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허우대 멀쩡한 놈이 어디 어르신 앞에서 술주정부리고 한숨을 쉬어!"
취기가 확 가실 정도로 벼락같은 일갈이었다.
나는 눈을 크게 두번 깜빡인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야 이놈아! 젊은 놈이 벌써부터 밤눈이 나빠 가지곤 쯧쯔."
어둑하고 인적이 드문 종로의 밤거리.
가로등 불빛 하나 닿지 않는 오랜 건물 앞에 벙거지 모자를 쓴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누, 누구세요?"
당황한 내가 더듬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내 누군 건 알아서 뭐하게! 재수 없게 한 숨 쉬지 말고 돈 있으면 내놓고 꺼져!"
사내는 모자를 벗어 들고는 내게 내밀었다.
모자 안쪽에 돈을 넣으라는 모양새였다.
난 어이가 없어서 사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어둠에 익숙해진 동공이 사내의 얼굴을 점차 확실하게 드러냈다.
'노숙자네.'
쉰 살은 돼 보이는 주름진 얼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제멋대로 뻗쳐있는 머리칼.
그의 다리 주변에 놓인 막걸리 병들. 사내의 정체를 증명하는 여러 증거가 속속 보였다.
"아······네······"
난 잠시 고민하다가 바지 주머니서 지갑을 꺼냈다.
어쩐지 많은 걸 포기한 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힘든 삶이란 걸, 나 또한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갑을 열자 어째 만 원짜리 지폐만 한 장, 달랑 들어있었다.
'에라, 좋은 일 하는 셈 치자.'
내가 모자 안에 만원을 넣자, 사내가 모자를 휙 잡아당겼다.
"······흥, 그래도 양심은 있구만. 좋아. 돈을 받았으니 얘길 좀 들어주지. 여기 앉아봐."
"예?"
황당하다는 듯이 내가 반문했다.
사내는 말없이 내 팔을 끌어당겨 바닥에 앉혔다.
"뭐가 그렇게 힘들 길래 세상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어?"
"아······그냥 일이 잘 안 풀려서요."
얼떨결에 사내 옆에 앉은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 하는데 안 풀려?"
'뭐 어때, 다시 볼만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니 의외로 시원하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저, 기자거든요. 제 꿈이었어요, IT기자. 멋있잖아요. IT분야 취재하는 것도, 기자라는 것도. 그런데 지방대 스펙으로 삼류 언론사에 취직했더니 기자다운 일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취재를 하려하면 무시당하기 일쑤고, 홍보팀 놈들은 제 전화를 피하고. 그렇다고 저한테 누가 기사 제보라도 하나요. 결국 사무실에 앉아서 남의 기사나 베껴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누구한테 하소연을 할 수가 없네요. 삼류매체에 취직한 저 스스로를 자책하는 거 말고는요.”
내 자조적인 말에, 냉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흐응, 결국 네 잘못이란 걸, 아는 거 아냐?”
"뭐 그렇죠. 그렇지만 말이에요. 적어도 기회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뛰고 싶은데, 아예 뛸 수가 없으니까요."
"뛸 수 있는 기회라······"
사내가 내 말을 되뇌었다.
"저도 다른 매체 선배 기자한테 잘 보여서 이직하는게 제일 좋겠죠. ······하하. 뭐 이렇게 얘기라도 하니 갑갑했던 게 좀 풀리기라도 하네요."
난 자리서 일어났다.
내가 바지 엉덩에 묻은 먼지를 털어낼 때, 사내의 목소리가 내 뒤를 때렸다.
"뛰고 싶다 이거지?"
"네?"
뒤돌아서 사내를 봤다.
처음 봤을 때완 달리 온순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그가 있었다.
"정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잡아낼 자신은 있는 거야?"
"······잡아내야죠. 죽을힘을 다해서.”
"좋아, 그 자세."
'웃기는 사람이네.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잠시 고갤 갸웃거리며 사내를 응시했다.
