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구진의 노래
“있다고? 그런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제가 노래하는 걸 들어주시면 길을 알려드리지요. 제가 길을 안내할 테니 다 같이 가면서 제 노래를 들어주시고, 노래가 끝나면 다 같이 저에게 박수를 쳐주십시오.”
괴이한 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용완청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그래? 좋아, 할게.”
그런데 고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대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용완청은 고해를 바라보았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고해는 차가운 표정으로 구진을 바라보았다.
구진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주인님! 당주님이 동의했어요! 당주님은 말하면 말한 대로 실천하는 분인데, 설마 당주님의 신뢰를 깨버리려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곡이 길지도 않아요. 주인님이 싫어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건 아니라구요!”
용완청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고해, 왜 그래?”
구진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놀렸다.
“흑흑흑, 장주님이 저를 노래마저 부르지 못하게 합니다! 당주님이 말려주세요!”
고해는 금방 한숨을 쉴 것 같은 표정으로 승낙했다.
“알았다! 불러라, 불러!”
순간, 구진이 활짝 웃었다.
“와아! 고마워요, 주인님!”
다른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구진을 바라보았다. 왠지 불안했다.
그러든 말든, 구진이 환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이제부터 가왕 구진이 여러분들을 위해 노래 한 곡 올리겠습니다! 제목은 ‘총각무’입니다!”
용완청 일행은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총각무?”
딩딩딩딩!
구진이 손을 휘젓자, 허공에서 자연스럽게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문고 소리는 무척이나 우아해서 듣고 있던 용완청과 유년대사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눈치였다.
역시 천급의 거문고는 소리가 남달라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음악에 빠져들었지만, 고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야 하나의 총각무~~ 워우~~! 워우! 길고 큰~~ 워우~~! 워우! 모두가 탐내지~~ 워우~~ 워우!”
구진이 노래를 시작하자, 백운호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가슴 한구석이 칼에 찔린 느낌이었다.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것 같았다.
구진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이 사람들의 온몸에 닭살을 돋게 했다.
너무 잘 불러서가 아니라 너무 못 불렀기 때문이다.
가사는 둘째치고, 음정 박자도 맞는 게 없었다. 그가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사람들의 수명을 빼앗아가는 듯했다.
앞서 거문고 소리에 취해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괴로운 표정으로 구진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구진은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나는야 하나의 총각무~~! 워우~~ 워우! 길고 큰~~ 워우~~ 워우! 모두가 탐내지~~ 워우~~ 워우!”
그는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왼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채, 오른손으로는 허공을 휘저으며 자신의 노랫소리에 도취되었다.
사람들은 치를 떨며 구진을 바라보았다.
단지 못 부르는 정도가 아니었다. 구진의 노랫소리는 사람들에게 괴로움마저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았지만, 도저히 악마의 소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용완청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유년대사는 두 손을 맞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아미타불’을 연신 되뇌고, 결국은 불경을 읊었다.
목신풍도 전신의 법력을 이용해 소리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른 목타 제자들은 배의 반대쪽에 숨어서 웅크린 채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구진과 약속한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듣고 박수를 쳐야만 한다.
어느 순간, 백운호가 더욱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공중에서 추락할 것만 같았다.
“나는야 하나의 총각무~~! 워우~~ 워우! 길고 큰~~”
그 와중에도 구진은 살며시 눈을 감고 노래를 계속 불렀다.
퍽!
고해가 더 참지 못하고 구진을 발로 찼다. 구진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노랫소리도 멈췄다.
온 세상에 평온이 찾아왔다.
자신의 노랫소리에 심취되어 있던 구진은 넘어진 채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일풍당 제자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잘하셨습니다!”
구진은 억울하게 고해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왜 또 방해하시는 겁니까?”
고해는 눈을 부라렸다.
“눈이 있으면 직접 봐봐! 네가 노랫소리로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목신풍은 양쪽 귀의 피를 닦으며 질린 얼굴로 구진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법력이 흔들리면서 귀에서 피가 다 났다.
용완청도 서서히 정신을 차렸고, 유년대사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용완청은 경악한 표정으로 구진을 바라보았다.
“이게, 이게, 이게 대체 뭐야? 무슨 노래가……?”
구진은 그때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노래는 제가 직접 작곡한 ‘총각무’라는 곡입니다.”
“…….”
누가 노래 제목을 물어봤나? 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지, 그 이유를 물어본 거지!
유년대사는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태껏 노랫소리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자는 없었네. 이건 단순한 노랫소리가 아닌 게지.”
순간, 구진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년대사님, 지금 칭찬해 주시는 겁니까? 저 역시 저의 노랫소리가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고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구진의 노래에는 듣기 싫은 모든 요소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진이 그 말을 듣고 화를 냈다.
“주인님! 듣기 싫다는 건 주인님이 노래를 감상할 줄 몰라서 그러는 거예욧!”
그때 귀의 피를 닦아낸 목신풍이 고해에게 사정했다.
“고 타주, 이참에 구진의 의식을 싹 다 지워버리고 다시 만들어 넣는 게 어떻겠나?”
구진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부릅떴다.
“목 타주! 무슨 말입니까? 안 돼요! 안 돼!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들려드렸는데, 왜 저를 해치려는 거죠?”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듣기 싫긴 해도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고, 나중에 언젠가는 이 노래를 이용할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순간, 구진이 감동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역시 주인님이 저를 제일 잘 이해해 주시는군요. 앞으로 매일 한 곡씩 불러드리겠습니다.”
