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완아선자
“진정한 금도 고수를 불러와서 연주하게 하고, 고해의 개논이 하나의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한테 알려주어야 합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여악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건 저번에 써먹었다가 실패했잖아! 실패한 걸 방법이라고 말하는 건가!”
“우리 천하제일 금루가 금도의 표준이고 주류라는 것을 알리자는 겁니다. 거기다 거문고는 향락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전투에 사용되고, 고해의 철풍금은 하나의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리고 말입니다!”
여안의 분노가 조금 누그러졌다.
“으음…… 그게 가능할까?”
“중요한 건, 고해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신념을 깨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안이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더니, 눈을 쳐들고 물었다.
“누구를 부를 거야? 지금까지 수많은 고수를 불러왔었잖아?”
“완아선자를 부르지요.”
“완아선자?”
“그녀의 금도 실력이 일대에서는 제일 강합니다.”
“완아선자가 올까? 저번에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부탁하셔서 겨우 한 곡을 연주했잖아? 내가 초대하면 거절할지도…….”
“공자님은 왕 어르신의 손자 아닙니까? 그녀를 데리고 올 사람은 공자님밖에 없습니다. 이제 천하제일 금루의 운명은 여 공자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 악문 여안은 힘겹게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해보지.”
천하제일 금루를 나온 여안은 완아선자가 있는 장원으로 달려갔다.
* * *
완아선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여안을 바라보았다.
여안은 완아선자의 눈길을 받으며 끓어오르는 욕망을 겨우 잠재웠다.
완아선자가 여 공자를 보며 말했다.
“여 공자님, 지금 저더러 천하제일 금루을 도와 고해를 무너뜨리라는 건가요?”
“고해만 무너뜨리면 원하는 건 전부 주겠네!”
“호호호호. 여 공자님, 제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던가요? 제가 원하는 건 여 공자님의 옥패라고요.”
“이 옥패는 할아버지가 준 물건이라 항상 몸에 소지하고 다녀야 하네.”
“저도 소중한 물건인 건 압니다. 그래서 달라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저는 고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보장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개논은 제가 창작한 그 어떤 곡과 비교해도 최고 수준이니까요.”
여안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 채 고민하더니 결국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주지. 대신 그대도 최선을 다해주게.”
완아선자가 손을 뻗었다.
여안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옥패를 꺼냈다. 옥패는 용의 모양으로 푸른색 빛 속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였다.
완아선자는 옥패를 건네받았다.
여안은 완아선자의 손에 있는 옥패를 보며 멈칫했다.
완아선자가 마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하제일 금루에 고해네 점포와 똑같은 높이의 돌출부를 만들어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해뿐만 아니라 은월성 전체를 들썩이게 하지요! 호호호호!”
“알았네! 그럼 믿고 가지.”
여안이 돌아간 후, 완아선자는 손에 있는 옥패를 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곧 고개를 쳐들고 대소를 터트렸다.
“여안아! 네가 이 옥패를 나한테 넘기다니! 오호호호호! 너무 쉽게 받았군! 호호호호!”
완아선자는 옥패를 품에 넣고 저 멀리 꼭대기만 보이는 ‘이 거리 제일 금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개논도 훌륭한 곡이지. 하지만 고해는 의경도 없이 연주만 했어! 은월성에서 나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은월산장의 주인뿐. 한 곡만 연주해도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데, 이런 내가 너를 무너뜨리지 못할까?”
* * *
다음 날.
천하제일 금루는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삼층에 철풍금 위치와 똑같은 높이의 돌출부를 만들었다.
‘이 거리 제일 금루’에 온 수련자들은 고개를 돌려 돌출부를 바라보았다.
“뭐야? 완아선자잖아?”
“천하제일 금루에서 완아선자를 데려왔군, 고해에 맞서 싸우겠다는 건가?”
창문의 돌출부는 정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옆에 작은 향로에서 향이 피어나고 있었다.
흰 옷을 입고 하얀색 면사포를 쓴 완아선자가 천천히 부들방석에 앉았다.
그 앞에는 청록색의 칠현금이 놓여 있었다.
완아선자가 칠현금을 부드럽게 만졌다.
여안과 강천익은 멀지 않은 한 각루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안이 걱정하며 말했다.
“될까?”
강천익이 확신하며 말했다.
“왕 어르신께서 인정하신 대사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완아선자는 능청스러운 눈빛을 보내더니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현을 튕겼다.
딩!
쿵!
현을 한 번 튕겼을 뿐인데 폭발음이 들리더니, 완아선자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몰려와 천하제일 금루의 하늘을 뒤덮었다.
“뭐지?”
수련자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하제일 금루의 하늘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칠현금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여안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저건?”
강천익도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저, 저건 천금을 모으는 것입니다. 완아선자의 금도가 저 수준에 도달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천금? 완아선자가 저 천금을 사용하여 의경을 확대하면…… 은월성 전체에 울리겠군.”
강천익이 복잡한 눈빛으로 말했다.
“천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입니다. 완아선자가 우리의 예상보다 더 고수인 것 같군요.”
그때 완아선자가 칠현금을 켜기 시작했다.
딩딩딩……!
순간, 단단하고 날카로운 거문고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 있던 천금 역시 완아선자의 연주에 맞춰 움직이더니 강렬한 음을 냈다.
