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화소의해
“어떻게 개미가 이렇게 많을 수 있지? 어떻게 해…… 은공님, 은공님!”
소유가 겁에 질려 울었다.
이미 수많은 개미가 고해의 몸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안 돼, 은공님을 해치지 마, 이 개미들, 저리 가, 저리 가!”
소유는 달려들어서 꼬리를 휘둘러서 고해의 몸 위에 있는 개미 무리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밖에서 점점 더 많은 개미들이 밀려들어 왔다.
“은공님, 일어나세요, 흑흑흑, 빨리 일어나 보세요!”
소유는 울면서 꼬리를 흔들어 고해 옆의 개미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뱀 가죽 위로 많은 상처가 생겼다.
개미는 비록 작았지만 무는 힘이 강해서 물릴 때마다 소유는 통증에 시달렸다.
“은공님!”
소유는 고해가 깨어나기를 바라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고해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순식간에 동굴 안이 개미로 뒤덮였다.
개미들은 고해에게서 나는 향기를 향해 끝없이 달려들었다.
개미가 소유를 무는 것은 소유가 그들을 저지하기 때문일 뿐, 소유가 탈출하려 했다면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유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소유는 꼬리를 계속 흔들어서 개미를 쫓아냈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소유는 고해를 휘감은 다음, 고해를 끌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비켜, 비켜!”
소유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빠져나가는 내내 수많은 개미가 소유의 몸에 올라타 끊임없이 소유를 깨물었다.
“너희가 은공님을 해치게 놔두지 않을 거야! 안 돼! 흑흑흑, 은공님, 빨리 정신 차리세요! 저는 어쩌면 좋아요!”
소유가 울며 달렸다.
온몸에 개미가 달라붙어서 물어뜯으니 곳곳이 피로 엉망이 되었다.
소유는 고해를 휘감은 채 겨우 동굴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개미떼는 향기의 근원인 고해를 쫓아갔다.
소유가 이를 악문 채 울며 꼬리를 휘둘렀다. 개미에게 물린 곳의 살이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가슴을 파고드는 극렬한 고통에 기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텼다.
“쓰러지면 안 돼, 쓰러지면, 은공님이 개미에게 잡아먹힐 거야! 흑흑흑, 쓰러지면 안 돼! 은공님을 꼭 보호해야 해!”
그러나 밖은 개미로 가득해서 동서남북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소유의 몸에서 점점 더 많은 피가 흘렀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소유는 본인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몸에 힘이 빠져서 몇 번이고 기절할 뻔했다.
“쓰러지면 안 돼, 쓰러지면 안 돼!”
소유의 피범벅이 된 꼬리가 파르르 떨었다.
한편, 고해의 미간에 있는 수정체 위 바둑판에 마지막 백돌이 놓이자, 바둑알 전체가 굉음과 함께 흩어져 날아가더니, 향기가 폭발하듯 퍼졌다.
우웅!
고해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마침내 깨어났다.
“정말 강력한 진법이군!”
이번 바둑은 고해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바둑을 둠으로써 기를 운용하는 기술을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으로 인해 본인의 실력 또한 높아졌다.
고해가 흥분에 잠겨 있는EP,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쓰러지면 안 돼, 쓰러지면 안 돼!”
소유의 가냘프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고해의 귀로 박혔다.
“음?”
고해는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온몸이 개미떼에 묻혀 있었다. 마치 시커먼 모래 무덤에 빠진 듯했다.
고해 옆의 소유도 더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고해는 눈을 치켜떴다.
“이런!”
고해가 깨어난 것을 본 소유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매단 채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소유야!”
고해가 화들짝 놀라 소리치고 소유를 안았다,
쾅!
몸 주변으로 정기가 솟구쳤다.
한 줄기 강력한 기류가 주위의 개미들을 쓸어냈다.
소유의 꼬리는 살이 찢어져 피범벅이었다. 선혈이 낭자한 그 꼬리에 개미들이 달라붙어서 탐욕스럽게 소유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이런 못된!”
