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03화 (103/243)

103화 닭을 빌려 알을 낳다

“그럼 일단 하품 영석 열 개만 빌려주지.”

한 수련자가 그리 말했지만, 늙은 총관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주인님께서 중품 열 개부터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적으면 차용증 적는 것도 힘이 듭니다.”

“예?”

앞에 있던 수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품 영석 열 개는 하품 영석 천 개와 맞먹었다. 그런데 기본이 중품 영석 열 개라니.

하지만 늙은 총관은 수련자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달 후에 중품 영석 스무 개로 갚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일품당 신용도 못 믿는다니. 빌려주기 싫으면 이쪽으로 물러서세요. 뒷사람의 길을 막지 말고요.”

“그래! 나! 나! 금반도를 위해서라도 내가 빌려줄게!”

“일품당 신용인데, 나도 빌려주지!”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중 일부는 수련자로 변장한 악인들이었다. 그들은 뒤에서 수련자들을 놀려댔다.

“누가 싫대? 난 상품 영석 하나!”

한 수련자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늙은 총관이 종이에 받아 적었다.

“상품 영석 하나. 한 달 후엔 두 개로 갚겠습니다. 기명날인 하고 저기에 있는 차용증에 서명하세요.”

그 수련자는 얼떨결에 여기저기에 서명했다.

그 수련자는 차용증을 들고 있으면서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한 달 후에 두 개를 받을 수 있을까?

옆에 있던 수련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상품 영석을 빌려주다니. 받을 수 있겠어?”

영석을 빌려준 수련자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내가 고해는 못 믿어도 일품당은 믿는다네. 한 달 후엔 상품 영석이 두 개가 된다고. 아직도 안 가고 뭐 해? 바보냐?”

영석을 빌려준 사람들은 두 배로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독촉했다.

첫발을 내디디니,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고해는 고부의 충천탑 위에서 바깥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의부, 의부의 이름을 내세웠더니, 저놈들이 영석을 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고진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고해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명성으로 빌린 것이 아니라 일품당의 신용으로 빌린 것이다. 아직도 부족해. 최대한 빌려야 한다. 내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저놈들보다 더 크지만 어쩌겠느냐? 우리 고부가 꺼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해.”

삼 일 후, 영석 빌리는 걸 마감했다.

고부 밖에 있는 명주실로 짠 커다란 견포에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견포(絹布)는 모두가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금반도 역시 모두가 볼 수 있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수련자들은 저마다 탐욕과 걱정을 떠안고 기다렸다.

고해는 그 상황에서 삼천여 명의 악인들을 데리고 조용히 청하종으로 향했다.

* * *

청하종.

쨍그랑!

송생평이 화병 하나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송생평이 분노를 씹으며 말했다.

“고해가 나를 속였다고? 전서는 가짜였어? 고해가 송갑종으로 갔다고?”

송생평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제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부 선생이 안 오셨으면 난 지금도 속고 있었겠지!”

송생평이 화를 내며 제자들을 다그쳤다.

옆의 의자에 앉아 있던 부혈이 차를 마시며 싸늘하게 말했다.

“됐네! 송 종주, 지금 이럴 때가 아닐세. 청하종의 그놈은 입을 열던가?”

송생평은 화를 억누르고 숨을 길게 내쉰 후 대답했다.

“아직입니다. 도저히 입을 열지 않습니다.”

“입을 열지 않는다고? 그럼 공을 좀 더 들여보도록 하지.”

부혈이 말하고는 음침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놈은 원영경이야. 그놈을 변신시키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네. 그러나 용맥 때문에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해. 앞장서게, 내가 가서 변신시켜 보지.”

“예, 알겠습니다.”

* * *

이틀 후, 한 대전.

부혈과 송생평이 어두운 안색으로 앉아 있었다.

“저승으로 간 유년대사가 골칫덩어리야. 그리고 미생인도.”

부혈이 이를 갈며 말하자, 송생평이 미간을 찌푸렸다.

유년대사가 없는 사이 용완청을 잡아가둘 수 있었다.

아마 그가 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 그만큼 유년대사는 두려운 존재다.

그러니 어떻게든 유년대사를 죽여야만 한다.

“그놈도 유년대사가 어떻게 돌아오는지를 모르다니. 정말 큰일입니다. 유년대사가 돌아오는 곳만 알아도 미리 잠복했다가 없애버리면 되는 건데 말입니다.”

“계속 찾아보게. 청하종의 이곳저곳을 전부 수색해!”

부혈의 말에 송생평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부혈이 마저 말했다.

“고해 쪽에 영생대사가 있어. 그런데 나를 대하는 태도로 보아하니 이번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눈치였네. 고부 대진에 들어갈 수 없을 뿐, 그나마 다행이야.”

“고해가 송갑종으로 갔는데, 이번에도 갈까요? 고해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종 내 제자들이 있을까요?”

송생평의 말을 듣고 부혈이 흠칫했다.

“맞아. 나도 그만 가봐야겠어. 자네도 조심하게. 고해가 청하종으로 올 수도 있으니까.”

“저는 청하종을 지키고 있을 테니, 부 선생은 송갑종을 지키고 계십시오. 고해가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걸 알았더라면 예전에 죽였어야 했는데!”

송생평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혈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송갑종을 향해 날아갔다.

송생평은 부혈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두 눈을 번뜩였다.

“부혈, 나는 이번 일에 송갑종 전체를 걸었다.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용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 * *

고해는 삼천여 명의 악인들을 이끌고 숲속을 헤쳐 나갔다.

