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78화 (161/243)

178화. 비참한 세계

“도망칠 수 없어! 천금이 귀에서 맴돌고 있어! 이 의경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끝없이 쫓아올 거야!”

“눈앞이 캄캄해지고 있어! 앞이 안 보여!”

수련자들은 천하제일 금루 앞에서 울부짖었다.

천하제일 금루 안에 있던 강천익과 여안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강천익이 다급하게 말했다.

“큰일입니다. 공자님, 얼른 멈춰야 합니다.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우리 천하제일 금루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안이 고개를 저었다.

“은월성 전체를 움직이라며? 완아선자가 마지막에 의경을 풀면 그만이야!”

“그, 그렇지만 만약 의경을 풀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의경을 풀지 않으면 수련자들이 전부 시력을 잃게 됩니다!”

“흥! 이 곡의 제목은 ‘비참한 세계’야! 이제 시작 아닌가?”

시력이 감퇴되는 것을 느낀 수련자들은 점점 더 공포에 떨었다.

딩딩딩!

수많은 금도 대사들도 거문고 연주를 하면서 이 ‘비참한 세계’의 의경을 막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이 막을 수 있는 의경이 아니었다.

목신풍과 용완청의 시력도 떨어지고 있었다.

용완청이 다급하게 말했다.

“고해, 얼른 철풍금을 쳐봐! 이 ‘비참한 세계’를 막아야 해!”

고해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저의 연주에는 의경이 없습니다.”

목신풍이 고해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의경이 없을 수가 있어? 자네가 개논을 창작한 거 아니야? 어떻게든 해봐! 나도 자네가 금도 대사라는 걸 믿을 테니 얼른 가서 ‘비참한 세계’를 막아봐!”

사방에서 수련자들의 공포에 질린 외침이 들려왔다.

“우, 우리 전부 오감을 잃는 건가?”

“내 코는 왜 이렇지? 미각을 잃는 것 같아!”

“내 눈! 앞이 안 보여!”

“난 귀가 아파! 청각을 잃은 것 같네!”

“설마…… 비참한 세계가 사람의 오감을 막아버리는 건가? 안 돼!”

“살려 줘!”

은월성에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끝없이 들려왔다.

비참한 세계.

은월성의 비참한 세계가 시작되었다.

딩딩딩…… 동동동……!

‘비참한 세계’는 매우 웅장했다.

고해가 들어봐도 지구에서 듣던 교향곡과 같은 웅장한 기세를 뽐냈다.

칠현금 하나로 이렇게 웅장한 음악을 만들다니.

고해 역시 이런 칠현금 소리는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오감을 잃어갔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뒤덮은 것이 아니고, 저녁이 된 것도 아니었다. 수련자들의 시력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비참한 세계의 거문고 소리는 계속되었다.

시각은 시작에 불과했다.

후각, 촉각, 심지어 청각까지 퇴화하고 있었다.

금도 고수들이 청각을 잃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건 잃어도 청각은 절대 안 된다!

온 은월성에 공포가 번지고 두려움은 더 커졌다.

수많은 금도 고수들이 좌정한 채 자신의 칠현금을 켜며 완아선자의 천금에 대항하려고 했다.

딩딩딩!

하지만 소용없었다. 천금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일부 수련자들은 하늘로 날아가 천금을 부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천금과 가까워질수록 ‘비참한 세계’의 효과는 더욱 강렬해졌다.

“아악!”

“으아아악!”

하늘로 날아간 수련자들은 순식간에 오감을 잃고 아래로 추락했다.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들은 절망했다.

비참한 세계.

은월성 전체가 또 하나의 비참한 세계로 변해버렸다.

* * *

천하제일 금루 근처의 작은 정원에서 사마장공은 칠현금을 만지고 있었다.

당! 당당당당당……!

그는 칠현금을 튕기며 자신한테 씌워진 비참한 세계의 의경을 막았다.

그가 천하제일 금루를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정말 요녀군. 요녀야. ‘비참한 세계’? 훗, 은월산장 주인한테 선전포고를 하는 건가?”

사마장공은 정원 안에서 자신과 부하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은월성 전체가 천금의 영향을 받아서 재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천하제일 금루도 난리가 났다. 수련자들은 천하제일 금루의 악기를 전부 부숴버리며 칠현금 소리가 멈추게 하려고 했다.

여안과 강천익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러다 천하제일 금루가 끝장나겠습니다!”

“완아선자! 뭐 하는 거야! 멈춰!!”

“사람이 안 보입니다. 사라진 것 같습니다, 공자!”

“찾아내!”

“네? 잘 안 들립니다!”

“찾아내! 그 미치광이를 찾아오라고! 앞이 잘 안 보여!”

“네? 잘 안 들립니다.”

대화조차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 * *

‘이 거리 제일 금루’.

고해도 천천히 오감의 능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바로 그 순간, 미심 공간에 있는 천진신새가 움직였다.

쿵!

고해의 머릿속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천진신새가 작동하여 내면으로 스며든 의경을 전부 몸 밖으로 몰아냈다.

순간, 고해의 눈이 맑아졌고, 귀도 다시 밝아졌다.

길거리는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귀가 막힌 사람들, 눈이 먼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난리를 피웠다.

이미 눈이 멀어버린 목신풍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고 타주, 얼른 철풍금을 쳐! 아아악! 얼른!!!”

용완청이 고해를 붙잡았다.

“고해! 나도 앞이 안 보여! 이러다 엄마 복수도 못 하는 거 아닐까? 흑흑흑! 고해! 이제 아무 소리도 안 들려! 가서 개논을 연주해 봐! 혹시 알아? 개논을 연주하면 의경이 풀릴지!”

