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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6화 (6/243)

6화 송국 멸망 계획

* * *

대로변의 그 사건으로부터 두 시진 후.

고한과 고해는 송성밖에 있는 외딴 마을에 도착했다.

두 사람 뒤로 일단의 호위들이 따르고 있었다.

고해와 고한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곳은 십여 호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한쪽에 비교적 큰 집이 있었는데, 지금 그 집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십여 호도 모두 불에 탄 상태였다.

큰 집에는 불에 탄 현판이 달려 있었는데 ‘임부’라는 글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고한이 뒤에 있는 호위들을 보며 말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자.”

“예, 주인 나리.”

호위들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곧 검게 탄 시신 한 구가 실려 나왔다.

호위 하나가 고한에게 말했다.

“입 안에 재가 없는 걸 보니 먼저 살해를 당한 다음에 태웠습니다.”

고해와 고한은 그저 혀를 찰 따름이었다.

이후 폐허로부터 시신들이 줄줄이 실려서 나왔다.

고해와 고한은 침통한 얼굴로 시신들을 살펴보았다.

그때, 다른 호위가 소리쳤다.

“주인 나리! 여기 산 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래?”

고해와 고현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임부의 폐허 가운데에 온몸이 시커먼 남자 하나가 힘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고한이 그 사람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검이 심장을 찔렀는데도 죽지 않았군!”

고해가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아니다. 그의 심장이 오른쪽에 있어서 다행히 살아남은 게야.”

호위들이 남자의 입과 코에 있는 재를 제거하고 물을 마시게 했다.

콜록, 콜록…….

남자가 기침을 하고는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온 곳곳이 모두 불에 탄 폐허였다.

홀연, 남자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님! 누님! 누님!”

그의 누이를 찾고 있는 것인가…….

고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흐음, 시신은 모두 밖에 있소.”

남자는 재빨리 나가서 한쪽에 모아 놓은 시신들을 살폈다.

이윽고 그는 까맣게 탄 여자의 시신 앞에서 멈췄다.

여자의 머리는 뭔가에 부딪혀 터진 것 같았고, 몸에는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옷은 풀어 헤쳐져 있는데, 불에 타기 전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은 듯했다.

“누님 죽으면 안 돼……!”

남자는 그 자리에서 나뒹굴며 울부짖었다.

“으아아! 송정서-! 으아아아!”

남자는 땅을 구르며 몸부림쳤다.

고한이 무거운 음성으로 설명했다.

“의부님. 알아보니, 여긴 고선무 휘하 선봉인 임총의 집입니다. 이 여자는 나접이라고 하는데 임총의 부인입니다. 임총과 나접은 몹시 화목한 부부인데, 어느 날 송정서가 나접을 보고 그녀를 탐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임총이 집에 없는 걸 알고 송정서가…….”

고해가 몸부림치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고선무 휘하… 선봉 임총의 부인?”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곳은 여기뿐만이 아닙니다. 황태손도 이런 짓이 처음은 아니고요. 이런 사건은 대부분 권세에 의해 무마되는 법이지요.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관청 사람들은 이 일을 덮어버리려 할 겁니다.”

고해는 침잠된 눈빛으로 말했다.

“내일 모임은 취소해라. 다른 사람 찾을 필요 없어. 송정서로 하자. 지은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지.”

“송정서를 계기로 삼으실 겁니까? 혹시 죽이실 생각이신지……?”

고해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그가 살기를 원한다.”

고해의 눈길은 몸부림치는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그런 놈에게 죽음은 너무 과분하지.’

다음 날.

송성 성 밖에 작은 장원 하나가 있었다.

그 장원에서 고해는 하인을 시켜 전서구에 편지를 묶게 했다.

고한은 고해 앞에 서서 손에 한 묶음의 종이를 쥐고, 맨 앞장에 ‘송국 멸망 계획’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글을 모두 적은 고한이 눈을 들며 말했다.

“의부님, 나접의 동생이 우리의 보호를 받으며 전선으로 갔습니다. 얼마 안 돼서 임총이 있는 전장에 도착할 겁니다.”

