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대지용맥
“팔백 년 전, 제가 갓 태어났을 때, 저의 아버지는 동해의 요왕(妖王)이었지요. 바다 전체를 독점하지는 못했으나 백만 리 해역까지 거느리고 계셨습니다. 바닷속 궁전에서도 우리 집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혁천각 제자들이 몰려왔는데, 저의 아버지가 그놈들을 전부 삼켜버렸지요. 원래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그 일 때문에 큰 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큰 화를 입다니요? 대봉방에 있는 그 패하 거북이 등껍질을 말씀하십니까?”
요정천이 이어서 말했다.
“네, 바로 저의 아버지의 거북이 등껍질입니다. 원래는 조용히 하려고 했으나, 그러면 저의 아버지 역시 도망칠 수 없게 되잖습니까? 그런 다음 관기 노인의 대지용맥에 의해 영물로 제련되었지요.
얼마 전에 저도 변신하지 않았습니까? 그 역시 천상(天相)을 감지하여 아버지의 기운을 느꼈고, 그 기운에 따라 대봉방까지 갔던 것입니다.”
고해가 의아한 듯 물어보았다.
“저를 찾아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습니까?”
요정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선천경은 이백 세까지, 금단경은 사백 세까지, 그리고 원영경은 팔백 세까지 가능하지요. 그러나 원영경은 하나의 분수령과도 같아 천 세까지 수련할 수 있습니다. 제가 벌써 팔백육십네 살입니다. 원영경 제삼단계를 뛰어넘어 팔백 살을 넘어섰지요. 그러나 곧 천 살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아버지의 거북이 등껍질을 찾아야 합니다!”
“네? 그 등껍질이 무슨 작용이라도 하나요?”
요정천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전부 말했다.
“저를 도와 수련하고 있습니다. 우리 패하들은 죽기 전에 모든 심혈을 전부 등껍질에 모아 후대에 물려주지요. 후대들은 아버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을 물려받으면서 더 멀리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
고해는 의아한 눈빛으로 요정천을 바라보았다.
요정천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몸을 비틀거렸다.
츠르륵츠르륵!
등 뒤로 작은 거북이 등껍질이 천천히 튀어나왔고, 그 위에는 바둑판이 그려져 있었다.
“고 선생,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입니다. 거기 족쇄 보이시지요? 제가 아버지의 등껍질을 얻어서 저의 등껍질과 결합을 했습니다만, 이 바둑판에 있는 족쇄가 저를 봉인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하들도 바둑을 두면서 봉인을 해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둑판의 교살 정도가 너무 강력해서 벌써 열댓 명이 실패했지요.”
고해는 그제야 요정천이 찾아온 목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정천이 말했다.
“그러던 중에 정용종에서 온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 선생의 바둑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고해는 곧바로 요정천을 제지했다.
“요 선생,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
요정천이 공손하게 말했다.
“고 선생이 원하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부 돕겠습니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큰일도 아닌데요. 바둑판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요정천도 조금 의외였다. 그러나 곧바로 등을 돌려 고해한테 바둑판을 보여주었다.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
고해가 멍하니 있었다.
“뭐지?”
요정천이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똑같은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이지만 정용종의 것과 다르군요.”
요정천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네? 다르다고요?”
고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 선생,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다르긴 해도, 예전보다 수월합니다.”
고해는 한동안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바둑판 옆에 있는 흑돌을 잡아서 올렸다.
착!
백돌이 자연스럽게 바둑판에 나타났다.
착!
착! 착! 착……!
흑돌과 백돌이 번갈아 놓였다.
고해는 정신을 집중하여 바둑을 두었고, 바둑판의 형세가 변할 때마다 요정천도 영향을 받았다.
어느 순간, 요정천은 등 뒤에서 고통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착! 착……!
고해는 이각 정도 더 바둑돌을 놓았다.
쾅!
그때 바둑판에 깨져버리고,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순식간에 요정천 몸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윙!
요정천의 몸에서 파란색 빛이 흘러나왔다.
고해 역시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고진 등 사람들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요정천이 몸을 떨더니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마치 강풍이 불어올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더니 탁자와 의자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고진의 안색이 변했다.
“저기, 요 선생?”
요정천이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휘젓자 강풍이 멈췄다.
요정천이 말했다.
“대공자, 걱정하지 마시구려. 조금 전에 바둑판이 열리면서 한 줄기의 힘이 단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의 능력을 키워주는 건데 제가 멈추지 못해서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예, 괜찮습니다. 큰일은 아닙니다. 요 선생, 바둑판의 영향에서 멀어졌지요?”
“네, 이제 괜찮습니다. 그러나 관기 노인이 이를 예측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바둑판이 흩어지면서 저에게 자양분과도 같은 힘을 주다니. 세상일이 뜻대로 안 되는군요. 마치 모든 것이 관기 노인의 예측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모두가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고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바둑 문제는 풀었지만, 아직도 조금 전의 대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고해 역시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세상에…… 이게 연환대국이라니?”
