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죽 쒀서 개주는 꼴은 겪고 싶지 않다
내일코코아 합병 이야기에 정열성 매니저의 표정이 크게 요동쳤다.
그의 놀란 얼굴.
아마도 내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짐작치 못했던 거겠지.
“어······저- 잠깐만요. 일단 자릴 옮기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래도 정 매니저의 대응은 빨랐다.
“그럴까요.”
나는 정열성 매니저와 함께, 코코아 본사 맞은편 카페로 바로 이동했다.
“갑자기 오셨다 했더니, 이 일 때문이셨군요.”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우린 대화를 나눴다.
“네. 그게 저도 갑자기 알게 된 거라, 이렇게 급히 왔네요. -그래서. 내일하고는 왜 합병하는 겁니까?”
내가 포문을 열었다.
정열성 매니저는 친절하기는 하지만, 다른 홍보부서 직원들과 크게 다르진 않다.
회사, 즉 코코아의 민감한 부분이나 사정에 대한 대화는 달가워하지 않는단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난 공격적인 자세로 이야기를 주도해야 한다.
“뭐 자세한 배경은 저희도 아직 모릅니다. 그래도 코코아의 직접적인 경쟁자가 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정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난 고갤 끄덕였다.
그렇다.
지금의 내일은 코코아와 경쟁할 여력도, 서비스 분야도 없다.
포털 사이트, 검색 서비스, 메일, 카페, 뉴스 등등.
내일은 여러 가지 웹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모바일 분야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상이다.
반면 메이버는 기존 웹의 점유율을 이용해 모바일 이용자들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모바일 웹 대신 자사 앱 사용을 강요하다시피 해 앱 이용자도 확보했다.
특히 메이버는 코코아톡을 비롯해 코코아가 출시한 모바일 서비스들과 유사한 앱들을 뒤따라 내놓았다.
바로 모바일 메신저 ‘마인’과 모임 서비스‘세션’이다.
“그러니까, 웹 쪽에선 내일. 모바일 쪽에선 코코아가 합쳐서 메이버에 대응한다······그런 얘기군요.”
일종의 연합군이란 거다.
내일로써도 기존 체제에선 이미 굳어진 웹 점유율에 반등을 기하긴 어려웠을 거고.
코코아는 메이버를 상대하고 이용자들을 연결시킬 웹 서비스가 필요했을 터다.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아직 합병과 관련해서는 저희 대표님과 내일 대표님이 논의 중이신 걸로 압니다. 어떻게 될지는 저희도 몰라요.”
‘걱정하지마세요. 그 뒷부분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일주일 뒤에 합병식 초청 메일이 왔다는 건, 합병은 결국 진행된단 소리다.
또, 논의가 끝났는지 아닌지는 합병식이 열릴 장소가 예약 돼있는가, 아닌가.
이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터다.
난 자신만만한 얼굴로 정열성 매니저를 바라봤다.
“그럼 합병식 준비 같은 건 아직, 안하고 계신단 건가요?”
“그렇죠? 저희는 평상시와 똑같이 본래 업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치곤 내일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데.
과연 코코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내고 있는데, 내일만 그렇게 호들갑인 걸까?
당연히 아니겠지.
혹시 호텔 일정이 밝혀지더라도, 정 매니저로써는‘파악 못했다’ 말하면 그만이니까.
“좋아요 딜라스. 그럼 합병 준비 중이란 걸로, 기사 내보내도 되겠죠?”
“예······뭐, 기자님께서 쓰신다면야.”
정열성 매니저가 쓴웃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기사를 써도 되냐는 물음은 겉치레일 뿐이다.
어차피 기자가 하는 일이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 아닌가.
명백한 사실관계만 확인되면, 회사 측에선 기사 쓰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물론 감정에 읍소할 수야 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알아둘게요. 혹시나 달라진 부분이나 새로운 얘기 있으면 나중에라도 말씀해주세요.”
내가 정 매니저에게 당부했다.
물론 이런 말을 덧붙인다 해서, 정 매니저가 ‘앗 기자님, 새로운 사실이 나타났습니다!’라고 전화를 걸 확률은 0에 가깝지만.
“네, 그럴게요. 주 기자님, 근데 기사는 오늘 내보내실 건가요?”
내일과 코코아의 인수합병.
당연히 업계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일거다.
그만큼 기자들도 이 이슈에 집중할 터.
코코아나 내일 쪽 언론대응 팀, 즉 홍보팀의 전화는 끝없이 울리겠지.
