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은월성
* * *
며칠 후, 백운호 비주의 한 대전에 고해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앞에는 <진룡금단공> 공법이 펼쳐져 있었다.
고해는 앞에 있는 이 공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곤혹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금단경은 진원으로 ‘심간비폐신’(心肝脾肺肾)에 충격을 주어 다섯 개의 구멍을 만든다고? 심장, 간, 비, 폐, 신장에 구멍을 만들어? 그럼 단전이 주를 이루고 다섯 개의 구멍이 보조 역할을 한다는 건가? 아니면 단전과 비슷한 구멍이 생기는 것? 그럼 금단경이 또 다섯 개의 단전을 만드는 건가?”
심신을 단전에 담그니 단전 안에서 구 모양의 진원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렇게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더니 영기가 모여 진원을 형성했다.
구 모양의 진원 안에서 보라색의 작은 용이 헤엄치는 것 같았다.
이 보라색의 작은 용은 진룡선천공이 모여 만들어진 진룡이었다.
고해가 심신을 집중할 때마다 이 작은 용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 용은 구 모양의 진원에서 빠져나와 경맥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용은 경맥을 한 바퀴 돌더니 곧바로 심장으로 흘러갔다.
용이 심장에 있는 한 경맥으로 가자 뿌연 기가 솟는 듯했다.
용은 진원을 이끌고 그 힘을 향해 돌진했다.
쿵!
고해의 심장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고통이 몰려왔다.
고해는 운기를 곧바로 멈췄다. 뿌연 기는 살짝 움직이기만 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고해는 망연한 눈빛을 한 채 중얼거렸다.
“여기가 바로 심장 구멍의 입구인가? 어떤 충격을 줘야 열리지?
지금은 진원의 힘이 부족한 듯했다.
아니면 어떤 동기가 있어야 열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작은 용이 경맥을 따라 폐에 도착하자 폐에도 뿌연 기가 있었다.
비의 구멍, 간의 구멍, 신장 구멍.
작은 용은 고해의 몸 안에서 제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고해는 이틀 정도 수련하다가 대전을 나섰다.
용완청 혼자 뱃머리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이 지면서 황금빛 햇살이 용완청을 비추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근처에 있던 고해는 넋이 나갔다.
순간, 용완청이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고해와 눈이 마주쳤다.
용완청이 미소를 지으니 꽃이 만발하는 것 같았다. 이를 본 고해의 얼어붙은 심장이 샤르르 녹아버린 것처럼 두근거렸다.
고해는 이내 표정을 바꾸면서 설레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용완청이 미소를 지었다.
“나왔어?”
고해도 웃으면서 말했다.
“예, 조금 전에 진룡금단공을 연구했습니다. 진원이 흐르는 방법과 순서가 확실히 예전보다 강해진 것 같습니다. 강력한 기운이 곧바로 다섯 구멍을 직통하던데요? 하하!”
“심장, 간, 비, 폐, 신장 구멍을 여는 게 관건이야. 다섯 구멍을 열면 원영경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예?”
용완청이 설명했다.
“단전에 원영을 모으고, 다섯 구멍에서도 원영을 모을 수 있어.”
고해가 망연하게 물어보았다.
“다섯 구멍에서도 원영경을 모은다고요? 그럼 원영경이 여섯 개 아닙니까?”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건 전부 너의 혼이라고 할 수 있지. 원영은 바로 너의 힘의 원천이야.”
“사람한테는 삼혼칠백이 있는데 왜 원영이 여섯 개뿐이죠?”
용완청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여섯 개의 원영이 모이면 천궁을 열 수 있고 삼혼을 수련할 수 있지.”
고해는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용완청이 저 멀리 보며 말했다.
“아, 곧 은월성에 도착할 거야. 바다와 인접한 곳이 영주지. 일품당 사람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거기에 우리 엄마가 예전에 만든 행궁이 있거든. 일품당의 주둔지라고나 할까?”
“예? 당주님의 어머님께서 만든 행궁요? 그럼 어머님은 많은 행궁을 만드셨나요?”
용완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영주에는 두 곳밖에 없어.”
“그럼 왜 은월성을 선택하신 거죠?”
“우리 엄마는 거문고를 좋아하셨어. 그런데 은월성에는 다양한 거문고가 있었고, 또 거문고를 켜는 사람도 많았지.”
“그래요?”
비주는 빠르게 날아갔다.
용완청이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자, 고해의 눈에 엄청 큰 성이 들어왔다.
해변가에 서 있는 거대한 성.
그 성은 구오도의 절반보다도 더 컸다.
구오도가 지구의 크기와 비슷한 걸 생각하면 성이 한 행성만큼이나 크다는 말이었다.
성벽은 높이가 오백 장이나 되었다.
성지 하늘에는 구름이 깔려 있어서 외부인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리고 성벽 위에는 수많은 진법이 배치되어 있었다.
용완청이 설명했다.
“여기가 바로 은월성이야. 성은 천궁자들의 공격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진법으로 배치되어 있지. 엄청 굳건해.”
고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크네요!”
역시 나와서 직접 보기를 잘했다. 이제야 신주대지 사람이 천도해를 말라비틀어진 땅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신의 대한황궁도 이들을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평범한 성이 우리 대한황궁을 담아버릴 정도라니!
고해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고해가 데리고 온 관리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수련자들의 성이라고? 성이 뭐 이렇게 웅장해?”
“폐하께서 호뢰관 전체를 황궁으로 만드는 이유가 있었구먼!”
관리들은 은월성 밖에 있는 기괴한 동물들을 보며 또 화들짝 놀랐다.
비주는 은월성 밖에 있는 공터에 멈춰 섰다.
