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화 (1/107)

1. 블로거만도 못한 기자인건가

“아 한 번 좀 보자니까요.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네?”

여의도역 사거리. 나는 숱한 인파를 헤치며 휴대전화서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상대는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이버의 홍보팀 차장, 김우정.

내가 수습기자이던 시절부터 줄곧 연락한 사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실제로 본적은 없었다.

“차장님, 저희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잖아요. 작년에 새해 되면 한 번 보자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식사 한 번 합시다. 네?”

내가 생각해도 참 자존심 없는 말이었다.

선배들로부터 배운 기자정신은 일단 들이대는 것.

어차피 난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

-아이 기자님, 아시잖아요. 저희 분당에 있는 거. 서울 멀어서 못나가요. 바쁘기도 하구요.

“그럼 차장님, 제가 분당가면 한 번 봬요. 그건 괜찮죠?”

-······일단 지금 확답 드릴 수가 없구요. 나중에, 제가 말씀드릴게요.

“차장니임, 다음 주 화요일 점심 어때요? 그때 제가 찾아뵐게요. 네?”

-안 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럼 수요일은요? 아니면 목요일도 좋아요.”

-기자님, 진짜 제가 시간 날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좀 바빠서요. 이만 끊을게요.

“차장님! 차장님?”

다소 불쾌하게 통화가 끝나버렸지만, 난 이해했다.

이게 불평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니까.

상대는 잘나가는 유명기업의 홍보팀이다.

듣도 보도 못한 삼류 매체 기자에게 무슨 시간을 내주겠는가.

이제 막 수습딱지를 뗀 나조차도 그런 업계 생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날 상대해줄 때는 그저 보도 자료에 관해 물어올 때 뿐.

“에휴.”

난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여의도 지하철 역사로 들어갔다.

일정을 못 잡았다고 해서 주눅들 시간은 없었다.

당장 점심 전에 열리는 행사장에 곧장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자가 된지는 이제 7개월.

이제 일은 어느 정도 몸에 익었지만, 여전히 취재는 난항이었다.

그래, 지방대 출신인 내가 발을 디딜 수 있었던 매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IT전문지.

수많은 온라인 언론사 중에 한 곳.

매체의 후광이나 선배들의 도움 등, 내가 그 어떤 조력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기자가 된 게 어디야.’

막 도착한 전동차에 몸을 실으며 난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아직도 휴대전화 속에선 취직이 안 돼 빌빌대는 대학 동기들의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나도 여러 주요 언론사 고시서 수차례 낙방했었으니까.

‘노력하면 분명······나도 될 수 있을 거야.’

내가 꿈꾸는 건, IT업계 최고의 기자.

글 하나로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잘못된 걸 올바르게 바꿀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진 기자가 되는 것이다.

‘광피리처럼 말이지······’

난 동경하는 김광필 기자를 떠올렸다.

IT업계선 모르는 이가 없는 전설적 기자, 김광필.

그는 기사와 취재력으로 인정받은 국내 1세대 IT기자다.

‘광피리의 블로그’운영을 통해서 또 다른 영향력까지 행사하는 유명인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광피리처럼 될 가능성은 아직 절망적일 뿐이다.

김광필 기자는 시작부터 국내 5대 언론사 출신이었으니까.

나는 그런 씁쓸함을 떠올리며 어둠만 스쳐가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30분 후, 내가 하차한 곳은 2호선 삼성역이었다.

LC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발표회가 바로 이곳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서 열릴 참이었다.

“30분 일찍 왔는데, 벌써 이렇게 많아?”

행사장에 도착한 나는 인파를 보고 고갤 저었다.

짧은 기자 경력이지만 그간 다녀본 행사 중 가장 인원이 많아 보였다.

‘하긴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고, 이목 끌기 좋은 스마트폰 출시니까.’

게다가 기자들만 와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LC전자 측 안내 석에는 기자 외에 블로거 담당 요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기자 분이시면 명함을 주시겠어요?”