고해가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접 하나로는 부족해. 송정서의 모든 범죄 증거를 수집해라. 그리고 각 지역 장졸 식구들의 비참한 현황도 모두 수집하고. 없어도 만들어야 해.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고 잠시 사라지게 해라. 전쟁이 끝나면 모두 풀어주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장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의부님이 직접 호뢰관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선무가 행군을 멈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고해는 시선을 들었다.

“아니……. 고선무는 용병술이 아주 기괴하고 뛰어나지. 결코 모험을 피하려는 자는 아니야. 행군을 멈춘 것은 남의 이목을 속이려는 것이다. 행군을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정병을 몰래 데리고 이미 호뢰관에 도착했을 것이다.”

고한이 깜짝 놀라자 고해가 말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고진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동안 우리는 고선무의 팔십만 대군을 해체시켜면 돼.”

고한의 눈에 경탄하는 빛이 번득였다.

고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싸늘히 말했다.

“이제 송국멸망계(宋國滅亡計)를 시작한다. 첫 번째, 상군심(喪軍心: 군심 흔들기)! 전서구들을 날려 보내라.”

쾅! 소리와 함께 비둘기장이 활짝 열렸다.

곧 비둘기 한 무리가 하늘로 치솟아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 * *

호뢰관(虎牢關).

징……! 징……! 징……!

군사를 철수시키는 징 소리가 호뢰관 밖에서 들려왔다.

호뢰관은 가파른 절벽 사이에 있는 거대한 성루였다.

성루 안쪽에도, 호뢰관 밖에도 시신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포연이 사방에서 일어나 성루 변에 있는 사다리도 모두 불에 타고 있었다.

백발의 고진.

그는 성루 입구에 서서 철수하는 송군을 내려다보았다.

고진 뒤에는 진천산과 진양의가 서 있었다.

진천산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군. 최근 고선무의 군대가 고해 때문에 놀라 군사를 멈추고 정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뜻밖에도 속임수였어. 이목을 속이고 여기까지 오다니. 그것도 정병을 이끌고 말이지. 당신이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호뢰관이 무너질 뻔했네.”

진양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자네가 기름을 준비한 게 다행이야. 송군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자마자 기름으로 사다리를 불태우지 않았더라면, 으음……! 상상만 해도 아찔했네. 역시 송군은 잔인하고 용맹해. 한 명이 올라오면 우리 군졸 다섯 명이 상대해야 하니까.”

고진은 먼 곳을 내다보며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은 말실수하지 마시오. 명심하시오, 난 지금 고해란 말이오.”

사실, 고진은 지금 고해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진의 머리는 흰색이었고 얼굴에도 주름이 많았다.

고해와 별로 닮지는 않았지만, 고해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상대를 속일 수 있었다.

진천산과 진양의는 침중하게 동감했다.

“옳은 말씀이오.”

“알겠소이다.”

애초에 고해가 고진을 이곳에 배치했을 때 진천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진이 자칫 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진천산은 비로소 안도했다.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지.’

이제 진천산의 불만도 눈 녹듯 사라졌다.

고진은 적군의 공격을 꿰뚫어 보고 연이은 두 시진 반 동안의 공격을 막아냈다.

군신 고선무를 후퇴시킨 것이다.

진양의도 굳게 다짐하듯 말했다.

“당신 뜻에 따르겠소. 고선무만 막을 수 있다면,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요.”

고진이 진천산을 향해 정중하게 부탁했다.

“진 선사, 의부님은 최대한 빨리 송국을 멸망시키려 하십니다.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의부님의 행방을 남에게 누설하지 말아주십시오.”

진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네. 나 역시 비밀을 지키겠네. 그런데 방금 한 번의 공격으로 삼천 명이 죽었는데, 고선무 쪽도 삼천 명만 잃었네. 고선무의 군대가 끊임없이 밀려오면 어떻게 막아낼 건가?”

“안심하십시오. 저는 의부님을 믿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의부님께서 그들의 발을 묶을 겁니다.”

