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92화 (175/243)

192화. 섬에 대진을 설치하다

용완청이 물어보았다.

“이 보증서는 왜 받았어?”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기다려 보십시오.”

용완청은 하세강이 쓴 보증서를 보더니 이내 냄새를 맡아보았다.

용완청이 깜짝 놀랐다.

“이건 무슨 먹물이야?”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징어 먹물입니다. 오적이라고도 하지요.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시간이 지나면서 글씨가 사라지지요.”

용완청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글자가 사라진다고? 그럼 단지 하 성주의 도장이 필요했던 거야?”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유년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자가 사라진다 해도 반년 후쯤에야 사라진다고 들었네만.”

“맞습니다. 그래서 일반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이 견사포를 사용했지요.”

고해는 곧바로 작은 통을 꺼냈다. 통 안에는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액체는 바로 연뿌리 가루로 만든 액체였다.

“이건 연뿌리 물입니다. 오징어 먹물을 씻는 데 사용하지요. 물로 씻은 다음 불에 말리기만 하면 됩니다.”

용완청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연뿌리 물로 오징어 먹물을 씻어낸다고? 사살이야?”

말을 마친 용완청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역시 연뿌리 물로 오징어 먹물을 씻으니 깨끗하게 씻겨졌다.

“와! 정말이네. 고해, 이건 어떻게 생각해 낸 거야?”

고해는 깨끗하게 씻긴 견사포를 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 옷에 오징어 먹물이 묻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어머니께서 이 방법을 사용하셨지요.”

옆에 있던 유년대사가 화들짝 놀랐다.

고해의 어머니?

유년대사가 고해의 뒷조사도 해봤지만 서른 살 이전의 자료는 아무것도 없었다.

용완청은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지 않았다. 용완청은 깨끗하게 씻은 다음 하세강의 도장만 남긴 채 말렸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견사포를 주세요. 제가 하 성주의 글씨체를 한동안 봐 와서 모방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 * *

은월도.

사마장공은 고해 일행에 관심을 가졌다.

사마장공은 근처에 있는 한 수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바로 가서 하세강의 동태를 살피거라. 그리고 고해의 일행도 쫓아가. 반드시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보고해.”

수하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내 광장을 떠났다.

* * *

은월해.

여안과 방명후는 또 은월도를 떠났다.

방명후가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여 공자님,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서 하세강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비록 그들이 진법을 배치하긴 했습니다만, 우리가 보낸 사람이 워낙 입 모양만으로도 신통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 전부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말로는, 저들이 용효월의 죽음을 얘기하다가 고해가 먼저 왕부의 대우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여안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반드시 하세강의 동태를 잘 살펴야 한다. 고해가 걱정이야.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

“고해가 대단하긴 하지만, 설마 그자 때문에 공자님께 피해가 오겠습니까?”

여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설마란 없다. 제길, 고해가 왕부에 들어오는 순간, 내가 쫓겨날지 모른다.”

방명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안이 그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방명후, 고해를 죽여버려.”

방명후가 깜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고해를 죽이라고요? 그렇지만 묵 선생께서 고해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이곳 해역은 이미 막혀 있어. 지금이 기회야. 묵 선생 몰래 지금 죽이면 돼.”

“그렇지만…….”

여안이 방명후를 보면서 말했다.

“고해가 은월해에서 죽어도, 산장 주인이 죽인 거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내가 권력을 잃으면 너도 안전할 수 없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방법은 고해가 죽는 것뿐이야. 할아버지께서 너보고 나를 보호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야.”

방명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100잠겼다.

여안은 죽일 듯이 방명후를 노려봤다.

한참 후 방명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놈을 죽이는 건 문제 없습니다만, 유년대사가 걸립니다.”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은 여안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열흘이나 남았어. 빈틈이 있을 거야. 유년대사를 유인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방명후는 머리를 끄덕였다.

여안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바로 고해를 찾으러 가자.”

* * *

은월도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요정을 찾으러 날아갔다. 광장에는 산장 주인과 한 무리의 부하들만 남아 있었다.

운묵이 걱정하며 말했다.

“장주님, 들어가서 좀 쉬시지요?”

산장 주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괜찮다. 운묵아, 금도 대사들이 요정을 유인하고 있어. 소리가 너무 듣기 좋구나. 난 여기에 있을 거다.”

“그렇지만 바람이 너무 강합니다.”

“괜찮아. 나는 곧 죽을 몸인데 뭐가 걱정이냐. 그만 가서 일 보거라. 난 저 소리를 좀 더 들으련다.”

운묵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산장 주인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산장의 부하 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운묵에게 말했다.

“소장주님, 지금 장주님의 상태가…….”

부하들은 운묵을 바라보며 명령만 기다렸다.

운묵은 이를 깨물고 갈팡질팡했다.

잠시 후, 운묵은 단념한 표정을 짓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운묵이 손을 휘젓자 부하들이 조용히 나가서 은월도에 진을 배치했다.