고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만약 내 허락 없이 노래를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너의 의식을 다시 만들어낼 거다!”
“…….”
용완청도 소리쳤다.
“앞으로 우리 앞에서 노래하지 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진은 어이가 없었다.
“정말 좋은 노래를 모르는군요. 죽은 산장 주인이라면 내 노래를 알아줄 텐데. 그러고 보니 전에 산장 주인의 장례식에 갈 때도 저를 안 데려갔지요? 저도 그날 같이 따라가서 그를 위해 만든 자작곡을 불러드리고 싶었는데.”
모두가 기겁했다.
산장 주인의 장례식에서 운묵과 그의 제자들이 울고 있는데, 만약 그 자리에서 구진이 ‘총각무’를 불렀다면?
그 광경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용완청도, 유년대사도 고해가 왜 구진을 안 데려갔는지 오늘에서야 이해했다.
“고 타주, 그때는 정말 잘했어.”
“고해, 구진을 안 데려간 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네.”
구진은 우울한 표정으로 걸어가며 사람들을 욕했다.
“흥! 흥! 노래도 이해 못 하는 멍청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 * *
백운호는 구진이 알려준 방향대로 돌고 돌아 드디어 전쟁터의 변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구진이 남들이 모르는 길을 알고 있었나 보다 했다.
하지만 사실은 수룡들이 구진의 노랫소리 때문에 모두 멀리 도망쳐서 길이 뚫린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됐든 구진의 덕을 본 것만큼은 분명했다.
전쟁터는 남북방향으로 광활한 지역에 걸쳐져 있었다.
남쪽에는 거대한 성지가 있었는데, 그 규모가 은월성보다 더 컸다.
성지의 상공에는 노란 기운이 떠다녔는데, 마치 황금색 바다 같은 기운이 성지를 전부 뒤덮고 있었다.
고해가 그걸 보고 경악해서 말했다.
“저것은 성지의 기운인가요? 엄청나군요!”
눈앞의 기운에 비하면 대한황조의 기운은 불쌍할 정도로 없어 보였다.
우물물과 호수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유년대사도 감탄하며 말했다.
“신록황조가 수도를 옮겼는데, 바로 여기인가 보네. 신록성……. 저건 바로 신록황조의 기운일세. 국운이 농후하군. 신록황조의 백성들은 확실히 신록황조를 많이 옹호하나 보네.”
기운이 감싸고 있는 그 성이 바로 신록성이었다.
그때,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군사가 성 밖으로 뛰쳐나와서 전투를 벌였다.
성루 위에는 용포를 입은 남성이 서 있었는데, 그는 난간을 붙잡고 고고하게 서서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완청의 두 눈이 반짝였다.
“저자가 황보조가인가?”
목신풍은 전투를 보며 경악했다.
“저것이 바로 대결전인가요?”
북쪽의 산 밑은 군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 정상에는 깃발이 하늘을 찌르며 꽂혀 있었고, 깃발에는 ‘여(呂)’ 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산 정상은 반듯하게 깎여 있었고 수많은 병사가 중년 남성을 보호하고 있었다.
중년 남성은 텁수룩한 수염에 사각진 얼굴형이었으며,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대단한 위엄이 느껴졌다.
실력이 뛰어난 강자들에게 둘러싸고 있는 그는 의자에 앉아 의자 손잡이에 조각된 기린의 머리를 만지며 싸늘한 눈빛으로 저 멀리에 있는 황보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완청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여양왕(呂陽王)?”
고해도 놀란 표정이었다.
“저 사람이 여양왕입니까?”
전쟁터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병사가 죽어가고 있었다.
고해 일행은 백운호를 조용한 곳에 멈춰 세우고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편, 여양왕은 팔백 마리의 거룡을 전쟁터로 내보냈다. 거룡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전쟁터로 돌진했다.
콰우우우! 콰르르릉! 으르렁!
거룡들의 울음소리에 흉악한 기운이 솟구치며 하늘에 안개가 자욱해졌다.
그 기세는 어마어마하게 강해서 금방이라도 신록대군을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우르르르릉!
순간,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산봉우리 하나가 통째로 뽑히는 것만 같았다.
쿠구구구궁!
산봉우리 하나가 솟을 때마다 거대한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산은 천천히 솟구치며 사람의 형태를 이루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한군데로 뭉쳐서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이 되어갔다.
구진이 그걸 보고는 경악했다.
“저, 저건 무엇입니까?”
목신풍이 말했다.
“녹석인이야!”
“녹석인? 무슨 뜻이죠? 돌로 만들어진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까? 높이가 몇백 장은 되겠는데요?”
“녹석인은 요괴 종족 중 하나야. 신록황조의 대표적 괴수로, 토석계의 요괴지.”
콰르르릉!
쿵! 쿵! 쿵!
거대한 녹석인은 거룡들에 맞서 싸웠다.
두 괴수가 일으킨 대전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천지를 먼지로 뒤덮었다.
전쟁터에서 줄곧 싸우고 있던 병사들은 싸움을 멈추고 물러나서 전쟁터를 거룡과 녹석인에게 양보했다.
성루에서 녹석인의 대전을 지켜보고 있던 황보조가는 걱정이 가득했다.
산 위에 있는 여양왕도 거룡들을 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 고해가 놀라서 소리쳤다.
“녹석인이 좀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