딱히 나를 조롱하는 태도도, 진정으로 응원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대화가 그렇게 끊긴 뒤, 난 자릴 벗어났다.
지하철 역사를 향해 걸어가던 난 사내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술 냄새가 안 났어.'
사내의 입에선 술 냄새도 단내도 나지 않았다.
무취.
그게 무척 이상했다.
내가 천천히 고갤 돌려 떠나온 자릴 보자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다른 곳으로 간 걸까.'
난 묘한 기분을 느끼며 종로5가 역으로 몸을 옮겼다.
다음날 아침.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 사무실.
난 여느 때처럼 가장 먼저 출근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
대부분의 보도자료가 아침 일찍 기자의 이메일로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보도자료는 기업들이 기자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홍보자료다.
기업의 중대소사, 신제품, 서비스 출시나 사건사고에 대한 해명이나 반박까지.
기업 홍보마케팅에 도움 되는 내용을 기자에게 기사형태로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다.
출입기자들은 이 자료를 받아 팩트 체크 후 탈고를 거쳐 기사로써 출고한다.
즉 보도자료를 미리 확인해두면 그날의 기사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자 그럼 어디 한 번 볼까."
나는 탁주의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메일 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 하자 익숙한 이메일 목록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별로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네.'
난 새로 도착한 이메일 제목들을 하나, 하나 확인하며 생각했다.
보도자료도 그 발신 주체와 내용에 따라 경중이 다르다.
큰 기업일수록,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일 일수록 더 중요해진다.
내가 목록 첫 면을 보고 넘기려는 순간.
웹페이지 로딩이 완료되며 기이한 알림창이 화면에 떠올랐다.
[일주일 후 발송될 이메일 미리 수신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뭐, 뭐지 이건?"
뜬금없는 알림창의 등장에 당황한 나는 문구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일주일 후 발송될 이메일 미리 수신?’
단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일주일 후에 발송될 이메일을, 미리 받는 다는 얘기야?’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나니 의미는 잡혔는데, 이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일주일 후에 보내질 이메일을 미리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뭐야 피싱 수법인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가능할 리가 있나.’
나는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아니오]를 누르려다가 멈췄다.
‘설마 신종 크립토락커!?’
난 재빨리 노트북 키보드를 눌러 스크린샷을 찍었다.
이와 같은 소재는 잘하면 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립토락커는 랜섬웨어라 불리는 악성코드의 일종이다.
이는 사용자의 PC를 감염시킨 뒤, 주요 파일들을 모두 암호화한다.
PC내 사진이나 문서파일, 음악 등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암호화는 크립토락커를 뿌린 제작자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난 업무용 노트북에 중요한 파일은 보관하지 않고 있었다.
크립토락커에 걸려도 탈이 없다는 뜻.
‘혹시나 내가 새로운 크립토락커를 발견한 거라면?’
흐흐. 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주목을 받든 아니든, 단독 기사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난 스크린샷 파일을 클라우드 저장소에 백업해둔 뒤, 다시 알림창이 떠있는 이메일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당당히 알림창의 [예]를 눌렀다.
“······응?”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은 그대로였고, 악성코드에 걸렸다는 백신 안내문이나 크립토락커 경고문조차 뜨지 않았다.
난 혹시나 싶어서 이전 취재사진이 들어있는 사진폴더를 열어봤다.
사진 파일들은 모두 정상적인 확장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 크립토락커가 아닌가? ······라니, 그럼 뭐였다는 거야?”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한 난, 다시 이메일 목록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그러자 거기엔, 내가 읽지 않은 새 메일들이 속속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이거 날짜가 왜이래?’
메일 제목들을 읽어나가던 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눈을 깜빡였다.
보통 당일 발송된 메일은 발신 시각에 24시간만 표시된다.
헌데 새로 도착한 이메일들은 모두 날짜까지 적혀있었다.
그것도 일주일 뒤의 날짜가.
‘오늘이 12일인데······19일 메일이라고?’
서버 오류인가 싶어 이전 메일 목록을 훑었다.
