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38화 (214/243)

138화 천조요약

요정천은 손을 뻗어 견사로 된 족자를 내밀었다.

족자 위에는 ‘천조요약’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요정천이 건네면서 말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고 선생도 신주대지에 갔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해는 책을 받고 천천히 펼쳤다. 견사에는 수많은 숫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산음묘문(仙音妙文)처럼 볼수록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요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 선생, 이 책은 선생께 드리지요. 고 선생한테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해는 족자를 받으면서 예의를 갖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올바른 길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요정천도 공손하게 말했다.

“고 선생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봉인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견고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신 이곳에 해요를 주둔시키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해요한테 전하시면 됩니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나가시지요.”

고해 일행은 요정천과 함께 천천히 고부 밖으로 나갔다.

“고 선생,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요정천은 인사를 마치고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점점 멀어져 가는 요정천을 보는 고해의 마음은 지극히 편했다.

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의부, 요 선생도 재밌는 분이네요. 천 명의 머리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고해가 감탄하며 말했다.

“요 선생, 정말 때를 맞춰 와줬구나. 이 머리들은 묻어버려라!”

“예!”

고해는 충천탑에 돌아와 ‘천조요약’을 읽기 시작했다.

천조요약은 무슨 공법이 아니라 어떻게 나라를 세워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비록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지만, 대체적인 틀은 적혀 있었다. 그것만 해도 고해한테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자!’

고해는 천조요약을 읽으면서 사색에 잠겼다.

“제왕은 구오의 존귀요, 천하에는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온 나라 안의 일반 백성들은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

지금 고해는 나라를 세우는 일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나라를 세운 후, 난민을 구제하는 건 덕을 쌓는 일이다.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이 행복한 것은 덕을 쌓는 일이다.

적의 침략을 막고 침략국의 원수를 죽이는 것은 덕을 쌓는 일이다.

영토를 개척하여 타국의 기운을 얻는 것도 덕을 쌓는 일이다.

나라를 세우기만 하면 기수를 모을 방법은 대단히 많았다.

사람이 근본이고 강토가 근본이다. 기운이 끊이지 않으면 국운이 발전한다.

고해는 또 생각에 잠겼다.

“어쩐지 종문이 백성을 보살핀다 했어. 흥! 아쉽게도 구오도에 있는 종문은 공덕이 필요할 때에만 재난을 발생시켰지. 그리고 백성을 도와주는 척하다가 공덕 기수를 얻었다고? 사람들이 입으로만 선인들에게 부탁을 드리는 것은 가끔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고해는 천조요약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부하들을 지휘하여 사 국의 영토를 관리하도록 했다.

* * *

또 한 달이 지났다.

고진이 말했다.

“의부, 비록 우리 고부에도 인재가 많지만, 이 땅을 지키려면 아직 수많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고해가 조용히 말했다.

“과거시험을 열어 인재를 얻도록 해라.”

“네!”

고진이 걱정하며 말했다.

“아! 의부, 각 곳에 있는 총관들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식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길어야 한 달 남짓 버틸 수 있다 합니다.”

고해가 고진을 보면서 말했다.

“식량? 백운호 비주가 아직 너한테 있지 않느냐?”

“예.”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황금을 들고 구오도의 기타 구역에 가서 식량을 사거라.”

고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 일은 상관흔한테 맡기면 된다. 그리고 너는 부하들을 데리고 상관흔과 함께 국나라의 투항 사무를 처리해라.”

“네!”

“황실을 짓는 건 어찌 되었느냐?”

고진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해에게 답했다.

“목공을 불러와서 밤낮없이 짓고 있습니다. 다만, 호뢰관 전체를 황실로 만드는 건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호뢰관은 망망한 영토였다. 예전 진나라의 사분의 일 크기에 이르렀다.

이건 초특급 황실이었다. 아니면 고부의 이름에 맞는 ’고부‘를 짓겠다는 것인가?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크기가 너무 컸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크다고? 천조요약에서 왕조중국의 황성은 구오도만큼 크다고 했다. 이 정도의 크기는 아무것도 아니야.”

고진은 망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아…… 네.”

“마음이 크면 세상도 그만큼 큰 법이다. 우리의 시작은 아주 미약하지만, 천천히 쌓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높은 위치에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의 부모의 복수는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너의 그 원수도 절대 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고진이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가서 상관흔을 불러와라. 내가 당부할 일이 있다.”

고진이 물러나면서 대답했다.

“예!”

고해는 상관흔을 불러와 식량이 부족한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할 것을 당부했다.

백성들의 공덕으로 기수를 받는 목적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백성들을 안정시켜야 했다.

고해가 온 힘을 다해 천하를 구했으니 이 역시 민심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나라를 멸망시켰어도 민심은 고해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민심은 고해의 정권에 불만을 품은 자들의 말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또 한 달 후. 고해 서재.

