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백성을 바둑돌로 표현하다
후우웅!
갑자기 엄청난 흡입력이 생기면서 그는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순식간에 사각형의 깊은 못으로 빨려 들어갔다.
깊은 못으로 날아간 순간 그의 몸은 흑돌이 되어버렸다. 그 바둑알은 사각형 깊은 못 상공에 떠 있었다.
그때 흑돌에서 황금색 줄이 나타나더니 깊은 못 내부를 향해 뻗어나갔다.
고진이 경악해서 말했다.
“진짜로 바둑알이 된 것입니까?”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
“바둑알이 되어버린 게 아니라, 그저 바둑판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야. 저 바둑알은 아마도 그 사람의 분신일 것이고, 그 분신이 못 입구에 떠 있는 것이지. 그의 본체가 바둑판 세계에서 어떠한 상황에 부딪히면 이 바둑판 입구에 그의 위치와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야. 예를 들면, 저쪽에 있는 세 개의 바둑알이 깨졌다는 것은 본체가 바둑판 세계에서도 죽었다는 것이다.”
용완청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바둑알로 변한 게 아니네?”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예전에 당주님과 유년대사님의 ‘바둑알 분신’이 되어갈 때 유년대사님이 정용환을 이용해 당주님을 빠져나오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주님은 유년대사님이 바둑알이 되어버린 것을 본 것이지요.”
용완청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지금은 무슨 상황이야?”
고해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마도 관기 노인이 자신의 전승을 잇기 위해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용완청이 경악해 하며 말했다.
“응? 관기 노인의 전승? 그거 대지용맥이 아니었나?”
고진도 잠깐 멈칫거렸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위양도 ‘전승’ 두 글자를 얘기했지 않습니까?”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지용맥은 그저 관기 노인 전승의 일부분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 관기 노인은 누군가가 그의 의발을 전승받기를 바라고 있겠지. 관기 노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누군가가 그와 같기를 바라는 것이니까. 뛰어난 바둑 실력의 소유자가 만약 ‘살아 있는 바둑판’을 풀어낸다면 그의 의발을 받게 될 것이고.”
“살아 있는 바둑판?”
용완청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말을 이었다.
“살아 있는 바둑판은 지금껏 풀어낸 자가 없어. 바둑을 지는 자는 모두 바둑판의 힘으로 인해 목매어 죽었어. 전에 신기영 대다수 제자도 살아 있는 바둑판의 손에 죽어버렸지. 그 복잡한 정도는 유년대사님도 감히 도전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건 바둑 실력이 부족해서입니다. 그러니 관기 노인의 전승을 받을 수 없지요. 아마 관기 노인도 바둑을 풀 수 없을 경우를 생각해서 죽은 바둑판을 설정한 것 같습니다. 죽은 바둑판은 아주 뛰어난 바둑 실력이 필요 없나 봅니다.”
고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죽은 바둑판이 나중에 보충된 것이라고요?”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목단꽃에 진입한 사람들이 살아 있는 바둑판을 포기하면 죽은 바둑판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 아마 그 속에서 각종 능력으로 전승의 기회를 얻으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안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은 아닐 것이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의부?”
“살아 있는 바둑판에서 지는 자는 무조건 죽음이다. 네가 생각했을 땐 죽은 바둑판에서 만약 진다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고진이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그 역시 죽음인가요?”
“전승은 하나뿐이다. 이기는 자는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는 것이지.”
용완청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기는 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내부의 쟁탈 속에서 죽어버린단 말이야?”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예상하기엔 그렇습니다.”
용완청의 표정이 하얗게 변했다.
“그 말은, 이 거대한 목단 속에 들어오는 자들 속에서 단 한 명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죽는다는 거네? 안에 있는 십만 수련자들 모두?”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안색이 굳어졌다.
흰 안개로 둘러싸여 있는 목단꽃이 더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수라지옥보다 더 음침해 보였다.
이것은 사람을 삼키는 목단꽃인가?
고진이 바둑판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부, 살아 있는 바둑판을 풀 수 있겠습니까?”
고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해 봐야지.”
사람들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바둑판의 한쪽에 앉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가 있었는데, 서로 마주하고 앉았다.
맞은편 백발노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바둑판은 이미 회복되었네. 바둑알을 올려 이 판을 풀어보게나.”
고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세하게 바둑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봉방의 하급편, 정용종의 중급편, 목단종의 상급편. 비록 세 편 모두 다르긴 하지만 확실히 차례로 전진하는 과정이다. 이미 하급편과 중급편을 봤기에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풀기 힘든 바둑판이야.’
고해가 복잡하다고 느낀 바둑은 처음이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바둑판을 더욱 깊이 살펴보았다.
용완청, 고진 등 사람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마음은 초조하지만, 고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고해가 바둑판을 연구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외부의 오만 명 수련자들은 계속하여 목단꽃 위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비록 큰 안개에 감싸져 있었지만 그들 역시 대충은 볼 수 있었다.
“벌써 하루가 지났어. 왜 아직도 바둑알을 올리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설마 두려워서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십 일 전에 고의로 시간을 끌던 자가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은 한 시진이 지나서 바로 바둑판에 목매어 죽었잖아?”
