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미생인이 돌아오다
고해에게 찍힌 그는 자신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고해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자신의 마음이 짓밟히는 것 같았다.
수련자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조금 전의 당당한 기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해가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마치 고해의 몸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고해가 거의 다 다가왔을 무렵 수련자는 더는 막아서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며 길을 내주었다.
앞사람이 길을 내주자 뒤에 있던 사람들도 이어서 길을 내주기 시작했다.
고해는 용완청과 사람들을 데리고 삼십 명의 수련자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삼십 명의 수련자는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더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 광경이 마치 이 열로 서서 그들을 배웅하는 것 같았다.
고해 일행의 기세는 전체 분위기를 짓눌러버렸다.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씩 거대한 목단꽃을 향해 다가갔다. 더는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용완청은 망연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았고, 마음속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고해, 저자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 기세등등하더니 왜 갑자기 무서워하는 거야?”
고해가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저자들이 기세등등했던 것은 주변에 많은 사람도 저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그저 자신이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그들과 눈을 맞추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난 너만 상대할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게 했지요. 그들은 그걸 안 순간 두려워져서 자연히 길을 비켜준 것입니다!”
용완청은 복잡한 심경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약점을 이용한 것 같으면서도,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대단했다.
일행은 계속하여 목단꽃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런 방해자들이 없었는데 또다시 오십 명이 나타나 고해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고해의 일행은 조금 전처럼 오십 명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수련자들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왜지? 왜 또? 나설 땐 언제고 왜 또 갑자기 물러서는 거야?”
“바보 아니야? 왜 피해?”
그사이 고해는 세 번째로 백 명의 무리를 뚫고 지나갔다.
수련자 몇만 명이 전부 침묵했다.
더는 고해 일행을 막아서는 자도 없었다. 그저 고해 일행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
잠시 후, 고해 일행이 목단꽃 앞에 도착했다.
목단꽃은 마치 수많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몽롱한 느낌이었다.
고해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목단꽃의 꽃잎에 올라섰다.
용완청, 고진 등도 뒤이어 꽃잎에 올라섰다.
수련자들은 생각을 멈추고 그저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 * *
구오도. 원 청하종.
청하종이 멸문당하고 나서 고해는 사람을 시켜 이곳을 지키게 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수많은 일반 군이 안착했고 영석광을 파기 시작했다.
예전에 용완청이 거주하던 산 정상에서는 고씨 가문의 총관이 가계부를 쓰고 있었으며, 매일 대량의 영석들이 발굴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쿵!
산 정상이 굉음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안색이 굳어졌다.
“응?”
사람들은 흔들리는 허공 속에서 흑백 옷차림을 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절반은 검은 옷을, 절반은 흰옷을 입고 서서히 걸어 나와 산 정상의 작은 광장 위에 멈춰 섰다.
한 늙은 총관이 눈빛을 반짝이며 붓을 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늙은 총관은 방문자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저는 고씨 가문의 총관입니다. 미생인 선생님께 인사 올립니다.”
허공에서 내려온 미생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나를 아나?”
늙은 총관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미생인 선생님, 저희 가문의 고해 주인님께서 저보고 여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년대사님이 돌아오셔서 용완청 당주님도 별일이 없다고 선생님께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목단종으로 갔습니다. 저희 주인님께서는 매일같이 선생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흠, 그래?”
늙은 총관이 정중하게 다음 소식을 전했다.
“이것은 팔 일 전의 소식입니다. 십 일을 주기로 주인님은 항상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미생인은 늙은 총관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목단종은 어디에 있느냐?”
늙은 총관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전에 주인님께서 저한테 구오도의 지도를 준 적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신속하게 지도를 찾아와서 미생인에게 넘겨주려 하였다.
그런데 미생인이 손을 휘둘렀다.
“다가오지 마라!”
후웅!
마치 태풍이라도 일어난 듯 늙은 총관은 바람을 맞고 바닥에 넘어졌다. 지도도 바닥에 떨어졌다.
늙은 총관이 바닥에 넘어진 채 다급히 말했다.
“선생님, 저는 무례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다. 내 몸 주변에는 귀신의 영혼이 붙어 있다. 사람의 기운은 그녀를 해칠 수도 있어.”
늙은 총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자신 앞에는 분명 미생인 한 명뿐인데 어떻게 귀신의 영혼이?
손을 휘두르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도가 미생인의 손에 쥐어졌다. 그가 다시 손을 휘둘러서 도자기 하나를 늙은 총관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 단약을 너에게 주마!”
늙은 총관은 단약을 받았다.
미생인은 잠깐 지도를 살펴보더니 한 걸음 나섰다.
붕!
순간 미생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늙은 총관은 손에 쥐어져 있는 단약을 보다가, 미생인이 사라진 곳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선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수많은 수련자들은 고해가 목단꽃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갔어. 앞 사람은 살아 있는 바둑에 죽었거나, 아니면 죽은 바둑에 깊이 빠져 소식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네?”
