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22화 (205/243)

222화. 일생일사(一死一生)

“고해를…… 죽여야 해.”

용완청은 화들짝 놀라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미생인을 노려보았다.

“뭐, 뭐라고요?”

“네 엄마를 살리려면 고해가 죽어야 해.”

용완청은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와 고해 중 한 사람만 살 수 있다고요?”

“아니, 고해는 반드시 죽어야 해.”

용완청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요. 그, 그건 안 돼요. 고해를 죽일 수는 없어요.”

“고해가 죽지 않으면 용효월도 부활할 수 없어. 엄마를 부활시키지 않을 거야? 아니지, 너의 의견은 필요 없어.”

어머니를 살리려면 고해를 죽여야 한다고?

고해가 살아있으면 어머니를 구할 수 없다고?

용완청이 절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 도대체 왜!”

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엄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됐다. 용완청, 그만 돌아가라. 나도 이제 가야겠다.”

“어, 어디로 가는데요?”

“당연히 고해 찾으러 가야지. 효월이의 인혼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고해만 해결하면 돼.”

용완청이 갑자기 소리쳤다.

“안 돼요! 고해를 죽일 수는 없어요!”

“엄마를 살리기 싫으냐?”

미생인의 말에 용완청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살리고 싶어요.”

“그럼 됐다. 엄마부터 부활시키고 보자.”

“잠시만요.”

“무슨 일이야?”

“도대체 고해를 어떻게 찾았죠? 정말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어떻게 찾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힘들겠지. 그렇지만 우리는 달라. 머리카락도 삼혼의 대사산물(代謝産物)이야. 즉 머리카락에도 그에 해당하는 기운이 있지. 나는 그 기운을 쫓아왔다.”

“머리카락? 머리카락으로 우리를 찾았다고요? 고해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고요?”

고해가 도망칠 구멍은 없는 건가?

“그래.”

용완청은 갑자기 미생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 선생님, 우리 엄마를 봐서라도 나중에 죽이면 안 될까요? 제발요. 부탁드릴게요.”

미생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용완청을 내려다보았다.

용완청은 미생인 앞에서 미친 듯이 절을 하며 말했다.

“고해가 돌아오면 작별 인사라도 하게 해주세요. 제발요. 흑흑흑.”

쿵! 쿵! 쿵!

용완청은 절을 할 때마다 머리로 바닥을 내리쳤다. 저러다 머리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용완청은 절을 멈추지 않았다.

그토록 싸늘하던 미생인도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

“그만해라. 난 너와 너의 아버지는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다만 용효월의 딸이니…… 효월이가 슬픈 건 나도 싫다. 후우우. 됐다, 하루의 시간을 주마. 하루 동안 고해와 작별 인사를 나누거라. 고해는 어차피 내 손안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용완청은 울어서 눈까지 빨개졌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흑흑흑.”

“용완청. 고해는 어차피 죽을 거다. 그러니 가서 마지막 인사나 나누거라. 다시 말하지만, 고해가 죽어야만 용효월을 부활시킬 수 있다. 엄마를 보고 싶다면,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보고 싶어요.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용완청이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래. 그만 가봐라.”

용완청은 눈물을 닦으며 미생인의 손에 있는 옥함을 바라보았다.

엄마를 부활시키려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 한다.

용완청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미생인의 대진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혼이 반쯤 빠져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 * *

녹신성. 황궁에 있는 서재.

서재에는 고해와 황보조가, 두 사람이 있었다.

황보조가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 선생, 정화곡에서의 일은 나도 들었네. 괜히 나 때문에 정화 파파가……. 휴우우.”

“정화 파파께서 황보 선생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최전방에 있는 신록성은…….”

“신록성? 어쩔 수 없지. 여양왕에게는 미생인이라는 사람이 있어. 아마 그 사람이 손을 쓴 것 같네. 그 사람이라면 우리 신록성을 손쉽게 무너뜨렸을 거야.”

고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그땐 황보 선생한테도 기운이 있었지 않습니까? 미생인이 신록성을 공격하더라도 여양왕의 대군에 큰 손실을 줄 수 있었을 겁니다.”

황보조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함께 망하는 길이네. 그 얘기는 그만하지. 고 선생 덕분에 편지를 은밀하게 받을 수 있었어. 그렇지 않으면 지금 자네의 신분도 노출되었을 거야.”

“황보 선생의 관료 중에 여양왕이 심은 간자가 그렇게도 많단 말입니까?”

황보조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괜찮아, 여양왕부에도 내가 심은 간자가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잡은 간자가 내 종친이야. 내가 얼마나 믿었던 사람인데 여양왕한테 넘어가다니……. 하아아. 거기다 입은 또 얼마나 무거운지 아무 말도 하지 않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구진이 심문하고 있으니 뭔가 나올 겁니다.”

황보조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천급 금 구진? 그에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폐하의 종친이 자백했습니다. 지금 속기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황보조가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자백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구진이 자백을 받아내다니?”

문 앞에는 회색 포를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회색 포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구진이 다른 사람들을 전부 쫓아내더니, 종친과 단둘이 있는 곳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황보조가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없습니다. 노래를 듣더니 곧바로 자백했습니다.”

황보조가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노래를 불렀다고? 아! 최면! 그럼 그가 최면에 걸린 건가?”