정열성 매니저는 그걸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까딱 잘못하면 퇴근하려다가도 기자들의 전화응대하면서 저녁을 보내는 수가 있으니.
“어어- 아마도요.”
그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더라도 별 수 있나.
난 이미 정열성 매니저에게 합병을 인지하고 있단 사실을 밝혔다.
되도록 빨리 기사를 내지 않으면 다른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순식간에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다.
“네. 그럼 전 빨리 올라가봐야겠네요. 기자님,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연락드리고 찾아뵙도록 할게요.”
상황파악을 마친 정 매니저가 자리를 마치자며 일어섰다.
나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끌어낼 건 모두 끌어냈다.
판교까지 온 것 치고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이룬 나로써 불만은 없었다.
“네 딜라스, 잘 들어가세요.”
코코아 본사로 돌아가는 정열성 매니저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그 뒤, 난 바로 보안업체인 강랩의 기자실로 이동했다.
“응, 영기씨. 호텔 쪽은 어때.”
난 사람 없는 빈 기자실에 홀로 자릴 잡고, 바로 영기에게 전활 걸었다.
-네 선배! 저기 저, 대답 들었어요!
“어? 어딘지 알아냈단 소리야?”
흥분한 영기의 목소리에 내가 반응했다.
-네! 이스턴선 호텔이에요! 코코아 행사가 며칠이냐고 물어봤더니, 누구시냐고 해서······
“뭐라고 했어?”
혹시나 영기가 솔직하게 굴었을까 싶어 물었다.
그가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팀장에게 굴었던 모습을 떠올리면, 충분히 걱정할 만 했다.
-그냥 코코아 직원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알려주더라고요.
“웬일이야. 잘했어 영기씨.”
-코코아 직원이라고 했다고 뭐 잘못 되진 않겠죠?
소심한 영기의 목소리가 이어서 흘러나왔다.
나는 픽 웃어버리곤, 걱정 말라며 대답했다.
“그럴 일 없어. 아무튼 잘했어. 멘트 딴 건 나한테 보내줄래? 아까 찍은 사진이랑 같이.”
-네넵.
“그리고 정보보고 작성한 뒤 보내줘. 이후엔 사무실로 복귀하고. 알았지?”
난 수습기자에게 할 당부를 모두 마친 뒤에 전활 끊었다.
영기는 곧 호텔 직원의 증언과 내일코코아 CI가 찍힌 사진을 메신저로 보냈다.
‘자, 그럼 또 특종이다.’
내 목표는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기사를 완성시켜 송고하는 것.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발제기사만큼의 공을 들일 시간은 없었다.
난 노트북에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켜고 정신없이 타자를 쳐댔다.
[코코아 관계자는 “각사 대표들이 내일-코코아의 합병에 대해 논의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발문을 지나, 가장 중요한 당사 관계자 멘트로 기사는 시작된다.
[내일 측 관계자도 “부서이동에 따른 새 인사배치가 진행 중”이라며······]
지하철로 이동 중에 적어뒀던 내일커뮤니케이션 강수경 팀장의 말도 기사에 포함시켰다.
내일과 코코아. 두 기업 관계자의 멘트가 들어가야만, 이 기사는 설득력을 얻는다.
정열성 매니저와 대화로 얻은 해석, '메이버 대항 연합군' 내용도 넣었다.
이어서 난 이스턴선 호텔 관계자 멘트를 더해, 합병식 행사가 예정돼 있음을 알린다.
마지막 화룡정점. 그건 박영기가 찍은 내일코코아의 새로운 CI 사진이다.
[내일커뮤니케이션 사무실서 찍은 내일코코아 CI로고 / 사진 박영기 기자]
난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의 설명을 달았다.
5시 50분. 자신과 약속한 시간의 10분이 남았을 때.
난 기사를 두 번 검토한 뒤, 바로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올렸다.
[팀장, 내일코코아 합병 기사 올렸습니다.]
난 김정효 팀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하루, 본래 계획했던 일정과 많이 틀어졌다.
하지만 이런 선물을 준다면 그도 나무라진 않을 터다.
[응, 확인할게. 수고했다.]
김정효 팀장의 답장이 내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됐다.
“후우.”
한시름 놓은 난, 오늘 하루 놓친 뉴스는 없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웹 포털 사이트, 메이버 뉴스홈에 접속해 IT분야의 기사목록을 훑었다.
내가 미리 봤던 보도 자료들이 주를 이뤘고, 취재기사는 드물었다.
