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8화 (28/243)

28화 참살 방천룡

홍의인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송국의 방천룡이다!”

고해의 표정이 야릇해졌다.

“방 태사의 아들인가? 십 년 전부터 선천경을 수련하기 시작해 송갑종에 들어갔다는 말은 들었지.”

방천룡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장사꾼 영감이 선천경을 수련한 줄은 생각도 못 했군. 일품당에는 어떻게 들어간 거지?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진군을 관장할 권리를 얻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아니, 가만! 당신 설마?!”

그사이 고해는 마지막 세 번째 검을 뽑아냈다.

몸에 박혀 있던 검이 모두 뽑히자 인두사신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고해는 가볍게 그녀를 받아주었다.

방천룡이 눈을 부라리며 닦달했다.

“고해! 송국은?! 우리 송국은 어떻게 됐나?!”

고해가 한쪽을 힐끔 보며 말했다.

“송청서, 네 제자가 너무 시끄럽구나.”

“뭐, 뭐라고……?

그 말에 방천룡이 얼이 빠진 듯 멍청하게 있다가 급히 사방을 훑어보았다.

송청서는 이를 깨물며 대답했다.

“타주님. 방천룡이 비록 송갑종의 제자이기는 하나 저의 직계 제자도 아닌데 제가 어찌 그를 다룰 수 있겠습니까.”

고해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송청서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송청서의 존재를 확인한 방천룡이 다급히 물어왔다.

“사숙, 송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송청서가 고해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송국은 이미 멸망했다. 자네 부친 방 태사 역시 고 타주님의 술수 때문에 죽고 말았네.”

“뭐라고요?!”

방천룡의 부릅뜬 눈이 고해를 향했다.

고해가 송청서를 보니 놈은 냉소를 짓고 있었다.

방천룡은 울분을 터트렸다.

“고해! 네놈이 아버지를 죽였단 말인가?!”

고해는 송청서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물었다.

“자네가 방천룡을 다룰 수 없는 게 사실인가?”

송청서는 한숨 쉬며 대답했다.

“타주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이미 일품당에 속해 송갑종을 떠난 몸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를 다룰 수 없습니다. 이 일은 타주님과 방천룡의 사적인 원한이니 더더욱 제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고해는 코웃음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송청서는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별안간 방천룡이 곡을 하며 부르짖었다.

“어허헉! 고해! 네놈이 정녕 아버지를 해쳤다면 나는 자식 된 도리로 복수해야만 한다! 사형들, 어디 계십니까?! 저를 도와 고해 놈을 끌어내 주십시오! 제가 직접 놈을 찢어 죽이고 말겠습니다!”

군중 속에 있던 송갑종 제자들이 몰려나왔다.

고해가 차갑게 말했다.

“아하! 송갑종이 일품당에 맞서 죽을 때까지 싸워보자 이건가?”

내뱉는 말에서 살기가 등등했다.

송갑종 제자들은 일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군중의 시선은 송청서를 향했다.

그 광경에 고해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송청서를 보면 뭘 하나? 이제 그는 일품당에 들어온 몸이라 더 이상 자네들과 상관이 없네. 자네들이 한 걸음만 더 나온다면 송갑종이 일품당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간주하지. 자, 그래도 싸울 것인가?”

송갑종 제자들은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곧 그들은 살금살금 뒤로 물러났다.

“뭐 하시오?!”

방천룡이 부르짖듯 소리쳤지만 그들 역시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이리된 이상 혼자서라도 사생결단을 낼 수밖에 없었다.

방천룡은 고해를 향해 눈물과 함께 저주를 퍼부었다.

“고해야! 이 철천지원수 놈아! 네놈이 일품당의 타주면 뭘 어쩌라는 것이냐?! 설사 네놈이 일품당주라고 해도 나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네놈이 아버지를 해쳤으니 나는 네놈을 죽여 복수해야겠다! 죽어라!”

다음 순간, 방천룡이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 * *

방천룡이 검을 휘두르니 장검에서 한 줄기 붉은빛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 기운은 살기를 품고서 순식간에 고해의 면전까지 다다랐다.

“송청서, 나를 가로막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진천산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송청서가 냉소를 띤 표정으로 답했다.

“서두르지 말게. 타주가 자네를 찾지도 않았는데 왜 서두르나?”

진천산은 송청서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때 군중 속에서 수염을 기른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진기부물(真氣附物), 선천경 이단계인가?”

사방을 둘러싼 수련자들이 모두 고해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막지도,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검이 날아드는 기세는 매우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 고해의 눈앞에 이르렀다.

“조심하세요!”

인두사신이 놀라 소리쳤다.

그 순간, 고해의 가늘게 떠진 눈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쾅!

거세게 진각을 밟자, 땅이 굉음과 함께 진동하며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쿠궁!

이어진 두 번째 굉음과 함께 고해의 주먹이 방천룡의 복부를 강타했다.

매우 빠르고 강력한 한 방에 방천룡의 몸이 포탄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으악!”

쾅!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방천룡이 돌벽에 처박히고 수많은 바위가 부스러졌다.

송청서가 놀라 소리쳤다.

“뭐, 뭐야? 말도 안 돼!”

고선무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타주님?”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방천룡은 어떤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복부를 맞자마자 날아간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선천경 일단계가 어떻게 저리 강하고 빠를 수 있지?”

모여 있던 송갑종의 제자들이 소리쳐서 방천룡을 불렀다.

“사제!”

방천룡은 주저앉은 채 고해를 바라보았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이제 막 선천경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인데, 어떻게 내 적수가 될 수 있지?”

