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106화 (103/152)

106화. 복귀

'영파?'

무어 학파장의 말을 듣고 내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아! 가르시아, 혹시 이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음이나 고레벨 좀비를 발견하진 못했나?"

"다들 정신없이 골아떨어져서 별다른 소음은 듣지 못했습니다. 좀비들도 집단광기에 다 몰려갔는지 서너시간 내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정확히 어떤 걸 찾으시는 겁니까?"

휴고가 묻자, 미카엘은 대답하는 대신 레이첼 무어 학파장을 돌아봤다.

그건 명백히 그녀의 허락을 구하는 태도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보랏빛 머릭카락을 지닌 혼혈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파장님께서 강력한 좀비의 존재를 느끼셨다. 분명 이 근방에 있을텐데..."

"아서, 정찰하면서 좀비를 본 적 있나?"

미카엘의 말을 들은 세사르가 내게 물었다.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좀비는 없었습니다."

"그래? 자네가 정찰을 맡았으면 이 주변 지형에 대해 잘 알겠군?"

미카엘 레오는 잘됐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다른 분들보단 잘 알 겁니다."

무어 학파장과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친 미카엘이 내게 말했다.

"그럼 길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사례는 하겠네."

"이 근방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죠."

내 대답을 들은 미카엘은 고맙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레이첼 무어 학파장을 텐트 밖으로 이끌었다.

밖으로 나온 무어 학파장이 가리킨 방향은 정확히 백골산이 있었던 자리였다.

'설마 백골산의 망령들을 느끼고 온 건가?'

백만에 달했던 용병과 엘리트 좀비들의 영혼이 내뿜는 영력이라면 영매의 영적인 감각을 자극했을 법도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멀리서부터 느낀 거지?'

난 레이첼 무어의 영적인 감각이 얼마나 먼 거리의 영혼까지 느낄 수 있는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난 레이첼이 원하는대로 그들을 백골산이 있었던 언덕으로 이끌었다.

모래언덕 하나만 넘으면 되는 거리라 오래걸리지도 않았다.

"여기야!"

카라페이스의 갑각와 뼈가 사라진 오목한 땅을 본 무어 학파장은 손가락질까지 하며 소리쳤다.

"여기가 맞습니까?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미카엘은 모래를 뒤적이더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일어나며 물었다.

"아니... 분명 여기였어."

레이첼 무어는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갑자기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모래에 손을 댔다.

그 순간, 레이첼 무어의 눈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래! 여기... 엄청난 흔적이 남아있어."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이첼 무어의 눈동자가 하얗게 빛나는 것은 마치 초상능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들키는 건가?'

내가 마음 졸인 순간이었다.

레이첼 무어가 뭔가에 취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누군가가 가리고 있어. 내가 보는 걸 원하지 않는군. 그냥 윤곽만 보이는데... 어떻게 생긴 괴물인지 모르겠어. 아니... 이게 좀비가 맞긴 한 건가?"

"어떻게 생긴 놈입니까?"

"거, 거대해. 팔도 다리도 없지만... 거대해. 그리고 엄청난 힘을 품고 있어!"

레이첼의 말이 이어질수록 미카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레이첼 무어는 미카엘의 질문에 답하고나서야 하얗게 변했던 눈이 제 색을 찾았다.

그녀의 밝은 하늘색 눈동자는 정확히 내가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을 강화했던 자리를 향해 있었다.

"이, 이 정도면... 거의 1킬로미터에 달하는 몸집이야!"

"1킬로미터면, 마운틴 퀸 급이잖습니까?"

레이첼 무어의 말을 들은 미카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1킬로미터면... 내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과 비슷한 크기 아닌가?'

