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04화 (187/243)

204화. 넌 희망이 없구나

묵객은 글을 다 읽고 한숨을 쉬었다.

여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묵 선생님, 어떤 자료이기에 그토록 놀라시는 겁니까?”

묵객은 다시 한번 자세히 훑어보고는, 여안에게 멸송계획서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서 멸송계획서에 적혀 있던 내용을 추리하기 시작했다.

멸송계획서는 전면적인 것은 아니지만, 묵객이 추리하는 데는 크게 영향이 없었다.

묵객은 각종 자료를 합성하여 머릿속으로 추리하며 멸송계획서의 빈 부분을 채워갔다.

비록 눈은 감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은월성 성주의 집에 있던 사마장공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마장공은 한참 만에 눈을 떴다.

“휴우.”

사마장공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주 대단해. 참으로 무서운 계획이야. 연환계? 몇십 개의 연환계를 동시에 사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그 마음을 이용하여 군심과 민심과 신심을 파괴하고, 결국은 천의마저 무너뜨려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나라를 멸망시키다니. 고해…… 참으로 무서운 인물이었구나.”

배 위의 묵객도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하아아…….”

하지만 여안은 멸송계획서를 보고도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뭡니까? 특별한 게 없잖습니까? 굳이 이걸 신경 쓸 필요 있습니까?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은데요.”

묵객은 빤히 여안을 쳐다보았다.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딱히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그때 여안이 이마를 찌푸린 채 말했다.

“묵 선생님,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십니까?”

묵객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넌…… 희망이 없구나.”

여안이 멈칫거렸다.

“네?”

묵객은 여안의 손에 있는 ‘멸송계획서’를 낚아채고 또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는 아주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책을 옆에 내려놓았다.

여안은 어이없어하며 묵 선생을 바라보았다.

저게 그 정도로 대단한 거야?

묵 선생은 여안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여 고해의 과거에 대해 읽어갔다. 사건 사건마다 놀라움이 차 넘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묵객이 미간을 치켜올렸다.

“구공자?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이십구 천지종횡바둑판? 관기 노인?”

여안은 옆에서 묵 선생을 바라보았다. 묵 선생이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고 또다시 입을 열었다.

“묵 선생님, 고해가 비록 인내심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묵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안은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묵 선생님은 구공자와 이십구 천지종횡바둑판을 겨루었던 분이지 않습니까? 비록 끝까지 풀지는 못했어도 구공자에게 실력을 인정받지 않았습니까? 이십구 천지종횡바둑판은 고해가 풀고 싶어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고해와의 대결을 만류하지만 않았어도 선생님과 고해가 한판 대결을 했을 텐데…….”

착!

묵 선생은 두꺼운 자료를 여안을 향해 던졌다.

“직접 봐라.”

여안은 멈칫거리며 바닥에 버려진 자료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보면 볼수록 어두워졌다.

“설마요? 고해가 이십구 천지종횡바둑판을 풀었다고요?”

한편, 은월성 성주의 집.

사마장공은 맞은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해의 삼십 세 이전의 자료들은? 고해의 가족에 관한 자료들은? 고해는 삼십 세 이전에 어떤 교육을 받았던 게냐? 왜 죄다 고해의 삼십 세 이후의 자료들이냐?”

배 위에서도 묵객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묵객은 금방 씻고 나온 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없다는 것이냐?”

부하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진짜 없습니다, 선생님. 저희도 열심히 찾아봤습니다만, 고해는 마치 바위를 뚫고 나온 사람처럼 삼십 세 이전에 대한 자료를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묵객이 싸늘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놈들. 이딴 것을 고해의 과거라고 내놓은 것이냐?”

“선생님, 저희도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묵객은 화를 가라앉혔다.

“가봐라.”

부하들이 자리를 떠나자, 여안이 또다시 묵 선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그렇게까지 화낼 필요가 있습니까? 고해가 비록 바둑은 잘 두지만, 할아버지 밑에도 그 정도의 무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묵객은 눈을 부릅뜨고 여안을 바라보았다.

여안이 움츠리며 말했다.

“묵 선생님, 왜 그런 표정으로…… 저를 보십니까?”

묵객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여안의 말에 반박할 힘조차 없었다.

“왕 어르신 밑에도 그 정도 무사들이 많다고? 허…….”

* * *

백운호 비주 위.

보름을 더 달려 드디어 영주 변경의 전쟁터에 도착했다.

목신풍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주님, 전쟁터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황보조가가 여양왕의 대군과 변경에서 교전할 것이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구진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

“저쪽인 것 같습니다. 아까 소리가 들렸는데 저기에서 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엄청나게 살벌한 싸움처럼 느껴집니다.”