LC전자 행사요원 중 한명이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나는 안쪽 주머니에 넣어뒀던 명함수첩서 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든 행사요원은 자신 앞에 놓인 문서를 훑더니 내게 보도자료 팸플릿을 건넸다.

이를 받아든 난 안내 석 탁자위에 올려져있는 흰색 종이가방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건 안주시는 건가요?”

내 질문에 요원이 당황한 듯 문서를 다시 훑었다.

보통 이런 행사를 진행할 때 주최 회사 측은 참석자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사은품을 주곤 했다.

보조배터리, 무선키보드, 이어폰처럼 그리 비싸진 않아도 나름 쓸모 있는 것들이었다.

아예 주지 않는 행사라면 상관없겠지만, 난 바로 앞 사람이 저 종이 가방을 받아가는 걸 이미 목격한 터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드릴 수량이 다 떨어져서요. 남은 건, 주인 분들이 따로 계셔서······”

직원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줄 수 없다는데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뭐했다.

아무리 잃을 게 없는 삼류기자라지만 나도 창피한건 아는 까닭이다.

"알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얘기하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아 안녕하세요~ 블로거 참치장군인데요."

낯익은 목소리가 바로 뒤서 들려왔다.

"아 참치장군님 이시군요.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난 곧장 고갤 돌려 방금까지 내가 서있던 자릴 바라봤다.

"어, 형. 치열이 형."

내가 부른 이름에 블로거 참치장군이 반응했다.

"어! 주진형, 진형이잖아?"

"형 여기서 다 보네요."

"야 반갑다. 우리 거의 1년만 아니야? 매크로소프트웨어 활동한 뒤로 못 봤잖아."

정말 반가운 기색으로 블로거 참치장군, 차치열 형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덥석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형 블로그엔 그래도 계속 댓글 남겼잖아요."

"야, 그래도 직접 얼굴보고 살아야지."

우리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곤, 안내직원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너 기자 됐다고 했지? 그래서 여기 온 거야? 야 좋다."

"네. 그래도 좋을 건 없어요. 별로 좋은데 들어간 것도 아니고."

"무슨, 그런 게 중요해? 덕업일치를 했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기덕후?"

"하하."

기덕후란 기기를 좋아하는 오타쿠를 뜻한다.

치열 형의 말대로 나는 최신기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건 치열 형도 마찬가지.

나와 치열 형은 매크로소프트웨어라는 유명 IT기업의 대외활동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 당시에도 치열 형은 IT쪽의 유명한 파워블로거였다.

"저 참치장군님, 이거 받아가세요."

LC전자 측 안내직원이 흰 종이봉투를 치열 형에게 내밀었다.

내가 받지 못했던 그 봉투였다.

"아 감사합니다."

종이봉투를 받아든 치열 형이 비어있는 내 양손을 내려다 봤다.

"어? 넌 못 받았어?"

"네. 기자 쪽은 다 떨어진 모양이에요."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지만 난 대충 둘러댔다.

"그래? 일단 뭘 준건지 좀 볼까?"

치열 형은 가방 안을 뒤적여 잘 포장돼 있는 사은품 하나를 꺼냈다.

"야, 이거 LC전자 신형 이어폰인 모양인데."

"아아, 콰트로비트3요?"

"어어, 이번 스마트폰 신제품 번들 이어폰으로 들어가는 녀석. 그 음향업체 AKZ와 협업해서 만든 거잖아."

'아, 갖고 싶네.'

난 평소에도 이어폰에 관심이 많았기에, 치열 형이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난 취미로 하는 블로거만도 못한 기자인 건가.'

순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걸 전부 나타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둘은 한동안 같이 움직이다가 발표회를 마치고 바로 떨어졌다.

나는 발표 내용 중 질의응답만 따로 간추려 기사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난 전시장 쪽으로 가서 보고 있을게. 나중에 또 보자."

"네 형. 가세요. 다음에 봬요."

혼자가 된 나는 발표장에 자리 잡은 타 기자들처럼 기사에 집중했다.

10여분 뒤,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기사를 올린 난 노트북 상판을 덮었다.