아쉽지만 우리 매체의 기사는 이곳에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분명 올라올 수 있겠지.’
그건 내 희망사항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스를 보는 수단이 바로 포털의 뉴스홈이다.
거기에 내 이름이 박힌 기사가 올라온다.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들떠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정효 팀장이었다.
“네, 팀장.”
-어. 진형아. 기사 봤다. 이거 어떻게 알아 낸 거냐? 행사 장소까지 알아내다니, 너 신이라도 들렸어?
김 팀장의 어조는 의심이라기보다는 경이로움에 가까웠다.
“하하. 오늘 만난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팀장 말 덕분입니다. 그건 정보보고로 올리겠습니다.”
-그래, 진짜 수고했다. 요즘 네 덕에 얼굴 들고 다닌다. 참, 기사는 출고했어. 따로 연락하지 말고 퇴근해라.
“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난 메이버에 바로 기사를 검색하기로 했다.
[내일 코코아]
검색어를 입력하자, 결과 화면에 내 기사가 가장 먼저 떠올라 있었다.
[[단독]내일-코코아, 합병 준비중...IT공룡 탄생하나 – 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기사엔 내 이름과 영기의 이름이 함께 달려있다. 이는 내가 적어놓은 거였다.
보통 공동취재를 한 기사의 경우, 이렇게 함께한 기자들의 이름을 같이 적어놓는다.
영기도 취재에 큰 도움을 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영기씨, 우리 기사 지금 출고됐으니까 한 번 봐봐.]
난 영기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5분 뒤.
영기로부터 답신이 왔다.
[읽었습니다. 선배 감사합니다. 제 이름도 넣어주셔서.]
[당연 한 거야. 같이 취재한 거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선배!]
그래, 영기는 내 기대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 실수를 한 두 번 하더라도 눈감아주리라, 난 그렇게 다짐했다.
정보보고를 작성해 팀장에게 보낸 후, 난 짐을 챙겨 기자실을 나왔다.
강랩 사옥을 나와 건너 건물을 보자, 코코아 본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고마웠다. 코코아.”
난 그렇게 실없는 한마디를 내뱉은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움직였다.
내가 영등포의 고시텔 방으로 돌아온 건 오후 7시가 다 돼 서였다.
지하철을 타는 동안 내내 인파사이에 껴있었던 탓인지, 몸이 꽤 지쳐있었다.
고시텔 문을 열자, 답답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후우, 공기청정기라도 하나 사야 되나.”
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은 뒤, 바로 의자에 앉았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노트북을 꺼내 책상에 놓는다.
웹브라우저 화면이 들어오자마자 난 메이버에서 기사를 검색했다.
[내일과 코코아 합친다...내일코코아 탄생]
[국민 메신저 코코아톡, 포털 내일 한 몸 된다]
[코코아-내일, 한 배 탄다...인수합병 전망]
기사가 나간 지 이제 1시간 여.
그 사이 수많은 우라까이 기사들이 등장해 있었다.
난 베낀 기사들을 하나씩 읽으며, 혹시나 전문을 베꼈거나 촬영사진을 무단게재하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내가 일부러 [단독] 문구까지 넣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저렇게 추노를 박아두면 다른 기자들이 함부로 기사를 베끼기 어려워한다.
난 죽 쒀서 개주는 꼴은 겪고 싶지 않다.
‘별 문젠 없네.’
어느 정도 안심한 난, 디지털투모로우 기사작성기에 접속했다.
[[단독]내일-코코아, 합병 준비중...IT공룡 탄생하나 – 주진형 기자, 박영기 기자]
[조회수 6만 4,325]
“어? 한 시간 만에 6만!?”
내가 놀라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벽 너머로 쿵쿵, 조용히 하란 신호가 돌아왔다.
‘아차. 아니 아무튼, 한 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 6만이야?’
실감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난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갤 저었다.
그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010-50XX-XXX7]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누구지?’
또 옆방 사람이 시끄럽다며 벽을 칠까봐, 난 급히 고시텔 방을 나섰다.
“네, 여보세요.”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난 전화를 받았다.
-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님이시죠?
처음 듣는 의문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러나 곧 짐작은 갔다.
날 기자님이라고 부르는 부류라면, 기업 홍보팀이겠지.
“예. 주진형 기자입니다. 누구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전 코코아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이적우라고 합니다.
“아-아 네. 에······엣!?”
내 목소리가 계단 아래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