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바다의 야수들
북해의 한 해역.
비주 하나가 하늘에서 멈췄다.
밑에는 짙은 먹구름이 깔려 있고,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바다에서는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다.
오십 마리의 용들이 이 해역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용이 바다를 만났으니 천지개벽을 이루리라!
바닷물은 마치 오십 마리의 용에 복종하는 것 같았다.
용들은 바다에서 움직이며 천천히 현무들을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가장 작은 현무는 일 장 크기였고 가장 큰 현무는 삼백 장 크기였다. 그들은 겁에 질린 채 용들과 맞섰다.
오십 마리의 용들은 오백 장 크기였고, 가장 큰 용은 팔백 장 크기였다. 그들은 현무들을 중앙으로 몰아넣고 압박했다.
우르르릉!
한 흑룡이 뛰어올랐다.
삼백 장 크기의 현무도 맞섰다.
“막내를 보호하거라!!”
쿵!
현무와 흑룡이 부딪쳤다.
순간, 다른 흑룡이 나타나 십 장 크기의 작은 현무를 물어버렸다.
“안 돼! 내 아들은 안 된다!”
스륵!
꿀꺽!
다른 현무가 슬프게 소리 지르는 사이, 흑룡이 작은 현무를 꿀꺽 삼켜버렸다.
흑룡은 눈을 끔뻑거리며 아직 배가 고픈 듯 또 다른 현무를 노렸다.
가장 큰 현무가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서로 모여! 저놈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마라!”
그러나 가장 큰 현무도 속수무책이었다. 방어할 틈도 없이 점점 많은 현무가 먹히고 있었다.
현무도 천상을 움직일 수 있지만 용족이 더 강했다.
잔혹한 싸움으로 바닷물이 핏물로 변해버렸다.
저 멀리 비주에 있는 자들은 그 광경을 구경하듯 느긋이 바라보았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맨 앞에 서서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뒤에는 부하로 보이는 자들이 한 무리 있었는데, 그중 등에 금도를 메고 있는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자님, 이 일을 왕 대인께서 알게 되면…….”
백의 공자가 냉랭하게 말했다.
“방명후, 너는 내 할아버지가 보낸 호위무사야. 날 지휘하러 온 게 아니라.”
금도를 메고 있던 자, 방명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네, 죄송합니다. 다만 이 용들이……!”
백의 공자는 두 눈을 깜박이면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별일 없을 거다. 이신기가 현무 무리를 발견했다고 하더니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 용들이 우리 왕부에 충성하니 상을 줘야 할 것 아니냐? 저들은 현무를 먹고 싶어 했다. 그럼 마음껏 먹으라고 해야지.”
방명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 멀리에서 한 줄기의 빛이 번쩍였다.
방명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지?’
그 빛은 먹구름 밑에서 매우 낮게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혈투 장소 근처에 도착했다.
마침 한 흑룡이 거대한 현무를 삼키려고 했다.
흑룡은 현무를 입에 물었고, 그 현무는 울부짖고 있었다.
“안 돼! 살려줘!”
“젠장!”
비주에서 격노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가 흑룡을 향해 날아갔다.
쿵!
순간, 흑룡이 뒤로 쓰러지면서 입에 물로 있던 현무를 뱉어냈다.
도망쳐 나온 현무가 환호했다.
“응? 무 장로님, 드디어 오셨군요!”
무신은 대꾸할 시간도 없이 혈투 장소를 향해 돌진했다.
무신이 포효하자 주변의 바닷물이 승천하기 시작했다.
“겁도 없이 어디서 감히……!”
“장로님이 오셨다!”
“드디어 살았어!”
“장로님, 살려주세요!”
현무들이 울부짖었다.
무신이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며 한 무리의 용들을 때려눕혔다.
크아아아앙!
용들도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중에서도 팔백 장 크기의 가장 큰 용이 울부짖으며 돌진했다.
용이 꼬리를 흔들자 바닷물이 용솟음쳤다. 마치 바닷물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콰르르릉!
바닷물이 폭발하면서 하늘까지 찔렀다.
무신의 안색이 변하며 비틀거리자, 갑자기 오백 장 크기의 거대한 거북이로 변했다.
쿵!
바닷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용의 꼬리는 거북이의 등껍질을 벗기지 못했다.
현무들은 황급히 무신 뒤로 몸을 숨겼다.
먹구름이 낀 하늘 위에서는 방명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공자님, 저 비주는 용완청의 백운호처럼 보입니다.”
백의 공자가 눈을 깜박거렸다.
“용완청? 그가 왜 현무족의 무신과 같이 있는 거지?”
먹구름 아래, 백운호 비주에서도 용완청과 유년대사, 고해, 상관흔이 두 종족의 혈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상관흔이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용족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현무족을 먹으려고 하는군요.”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용족이 현무를 즐겨 먹어?”
“현무족과 용족은 전부 바다의 야수들입니다. 팔백 년 전에는 현무도 용족을 먹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무의 힘이 약해지면서 용족에 먹히고 있지요.”
“현무도 용을 먹는다고?”
상관흔은 조용하게 말했지만, 고해는 상관흔의 말투에서 극한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현무는 편식하지 않습니다. 용도 먹고 봉황도 먹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먹히는 입장입니다.”
그때 유년대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주, 이 용들은 죄를 지은 용 같은데요?”
용완청이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죄를 지은 용?”
고해가 물어보았다.
“죄를 지은 용은 또 무엇입니까?”
용완청이 설명했다.
“용족에서 죄를 지은 용을 말해. 죄를 지으면 머리 위에 죄인(罪印)으로 된 자국을 새겨. 원래는 죽여야 하는데, 같은 종족이라 목숨을 살려두고 대건천조의 노예로 부려먹다가 천 년 뒤에 자유의 몸으로 돌아가게 돼.”
