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위양의 편지
“내 기억으론 몽태가 풍령 머리에 있는 문신을 보고 풍령인 것을 알아챘는데, 그럼 뭐야, 이십 년 전에 풍령이 몽태의 아내일 때부터 문신이 있었다는 말이잖아?”
상관흔이 말했다.
“대인, 제가 생각해 봤는데 오랜 기간 새겨져 있던 문신 같습니다. 여기 이 벌어진 간격을 보십시오. 머리가 자라면서 생긴 간격 아닐까요?”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그러면 혹시 저들 사남매 전부 새겨져 있는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 몽태가 문신 보고 퐁령인지 월요인지를 판단했어!”
“그러면 풍령과 이위한테 새겨진 모란화 문신은? 어떻게……?”
잠시 세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고해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들 사남매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거 같다. 몽태가 안 가고 버티는 원인도 어쩌면 이 때문일 수 있어.”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해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영천에 몸을 담근 다음에도 대봉방을 수색해!”
“예!”
그때 상관흔이 말했다.
“대인, 제가 오늘 이위의 반지 공간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뭐가 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뭐?”
고해는 곧바로 반지를 건네받았다.
측측측측!
순간, 반지 공간에 있던 모든 물건을 털었다.
큰 영석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위의 생활용품만 들어 있었다.
“엇? 여기 편지가 있습니다.”
도파가 편지를 주우며 말했다.
“보아하니 오래된 편지 같구나! 열어봐!”
편지에 그렇게 많은 글씨는 없었다.
아직 어리고 어린 우리 동생 이위야. 이 편지는 절대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 된다. 너의 형과 누나한테도 안 돼. 그 이유는 네가 크면 차츰 알게 될 거다.
요즘 들어 누군가가 나를 엿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대봉방에는 대봉방의 사명이 있고, 각주님의 당부도 내 세대에서 끊길 수는 없다.
너의 둘째 사저 풍령은 내 딸이다. 반드시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풍령이 열쇠를 쥐고 있다. 아주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지.
우리 대봉방에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때가 되면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만, 이 편지가 밖으로 새는 것을 염려해서라도 구체적으론 말하지 않으마.
네가 해야 할 일은 풍령을 보호하면서 잘사는 것이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 비밀이 너희 사남매를 하늘로 올려 보내 줄 거다.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너의 형제 몽태가 자라는 걸 봤는데, 몽태는 생각이 너무 많다. 매일 보는 나도 몽태의 속은 잘 모르겠으니 너무 믿지는 마라.
-위양 남김!
이름을 보고 도파가 경악했다.
“위양? 몽태와 이위의 사부?”
고해는 혼잣말을 했다.
“풍령이 열쇠라…….”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수색하겠습니다!”
고선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편지를 접고는 이위를 주시했다.
그러다 상관흔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위 머리에 있는 문신을 탁본으로 떠라.”
“예!”
상관흔이 대답했다.
고해는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고해를 기다리고 있던 악인들은 고해를 발견하자 일제히 환호했다.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모든 악인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이며 악인들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 고해와 함께하면 수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거다! 아마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해가 말했다.
악인들은 엄숙하게 서 있었다.
고해가 소리 높이 외쳤다.
“그러나 위험이 있으면 그에 따른 대가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대봉방에서 찾은 영석을 너희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감사합니다. 대인!”
악인들이 대답했다.
“오늘 강력한 영천을 만들었다! 수많은 영석을 넣어서 만든 일회용 영천이다! 오늘 여기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몸을 만든 다음 내일부터는 외부인들의 습격을 막아야 할 것이다!”
하루?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악인들은 인공 영천에 수많은 영석이 들어갔다는 진천산의 말을 듣고 얼굴색까지 변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영석이 들어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연못에는 수십만 개의 영석이 있었고, 그중 상품 영석만 해도 몇천 개가 넘었다.
이렇게 많은 영석을 하루만 사용한다고?
이런 사치가 또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다.
“네!”
악인들이 흥분한 채 소리쳤다.
“나를 따라 질서를 지키면서 몸을 담그거라!”
고해가 말했다.
말을 마친 고해는 성큼성큼 영천으로 들어갔다.
사대 부장이 그 뒤를 따랐고, 이어서 백장, 십장, 악인 부하들이 영천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윙!
영천에 들어간 이들은 영기를 느꼈다. 이보다 더 편안할 수는 없었다.
촬랑!
순간 잔잔한 출렁거림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좋아!”
악인들은 시원함을 만끽했다.
사람들은 단 하루뿐인 시간 동안 이 부드러움과 영기를 마음껏 누렸다.
고해는 연못에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에 앉아 있었다.
고해의 몸 주변을 보라색 영모가 감싸고 있었다.
마치 보라색 용이 고해의 주변을 맴돌면서 영모를 흡수하는 것 같았다.
쿠우우웅!
일부 사람들은 능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번 영기는 너무 강력하여 그 누구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 * *
구오도,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채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해수 ‘패하’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패하가 가는 곳마다 바닷물이 출렁거렸고, 길 앞을 삼천여 명의 새우 병사들이 길을 터주었다.
주변에 집결한 수련자들은 저 멀리에서 오는 패수 부대를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쿠오오오!
쾅!
패하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며 패하를 맞이했다.
“해수 패하가 왜 해안가로 오려고 할까요?”
멀리에 있던 한 수련자가 말했다.
“출렁이는 파도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세상에!”
“무슨 보물이라도 나오는 거 아닙니까?”
“신기영 영주도 온 걸 보니 그럴 수 있어!”
“어디? 왜 난 안 보이는 거지?”
