 콕핏이 열린 순간이었다.

< 언데드 악취를 발견했습니다. >

< 좀비의 악취와 유사도 37.5% >

< 5단계 강화시술자에 대한 정보를 기록합니다. >

공간기사 미카엘 레오.

그는 좀비와 37% 이상 유사한 악취를 내뿜으면서도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20% 초반대인 3단계 강화시술자들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어떤 좀비인자를 사용했는지 궁금하군.'

난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워슈트에서 내리자마자 휴고처럼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인사했다.

"밀러쉴더스 소속 아서용병단의 아서입니다."

내가 레이첼 무어에게 고개숙인 순간, 텐트에 들어와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처음 보는 로봇이군요?"

***

처음보는 탑승형 로봇에 시선이 빼았긴 순간, 레이첼 무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휴고 가르시아가 로봇 옆으로 이동했다.

"이 워슈트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4레벨 좀비 디스트로이어의 목을 겨우 두번만에 베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로봇입니다."

"4레벨 좀비를?"

미카엘이 흥미를 보이자, 세사르가 워슈트 반대편에 서며 말을 보탰다.

"아서 이 친구가 정말 걸물을 만들었습니다. 워슈트가 아니었으면 집단광기때문에 사지로 몰린 용병연합을 여섯 곳이나 구할수도 없었을 겁니다."

디스트로이어.

그건 미카엘도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좀비였다.

하지만, 거기 탑승한 사람이 문제였다.

"강화시술자도 아닌데, 정말 자네가 저 로봇에 탑승한 채 디스트로이어의 목을 베었나?"

"이 친구는 사이보급니다."

그때 휴고가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미카엘이 눈쌀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다른 워슈트들이 잡아놓은 디스트로이어의 목만 베었을 뿐입니다."

녹색 눈이 인상적인 아서라는 사이보그가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워슈트에서 홀로그램이 뻗어나왔다.

여러 기의 워슈트가 사로잡은 디스트로이어의 모습과 놈의 목을 두번만에 베어버리는 영상이었다.

팔미라 시의 강화시술자 중 네 손가락에 꼽히는 미카엘에게 디스트로이어는 그리 어려운 사냥감이 아니었다.

하지만 1단계 강화시술도 받지 못한 사이보그라면?

'사이보그가 디스트로이어를 사냥했다는 얘긴 들어본 적도 없어.'

용병이나 전쟁병기의 도움 없이 워머신만으로 디스트로이어를 잡으려 한다면?

'1천 기가 달려들어도 고철신세가 되겠지.'

중장거리 포격과 적절한 용병들의 협업이 없다면 워머신만으로 디스트로이어를 사냥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상식을 깬 탑승형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내가 타면... 어느 정도 위용을 보일 수 있을까? 배신자 니콜라스 놈의 골렘 급은 아니더라도... 기간트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카엘은 자기도 모르게 워슈트를 어루만지며 워슈트에 탄 자신을 상상했다.

"확실히... 워머신보다는 나아보이는군. 자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네."

"실력있는 친구군."

미카엘은 워슈트에 다가가 장갑과 콕핏 내부를 살폈다.

'기간트나 골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워머신 따위와 비교할 레벨도 아니야.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골렘은 몰라도 기간트급 로봇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이보그 아서가 대기업에 소속된 엔지니어가 아니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닌데, 혼자 용병으로 활동하면서 워머신을 뛰어넘는 탑승형 로봇을 만들었다?

'지금보다 장래가 기대되는 친구야.'

마음을 정한 미카엘은 사이보그 아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이 워슈트는 한 기에 얼마인가?"

그가 물은 순간이었다.

레이첼 무어가 다가와 미카엘의 팔뚝을 꼬집으며 말했다.

"크흠...! 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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