“아닙니다. 그게…… 노래를 너무 못 불렀습니다.”

황보조가는 어안이 벙벙했다.

“노래를 못 불렀다니? 도대체 얼마나 노래를 못 부르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자백을 한단 말이냐?”

회색 포를 입은 남자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진의 노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고해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구진의 노래는 남들과 다릅니다. 어찌 되었든 자백을 했다니 다행입니다.”

황보조가는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해에게 뭔가 말 못 할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세한 건 캐묻지 않았다.

“어쨌든 그가 자백했다니, 수요들의 단전을 고쳐주지.”

고해가 반색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예, 제가 아무도 몰래 신록성 안으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황보조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나와 같이 가세.”

회색 포를 입은 사람이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 남의 단전을 고치려면 폐하의 정력도 많이 소모됩니다.”

황보조가는 확고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화 파파께서 내 목숨을 살려주셨다. 정화 파파는 멸족하면서까지 나를 구해주셨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렇지만…….”

“됐다. 그만해라. 녹석신, 조금 있다가 땅굴을 파라. 나와 고 선생이 나갈 것이야.”

“네…….”

* * *

고해와 구진, 황보조가는 계곡으로 향했다.

대진 앞에 선 황보조가가 고해를 보며 말했다.

“용을 진압하던 대진인가? 하하하. 나와 여양왕이 혈전을 벌이고 있는데, 고해 자네가 여양왕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참에 아예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건 어떻겠나?”

고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황보조가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하. 아니네, 그냥 해본 소리야.”

세 사람은 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계곡에서 미생인이 세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생인이 그들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고해가 왔다, 용완청. 딱 하루야. 내일이면 고해를 죽일 거야.”

계곡의 한 대전.

용완청은 빨간색 옷을 입고 혼자 대전에 앉아 있었다. 대전 안은 빨간 견직포로 가려져 있었다.

옆에는 화장대가 있었는데, 용완청은 거울 앞에 마주 앉아 자신을 예쁘게 치장했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머리를 빗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웃어야 해.’

그녀는 거울 앞에서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몇 번이나 연습했다.

상처가 많이 호전된 유년대사와 목신풍이 고해와 황보조가를 마중 나갔다.

목신풍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황보 선생, 정말 수요들의 단전을 고쳐주실 겁니까?”

황보조가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먼저 봅시다.”

“예예.”

고해는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용완청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용완청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주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옆에 있던 유년대사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 타주, 내가 할 말이 있네. 잠시 시간 좀 내주겠나?”

“네?”

고해는 유년대사를 따라 한 대전으로 들어갔다.

황보조가와 구진도 궁금한 듯 뒤따라갔다.

목신풍까지 대전 안으로 들어간 다음 대전 문을 닫았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나, 또 다른 대전에 있던 용완청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고해가 물어보았다.

“대사님, 무슨 일이시길래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유년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 타주,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자네는 당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옆에 있던 황보조가는 유년대사의 말뜻을 알아들은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사람들이 고해를 보며 웃었다. 고해는 유년대사의 뜻을 눈치채고 머쓱하게 말했다.

“대사님, 갑자기 그건 왜……?”

“대답해 주면 안 되겠나?”

고해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주님은 착하고 아름다우시죠.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수십 년을 지내오셨는데, 참으로 용감하고 정의로운 여자시지요.”

“맞아. 당주는 성격이 정말 온순하지. 아마 당주를 데려가는 남자는 복 받을 거네. 사실 구오도(九五島)에 있는 동안 자네와 당주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주님의 마음속에 고해, 자네가 있는 것 같네.”

고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유년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의 마음속에도 용완청이 있잖은가? 내가 중매쟁이가 되어 주지.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고해는 용완청과 지낸 시간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머쓱하게 웃었다.

유년대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는가?”

“대사님도 아시잖습니까? 저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아네. 그렇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지 꽤 오래됐잖아? 자네 부인도 이 사실을 안다면 무조건 지지해 줄 거야.”

“당주님을……. 하아……. 대사님, 저는 당주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아내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제 아내를 죽인 자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겠지요. 당주님께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자네 뜻은, 자네도 용완청을 좋아하지만 복수 때문에 같이 있을 수 없다, 이 말인가? 도대체 복수할 대상이 누구기에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가?”

“그 사람……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정말 강하지요.”

옆에 있던 목신풍이 다급하게 말했다.

“고해. 당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당주께서 대사님께 중매를 서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고. 여자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만약 자네가 거절하면 용완청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생각해 봤어?”

옆에 있던 황보조가도 입을 열었다.

“예? 용완청이 대사님께 중매를 서 달라고 부탁했다고요?”

옆에 있던 구진도 거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내가 목타 부하들이 소곤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당주님도 지금 화장하고 계신답니다. 이제 주인님의 대답만 남았습니다.”

고해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그는 대전 중간에 있는 견직포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황보조가가 조언했다.

“고 선생, 용 당주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면 되잖은가? 사랑이라는 건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야. 소중히 생각해야 하네.”

고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할 수가 없습니다.”

유년대사가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없다고? 고 타주, 왜 이렇게 고지식한가?”

바로 그때, 견직포 뒤에서 목이 잠긴 용완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 그만해! 내가 부족해서 그래!”

순간, 대전을 가리고 있던 견직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안쪽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화장을 마친 용완청이 처량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눈가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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