고진과 한 무리의 총관이 고해 책상의 양쪽에 서 있었다.

한 총관이 격동된 목소리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고선무 대군이 조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고해가 덤덤하게 말했다.

“고선무가 한 무리의 선천경 수련자를 보유하고 있네. 또한, 목단종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 이런 와중에 멸망시키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늙은 총관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물론 그렇습니다!”

“조나라도 가뭄이 심하다고 들었다. 고진은 조 총관한테 얼른 백성 구제 작업을 펼치라고 전하거라.”

“네!”

“백성들은 병재(兵灾)와 천재(天灾) 때문에 고통이 극심하다. 고선무는 군기를 바로 잡고 어기는 자는 반드시 군법대로 처리하거라.”

“네!”

“상관흔은 조나라에 식량을 조달하거라!”

“네!”

“도파는 새로 위임한 인재들을 보호해라. 금국 변금성에서 발생한 혈투가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네!”

고해가 하나하나 명령을 하는 와중에 밖에서 고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인!”

진천산의 목소리였다.

고해가 대답했다.

“들어와!”

그런데 지금쯤 진천산은 밖에서 수련자들을 모으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진천산이 서재에 들어와 공손하게 말했다.

“대인, 당주님이 오셨습니다.”

고해는 의외의 손님에 눈이 커졌다.

“당주? 용완청?”

진천산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렇지만 당주님의 정서가 아마도…… 아마도…!”

고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해가 조용히 말했다.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만 나가보게.”

“예.”

총관들은 재빨리 서재에서 물러났다. 고진도 따라서 나갔다.

서재에는 고해와 진천산만 남았다.

고해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당주가 왜?”

진천산이 어색하게 웃었다.

“당주가 허둥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인께서 직접 보시지요.”

“유년대사는?”

“유년대사는 없고, 당주 혼자 왔습니다. 많이 힘든 모양입니다.”

“가자.”

진천산과 고해가 서재에서 나와 저 멀리 있는 대청으로 향했다.

대청 문 앞에는 용완청의 세 하인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고부에서 치료를 받으며 고진한테 백운호를 빌려주었던 세 하인은 몇 개월의 치료를 거쳐 많이 호전되었다.

고해를 본 그들이 공손하게 말했다.

“고 타주님, 안에 당주님이 계십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이고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진천산과 세 하인은 대청 앞에서 기다렸다.

고해는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용완청을 발견했다.

용완청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아 보였다. 이리저리 떠다니며 고생한 사람처럼 머리는 전부 흩어졌고 얼굴에는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자신의 체면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처럼 찻잔을 들고 초조해하고 있었다.

고해가 대청에 들어서자 용완청이 갑자기 머리를 들었다.

고해를 보자마자 용완청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용완청은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그대로 고해한테 달려왔다.

“고해! 드디어 찾았구나!”

용완청은 고해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마치 고해가 도망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고해가 놀라 물었다.

“당주, 무슨 일입니까? 유년대사님은요?”

용완청이 고해의 손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사람의 심정처럼 느껴졌다.

“고해! 얼른 유년대사를 구해야 해! 흑흑흑! 전부 돌로 변했다고! 흑흑흑! 이제 어떡해! 죽으면 어떡해!”

고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요? 돌로 변했다고요?”

“돌이 아니라 바둑이야. 바둑돌로 변했어. 마지막에 대사가 나를 구해줬으니 망정이지, 나도 하마터면 돌로 변할 뻔했어. 대사를 구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흑흑흑! 얼른 가서 유년대사를 구해줘! 흑흑흑흑! 나는 어릴 때부터 유년대사와 함께 보냈어. 유년대사는 내 아버지나 다름이 없어! 흑흑흑!”

고해는 화들짝 놀랐다.

“대사가 바둑돌로 변했다고?”

사람이 바둑돌로 변할 수도 있단 말인가?

* * *

고해는 고부의 일을 총관들한테 맡기고 용완청과 함께 떠났다.

고해는 고진, 상관흔, 한 무리의 악인, 그리고 일부 고부 총관들과 함께 비주를 타고 목단종으로 향했다.

용완청은 옷을 갈아입고 맑은 정신으로 고해를 보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나 눈빛에서는 여전히 다급함이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그 옆에서 세 하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해가 말했다.

“당주, 목단종에 도착하면 상관흔과 저의 부하들이 당주님의 비주를 타고 식량을 운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용완청은 흔쾌하게 허락했다.

“너만 가면 돼. 비주는 마음껏 써!”

고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 국이 고부에 넘어왔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원래 고진이 남아서 대국을 관리해야 했으나, 고진이 애원하고 있어서 이번에는 고진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

고해 역시 인재를 중시하고 있었기에 총관들에게 일을 나눠주었다.

고부의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세밀하게 나누고 있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고해가 용완청을 보면서 말했다.

“당주, 목단종에서 있었던 일을 한 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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