“아, 그래?”

“방금 관문을 통과했던 사람은 고선무의 선봉 장수로, ‘임충’이라고 합니다. 이자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화공을 시켜 임충의 얼굴을 그리도록 하고, 이를 모든 병사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임충을 보는 즉시 활을 쏘라고 하십시오.”

진양의가 굳은 어조로 대답했다.

“알겠소. 맡겨만 주시오.”

* * *

호뢰관 바깥의 큰 막사 안.

마흔 살 전후의 그 남자는 홍의(紅衣)를 걸쳤다.

뭐랄까, 참으로 고상함이 느껴지는 풍모다.

홍의인의 준수한 얼굴 양미간에 영기(靈氣)가 보였다.

그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모래로 된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모래 지도에는 호뢰관의 모든 지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의 옆에 한 무리의 시위(侍衛)가 조용히 선 모습이 보인다. 시위들 중 누구도 홍의인을 방해하지 못했다.

차를 마신 홍의인은 손을 모래 지도에 대고 휘둘렀다.

그때.

“보고드리옵니다!”

피투성이가 된 장대한 남자가 장막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홍의인은 등지고 서서 계속 모래 지도만 보고 있었다.

장대한 남자가 통렬하게 말했다.

“대원수! 저 임충이 무능하여 호뢰관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적들은 마치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결국 삼천 병사가 목숨을 잃고 이천여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저의 무능으로 큰 손실을 입었으니 부디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도 홍의인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장대한 남자, 임충은 절을 올리며 다시 죄를 청했다.

“대원수! 제발 저에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제야 찻잔을 든 홍의인, 바로 고선무가 입을 열었다.

“네가 성루를 뚫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루를 뚫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지.”

임충이 망연하게 대원수를 바라보았다.

“예?”

고선무는 찻잔을 든 채 천천히 돌아섰다.

그가 임충을 보고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한 번 공격으로 호뢰관을 뚫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선봉군으로 호뢰관을 시험해 본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 마라. 성을 지키는 자는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까.”

임충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대원수께서는 저를 탓하지 않으십니까?”

고선무는 차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미 사람을 보내서 호뢰관의 지세를 조사했다. 역시 고해는 고해야. 이렇게 흠잡을 데가 없다니. 그 험한 산 입구마저도 낭떠러지를 무너뜨려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끊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삼천 병사들은……!”

수천의 부하를 잃은 임충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선무가 그를 보며 소리 낮추어 말했다.

“전쟁에는 어쩔 수 없이 사상자가 나는 법. 고해는 우리가 이전에 만났던 어떤 자들과도 다르다. 절대로 그를 얕잡아보면 안 돼. 명심해라. 그는 나보다 뛰어난 자다.”

고해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고선무의 말에 임충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제가 받드는 분은 오직 대원수뿐입니다!”

그런데 고선무가 말했다.

“그래? 난 세상에서 오직 그만을 받들고 있다.”

임충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나는 그를 받들지만, 또한 그를 이겨야 한다. 나는 그를 경외하는 한편으로 그를 극복할 대상으로 여긴다. 내가 그러하거늘, 하물며 너희들임에야……. 당부하노니, 너희들도 그를 조심해라.”

“예, 대원수!”

“고해가 진지하게 용병술을 발휘하면 결코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드러난 계획 외의 이면에 숨은 계획도 너무 많다. 발견해 내기 어려운 수작들이지. 앞으로 이상한 일이 생기면 내게 먼저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고선무는 마지막 차를 마신 다음 차갑게 말했다.

“삼 일 동안 더 공격해라. 한 무리의 병사들이 죽어도 상관없다. 우리 군사 한 무리가 죽으면 어차피 호뢰관의 적들도 똑같이 죽을 테니까. 적들은 동료가 죽는 걸 보면 딴마음이 생길 것이다. 삼 일 후에 일시 철수하고, 다음 날 모든 군세로 들이친다. 그리하면 적들은 당황해서 자멸할 것이다!”

임충은 깊이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대원수! 명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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