하지만 내가 일전에 읽었던 메일들은 모두 시간이 정확하게 표시돼 있었다.
‘확인해보자.’
[강현주 – 페이스홈 뉴스피드 표시 방식 변경]
난 새로 도착한 이메일 중, 페이스홈의 보도자료를 클릭했다.
곧 메일 내용이 화면에 뿌려졌다.
보도자료의 형태는 대부분 비슷하다. 제목, 소제목, 전문, 사진, 홍보담당자 연락처 순.
난 빠르게 첫 문장, 즉 ‘야마’를 찾아 읽어나갔다.
야마는 기사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
이 야마만 봐도 기사 전체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페이스홈(대표 맥크 쥬시버거)은 페이스홈의 뉴스피드 표시방식을 사용자 선호도 따른 순서로 나타내도록 변경했다고 19일 밝혔다.]
최근 대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홈의 뉴스피드, 즉 개인 사용자의 첫 화면이 달라진다는 자료였다.
중요한 건 발표 날짜. 틀림없는 19일 이었다.
명백하게 일주일 후의 날짜.
“이게 뭐지 도대체.”
어안이 벙벙한 난 자리서 일어났다.
내려다보는 노트북 화면의 문자들이 묘하게 다가왔다.
“뭐 일단, 전화로 확인해볼까.”
평소도 자료가 애매하거나 이상할 경우 기업에 직접 연락해 확인해야한다.
난 보도자료 아래에 기입돼 있는 강현주 과장의 연락처를 찾아 전활 걸었다.
강현주 과장은 홍보대행사 웨이브의 직원이다.
-네, 강현주입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강 과장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위가 시끄럽고 경적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출근 시간이라 지하철을 타려는 듯 했다.
“아, 아직 출근 전이시죠? 혹시 통화가능하세요?”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음, 그게 말이죠. 혹시 페이스홈 뉴스피드 표시 방식 바뀌는 건가요?”
-어,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저희 쪽 뉴스룸에도 안 나왔을 텐데. 외신 중에 내용 뜬 곳이 있나요?
“············”
맞았다.
난 보도자료가 사실이란 걸 안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기자님?
“아아, 네 과장님. 아닙니다.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내용인데, 맞나보네요.”
나는 강 과장에게 대충 둘러댔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얘기였고, 설령 확실해진다 해도 밝힐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기사 쓰실 건가요?
“쓴다면 도와주실 건가요?”
-음, 그게 저도 페이스홈 쪽에 확인을 해봐야 해서 지금 답변 드릴 수가 없네요. 제가 한 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 그래주세요.”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난 강 과장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페이스홈이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SNS인 것은 맞으나, 뉴스피드 변경 소식은 독자들에게 그리 파급력 있는 내용이 아니다.
즉, 행여 강현주 과장이 ‘조력은 힘들 것 같다’고 답하더라도, 그다지 아쉬울 건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다른 이메일들, 보도자료의 진실 여부였다.
난 곧장 다른 보도자료 메일을 열람했다.
-어, 맞아요. 저희 사이트 허브 개편 들어갑니다.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홍보팀장이 놀라워하며 반문했다.
내가 그에게 먼저 물은 건 웨스트소프트서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훔’에 대한 자료였다.
나는 차례차례 자료들 대부분의 진위여부를 가려나갔다.
그리고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도착해있는 보도자료는 진짜 미래에서 온 거다.’
전활 받지 않아 확인 못한 KGT를 제외하곤 모두 긍정의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메일 목록서 나타난 알림 창, [일주일 후 이메일]은 누군가의 장난질이 아니었던 거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헛웃음이 났다.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내게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는 거다.
일주일 후의 보도자료를 미리 아는 기자.
그건 매일 매일 단독 특종 낼 능력을 가졌단 소리다.
-정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잡아낼 자신은 있는 거야?
순간적으로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노숙자의 얼굴이었다.
‘설마······?’
정말 그랬다. 난 최고의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