고해가 눈을 부라렸다.
한 손으로는 소유를 붙든 채, 한 손으로만 기를 뿜어냈다.
그의 손에서 칼과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아아!
그 기운이 지나치는 곳마다 셀 수 없이 많은 개미들이 짓눌리고 쓸려나갔다.
고해는 소유를 안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는 몇 번 뛰어오르는 것만으로도 산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개를 내려 바라보니 대지를 새카맣게 뒤덮은 개미들이 보였다.
고해는 소유의 꼬리를 내려다보았다.
“소유야…….”
피가 낭자한 꼬리에 남은 개미들을 쓸어낸 그는 영패의 작은 공간에서 연고를 꺼내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으음!”
소유가 혼절한 와중에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소유의 눈물 가득한 얼굴을 보고, 고해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구할 수도 없으면서, 도망가지도 않다니. 바보같이.”
고해는 약을 다 발라준 후 소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저 아래에 득시글대는 개미 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고해는 품에서 영석 하나를 꺼냈다.
영석을 빻아 작은 조각으로 만든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못된 놈들! 영지가 없을 때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화가 나서 안 되겠다!”
차갑게 소리친 그는 영석의 조각들을 진기로 감싼 뒤 바둑판처럼 배열했다.
기에 싸인 영석 조각들이 느닷없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해가 이 불덩어리를 내던지니, 이는 마치 화염탄과도 같았다.
쾅!
일순간, 불덩이가 계곡 안의 수많은 개미떼를 태웠다.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바둑판의 배열에 따라 화염이 점점 거세지니, 영석 조각이 연소되지 않는 한 화염은 끝없이 타올랐다.
고통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소유는 고해가 불을 질러 개미 떼를 불사르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고해가 자신을 위해 복수하고 있다는 걸 안 소유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은공님, 고마워요.”
소유의 가느다란 목소리를 듣고 고해가 고개를 돌렸다.
“소유야, 깨어났구나. 정말 다행이다. 이 영석은 네가 쓰도록 해라.”
고해가 또 다른 영석을 꺼내 소유에게 건넸다.
“괜찮아요, 은공님. 소유는 천한 목숨이니 이런 영석은 필요도 없고, 쓸 줄도 몰라요. 그저 은공님이 평안하시면 그걸로 됐어요.”
“내가 있는 한,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고해가 소유를 끌어안아 달랬다.
소유는 고해의 품에 기대 눈앞의 불길을 바라보았다.
소유는 뱀 요괴여서 불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큰 불길을 바라보고 있으니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저 불이 은공께서 자신을 위해 지른 불이요, 자신의 복수를 위해 지른 불이었기 때문이다.
“저 불길, 참 아름답네요.”
소유가 가냘프게 말했다. 몸이 약해져서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처럼 보였다.
고해의 안색이 변했다.
소유는 부상이 심해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를 지경이었다.
고해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백반도수. 혹시, 혹시 네가 금복숭아를 먹으면 몸이 낫지 않을까?”
고해는 즉시 손을 뻗어 금색 바둑알을 꺼냈다.
하늘 위에서는 여전히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미 운수의 수는 천 마리에 가까웠고, 몸집들 또한 매우 컸다.
백반도수 앞은 여전히 구두사가 지키고 있었는데, 크기가 이제 육백 장이나 되었으며, 그 뱀 뒤에는 삼백에 달하는 동맹군이 있었다.
후아아앙!
구두사가 입을 벌리고 울부짖으니, 백반도수를 호위하는 운수들이 모두 울부짖으며 사나운 기운을 드러냈다.
