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23화 (206/243)

223화. 용완청의 선택

대전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황보조가와 유년대사, 목신풍은 답답한 표정으로 고해를 보고 있었다.

용완청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고해, 내가 성에 차지 않는 거야?”

용완청의 눈물을 본 고해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그 역시 용완청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많이 봤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것도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렸다.

유년대사가 말하기를, 용완청은 한 번 사랑한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그 말 때문에 고해 역시 용완청과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해도 용완청이 점점 더 좋아졌다. 그러나 그건 본능적인 것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쉽게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용완청이 유년대사한테 중매를 부탁했다고 한다.

한 여자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부탁까지 할까?

용완청의 눈물을 본 고해의 마음도 약해졌다. 하마터면 가서 용완청을 안아줄 뻔했다.

그러나 진선아처럼 만들기 싫었다. 고해는 억지로 참았다.

고해는 씁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당주님. 당주님께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고맙다고? 호호호호. 그래, 나 혼자 김칫국만 마셨네. 내가 고 타주를 이 수련계에 데리고 와서 고맙다는 거지? 딱 거기까지라는 거지?”

유년대사가 용완청을 달랬다.

“당주님, 그만하십시오. 고해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황보조가가 분노하며 말했다.

“고 선생. 뭐가 걱정인가? 자네가 이런다고 용완청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네도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거야.”

옆에 있던 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해가 슬픔을 머금고 말했다.

“네, 당주님, 감사했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용완청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웃기만 했다.

“호, 호호호호.”

용완청은 고해의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으려는 듯 고해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고해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용완청이 이를 악물고 다시 물어봤다.

“고 타주.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도 이렇게 냉정하게 대할 거야?”

고해는 용완청을 보며 한참을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럴 겁니다.”

“그럼 유년대사와 다를 바가 없네. 사랑과 연을 끊었으면 유년대사처럼 머리를 밀어버려.”

옆에 있던 황보조가는 유년대사를 바라보았다. 유년대사는 용효월 때문에 머리를 밀고 스님이 되었다.

고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용완청을 보고 있었다.

용완청이 고해를 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어. 나에 대한 마음을 잘 알았어. 고 타주, 결국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거였어. 나도 계속 집착하기 싫어. 다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들어주었으면 해.”

용완청을 보는 고해의 마음도 찢어질 것 같았다.

“말씀해 보십시오.”

“너의 머리카락을 가져야겠어. 너의 머리카락으로 제사를 지내야겠어. 머리카락을 줘. 전부.”

구진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해를 불렀다.

“주인님?”

유년대사와 황보조가는 고해와 용완청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허어어어.”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면서 방을 나갔다.

용완청이 고해를 보며 말했다.

“얼른 줘.”

고해는 두 눈을 끔뻑이며 용완청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기가 두피를 따라 머리를 전부 밀어버렸다.

용완청은 눈물을 꾹 참으며 고해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주워서 작은 상자에 담았다.

고해와 용완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해의 머리에서 빛이 반짝였다.

머리를 자른 고해는 대전을 나섰다. 고해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진이 따라나섰다.

“주인님, 주인님…….”

고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르게 다른 대전으로 들어갔다.

쾅!

고해는 대전의 문을 닫고는 등으로 문을 막았다. 머릿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용완청의 모습이 맴돌았다.

구진은 몇 번 문을 두드리다가 멈췄다.

용완청은 문을 닫고 고해의 머리카락을 커다란 삿갓에 담았다. 삿갓에 있는 머리카락을 보며 실낱같은 웃음을 지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도 잘라버렸다. 그러고는 옥함에 넣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더니 이내 눈물을 닦고 처량하게 웃었다.

그녀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최대한 고해처럼 보이려고 검은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고해의 머리카락이 담긴 삿갓을 머리에 썼다.

삿갓으로 얼굴을 가렸기에 얼핏 봐서는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녀가 밖을 향해 말했다.

“구진, 잠깐 들어와 봐.”

구진은 쪼르르 달려가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삿갓을 쓴 용완청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당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향이 절반 정도 탈 시간이 지난 다음 이 편지를 고해한테 전해줘. 부탁할게.”

“예? 주인님한테요?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주인님이 좀 심했습니다. 제가 잘 전달하겠습니다.”

“나 바람 좀 쐬러 갈 거야. 누가 물어보면 바람 쐬러 갔다고 말하면 돼. 이틀 정도 있다가 올 거야.”

“예? 예…….”

슥.

용완청은 손을 뻗어 비주를 불러냈다.

그러고는 비주에 올라타자마자 대진을 뚫고 빠르게 날아갔다.

비주가 날아가는 걸 보고 유년대사 등이 몰려왔다.

구진이 말했다.

“당주님께서 바람 쐬러 가셨습니다.”

유년대사와 목신풍, 황보조가는 서로 마주 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여자가 용기를 냈는데 거절을 당했으니 속이 말이 아닐 거다.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지.

* * *

같은 시각. 또 다른 계곡.

대진에서 용효월의 인혼을 보고 있던 미생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응? 고해, 도망가려고? 흥!”

미생인도 비주를 불러내더니 곧바로 용완청의 비주를 쫓아갔다.

슈슈슉!