"여, 주 후배~"

"어 기문 선배. 오셨습니까."

가벼운 셔츠차림에 네모난 백팩을 멘 남자.

이제 30대 중반의 5년차 기자, 김기문 선배였다.

기문 선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내 노트북을 바라봤다.

"어, 기사는 다 썼는가?"

"네. 두개 올렸습니다."

"그래그래, 잘하고 있어. 제품 취재는 아직 이지? 같이 가자."

"네."

난 자릴 정리한 뒤 가방을 챙겨 기문 선배와 함께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기문 선배는 지금 타 매체 소속이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사수였다.

'점프'. 그건 기자가 기존의 매체서 더 좋은 매체로 이직하는 걸 뜻했다.

기문 선배는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언론계 피라미드 최하단서 한 계단 올라간 상태다.

"그래, 팀장은 잘 계시고?"

"선배 나가고 난 뒤 어깨 결림이 더 심해 지셨죠 뭐. 저도 덕분에 모바일 취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난 인터넷 업체만 담당해왔었다.

하지만 기문 선배가 이직한 뒤, 그가 담당하던 모바일 분야까지 내가 맡게 됐다.

기자가 부족한 소규모 매체의 비애였다.

"날 원망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배는 어떠십니까. 전자뉴스 소속 온라인 매체니까, 대우는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아아, 취재는 훨씬 편하지. 그리고 편집국도 기사 많이 요구 안하고. 몸도 마음도 편하다네~ 주 후배도 열심히 해서 이쪽으로 넘어오게나."

"하하, 쉽지가 않을 것 같네요."

다른 매체로 점프하기 위해선 그만큼 기자로써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업계 사람들이 인정 할 만큼 좋은 기사를 쓰고,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 정확한 이야기를 써야한다.

그 모든 건 취재에 달려있다.

그러니 취재 자체가 어렵다면, 당연히 점프업의 기회도 어렵다.

기문 선배도 디지털투모로우서 몇 년 동안 고생했었다.

"오늘 일정 끝나고 술 한 잔 콜? 선배가 쏠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좋습니다."

사실 퇴근 후엔 다음날 기사를 미리 준비하는 편이었다.

허나 오늘은 가슴이 답답해 술이라도 걸쳐야 할 것 같았다.

퇴근 후 종로의 한 작은 술집.

나는 기문 선배와 술을 나눠 마시며 행사장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블로거도 받는 걸 넌 못 받았다는 겐가?"

"선배도 많이 겪지 않으셨습니까.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소속매체 말할 때마다 홍보팀 직원들 눈빛 바뀌는 거. 초대명단에 없다고 남들 다 받는 사은품 하나 못 받을 때, 어떻게 합니까? 창피한데 어떻게 토로할 수도 없고."

"뭐 그렇긴 하지. 그럴 수록 이 악물고 취재하는 수밖에 더 있나."

"애초에 만나주질 않는데 어떡합니까. 오전에도 메이버 김우정 차장한테 만나자고 통사정을 했는데 거절 하더라구요."

"아아, 그 사람. 그렇지 그렇지. 메이버 애들은 우리 같은 기자들은 절대 안 만나 준다구우."

파전을 뜯으면서 기문 선배가 대답했다.

"나도 아는 선배 덕분에 이직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런 점에선 주 후배한테 미안하네. 같이 끌어주진 못해서."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나와 문기 선배는 짧은 인연이었음에도 같은 회사의 어려움을 공유하던 사이였다.

그 덕분인지 다른 선후배 기자 사이와는 다른 유대감이 있었다.

"자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나중에 또 보자고."

밖이 어둑해지고서야 우린 술집 밖으로 나왔다.

기문 선배와 헤어진 난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잔뜩 술기운이 오른 몸을 이끌고, 나는 비틀비틀 정처 없이 어두운 종로 거릴 걸었다.

"하아. 뭘 어떻게 해야 하냐!"

술기운을 빌려 난 소리쳤다.

그 때 내게 커다란 호통이 하나 들려왔다.

"뭘 어떻게 해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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