“흥! 이 외부인 놈들! 나 혼자만 너희를 막을 거라 생각했느냐? 어디 한번 와봐라!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구두사의 머리 위에서 구공자가 험상궂게 소리를 질렀다,
삼백 마리의 운수들도 모두 오백 장에 달할 정도로 컸으며, 각각이 모두 최강의 운수들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이 세계의 원주민들이 앉아 있었는데, 구공자와 함께 사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칠백 마리의 운수들이 곳곳에 모여 중앙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칠백 마리의 운수들은 몸집이 조금 작아서, 가장 큰 용도 오백 장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응룡의 머리 위에는 고선무가 있고, 그 뒤를 수십 명이 따라다니니, 모두 임시로 동맹을 맺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구공자가 이끄는 대군을 공격하기 위해 모였는데,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잡아먹힐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또 다른 큰 무리는 일품당의 무리, 몽태였다.
몽태가 밟고 선 것은 거대한 용으로, 고선무의 응룡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렇게 많은 차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무리의 수가 가장 커서 삼백여 명이나 되었다.
다른 작은 무리들은 각각의 강자가 하나씩 버티고 있는 형태였다.
그들 모두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중앙을 노려보았다.
“여러분!”
몽태가 크게 소리쳤다.
주위의 모두가 몽태를 쳐다보았다.
“우리 함께 전력으로 공격해서 저들을 없애버린 다음 백반도수를 나눠보는 건 어떻겠소?!”
몽태가 크게 소리치자, 모두가 찬성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찬성입니다!”
수많은 운수들이 일제히 울부짖으며 새로운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럼 모두 공격하시오!”
몽태가 소리쳤다.
운수 무리가 중앙으로 곧장 달려가 구공자를 향해 돌진했다.
“죽여라!”
구공자가 크게 소리쳤다.
구공자 부하들의 운수 무리 역시 크게 울부짖었다.
콰우우우우!
크아아앙!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소세계의 한 산봉우리 위.
오색의 지팡이를 든 대명왕신이 한판의 처절한 전쟁을 지켜보았다.
“대명왕신 님, 아직도 와후의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한 흑포인이 걱정하며 보고했다.
대명왕신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 찾아라, 계속 찾다 보면 분명 나올 것이다!”
“예!”
“혁천각 쪽은 무슨 낌새가 있는가?”
대명왕신이 담담히 물었다.
“없습니다. 혁천각의 제자들은 초반의 움직임 이후엔 대장로에게 눌려서 그저 구경만 할 뿐,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대명왕신이 차갑게 웃었다.
“손도 못 댄다? 그것도 좋지. 대장로. 그 늙은이도 참 대단한 인내심이로군!”
선천잔국계의 한 광장 위.
영생대사와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대장로는 조용히 광장에 서서 하늘 위의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반도수 말입니다. 정말 빼앗을 준비가 되지 않으신 겁니까? 정말 포기하시려고요?”
영생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대장로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채 한참이나 침묵했다.
“영생대사, 자네는 이 혁천각에 농담이나 나누려고 온 겐가?”
“저도 그리 한가하지는 못하지요. 하지만, 그 오색의 신광 말입니다. 대명왕신이겠지요? 어찌하여 그자까지 엮여 있는 것입니까? 그는 선천잔국계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 아닙니까?”
“대명왕신, 동세혜안이라. 구름 끝의 저 대전투가 그의 눈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흥! 그가 뭘 하려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대장로가 차갑게 대답했다.
* * *
콰과과광!
백반도수를 방어하려는 원주민과 쟁탈하려는 외래자가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흉포한 운수들은 포효하며 상대를 죽이려고 했다.
몽태의 큰 울부짖음에 이어 주변 사람들도 눈에 불을 지폈다.
외부자들은 앞사람이 죽어나가면 뒷사람이 계속해서 그 뒤를 이어갔다.
그들은 이번 대결전에서 무조건 승부를 봐야만 했다.
맨 앞에 위치한 사람은 금반도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들었다.
금반도를 위해서라면 모험을 해볼 만했다.
진천산은 몇 날 며칠을 싸워서 이미 눈자위가 붉어졌다. 그도 대부분 사람들과 같이 큰 소리로 울부짖더니 거대한 소를 조종하여 힘차게 돌격했다.
“진 선배님, 잠시만요!”
고선무가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반쯤 미친 진천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맨 앞에서 돌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