“타주, 금반도를 저렇게 두면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진천산이 걱정하며 말했다.

금반도를 그렇게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고부를 나왔으니 걱정할 만했다.

비록 수많은 영석을 빌려왔지만, 아무리 많은 영석일지라도 금반도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모두가 지키고 있으니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야.”

“예…….”

진천산은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고해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청하종주을 구하겠느냐? 나도 금반도가 귀한 물건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금반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영석과 바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우리는 이제 청하종주가 살아 있기만을 바라자.”

고해의 담담한 말에 진천산은 고개를 숙였다.

“예. 감사합니다, 타주!”

* * *

청하종의 한 정자.

송생평은 자리에 앉아 바로 앞에 있는 붉은색 옷을 입은 제자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얼마 전에 송갑종에서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을 배치했다고?”

“네, 대진의 기운이 막강했습니다. 시조님도 견디지 못하고 수백 곳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말에 송생평의 안색이 굳어졌다.

“부혈도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고?”

“종주님, 소인이 보기에 청하종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해의 속임수가 워낙 교활해서 혹시라도…….”

붉은색 옷을 입은 제자가 걱정하며 말했음에도 송생평은 퉁명하게 답했다.

“부혈이 말했잖아. 대량의 영석이 있어야 대진을 배치할 수 있다고. 그런데 고해한테 영석이 있어, 뭐가 있어? 영석이 없으면 그놈은 그저 하나의 선천경에 불과해.”

“네, 역시 영석이 중요한데 고해한테는 영석이 없지요.”

그때 흰색 옷을 입은 제자가 들어왔다.

“보고드립니다.”

송생평이 그 제자를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고부를 감시하라고 했는데, 왜 왔느냐? 고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고해가 주변에 있는 수련자들한테서 영석을 빌리고 있습니다.”

송생평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석을 빌린다고? 가당치도 않은 소리! 고해의 물건을 빼앗으러 간 놈들이 고해한테 영석을 빌려주겠느냐?”

“그렇지만…… 괴이하게도 빌려줬습니다.”

흰색 옷을 입은 제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송생평이 눈을 부릅떴다.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그놈들이 미쳤단 말이냐? 영석을 빌려주다니?”

흰색 옷을 입은 제자는 사건의 경과를 전부 말했다.

송생평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이를 악물었다.

옆에 있던 붉은 옷의 제자도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종주님, 그럼 이제 고해한테 영석이 생겼다는 말 아닙니까?”

송생평이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흠칫했다.

붉은 옷의 제자가 마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고해가 영석을 집에 둘 리 없습니다. 반드시 송갑종이나 청하종에 들이닥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쯤 오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마라! 와도 소용없을 것이다. 청하종에 대진을 배치했으니 들어올 수 없을 게야.”

“그렇지만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은 너무 막강합니다. 쉽게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칠 수도 있습니다. 대진에서 들려온 괴성이 시조님까지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붉은색 옷을 입은 제자는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송생평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놈이 대진을 뚫고 들어올 일은 없다. 아, 그리고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었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아마……!”

붉은색 옷을 입은 제자가 말끝을 흐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바로 그때, 청하종 밖에서 거대한 괴성이 들려왔다.

“역발산혜기개세!”

쾅!!!!!!!

거대한 괴성과 함께 청하종 전체가 뒤흔들렸다.

송생평이 서 있던 정자도 거세게 흔들렸다.

“종주님, 고해가 왔습니다! 고해가 대진을 부숴버렸습니다!”

“종주님, 수산대진이 깨졌습니다. 고해가 왔습니다!”

사방에서 송갑종 제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색 옷을 입은 제자가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아! 바로 그 소리입니다. 역발산혜기개세!”

“꺼져!”

송생평이 땅을 차며 눈을 부라렸다.

‘흥!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고 제자를 다그쳤다.

“멍청한 놈들! 고해의 행방을 찾으라고 했더니, 고해가 대진을 깨버린 후에야 말하다니!”

송생평은 분노를 터트리며, 거대한 소리가 울린 곳으로 날아갔다.

* * *

청하종 밖.

거대한 안개가 뭉친 대진 안.

“빨리 영석을 수거해라! 빨리!”

고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스륵, 스륵, 스륵…….

순간, 구름이 흩어지고 영석을 수거하던 악인들도 고해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진천산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인, 저기 보이는 산봉우리가 당주님이 계시던 곳입니다.”

고해는 지체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래? 가자!”

삼천 명의 악인들이 뒤를 따랐다.

송갑종 제자들이 칼을 들고 고해를 노려보았다.

“고해다! 멈춰라!”

“고해! 겁도 없구나! 감히 청하종에 들어오다니!”

고해는 그들의 위협을 무시했다.

“저놈들은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달려들지도 못해!”

“예!”

악인들이 대답했다.

조금 전에 분노하던 송갑종 제자들이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한 발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악인들의 흉악함을 수없이 들어봤기에 섣불리 공격조차 하지 못하고 소리만 질러댔다.

쿵쿵쿵!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르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대인, 송생평입니다!”

한 악인이 소리쳤다.

순간,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해!!!”

고해의 표정이 변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진을 배치해!”

삼천 명의 악인들이 서둘러 영석을 옮겼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불더니, 평지에 짙은 안개가 끼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감쌌다.

송생평도 허공에 멈춰 서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고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네가 감히 여기에 들어오다니!”

“역발산혜기개세!”

스윽!

안개 사이로 거대한 방천화극이 나타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