“하늘 봐봐! 저 날아다니는 배 안 보여?”
사람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거대한 배가 날아가고 있었다.
배 위에는 깃발이 꽂혀 있었고 ‘신기영’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진법으로 뒤덮여 있는 배는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전혀 닿지 않았다.
황금 갑옷을 입은 신기영 영주는 배의 앞쪽에 서서 뒷짐을 지고 거대한 패하를 관찰하고 있었다.
“영주님, 패하가 쉬지도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뭘 감지하고 움직이는 걸까요?”
한 부하가 물어보았다.
이호연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나도 지도를 봤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하지만 저 미친 패하가 가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예, 영주님. 지도를 보면 패하가 아무래도 대봉방을 지나갈 것 같습니다.”
“대봉방?”
“대봉방은 구오도에서 가장 약한 종문입니다. 방주 이위는 원영경 초급 단계라 별로 강하지도 못하고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봉방은 일품당 화타의 꼭두각시처럼 도박에서 벌어들인 영석을 일품당에 바친다고 합니다.”
부하의 설명을 들은 이호연이 비웃었다.
“대봉방은 누구도 욕심내지 않는 작은 종문에 불과해!”
“아! 영주님, 패하를 따라다니는 새우 병사들이 기껏해야 금단경이라고 합니다. 아마 배부른 식재료가 될 듯합니다만!”
“내가 필요한 물건을 찾게 되면, 새우뿐만 아니라 저 패하도 선물하마!”
이호연이 자신 있게 말했다.
* * *
한편, 대봉방에서 도망치듯 돌아온 송생평은 곧장 송갑종으로 향했다.
정예로부터 은밀한 연락이 있었다.
청하종에 있던 유년대사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용완청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생인을 찾아 저승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온 교룡 부혈이 송갑종으로 갈 거라고 했다.
자신이 도착할 때쯤이면 교룡 부혈도 도착해 있을 것이다.
송생평은 차가운 살소를 지었다.
‘청하종! 그동안의 질긴 악연을 끝내자꾸나! 흐흐흐흐!’
부혈과 손을 잡으면 청하종 정도 무너뜨리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다음에는 그 죽일 놈, 고해를 끝장낼 작정이었다.
철저히! 최대한 처참하게!
* * *
대봉방 방내 구역, 영천.
고해의 몸은 빠르게 보라색 영모의 기를 끌어들이면서 보라색 기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상관흔은 화들짝 놀라서 고해를 바라보았다.
“영모의 기? 아니! 대인께서 영모의 기만 끌어당긴다고?”
일반 악인들은 영모의 기가 귀중한 것을 모르고 있었으나 상관흔은 알고 있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악인들의 기가 검소한 음식이라면 고해의 기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쿵!
고해 주변에서 진동 소리가 울리더니 연못에 있는 물들이 사방으로 출렁거렸다.
“선천경 칠단계인가?”
고해는 눈을 뜨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나 영천 연못에서 이런 진동이 자주 발생했기에 고해의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쿠궁!
스르르르르!
마치 영천의 기를 전부 빨아들인 듯 영천 연못에 있던 영석들이 전부 깨졌고, 일부는 가루가 되어 있었다.
악인들은 하나둘씩 눈을 뜨더니 아쉬운 눈빛으로 영천 연못을 바라보았다.
단 하루였지만, 그들은 또 다른 세상을 맛보았다.
“나 금단경이 되었어!”
“뭐야, 내 몸에 있던 상처들이 전부 없어졌잖아? 예전보다 다섯 배는 강해진 것 같아!”
“내 질병도 나은 것 같아! 역시 영천이야! 이런 효과가 있었다니!”
“아, 아쉽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악인들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싱글벙글 웃으며 흥분했다.
다만 옆에 있던 진천산만 아쉬움이 가득했다.
불과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영석을 쏟아붓다니.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고해는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
쏴아아.
고해는 천천히 영천에서 걸어 나왔다.
영천 연못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악인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하자, 악인들은 공손한 눈빛으로 고해를 보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됐다. 영천에도 몸을 담갔으니 이제부터 각자 할 일을 해야지!”
고해의 말에 악인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악인들은 저마다 맑은 정신으로 영천 연못을 걸어 나왔다.
진천산은 지부 소속 대원들과 함께 천도생사국 대진에서 나와 원형 격투장 영업 준비를 하기로 했다.
또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전하는 역할도 했다.
나머지 삼 부는 대봉방 방내 구역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색하도록 했다.
고해는 용귀전으로 들어갔다.
용귀전 안에는 대봉방의 전적을 기록한 책이 있었다.
기록된 내용물은 전부 몇십 년 동안 대봉방에서 발생한 중대한 사건들이었다.
고해는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살펴봤다.
* * *
원형 격투장이 영업을 시작했다.
“악인들이 원형 격투장을 경영한다고? 정말이야?”
“가보자!”
“인과응보가 이런 건가?”
도박꾼 수련자들이 원형 격투장에 몰려갔다.
그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대봉방 부하들을 얼핏 보고는 시선을 악인들 쪽으로 돌렸다.
마치 악인들이 운영하는 원형 격투장은 어떠한지 관찰하는 것 같았다.
“네, 대봉방 제자 열 명이 죽고 두 명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바로 돈을 걸어보세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돈을 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원형 격투장 옆에 있는 몽태는 구석에서 풍령을 어루만지며 사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삼 일 만에 악인들이 정신 차리고 날뛰는 거야? 고해가 그곳을 찾은 건가? 설마……?”
몽태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쉬었다.
풍령은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금포를 걸친 중년 남성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몽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