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고해의 소환
고선무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진천산에게 너무 급하게 돌진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가며 싸우고 있는 마당에 기죽이는 말은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모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고선무, 얼른 따라 붙어. 이번에야말로 저들을 깨부술 수 있는 좋은 기회란 말이야. 하하하!”
진천산은 흥분하며 맨 앞으로 돌격했다. 그는 첫 번째로 금반도를 획득하고 싶었다.
구공자의 눈에서 흉악함이 스쳐 지나갔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진천산과 수련자들이 운수를 대동하고 내달렸다.
하지만 막상 공격을 선동한 몽태는 거대한 용을 조종하여 속도를 늦췄다.
일품당 제자들 역시 몽태의 주변을 둘러싸며 속도를 늦춰서 맨 뒤로 뒤처졌다.
몽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맨 앞쪽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원주민과 진천산 등이 맨 앞에서 맞붙기 직전이었다.
구공자와 몽태는 양쪽 끝에서 중간에 위치한 전쟁터를 바라보았다.
중간의 전쟁터에서 많은 운수들이 싸우고 있었다.
패배한 수련자들은 운수가 잡아먹힌 후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했다.
진천산도 흉악하고 사나운 호랑이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 호랑이는 진천산의 거대한 소보다 더 흉포해 보였다.
우르릉! 흐아아앙!
연이은 호랑이의 공격에 진천산은 곧 패배할 것 같았다.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금반도를 바라보는 진천산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가득했다.
“안 돼, 안 돼, 도대체 왜! 으아아아!”
진천산은 아쉬워하며 울부짖었다.
크아앙!
구름 위 호랑이가 앞발로 거대한 소의 목을 후려치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아, 안 돼! 비켜라!”
진천산이 절망이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거대한 소는 순식간에 호랑이에게 먹혀버렸다.
“이럴 수는 없어!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진천산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는 금색 바둑알을 놓치기 싫었다.
진천산이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려는 순간.
우르르!
포효 소리와 함께 용의 꼬리가 호랑이 몸을 후려쳤다. 호랑이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빨리 손 떼세요, 진 선배님! 패배를 인정하고 얼른 저한테 넘어오세요!”
고선무가 분노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천산은 고개를 돌려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선무의 부릅뜬 눈빛을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호랑이는 크게 포효하며 소를 삼키고 있었다.
거대한 소와 금색 바둑알 전부 호랑이의 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천산은 최후의 순간 자신의 집착을 포기하고 뛰어나갔다.
고선무는 손을 뻗어 진천산을 잡았다.
으르렁!
익룡이 포효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운수들이 동시에 고선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의 공격도 있었다.
“물러서는 자를 죽여라!”
뒤쪽에서 외부인의 싸늘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익룡은 천백 마리의 운수들 사이에 포위되었다.
이미 공격을 당할 대로 당한 터라 뒤로 물러서지도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운수들도 한층 더 사나워졌다.
“진 선배님, 그대를 구하려다 참변을 당하고 말았지 뭡니까!”
고선무가 괴로워하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함께했던 자들도 이미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고선무가 위기에 닥친 모습을 보고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고선무는 땀범벅이 되었다.
진천산도 똑바로 정신을 차렸다.
앞뒤 좌우로 위치해 있는 운수들을 보았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위험한 위치인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진천산은 그제야 극심하게 후회가 되었다.
“내가 미쳤나 보네. 정말 미안하네, 고선무!”
“지금은 쓸데없는 소리 할 때가 아닙니다. 아이고, 타주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타주님의 바둑 실력이면 무조건 뛰어난 운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고선무는 숨 돌릴 새도 없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해를 찾았다.
혹시라도 익룡이 패배하면 어떡하지?
고선무는 초조하고 불안감에 몸이 떨렸다.
고해에 대한 말을 들은 진천산은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골짜기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을 찔렀다. 마치 화산구에서 폭발이 일어난 듯했다.
“큰, 큰일 났어. 타주님이 위험하네!”
진천산이 놀라서 외쳤다.
“뭐라고요?”
깜짝 놀란 고선무가 고개를 돌렸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보였다.
콰르르릉!
크아아앙!
고선무가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익룡은 중상을 입고 고통에 몸을 흔들었다.
고선무는 정신을 차리고 익룡을 조종하여 전투에 임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익룡은 점점 더 뒤로 밀렸다.
“익룡이 죽기 직전이다! 죽여 버려!”
“내가 익룡을 먹어 치울 거다! 으하하하!”
“익룡이 죽으면 당연히 우리가 먹어야지!!”
모두 탐욕의 눈빛으로 익룡을 욕심냈다.
양쪽 끝에 자리하고 있던 몽태와 구공자 역시 탐욕이 가득한 표정으로 익룡을 향해 다가갔다.
“타주, 타주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고선무가 땀범벅이 되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본 것에 의하면 저쪽에 타주님이 있어. 타주님이 불을 낸 것 같은데……. 타주님은 무사하실 거야. 허나 소유가 쓰러져 있어. 지금은 모습이 안 보이지만…….”
고선무는 고해가 무사할 것이라는 말만으로도 기뻤다.
“타주님이 무사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사이 공격을 받고 익룡은 또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
아무래도 오래가지 못할 듯했다.
“고선무, 자넨 어떡할 셈인가?”
진천산이 초조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런데 고선무가 의외의 행동을 했다.
“타주님, 살려주십시오!! 타주님, 살려주십시오!!!!”
고선무는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타주?”