용완청은 배를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래? 저쪽으로 가보자.”

그때 고해는 갑판의 한쪽 구석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대량의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휴우.”

고해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목신풍이 고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해, 자네도 참 대단하군. 이 많은 자료를 전부 읽은 건가?”

고해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것은 얼마 전에 수집해 온 신록황조에 관한 자료들입니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어야지 싶어서 봤지요. 비록 자료들의 구 할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옆에 있던 유년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고 타주가 성공하는 것은 지혜뿐만 아니라 노력이 따랐던 것이군.”

대화를 듣고 있던 용완청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도 찾아냈어?”

고해가 고해를 끄덕였다.

“이 자료에는 신록황조가 늘 대건천조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심지어 신록황조의 백성들도 대건천조를 많이 따랐다고 합니다.”

유년대사는 처음 듣기라도 한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용완청이 궁금한 표정으로 계속하며 물었다.

“백성마저도 대건천조를 따랐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군왕은 보통 자신의 백성들이 다른 나라를 배척하고 본국을 따르도록 말하지 않냐?”

“황보조가는 그렇게 하지 않고, 대건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게다가 황보조가는 군왕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황보조가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백성들과 똑같이 먹고, 백성들과 행복을 나누며, 자주 백성들을 탐방하고, 심지어 백성들과 노래도 하고 춤을 출 때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사냥도 즐겼지만, 타국을 침범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회도 자주 개최했다고 합니다.”

용완청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원래 군왕이 해야 할 일들이잖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 도가 지나칩니다. 그는 백성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아서 외부 침입자가 나타나면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싸웁니다. 그럼으로써 신록황조를 행복한 국도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백성들이 대건천조의 화려함을 많이 따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배신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엄청 사랑스러운 군왕이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세상에 그 정도로 백성들을 위하는 군왕이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황보조가는 현재 홀몸입니다.”

목신풍은 경악하며 말했다.

“홀몸? 에이, 설마. 그자는 군왕 아닌가.”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습니다. 신록황조를 개척한 것도 천하를 쟁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한테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용완청은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유년대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그런 사실은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자네가 자료를 보면서 직접 분석해 낸 것인가?”

“대사님은 황보조가를 만나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유년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으로는, 황보조가가 사랑하는 여인이 바로 용효월이 아닌가 싶네.”

용완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고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유년대사를 바라보았다.

“사실 저도 많이 궁금했습니다. 당주님의 어머니는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많은 사람이 그리 그리워하는 것인지. 혹시 대사님마저도 그분 때문에 여인과의 인연을 끊은 것 아닙니까?”

유년대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그때, 용완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유년대사를 바라보았다.

“대사,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요?”

유년대사는 멈칫거렸을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용완청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대사가 예전부터 이 질문에만 대답하지 않았다는 거 알아요?”

“용효월과 그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난 말할 수 없습니다.”

용완청은 초조한 마음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요.”

“당주, 언젠간 모든 사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용효월과 약속한지라 그에 대해서는 절대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용완청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쿵! 콰르르릉!

갑자기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배가 멈췄다. 사람들은 균형을 잃고 거세게 흔들렸다.

배 앞에는 거대한 흑룡 한 마리가 나타나 있었다. 흑룡은 짝눈이었는데, 이마에 죄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수룡이 분명했다.

짝눈 흑룡이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 꺼져라!”

울음소리와 함께 흑룡은 거센 기운을 내뿜었다.

유년대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손을 휘둘렀다.

“호아(虎牙)?!”

짝눈 흑룡이 싸늘하게 답했다.

“응? 유년대사가 아니냐?”

목신풍은 어두운 안색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호아라면, 전에 고 타주가 잡은 그 흑룡의 숙부?”

고해가 멈칫거렸다.

얼마 전 은월해에서 자신한테 죽은 거대한 수룡의 숙부라고?

흑룡, 호아는 싸늘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일품당 당주 용완청?”

용완청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왜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이냐?”

호아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여기는 전쟁터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크르르릉!

호아의 큰 울음소리가 울리자, 하늘에 안개가 일렁거렸다.

멀리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호아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룡이 그 구역을 봉쇄하고 있었다.

용완청은 입술을 잘근 깨물고 말했다.

“돌아가.”

백운호는 호아를 피해 일단 뒤로 물러났다.

호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백운호가 물러서는 것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긴장을 풀고 공중에서 내려왔다.

뒤로 물러선 백운호 안에서는 용완청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수룡들을 피해서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순간, 구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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