고해의 확장음 진법보다 더 강력한 소리가 은월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은월성의 수련자들은 고개를 들고 망연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완아선자가 말했다.
“오늘 천하제일 금루의 초대를 받아 은월성 여러분들께 제가 창작한 ‘비참한 세계’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천금은 완아선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천하제일 금루에서 누굴 초대한 거야?”
“천금…… 전설 속의 천금이야! 천하제일 금루에서 누굴 데리고 온 거지?”
“천금이 나타나 하늘을 울리고 있어! ‘비참한 세계’? 이건 무슨 곡이지?”
수련자들은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월산장에서도 운묵 등 산장 부하들이 화들짝 놀라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금을 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력한 금도 실력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지?
사람들은 하늘을 보다가 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장 주인을 바라보았다.
산장 주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자신의 칠현금만 닦고 있었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천하제일 금루의 근처에 있는 한 작은 정원.
얼마 전에 첫 번째로 철풍금을 산 사마장공은 정원에 앉아 칠현금을 닦고 있었는데, 그의 뒤에는 한 무리의 부하들이 서 있었다.
한 부하가 공손하게 말했다.
“어르신, ‘이 거리 제일 금루’도 한동안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사마장공은 칠현금을 닦으며 말했다.
“‘이 거리 제일 금루?’ 개논? 허허! 이게 다 단지 구경거리였을 뿐이라고? 고해 쉬운 놈이 아니구나! 고해에 대한 정보는 좀 알아냈느냐?”
“고해는 일품당 수타주이고, 이호연과 정예도 고해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천도해에서 온 것 같았습니다!”
사마장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호연? 하! 어쩐지 성왕이 이신기한테 신기영을 만들라고 하더니. 그게 고해 때문이었어?”
“네.”
사마장공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바로 천도해에 사람을 보내서 고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아내도록 해라.”
“예!”
말을 마친 사마장공은 앞에 놓인 서류를 들었다.
일부는 철풍금 계약서였고, 일부는 ‘이 거리 제일 금루’의 사업계획서였다.
사마장공은 서류를 읽어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구나!”
딩딩딩……!
그때 완아선자의 거문고 소리와 완아선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마장공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뭐지? 이 여자는 누구야? ‘비참한 세계’라고?”
사마장공은 복잡하고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천하제일 금루, 고해를 상대하려 저렇게 요사스러운 여자를 데리고 온 건가? 허허, 저 여자의 ’비참한 세계‘가 성공하면 뭐 한단 말인가, 천하제일 금루가 망하는데.”
완아선자의 목소리는 ‘이 거리 제일 금루’에도 울려 퍼졌다.
금루에 있던 고객들도 화들짝 놀랐다.
“이건 완아선자의 목소리잖아?”
사람들은 호기심에 달려나갔다.
고해가 있는 각루에 목신풍이 다급히 달려 들어왔다.
“당주님, 고 타주, 천하제일 금루가 이번에는 완아선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의 말에 고해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용완청도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완아선자의 과거를 모르겠어. 신주 남쪽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예전에는 여양왕과 거문고 실력을 겨루었다고 해.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거문고 고수들을 이기면서 완아선자라는 이름도 점점 널리 알려졌어.”
용완청이 소개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칠현금 소리가 들렸다.
딩딩딩딩……!
칠현금 소리가 울리자, 천금 소리가 은월성 전체에 울렸다.
윙!
순간, 온 천지가 조용해졌다.
목신풍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뭐지?”
목신풍뿐만 아니라 은월성 사람들도 화들짝 놀랐다.
정오 시간이었다.
그런데 거문고 소리가 울리더니, 맑은 하늘이 어두워졌다.
용완청이 일어났다.
“위로 올라가서 보자!”
“예, 당주.”
목신풍이 맨 앞에서 달려갔다.
고해가 따라서 돌출부로 올라갔다.
시끌시끌.
은월성 여기저기가 시끌벅적했다.
온 하늘과 땅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고해 일행은 돌출부에 올라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완아선자가 칠현금을 켜고 있었고, 하늘에 있는 천금의 소리가 은월성의 여기저기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딩딩딩……!
칠현금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용완청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목신풍이 손을 휙 젓자, 손바닥에서 둥근 모양의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 불덩어리의 색깔은 매우 어두웠다.
목신풍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하늘이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완아선자의 거문고 의경에 들어온 것 같네!”
고해가 물어보았다.
“의경(意境)이오? 그렇지만 저희는 아직 깨어 있지 않습니까?”
목신풍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의경과 현실의 결합이야. 완아선자의 금도 수준이 너무 무섭군. 의경과 현실이 결합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네.”
고해가 물어보았다.
“의경과 현실이 결합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냐고? 그리되면 우리가 느끼는 것도 현실이 되네. 하늘과 땅이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용완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니?”
목신풍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의 시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력이 퇴화된다고?”
“저 음이 사람의 오감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비참한 세계’라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완아선자가 사람들의 오감을 손상시키려고 작정한 것 같습니다.”
그때, 한 수련자가 맞은편에 있는 천하제일 금루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멈춰! 그만 연주하게!”
윙!
그 순간, 완아선자가 구름과 안개에 섞여 완전히 사라졌다.
수련자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완아선자는 어디 갔어?”
딩딩딩……!
하늘에서는 천금이 울렸다.
수련자들은 겁에 질렸다.
“성을 빠져나가야 해! 얼른 도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