비주를 거두어들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용완청은 학이 끄는 수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선학차(仙鶴車)야. 성안에서 비주를 날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아. 물론 공공구역은 더욱 안 되지. 그래서 이 선학차가 우리를 데리고 이동할 거야. 흠…. 예전에 타던 마차라고 보면 돼. 돈만 내면 가능하지!”
고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 영석이 있어서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선학차를 타고 성문을 향해 갔다.
성문은 백 장 높이였고 위의 현판에는 ‘은월’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문 앞에 있던 병사가 검문하려고 앞으로 다가왔다.
용완청이 일품당령을 보여 주자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성에 들어서자, 하늘 위에 떠 있는 엄청난 섬들이 보였다.
섬 위에는 아름다운 정자와 누각이 있었지만, 대부분 구름에 잠겨 있었다.
그 주변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마치 몽환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관리들은 눈에 담아갈 기세로 눈을 껌벅거리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있는 길거리에 많은 수련자가 다니고 있었다.
용완청은 묵묵히 고해를 지켜보았다.
고해는 한번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가끔 신기하다는 눈빛만 보였다.
보통 새로운 세계를 보면 호들갑을 떨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고해가 물어보았다.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수련자들입니까?”
용완청은 머리를 끄덕였다.
“대부분은 수련자야. 가장 나약한 수련자는 후천경으로 보통 평민층에서 생활해. 그다음이 바로 선천경이고, 금단경이 가장 많아. 그리고 원영경이 있지.”
고해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이 한 성에 사람은 얼마나 있습니까?”
용완청은 저 멀리 보며 말했다.
“아마 일 억 정도 있을 거야!”
“……!”
관리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일 억? 한 성에만 일 억 명이 있다고?
몇백만 명만 있어도 거대한 성을 만들 수 있는 구오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용완청이 다시 말했다.
“은월성은 외곽에 있어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
관리들은 다시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고해는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다.
일억 명이면 지구에 있는 상해 인구의 네 배 정도였다.
하물며 한 성의 면적이 중국보다 더 큰 걸 생각하면, 일 억 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은월성, 화려한 대전.
여안이 안에서 칠현금을 켜고 있는데, 부하 하나가 대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자는 여안의 앞에 도착하여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조금 전에 서신을 받았는데, 용완청이 왔다고 합니다.”
여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행동을 멈췄다.
“뭐? 용완청이 은월성에 왔다고?”
“네, 무신을 제외하고 그 백운호 비주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왔습니다.”
여안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달려와? 흥!!”
* * *
선학차는 거리에서 낮게 비행했다.
관리들은 거대한 점포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의 점포는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고, 점포 건물 역시 매우 웅장했다. 길거리만 해도 어느 한 구역보다 컸다.
길에 있던 수련자들도 이 선학차를 보고 있었다.
선학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다.
작은 선학차는 학 한 마리가 한 사람을 태우고 비행했고, 큰 선학차는 고해의 일행이 탄 것처럼 몇십 마리의 학이 차를 끌고 날아갔다.
한 무리의 관리들은 흥분한 표정이었지만 고해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형태만 다를 뿐, 결국 지구에 있는 마차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고해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여기를 보니 단약 점포, 법보 점포를 제외하고 거문고 점포가 가장 많은 것 같군요.”
용완청이 웃으면서 답했다.
“당연하지. 은월성 하면 바로 거문고야. 은월성, 이 이름이 뭐와 비슷하지 않아?”
고해가 멍하니 말했다.
“은월? 은월? 음악(중국어 발음으로는 은월과 음악의 음이 비슷하다)이오?”
용완청이 웃으면서 말했다.
“비슷해. 거문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에 와서 거문고를 찾지. 이곳의 거문고가 최고라고 할 수 없지만, 가장 유명해. 거문고의 길은 독특한 매력이 있고 또 어렵지도 않아.”
“아, 그렇군요.”
“은월성에는 거문고 고수들이 모여 있어. 비록 외곽에 있지만. 은월성은 대건천조가 건립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해.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거문고 세가가 있는데 바로 ‘은월산장’이지.”
“은월산장이오?”
“응. 은월산장은 거문고에만 전념했어, 정치나 군사, 권력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어. 하지만 그 위상은 엄청나지.”
“그들의 위상이 성주보다 더 크단 말입니까? 그걸 대건성왕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고요?”
“우리 외할아버지? 아마도 묵인한 것 같아.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은월산장 주인을 만났을 때, 산장 주인이 우리 외할아버지한테 ‘천급’(天級) 칠현금을 선물로 주셨어. 천급이 뭔지 알아? 전설에 따르면, 천급은 천하에서 가장 좋은 칠현금이래. 세상에 몇 개 없는 칠현금인데, 대건천조에만 두 개가 있어. 그것도 전부 은월산장에서 받은 거야.”
“천급 칠현금이 두 개라…….”
“정정(定鼎)은 외할아버지한테 줬고, 또 다른 하나 ‘파군’(破軍)은 여양왕을 줬어. 그래서 은월산장은 단순한 거문고 세가가 아니라, 우리 외할아버지와 여양왕도 어려워하는 곳이야.”
용완청이 이야기를 하며 입술 끝을 올렸다.
“이곳 성주가 감히 은월산장에 가서 추궁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 하지!”
고해는 그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용완청이 어떤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듣자 하니 산장 주인이 마지막 천급 거문고와 인연인 사람을 찾는다고 했던 것 같아. 거문고 이름이 ‘구진’(句陳)이라고 했던가, 그래.”
“구진이라는 천급 칠현금의 인연자를 찾는다?”
고해의 눈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