“고해는 바둑 실력이 남다르니 남들과 다를지도 몰라.”
“하지만 봤어? 저건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야. 관기 노인이라고. 고해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들 관기 노인을 이길 수 있을까?”
“내가 봤을 땐 고해는 지금 죽으러 가는 거야!”
수많은 수련자는 모두 다른 주장을 내세웠다.
고해에게 감탄하는 자, 질투하는 자, 중립을 세우고 관찰하는 자.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 용맥이 탐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밖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사이, 고해 일행은 목단꽃의 꽃술에 도착했다.
용완청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들어가면 나올 수 없어.”
“괜찮습니다. 당주님은 전에 나온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용완청은 입술을 깨물더니 손을 내밀어 팔찌만 한 금환을 고해에게 건넸다.
“고해, 폐를 끼쳐서 미안해. 이것은 정용환이야.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줄 것이야. 이 정용환을 너에게 줄 테니, 혹시라도 바둑판을 깨지 못하면 알아서 도망쳐.”
고해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용완청을 바라보았다.
“정용환을 저에게 주면 당주님은 어쩌시려고요?”
용완청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야. 나가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너희들까지 끌고 왔으니…….”
고해는 한참 동안 용완청을 바라보더니, 마침내 서서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둑 대결은 평생 져본 적이 없습니다.”
용완청은 기어코 정용환을 고해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야 해.”
고해는 한참 동안 용완청을 보았다. 용완청이 가끔 판단을 잘못할 때가 있지만 그 역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고해는 자신 있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갖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쫓겨나더라도 무조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데리고 나갈 것입니다.”
용완청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해는 고개를 돌려 거대한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흰색의 살아 있는 바둑판이었다.
바둑판의 맞은편에는 흰 옷차림을 한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다.
고해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예전 선천잔국계에서 자신의 미간에 침투한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와 똑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맞은편 백발노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네. 어서 시작해 보게!”
고진이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저 사람이 의부를 압니까?”
용완청도 고개를 저으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저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말해. 대사님의 말에 의하면, 저 꼭두각시는 줄곧 한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한테 다 저렇게 말한댔어.”
살아 있는 바둑판은 백옥으로 만들어졌고 경위도는 황금색 줄로 이어져 있었다.
가로세로 스물아홉 줄로 되어 있었고 바둑판 위에는 이미 흑돌과 백돌이 놓여 있었다.
고해는 그것이 바로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의 상급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고해는 잠깐 훑어보더니 바둑이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정도는 정용종의 열 배 이상이었다.
고진이 갑자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요? 죽은 바둑판에 어떻게 세 가지 바둑알이 놓여 있는 거죠?”
고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죽은 바둑판은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사각형의 깊은 못 같았다. 못 위에는 바둑알들이 떠 있었고, 매 바둑알들은 하나의 황금색 줄로 이어져 있었으며, 마치 깊은 못의 내부까지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사각형의 깊은 못 입구에는 약 십만 개의 바둑알이 떠 있었다.
삼분의 일은 백돌, 삼분의 일은 흑돌, 그리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투명한 바둑돌이었다.
그것은 마치 유리 바둑알 같았고, 사각형의 깊은 못 상공에 떠 있었다.
쩡쩡쩡……!
갑자기 일부 바둑알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용완청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저 바둑알들이야. 그들이 모두 바둑알이 되어버린 것이지.”
고해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바둑알로 변했다고요?”
고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의부, 이게 바둑판 맞습니까? 왜 경도선과 위도선이 없는 것이죠? 게다가 왜 십만 개의 바둑알이 놓여 있는 건가요?”
고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사각형 바둑판의 내부는 아마도 이십구 종횡 세계일 것이다. 관기 노인이 다시 개조한 것이지. 사람을 바둑알로 표현하여 사람마다 바둑알이 되는 것이지. 아마도 이 안에는 지금 십만 명이 들어가 있을 것이야. 그리고 바둑판의 세계에서 발버둥 치고 있겠지.”
이때 검은색 바둑판에서 몽태의 노성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놈, 나의 대봉방 내부에 모순이 있더라도 너 같은 빌어먹을 놈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위양의 싸늘한 외침도 들려왔다.
“부혈, 이 전승은 네가 부당하게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흥!”
쿵!
교룡 부혈의 노성이 바둑판 깊은 못 안에서 들려왔다.
“몽태, 위양, 너희 두 사제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사람들 아니냐? 빌어먹을 놈들, 왜 다들 나한테 그러는 것이냐!”
용완청은 주먹을 만지작거렸다. 긴장이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살아 있어. 저 깊은 못 안에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고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처음 보는 것인지라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용완청의 부하가 정중하게 말했다.
“고 타주님, 유년대사님도 지금 안에 계십니다. 저도 많이 걱정됩니다. 제가 죽은 바둑판으로 들어가 고 타주님을 대신해 봐 드리겠습니다. 고 타주님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고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용완청의 부하는 몸을 돌려 목단꽃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