고해의 주먹 한 방은 매우 강력했다.

방천룡은 자신의 오장육부가 다 부서진 듯 느껴지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송갑종의 제자들이 그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고해가 고개를 돌리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송갑종이 끼어들겠다는 것인가? 일품당에 맞서서?”

고해가 눈을 부릅뜨자, 송갑종의 제자들은 일순간 안색이 변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송청서는 그때까지도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방금 일격은 적어도 선천경 삼단계의 힘이 실려 있었어. 그런데 고해는 겨우 일단계잖아?”

진천산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했다.

“외공을 수련한 탓인가? 외공을 수련하여 그의 체력이 다른 사람보다 강력해졌기 때문에……?”

군중 속의 수염을 기른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해가 찬 땅을 응시했다.

그 밑에는 돌멩이 몇 개가 발에 밟혀 부서져 있었다.

“엄청나게 강한 힘인데, 도대체 어떻게 수련한 것이지?”

그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음침한 빛이 번뜩였다.

그때 고해가 방천룡의 검을 주워들고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눈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방천룡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해가 이제 막 선천경을 수련했으므로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형, 살려주시오. 사형, 사형.”

방천룡은 고해가 가까워지는 걸 보고 공포에 질려서 송갑종 제자들을 향해 도움을 청했다.

송갑종 제자들은 서로를 돌아다보았다.

하지만 그뿐,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런 송갑종의 제자 중 하나가 초조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고 타주, 방천룡이 무례를 범하였소, 고 타주께서는 부디 용서를 베풀어 주시오!”

고해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차갑게 답했다.

“자네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네. 방금 전 그가 나를 죽이려 할 때는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가?”

“허나…….”

“나와 이자의 일은 사적인 원한이나, 그를 도우려 하면 이는 일품당과 송갑종의 원한이 되네. 물러서게.”

송갑종 제자들은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고해의 말이 맞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사숙, 살려주십시오, 사숙!”

방천룡은 겁먹은 얼굴로 송청서를 향해 애원했다.

송청서는 낯빛이 약간 변해서 고해를 바라보았다.

“타주, 이 일은 모두 저 인두사신 때문인데, 어찌 저것 때문에…….”

“송청서!”

고해의 차가운 호통이 송청서의 말을 잘랐다.

고개를 돌린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송청서를 응시했다.

송청서는 안색이 조금씩 굳어가면서도 여전히 입을 열어 말했다.

“타주, 방천룡은 어리석어서 잠시 실수를 한 것일 뿐입니다.”

고해가 그런 송청서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송청서, 자네는 방금 저자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어찌 저자와 관련도 없으면서 나를 말리려고 하는 건가?”

“예?”

송청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네는 분명 그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는 마음대로 하기를 바라는가?”

송청서가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말을 돌렸다.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니 다행이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옆으로 물러서 있어라.”

차갑게 다그친 고해는 안색이 어두워진 송청서를 외면하고 다시 방천룡을 바라보았다.

방천룡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의 말 몇 마디에 눌려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방천룡은 고해를 무서워하며 사정했다.

“제발 살려주시오, 고 타주, 내가 잘못했소! 내가 나빴소! 제발 살려주시오!”

고해가 장검으로 방천룡을 겨눈 채 차갑게 말했다.

“이 고해가 저 뱀 여인을 구한 것은 정이 많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네. 아직 나의 인간성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지. 하지만 보통 때의 나는 매우 냉정하여, 죽어 마땅한 이를 살려주지도 않고, 마음을 약하게 먹지도 않네.”

“안 돼!”

방천룡이 겁에 질려서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켰다.

고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러서 방천룡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그 즉시 방천룡은 머리가 부서져 즉사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전 양국이 전쟁할 때, 송청서는 줄곧 높은 곳에서 고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해가 타주가 되었어도 너무 약했기 때문에 적수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고해는 송청서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수일 전 종주에게 했던 ‘고해를 죽이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별안간 의심이 번졌고,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고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비할 데 없이 높고 커서 자신은 적수조차 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내가 잘못 본 건가?’

방천룡을 죽인 고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인두사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천천히 그녀를 안은 그는 사방의 수련자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흥.”

고해는 냉소를 띤 채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갔다.

사람들은 고해 앞을 막지 않았고, 혹여 책이라도 잡힐까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고선무, 진천산은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송청서는 방천룡의 시신을 보며 얼굴을 잠시 걸음을 멈췄었다.

허나 이내 입술을 깨물고는 뒤를 따랐다.

고해의 품에 안긴 여인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녀는 눈을 들어 고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축축했다.

머리를 고해의 품에 기댄 그녀는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주위의 수련자들은 고해 일행 넷과 뱀 여인이 천천히 산림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됐어, 별 쓸모도 없는 뱀 시종일 뿐이잖아. 가자, 계속 들어가자고.”

“시간이 이렇게나 지체됐군.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수백 명의 수련자들은 흩어져서 이 소세계의 내부를 탐색했다.

송갑종 제자들이 방천룡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사람들이 떠나고 그곳에는 회색 옷을 입은 서른 명 남짓한 남자들만 남았다.

그 가운데는 수염을 기른 남자도 있었다.

그 남자의 옆에 있던 자가 말했다.

“타주님, 방금 그자가 새로운 수타주입니까?”

“보아하니 당주가 새로 임명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군.”

“그럼 어찌하면 좋습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를 도울 이가 있을 것이다.”

수염을 기른 남자는 담담히 답하고는 냉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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