익용에게 다가가던 몽태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구공자도 얼굴색이 급변하면서 다가가던 몸을 멈춰 세웠다.
“설마 고해?”
맞아. 고해는 어디 갔지?
몽태와 구공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불꽃이 피어오르는 산골짜기에 시선을 주었다.
그때 산 정상에 서 있는 고해가 보였다. 한 손에는 쓰러져 있는 소유를 안고 있었다.
“응?”
두 사람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고해의 한 손에는 소유가 안겨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금색 바둑알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서서히 허공을 누르고 있었다.
운수를 소환하려는 것인가?
구공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운수를 아직도 소환 안 했나? 하하하하! 이미 늦었다! 여기 있는 천 마리의 운수는 이미 한 차례 대학살을 맞이했지. 살아남은 운수는 다른 운수를 잡아먹어서 힘이 부쩍 커졌는데, 감당할 수 있겠나? 흥!”
몽태 역시 비웃는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진천산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지만, 고선무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구공자와 몽태는 고해가 지금에야 운수를 소환하는 것이 아니꼬웠지만, 고해의 운수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다.
쾅!
산 정상에 안개가 일더니 고해의 바둑알이 놓여졌다. 그는 바둑의 힘으로 하늘과 땅의 힘을 조종하며 자신의 운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안개 속에서 거대한 말의 대가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말 대가리?”
몽태와 구공자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해가 소환한 것이 말이라고?
히히히힝!
말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 불타고 있는 곳에서부터 쩌렁쩌렁하게 흘러나왔다.
우르르!
거대한 백 장 말 한 마리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백 장? 백 장밖에 안 돼? 하하하하!”
구공자는 크게 비웃었다.
구두사는 이미 육백 장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조금 전에 운수를 잡아먹고 체형이 더 커졌다.
게다가 몽태의 운수도 거의 오백 장이 되어간다. 여기에는 사백 장 이하의 운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해가 소환한 말은 백 장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저건…… 말 위에 사람이 있는데?”
“응?”
구공자와 몽태는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았다.
저건 무슨 운수지? 말 위에 어떻게 사람이 있는 거지?
고해는 소유를 안고 ‘구름인간’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 그의 하반신은 거의 구름인간의 머리에 스며들었다.
구름인간은 장군의 모습을 하고, 한 손에는 방천화극을 든 채 성난 모습으로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흥, 사람도 귀신도 아닌 괴물이네. 그런들 어쩌겠어? 백 장밖에 안 되는 주제에!”
구공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코웃음 쳤다.
몽태도 역시 똑같은 표정이었다.
사람과 말이 몰아일체가 된들 어찌하겠는가. 여전히 작기만 한데.
자신의 거대한 용한테는 한입거리밖에 안 될걸?
우어어엉! 히히히힝!
또다시 말의 울음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고해가 있는 안개 속에서 또 두 마리의 말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장군 같은 구름인간이 말을 타고 있었다.
“응? 어, 어떻게 세 마리의 운수를 소환한 거지? 동시 조종이 가능한 건가?”
몽태가 경악해 하며 말했다.
우어어엉! 우어어엉! 히히히히힝!
고해가 있는 안개 속에서 계속 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숫자가 점점 많아져 갔다.
그 모습을 본 구공자, 몽태, 진천산, 고선무 등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 마리, 열 마리, 오십 마리, 백 마리, 이백 마리…….
구공자와 몽태는 점점 더 눈이 커졌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게 가능한 일이야?
“타주님이 금색 바둑알 한 개로 몇백 마리나 되는 말을 어떻게 단체로 소환한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진천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사이에도 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가자!!!”
고해가 크게 소리쳤다.
“가라!”
운수 장군이 한 손에 방천화극을 쥐고 채찍을 휘둘렀다.
두두두두두!
고해와 소유를 태운 말이 하늘에서 달려갔다. 그 뒤에는 엄청난 수의 말 떼들이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과!
두두두두두두!
웅장함이 하늘을 찌르는 몇백 마리의 말의 진군!
말은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고 있었다.
비록 모두 백 장 크기밖에 안 되었지만 고해가 소환한 것은 한 마리 운수가 아닌 천군만마였다.
“맙소사! 저자는 대체 어떤 바둑의 힘을 갖고 있기에 저 많은 운수들을 소환한단 말인가?!”
구공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서 중얼거렸다.
진정 천군만마였다.
달리는 기세며,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가 온 하늘을 뒤흔들었다.
천군만마의 습격은 자연재해처럼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이럴 수는 없어! 운수를 어떻게 저리 많이 소환할 수 있어!”
구공자는 믿기 힘든 듯 창백해진 모습으로 소리쳤다.
이때, 대전 중이던 운수들도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혼자서 금색 바둑알 하나로 천군만마를 소환하다니!
두두두두두두!
천군만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와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구름을 차고 달리는 모습이 마치 하얀 백설 위를 내달리는 듯했다.
말들은 모두 건장했고, 말 위에 있는 장군들은 살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장군들의 손에는 각자 장칼이 쥐어져 있었고, 맨 앞에서 방천화극을 쥐고 있는 대장군의 인솔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천군만마의 중앙에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멋진 깃발 위에는 큼직하게 ‘항’ 자가 새겨져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살기에 가득 찬 천군만마가 달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진저리를 쳤다.
어떻게 저럴 수가!
“미친! 이래서야 어디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낼 수나 있겠나!”
누군가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악을 썼다.
만마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살벌한 기세로 계속해서 운수 전장을 향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