< 강화 과정에서 반경 300미터 수준이었던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이 반경 500미터 수준으로 크기를 확대했습니다. >

< 해당 네크로맨서가 사용자님의 아공간 [메카닉 네크로맨서의 무덤]을 강화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

< 타겟 [레이첼 무어] >

< 동공 및 호흡 반응을 토대로 감정을 분석합니다... >

< 감정분석 결과 - 확신 50%, 경악 32%, 공포 18%. >

< 강화의 흔적을 5레벨 좀비의 흔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

시스템 메세지를 읽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미카엘의 몸이 허공으로 부유했다.

그리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버렸다.

< 시속 1500킬로미터 수준의 비행능력입니다. >

< 음속의 1.25배 수준입니다. >

< 일체의 충격파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 공간단절과 관련된 특이능력으로 추측됩니다. >

음속보다 빠르게 날아올랐는데 충격파는 커녕 바람 한점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기이한 경험이었다.

'배틀슈트도 입지 않은 채, 저 정도 비행능력이라니...'

그 순간 미카엘 레오의 시신으로 아머드 스켈레톤을 일으키면 어떤 등급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때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미카엘이 떨어져내렸다.

충격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내려온지도 몰랐을 정도로 은밀한 비행능력이었다.

"정말 새로운 5레벨 좀비가 등장한 겁니까?"

그는 내려오기 무섭게 레이첼 무어 학파장에게 물었다.

"이 정도 흔적이라면... 5레벨. 어쩌면 그 이상이겠지."

그녀의 대답을 들은 미카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운틴 퀸 급의 괴물이 이렇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다니... 공간이동한 흔적이 없는 걸 보니, 비행이 가능한 개체 같습니다."

"미카엘, 아까 원소폭발이 일어났다고 했었지?"

레이첼이 묻자, 미카엘은 내 눈치를 살폈다.

"저희도 원소폭발을 경험했습니다. 충격파가 200킬로미터 넘게 전해지더군요."

내 말을 들은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도 한번 가봐야겠어. 여기서 수십만에 달하는 영혼을 탐한 놈이라면... 다음 목적지는 거기뿐이야!"

"안됩니다."

그 순간 미카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뭐?"

"상대가 5레벨 이상의 좀비라면... 놈을 찾는 게 아니라 팔미라로 몸을 피해야합니다."

"미카엘, 이대로 놈을 방치한다면...!"

"아니요. 우리가 놈을 찾아도 손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마운틴 퀸급 괴물이라면 시장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미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무어 학파장을 언덕 너머로 안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한번 질끈 깨문 레이첼 무어는 한숨을 내쉬곤 미카엘을 따라 이동했다.

언덕을 넘은 미카엘은 곧장 자신의 에어로트럭으로 향하며 내게 말했다.

"자네들도 어서 팔미라 시로 복귀하게."

5레벨 좀비가 탄생했다고 믿는 모양인지 굳은 표정이었다.

"팔미라 시 동쪽 구역은 4군단이 노리고 있어서 남쪽으로 우회할 생각입니다."

"3군단이 맡은 팔미라 남쪽으로 피신하겠다? 괜찮은 생각이군. 통신단말 열어주게. 4군단을 피할 수 있는 루트를 알려주지."

미카엘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호의에 내가 대답하지 않자, 조수석에 레이첼을 태우며 말했다.

"워슈트도 좋지만, 자네라면 더 나은 탑승형 로봇도 만들 수 있겠지?"

"그러기위해 노력 중입니다."

"누구보다 자네가 기간트급의 로봇을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이 바로 나야. 이건 자네가 만든 첫번째 기간트급 로봇을 예약하는 선금 정도로 치지. 어떤가?"

난 그에게 로봇을 판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무슨 이유에선지 탑승형 로봇에 목 말라있는 모습이었다.

'일단 줄은 대 놓는 게 낫겠어. 그래야 기간트급 로봇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투자금을 뜯어내 건, 아니면 이 자의 장례식에 참여하든 할 수 있을테니까...'

난 나도 모르게 아머드 스켈레톤으로 일으킨 미카엘을 기간트급 탑승형 로봇에 태우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마운틴 퀸의 분신 정도는 혼자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건 생각만해도 짜릿한 상상이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카엘은 내 대답을 듣고나서야 에어로트럭에 올랐다.