“연환대국이오?”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세 번 정도 있을 것입니다. 요 선생의 바둑판이 가장 쉬운 단계이고, 정용종의 바둑판이 중급 단계, 그리고 아직 고급 단계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정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급편, 중급편, 그리고 고급편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정용종의 중급편은 요선생의 초급편의 열 배 정도로 복잡합니다.”
“열 배요? 그럼 고급편은……?”
고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중급편의 열 배는 되겠지요. 저의 능력으로 풀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정천이 씁쓸하게 웃었다.
“관기 노인이 왜 이렇게 어려운 바둑판을 남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의 꼬리가 초급편이고, 용의 몸체는 중급편, 그러면 목단종에 있는 용의 머리가 고급편이겠군요.”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도 있지요.”
요정천의 눈이 번쩍이더니, 곧바로 고해를 보며 정중히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 선생!”
“괜찮습니다!”
요정천이 공손하게 말했다.
“고 선생한테는 별일이 아니지만, 저한테는 정말로 큰일이었습니다. 고 선생, 앞으로 어려움에 봉착하면 곧바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제가 부하들을 보내겠습니다.”
고해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한데 고 선생의 몸에서 황금빛이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것을 보니 기수 맞지요?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천하를 통일하려고 한다던데, 그러면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까?”
고해 역시 솔직하게 말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기에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요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라를 세우면 좋지요. 나라를 세우면 수많은 기수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힘들게 모은 기수가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지요.”
고해의 눈이 번쩍거렸다.
“네?”
요정천이 말했다.
“거기다 고 선생께서 구오도의 용맥을 얻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대지용맥은 한 나라의 기수를 진압하니까요.”
그 말이 고해의 흥미를 끌었다.
“요 선생. 앉으시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요정천이 자리에 앉아 웃으면서 말했다.
“고 선생께서 괜찮으시다면 저도 말씀을 드리지요. 혹시 신주대지라고 들어보셨는지요?”
고해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많이 들어봤습니다!”
“신주대지야말로 이 세계의 주체입니다. 천도해도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신주대지와 비교하면 황폐하고 척박한 땅에 불과하지요.”
고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황폐하고 척박하다고요?”
요정천이 이어서 말했다.
“예. 팔백 년 동안 천도해에서 대지용맥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주대지에서는 십 년에 한 번씩 새로운 대지용맥이 나타납니다.”
“네?”
요정천이 설명했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네요.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한테 대지용맥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입니다. 대지용맥은 한 나라의 기수를 진압하잖습니까? 황제마다 반드시 하나의 대지용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토에서 키우며 기수를 진압하지요.”
고해는 여전히 얼떨떨했다.
“용을 키운다고요? 대지용맥을 키운다고요?”
“네, 종문에서는 영보(靈寶)를 가지고 기수를 진압합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옥새로 기수를 진압하고요. 용완청한테도 인용옥이 있지 않습니까?”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저도 인용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용옥으로 옥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 선생도 인용옥으로 대지용맥을 흡수하시지요. 그런 다음에 옥새를 만들어 이를 대지용맥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 선생의 국토 밑에 숨긴 다음 땅의 기운과 기수로 키우면 되지요. 그러면 대지용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입니다. 대지용맥이 강해지면 진압 가능한 기수도 훨씬 많을 것이고, 기수가 모여서 커다란 덩어리로 되면 그것이 바로 한 나라의 국운이 되지요.”
고해는 들을수록 경이롭기만 했다.
“대지용맥을 단련시키고, 영토에서 사육한다고요?”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대지용맥도 끊임없이 진화되지요. 그러면서 점점 ‘황조하국’(皇朝下国)에서 ‘제조중국’帝朝中国), 그리고 천조상국(天朝上国)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세 개의 천조밖에 없지 않습니까?”
고해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황조하국? 그럼 황조하국 이전은 어떤 식입니까? 예전의 진나라, 송나라, 채나라 등은?”
“그건 아주 작은 소국에 속하지요. 황조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대지용맥도 없습니다. 기운을 수집한다고 해도 최대로 백 원(百元)까지 가능합니다.”
“…….”
고해는 입이 벌어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러나 한 황조의 기수는 모두 만원 기수이지요. 만원 기수야말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지용맥이 기운을 진압하면서 국운도 점점 더 발전하겠지요.”
고해의 눈까풀이 심하게 떨렸다.
황조기운? 적어도 만원 기수가 있어야 한다고?
요정천이 이어서 말했다.
“나라를 세운 후, 그 기수는 황제뿐만 아니라 대신들한테도 나눠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신들이 수련하는 속도도 빨라지지요.”
고진과 진천산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옆에 있던 상관흔만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가만히 있었다.
고해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나라를 세운 자는 자신만의 대지용맥을 기른다?”
요정천의 설명을 들은 고해는 새로운 세상을 본 것만 같았다.
고해는 요정천의 말을 들으면서 연신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 고 선생! 그러고 보니 나한테 나라를 세우는 책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신주대지에서 우연히 얻었지요.”
고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