당혹스러운 건 고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주에는 의경이 없었다. 지금 그의 재주로는 의경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고 타주! 뭐라고 했어? 안 들려!”

목신풍과 용완청이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고해! 얼른! 얼른 가!”

고해는 용완청을 붙잡고 맞은편의 천하제일 금루를 바라보았다.

완아선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칠현금 소리만 들려왔다.

고해는 이를 악물고 철풍금 앞으로 걸어갔다.

효과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방법이라도 다 해봐야 했다.

완아선자는 맞은편의 구름 속에서 고해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고해가 철풍금 앞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철풍금을 치겠다고? 흥! 의경이 없는 연주는 소용없어! 내 상대는 은월산장의 주인뿐이야!”

완아선자는 고개를 돌려 은월산장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 * *

은월산장의 부하들은 다급히 내부에 있는 광장에 몰려들었다.

운묵의 인솔하에 부하들은 거문고를 연주하며 함께 비참한 세계의 의경을 막아 나섰다.

비참한 세계는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맹렬하게 은월성을 뒤덮었다.

운묵은 부하들을 이끌고 저항해 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수련자들마다 겁에 질린 얼굴로 울부짖었다.

운묵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주인님, 이 ‘비참한 세계’ 너무 무섭습니다. 어떡합니까?”

산장 주인은 근처에 있는 한 정자에서 자신의 거문고를 닦고 있었다.

산장 주인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자 한 줄기 또 한 줄기의 의경이 날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비참한 세계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산장 주인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깔렸다.

칠현금의 소리가 계속될수록 먹구름도 더욱 두터워졌다. 이건 의경이 만든 먹구름이고 비참한 운명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은월성 사람들은 이 비참한 운명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였다.

산장 주인이 먹구름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비참한 세계라…… 나를 노린 거였어? 하하하! 사람들의 오감을 끊어버리다니. 정말 비참한 세계가 맞구나!”

운묵이 다급하게 말했다.

“주인님, 이제 한계입니다.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주인님께서 나서주십시오!”

산장 주인은 고개를 들어 천하제일 금루의 완아선자를 바라보았다.

완아선자 역시 무한한 거리를 두고 은월산장을 보고 있었다.

두 절대 강자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는 마치 생사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완아선자는 냉랭한 표정으로 칠현금을 켰다.

“어디 대항해 봐라!”

산장 주인은 칠현금을 만지더니 연주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당! 당당당당당!

철풍금 소리가 하늘 높이 퍼지더니 두 고수의 대결을 가로막았다.

“뭐지?”

산장 주인은 굳은 표정으로 거문고를 내려놓고 흘러오는 음악을 들었다.

또 철풍금 연주인가? 개논…인가?

은월성에 철풍금은 한 대밖에 없고, 유일하게 칠 줄 아는 사람도 고해뿐이다.

고해가 철풍금으로 반격에 나선 것인가?

산장 주인은 눈을 반개한 채 철풍금 소리를 들었다.

‘역시 고해군.’

* * *

고해는 확장음 진법을 열고 철풍금을 치고 있었다.

그는 의경이 없어 연주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용완청의 오감이 퇴화하고 있었고, 부하들 역시 겁에 질려 있어 어쩔 수 없이 철풍금을 쳤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 했다.

당! 당당당당당……!

고해의 음악을 들은 수련자들이 조용해졌다.

“고 선생의 철풍금이야. 드디어 고 선생이 나선 건가?”

“고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수련자들은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맞은편에 있던 완아선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철풍금 연주에는 의경이 없었다. 그저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올 뿐.

완아선자는 다시 눈을 감고 비참한 세계를 연주했다.

“흥! 의경도 없는 놈이 반항한다고? 넌 자격 미달이야! 산장 주인, 얼른 나와라!”

근처의 작은 정원에 있던 사마장공은 나름대로 칠현금을 튕기며 비참한 세계를 막았다.

그는 힘에 겨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은월산장 주인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다니. 도대체 왜?”

그 순간, 철풍금 소리가 들렸다.

“이건 뭐지? 또 새로운 곡을 만든 건가? 개논이 아니잖아?”

격렬한 음악이었다.

그렇지만 의경이 없었다.

“이런! 의경이 있어야 완아선자를 막든지 할 거 아니야? 아무리 격렬해도 소용없어!”

사마장공은 아쉬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은월산장.

운묵은 산장의 부하들과 함께 칠현금을 켰지만 점점 한계에 몰렸다.

한 무리의 부하들이 공포에 질려 울먹였다.

“장주님, 살려주세요!”

“장주님,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산장 주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은 곡이구나! 하하하! 운명과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이군! 너희들은 아무리 귀머거리가 되더라도 겁에 질리지 마라!”

산장의 부하들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네?”

산장 주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첫 번째 연주가 끝났다! 고해가 비참한 세계를 막아내기 위해 새로운 곡을 만들었구나! 정말 놀랍구나!”

말을 마친 산장 주인은 손을 들어서 산을 향해 휘리릭 저었다.

위이이잉!

하늘이 흔들렸다.

순간, 고해의 철풍금 연주가 은월성 곳곳으로 흘러갔다.

고해는 아직도 십분지 일의 지역에만 소리가 흘러가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장 주인의 도움으로 은월성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완아선자는 굳은 표정으로 맞은편에 있는 고해를 노려보았다.

“저놈은 도대체……?”

그녀에게는 음역대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철풍금 소리가 순간 열 배로 커졌다.

이건 고해의 확장음 진법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은월산장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완아선자가 말했다.

“산장 주인! 고해가 비참한 세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흥!”

아무리 훌륭한 곡이라도 의경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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