뒤늦게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용병들이 달려왔다.

하지만 에어로트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미라 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31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49가지 루트에 관한 정보를 다운받았습니다. >

그때 시스템이 내 시야에 지도와 그 위에 미카엘이 보내준 퇴각로에 대한 정보를 펼쳐보였다.

거기엔 4군단의 병력배치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본의 아니게 빚을 졌군.'

***

그 시각, 4군단 지휘통제실

"군단장님, 진상조사 위원회에서 소환통보장을 보내왔습니다."

참모장 울리히 모스치토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로, 소환 통보장을 조슈아 빌헬름 중장에게 건넸다.

- 거트 볼드윈 소장을 포함한 골렘 10기 실종에 관한 진상조사 위원회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소환통보장을 받아든 조슈아 빌헬름 군단장은 혼이 나간 듯 숨조차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지휘통제실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작전참모 레이너 아킨 소령이었다.

"군단장님! 무어 학파가 패잔병들과 접선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던 조슈아 빌헬름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무어 학파면... 레이첼 무어?"

"네! 그년이 직접 움직였습니다. 이건 분명 용병들을 끌어들여 4군단을 좌초시키려는 음모가 틀림없습니다!"

조슈아 빌헬름 중장은 고개를 휙! 돌려 아킨 소령을 보며 물었다.

"무어 학파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팔미라 시의 시민 30만 명을 좀비 밥으로 던졌다는 식의 여론전을 펼치지 않겠습니까? 용병들이 증언하고 무어학파가 자금을 대면... 군단장님의 이름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작전참모 아킨 소령은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크윽... 젠장! 네크로맨서 학파가 왜 내 정치생명을 끝내려는 거지?"

"3대 가문의 분열을 바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네크로맨서들이 가장 원하는 게 귀족들의 세력 약화라고 들었습니다."

울리히 모스치토 참모장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조슈아 빌헬름 중장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버지께서 카일 브라운을 회유한 것에 대한 복수인가?"

브라운 학파에서 배출한 5단계 강화시술자, 그를 회유해서 시의회에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바로 조슈아 빌헬름의 아버지 토비아스 빌헬름이었다.

네크로맨서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원수로 여기고 그 빚을 그 아들인 조슈아 자신에게 갚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으득...! 내가 이대로 격하되어 귀족신분을 잃는다면 아버지께서 네크로맨서놈들을 가만히 둘 성 싶으냐!!!"

조슈아가 소리친 순간이었다.

지휘통제실에 있던 영관과 부사관들이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버렸다.

단지 소리지르는 것만으로 20명이 넘는 군인을 기절시켜버린 것이다.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기절하지 않은 건 참모장 울리히 모스치토뿐이었다.

***

21시간 후, 팔미라 서쪽 3번 엘리베이터 앞 위병소.

우린 팔미라 시 남쪽을 담당한 3군단의 구역을 지나 서쪽에 위치한 1군단의 구역까지 이동했다.

3만 명이 넘는 용병들을 31개 퇴각로로 나눠서 이동시킨 덕분인지 아직 4군단에게 잡혔다는 통신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와 휴고를 따라온 밀러쉴더스 소속 천여 명의 용병들이 위병소 앞에서 출입수속을 밟고 있었다.

"4등 시민 아서?"

워머신에 탄 장벽방어군 소속 병사는 나와 내 뒤에 늘어선 용병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네."

그는 워머신 내에 설치된 디스플레이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고생했네. 장벽방어군 모두가 4군단이 벌인 짓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3번 엘리베이터가 1군단이 맡은 구역이긴 했다.

하지만 같은 장벽방어군 소속인 병사가 공공연하게 4군단을 탓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 조슈아 그 개자식이 원소폭발로 많은 걸 잃었다는 무역상들의 소문이 사실인가보군.

그때 사냥 1팀장 휴고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전술 통신망으로 전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