“천 년이 지나면 자유의 몸이 된다고요?”
“그래. 용족은 대건천조를 상징하는 동물이야. 아무리 죄를 지은 용이라 할지언정 대건천조도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을 거야. 이들은 변강지역에서 국경을 지키며 적의 침입을 막고 있거든.”
고해는 용완청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용머리 위에 ‘미’(米)자라고 새겨진 자국이 있었다.
용완청이 말했다.
“최근 영주 근처에서 동란이 많아 용들이 영주로 파견되었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곳에만 있어야 해. 그런데 어떻게 북해에 나타났지?”
쿠과과광!!
무신과 흑룡이 혈투를 벌이자 거센 해일이 일면서 강력한 천둥 번개를 동반했다.
상관흔이 갑자기 소리쳤다.
“폐하, 위에 비주 한 척이 있습니다!”
고해는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 위를 볼 수 없었지만, 상관흔의 시력으로는 충분히 가능했다.
용완청이 말했다.
“위로 올라가!”
수웅!
비주는 순식간에 하늘 위로 올라갔다.
유년대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양왕의 적손(嫡孙) 여안? 여안의 비주?”
고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여안은 어떤 자입니까?”
유년대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양왕이 가장 좋아하는 손자네. 그 능력도 범상치 않은 자지.”
백운호는 빠르게 맞은편에 있는 비주 앞으로 날아갔다.
여안이 난간에 서서 용완청을 보며 말했다.
“용완청 동생, 여기 북해는 어쩐 일로 왔지?”
용완청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용완청이라고 부르시지요! 함부로 동생이라고 하지 마시고. 그런데 공자가 죄를 지은 용을 데려온 겁니까?”
백의 공자 여안이 미소를 지었다.
“왜? 동생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 좋아! 그럼 용완청이라고 부르지.”
용완청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공자, 이 현무는 내 친구들이니 얼른 용들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응? 용완청의 친구라고? 그렇지만 저들도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
옆에 있던 유년대사가 말했다.
“공자, 성왕의 지시가 있었는지요? 공자가 영주를 떠나 북해에 왔지요? 만약 용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이는 대건천조의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공자가 데리고 온 용들인지, 아니면 여양왕이 보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여양왕이 성왕의 명을 어기려는 건 아닌지요?”
웃고 있던 여안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뭐?”
여안이 냉랭하게 말했다.
“하하하! 죄명이 무겁네요! 유년 선생, 독설이 참 대단하시군요.”
용완청이 눈을 부릅떴다.
“여안, 지금 안 가면 곧바로 외할아버지께 서신을 보낼 겁니다. 여양왕이 성지를 어기고 죄를 지은 용들을 풀어줬다고 말할 겁니다!”
여안은 싸늘한 눈빛으로 용완청을 쳐다보았다.
“완청. 어릴 땐 귀여웠는데, 점점 싫어지려고 하는군.”
용완청은 눈을 부라리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백운호에 탄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러나 고해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귀찮게 여겼다.
여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도깨비들아, 이제 가자!”
쿵!
밑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신과 싸우던 흑룡이 고개를 들고 비주를 보며 말했다.
“예? 공자, 지금 간다고요? 아직 무신과 현무도 먹지 못했습니다. 전부 먹어야 합니다!”
여안이 싸늘한 눈빛으로 용완청을 보며 말했다.
“가자! 여기에 있다가는 우리 할아버지까지 반역자로 몰리게 생겼다! 흥!”
흑룡이 그제야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예, 공자!”
용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우르르릉!
순간, 용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더니 이내 여안의 비주에 올라탔다.
여안은 고개를 돌려 용안청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음침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완청! 시간 나면 양주에 놀러 와! 성의껏 대접하지!! 하하하하하하!”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저 멀리 날아갔다.
여안이 잔혹한 광경만 남긴 채, 한 무리의 용들을 데리고 돌아가자, 잔잔한 바다에서 현무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장로님, 저의 아버지가 놈들에게 죽었습니다. 흑흑!”
“놈들이 공격하자 우리한테 아부하던 해요들도 전부 도망쳐 버렸습니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무신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고해 일행은 하늘에서 무신을 기다렸다.
밤이 깊어서야 무신이 날아 올라왔는데, 표정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폐하, 조금만 늦었어도 전멸될 뻔했습니다!”
고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끝났으면 구오도로 가라. 여기는 고진이 남아서 정리하면 되니까.”
“예, 폐하. 이번에 영주에 가시면 저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보아하니 천궁(天宫)을 열려는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무신이 상관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관 선생, 우리와 함께 갈 겁니까?”
신분을 감추어야 하는 관계로 무신은 상관흔을 상관 선생이라고 불렀다.
“아닙니다. 저는 폐하와 함께 영주에 갈 것입니다. 살펴서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무신은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유년대사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고해를 보고 있었다.
고해가 무신을 부리다니.
고해는 그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고 용완청을 바라보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완청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무신 혼자서도 충분히 저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어. 저놈들이 천궁을 연다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그저 원영경 최고 경지에 불과해.”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능력이 비슷해 보입니다. 기회가 나면 용들이 또 현무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에서 유년대사가 손을 휘젓자, 한 하인이 빠르게 달려와 비주를 조종했다.
용완청이 말했다.
“정말 고마우면 바둑 좀 가르쳐 주겠어? 이번에는 다른 사람과 십 년 동안 바둑을 둔 적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지?”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주님께서 배우고 싶다면 제가 알고 있는 전부를 가르쳐드려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