“그런데 왜 고해는 시간을 끌 수 있는 거지? 너무 불공평하잖아!”
수련자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지 않았다.
살아 있는 바둑판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죽은 바둑판에는 십만 명의 수련자가 들어갔지만, 여태껏 아무도 살아나온 사람이 없었다.
저 목단꽃은 바로 죽음의 세계였다. 들어가면 죽는 곳.
대지용맥은 누구나 갖고 싶은 것이지만, 그것도 목숨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고해는 바둑 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이 바둑은 확실히 복잡했다. 하지만 복잡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느끼는 점도 많았다. 마치 머릿속에서 한순간에 많은 것을 깨닫는 것 같았다.
고해의 미간 앞에는 흑돌이 여전히 천하를 통치하듯 상공에 떠 있었다. 옆에는 흰색 수정체의 잔여물이 있었으며, 밑에는 십만 편의 잔국이 놓여 있었다.
오랜 시간의 사사합병을 거쳐 이미 절반은 합병되었고, 따라서 고해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
밑에 있던 바둑판의 잔국이 느닷없이 엄청난 속도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잔국은 쉬지 않고 합쳐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만 편의 잔국이 이만 편의 대잔국이 되었다.
나머지 이만 편은 그 자체가 너무 복잡한 듯 일시적으로 합쳐지지 않았다.
고해가 그 광경을 보면서 말했다.
“이것들을 더 축약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합쳐진 잔국에서 쓸모없는 바둑알이 제외되고 일부 종횡선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종횡 십구로의 바둑판으로 변했다.
팔만 편이 이만 편으로 줄어들었으니 각각 하나에 네 판이 축약되었다.
그로 인해 이전과는 바둑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이전 네 판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는 듯 그 바둑의 정화가 바둑판 하나 속에 축약되어 있었다.
쿵! 쿵! 쿵! 쿵!
또 하루가 지나자 다시금 더 작은 바둑판으로 변해버렸다.
모두 십구도 종횡의 바둑판이었다. 여기에 합병할 수 없는 잔국까지 더하면 총 사만 편의 작은 잔국이었다. 모든 편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고해는 어리둥절해졌다.
“바둑판에 잠재된 사상과 규칙이 많으면 진법을 펼칠 수 있는 건가?”
고해는 한편으로는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살펴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간 위에 있는 사만 편의 잔국을 살펴보았다.
고해는 바둑판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만 편의 잔국을 더 축약한다면 진을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관기 노인의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과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도 이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합병하고 축약하여 쓸모없는 수를 제외하고 필요한 수만 뽑아서 완벽함에 완벽을 더한다면…….
그것이 바로 이 바둑의 원리가 아닐까?
쿵!
그때, 미간 위에 있던 사만 편의 복잡한 잔국 중 네 편의 잔국이 합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합쳐진 큰 바둑판으로 변했다.
고해는 눈빛이 점점 밝아졌다.
“내가 생각한 게 맞았어! 잔국을 융합하고 축약하는 것이 대진 구조의 기초고, 세계를 창조하는 시작이야.”
사만 편의 복잡한 잔국을 전부 합치는 것은 한순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추리해야 했다.
고해의 정신은 점점 더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깊게 더 깊게…….
어느 순간, 고해는 의식이 전부 바둑판 속으로 들어간 것을 느꼈다.
마치 망망한 대지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모두 하얀 곳에서 혼자 고독하게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맞은편에서 여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고해는 멈칫거렸다. 그도 이것은 환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아?”
그의 몸에서 황금색 줄 하나가 나타나더니 진선아와 연결됐다. 황금색 줄 위에는 마치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또 네 명의 아이가 나타났다.
고해는 의아한 눈빛으로 네 명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고진, 고한, 고당, 고명.
다시금 황금색 줄 하나가 자신과 네 명의 아이를 연결하였다. 줄에는 마치 ‘혈육의 정’이라는 글자가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또 파란색 안개가 나타났다.
그 속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맨 앞에 있는 파란색 옷차림을 한 이는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기운을 내뿜었다. 눈만 봐도 무서움에 벌벌 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황금색 줄은 고해와 그 사람들을 연결하였고, 그 위에서는 ‘원한’이라는 두 글자가 맴돌았다.
망망한 대지에 점점 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금색 줄로 고해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줄마다 모두 고해와의 관계가 적혀 있었다.
고해는 망망한 대지에 서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치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고해가 하늘을 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알았다. 천지는 바둑판이고, 사람은 바둑알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원한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경위도선과 같고, 바둑판 가로 세로의 위도선은 매 하나의 바둑알과 연결되어 있어서, 바둑알을 바둑판 속에서 발버둥 치게 하고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
쿵!
고해는 순간, 마치 하나의 도리를 꿰뚫어버린 것 같았다.
그에게서 황금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의식이 서서히 바둑판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를 바라보았다.
고진이 고해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의부는 왜 아직도 바둑알을 올리지 않는 것입니까?”
용완청도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삼 일이나 지났는데 고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외부의 수많은 수련자도 망연하게 고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한 지 삼 일이 지났다.
그는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때, 맞은편에 있던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