산장 주인은 음악에 빠져 그들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운묵은 산장 주인의 옆에 서서 손으로만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 * *

은월해 남쪽에 있는 ‘죄를 지은 용’, 수룡(囚龍)의 주둔지.

품자 모양의 섬에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졌다.

고해 일행은 비주를 접은 후 쪽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네 명의 외모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유년대사는 가발을 쓰고, 네 명은 전부 관복을 입은 상태였다. 고해가 그들의 얼굴에 손을 대서 변장을 시켰다.

요완청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해, 변장 실력 대단해. 몇 번 슥슥 하니 사람이 달라져 보이네.”

“별것 아닙니다.”

용완청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건 고해가 이 세상의 여인들에게 팔기 위해서 만들었던 여러 가지 화장품들이었다.

그가 살던 지구에서처럼 품질이 우수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 만하긴 했다.

“네, 돌아가면 좋은 거로 드리지요.”

그때 상관흔이 말했다.

“폐하, 저들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슥.

멀리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피해.”

화살이 쪽배 머리에 꽂혔다.

그 직후 섬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고해가 손을 뻗어 물건 하나를 던졌다.

풍.

옥함 하나가 바다에 떨어졌다.

멀리 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섬에 있던 한 병사가 옥함을 주워서 열어보니 옥함 안에는 견사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세강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엇? 공격을 멈춰라! 성주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다!”

쪽배는 계속해서 섬으로 진입했다.

섬 주변에는 수많은 진법이 있었지만 견사포 덕분에 어렵지 않게 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섬에 올라서니 갑자기 수많은 병사가 몰려왔다.

맨 앞에 있던 병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구지? 낯이 익은데?”

상관흔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뭣이라! 왕부의 고 어르신이다. 네놈한테 보고까지 해야 하냐? 가서 최고 관리를 데리고 와라!”

그 병사는 상관흔의 기세에 움찔했다.

“예? 예…….”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주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가 있으니 자신은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고해 일행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년대사는 그 와중에도 섬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고해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어떻습니까?”

유년대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천 명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네. 그렇게 강한 놈은 없는 것 같아.”

“네,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용완청이 조용히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에게 성주 친서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 * *

은월해에서는 수많은 요정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수련자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요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은월해는 한바탕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육백여 명의 금도 고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요정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수련자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붙잡을 수 없어. 요정들이 붙잡히지 않아.”

섬의 한 곳.

완아선자는 치료를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완아선자가 눈을 번쩍 뜨고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흥! 고해.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내가 요정을 얻고 구진만 얻으면 넌 끝장이야. 저 멍청이들도 내 말을 믿을 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완아선자는 순식간에 하늘 끝까지 날아갔다.

* * *

또 다른 섬.

사마장공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세 수련자가 사마장공 앞으로 날아왔다.

사마장공이 눈을 뜨고 말했다.

“어때?”

세 수련자가 난처한 듯 말했다.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사마장공이 조용히 말했다.

“계속 찾아내. 산장 주인이 비밀을 숨겼을 거다. 바다 끝까지 가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예.”

“이번 연주회는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구나. 구진의 영혼을 붙잡을 시간이 없어. 하루가 지났으니 이제 구 일밖에 남지 않았다. 구 일 동안 뭐라도 찾지 못하면 은월산장에 대해 알아낼 단서도 없어. 나와 함께 찾으러 가자.”

“예, 나리.”

* * *

은월해, 품자형 섬.

고해는 하세강의 친서를 들고 말 몇 마디로 섬 세 개를 돌아볼 수 있었다.

고해가 말했다.

“은월해에서 연주회가 열리고 있으니 여기도 위험해. 성주께서 비밀 진법을 배치하라고 명하셨다. 여기 내가 준 도안대로 진법을 배치하거라. 아, 그리고 매일 포상으로 상품 영석 하나씩 나갈 거다. 등급이 높은 사람들은 열 배로 받을 수 있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흥분하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장군들도 얼굴이 벌게졌다. 고해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상품 영석 천 개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섬에 진법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루 동안 수백만 개의 상품 영석으로 진을 배치했다.

고해가 외쳤다.

“진을 올려라!”

쿵!

순간, 세 개의 섬에 구름이 감돌면서 거대한 진법이 배치되었다. 그 진법은 섬 전체를 뒤덮었고, 사람들도 진법 안에 갇혀버렸다.

“어르신, 영석 포상은 언제 주십니까?”

“어르신, 영석을 좀 더 주시면 안 됩니까?”

포상을 받을 육천여 명의 병사들이 고해를 바라보았다.

용완청, 유년대사, 상관흔은 그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고해가 병사들을 바로 죽여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을 이용해서 진법을 배치하다니.

그 거대한 진법을 육천 명의 병사들이 하루 만에 만들었다.

고해는 병사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다.”

병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무슨 말씀인지……?”

그때였다.

구름 속에서 수많은 운수 병마가 튀어나오더니, 육천 명에 이르는 병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뭐야? 우리를 속인 거야?”

“어르신, 왜 이러십니까?!”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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