두 척의 비주가 앞뒤에서 날았다. 비주는 순식간에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더니 종적을 감췄다.

구진은 용완청이 준 편지를 들고는 향이 절반 정도 탈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절반 정도 탔겠지?’

그때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에 구진의 안색이 굳어졌다.

‘응? 저 소리는 뭐지?’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또 다른 비주가 날아가는 소리 같은데?’

구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해가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유년대사와 황보조가도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

“이상하군.”

그때 고해가 머물던 대진의 문이 세차게 열렸다.

쾅!

고해를 발견한 구진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주인님, 당주님이 나가시기 전에 이 편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향이 절반 정도 탔을 때 주라고…….”

고해는 곧바로 편지를 낚아챘다.

그는 곧바로 편지를 펼쳤다. 그러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 타주. 얼른 도망쳐. 여양왕이 미생인을 시켜 너를 죽이려고 해. 미생인은 너의 머리카락으로 위치를 찾을 수 있데. 그러니 얼른 도망가.]

뒤에 있는 내용은 보지도 못했다.

고해가 소리쳤다.

“대사님! 얼른 비주를 주십시오! 당주님이 위험합니다! 얼른요!”

유년대사와 황보조가, 목신풍이 빠르게 달려왔다.

“알겠네!”

안 그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유년대사는 곧바로 비주를 불러냈다.

사람들은 빠르게 비주에 올라탔다.

목신풍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고해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구진, 소리를 들어봐! 반드시 찾아야 한다!”

구진이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저쪽으로 갔습니다!”

고해는 황급히 구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비주를 돌렸다.

슝!

비주는 활을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유년대사가 화를 내며 말했다.

“당주가 위험하다고? 왜? 고 타주, 말 좀 해봐!”

* * *

슈웅!

두 척의 비주는 빠르게 날아갔다.

앞에는 삿갓을 쓴 용완청이 탔고, 그 뒤를 미생인이 쫓았다.

미생인의 눈은 독기가 가득했다.

“고해! 너는 절대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를 선천잔국계에서 찾아낸 걸 생각해 너의 시체는 곱게 남겨주마!”

비주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미생인의 목소리는 용완청의 귀에 생생히 전달되었다.

용완청은 최대한 고해인 척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고 타주도 지금쯤 편지를 봤겠지? 얼른 도망가. 최대한 멀리 도망가! 내가 시간을 끌어줄 테니 얼른 도망가, 고 타주!”

그녀가 탄 비주는 최대한의 속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미생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흥! 내 손에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놈!”

미생인의 뒤에서 검은 기운이 맴돌더니 용완청의 비주를 뒤쫓아 날아갔다.

스스스스스.

검은 기운에서 영혼의 곡소리가 들리더니, 백장 크기에 달하는 귀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 척의 비주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검은 기운이 두 척의 비주를 이어놓은 것만 같았다.

검은 기운은 순식간에 용완청의 비주를 따라잡았다.

고개를 돌린 용완청은 자신을 쫓아오는 흑기운을 발견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겁에 질린 그녀가 더욱 서둘렀다.

“얼른! 빨리 가!”

더 멀리 도망가야 한다. 고해를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스스스스.

흑기운이 점점 몰려와서 용완청의 비주를 바로 뒤까지 따라잡았다.

두 척의 비주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미생인이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삼혼을 전부 없애버릴 것이다!”

용완청은 겁에 질린 채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와 엄마를 찾았다.

“아버지, 엄마! 저를 지켜주러 오신다면서요? 왜 지금까지 안 오시는 거예요? 어디 계신 거예요?!”

그러나 어디에서도 반응이 없었다.

“엄마, 사촌 언니와 오빠들은 전부 아버지가 계시는데, 왜 저만 아버지가 없어요? 제 아버지는 누구예요? 사촌 오빠와 언니들이 저를 비웃어요. 아버지가 없는 자식이라고……. 엄마, 저는 정말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에요?”

“완청아. 울지 마라. 너의 아버지는 세상을 뒤흔드는 영웅이셔. 잠시 일이 있어서 저 멀리 가셨을 뿐,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아버지가 반드시 완청이를 보호해 주실 거야.”

“정말요? 우리 아버지가 세상을 뒤흔드는 영웅이에요?”

용완청은 순간적으로 어렸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지켜주신다면서요? 아버지, 어디에 계세요? 완청이는 너무 무서워요!’

용완청은 겁에 질려 눈물을 흘렸다.

미생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멈춰라! 안 그러면 시체조차 없애버릴 것이다!”

순간, 검은 기운이 점점 더 빠르게 용완청의 비주를 잡으러 날아왔다.

그건 죽음의 기운이었다. 검은 기운이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약간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용완청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절망이 자신의 몸을 똘똘 감싸는 것만 같았다.

용완청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간, 죽음의 기운이 용완청의 등을 덮쳤다.

용완청도 최후의 순간이 왔다는 걸 알고 처량하게 중얼거렸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뒤흔드는 인물이야. 지금은 일이 생겨서 잠시 떨어져 있어. 언젠가는 돌아오시겠지. 우리 세 모녀를 괴롭힌 놈을 반드시 혼내줄 거야. 반드시…….”

펑!

검은 기운에 맞은 용완청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그녀가 쓰고 있던 삿갓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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