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2화 (12/107)

12. 기자님 오셨는데, 다 인사드려야죠

난 고시텔 옥상에 발을 디뎠다.

저녁 하늘엔 달이 떠있었다.

숨을 내쉬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적우 대표님이시라구요?”

-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적우 코코아 대표와는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가 맞는지 난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코코아 대표가 왜 나한테 전화를?

아무리 내일코코아 합병 기사를 썼다지만, 대표까지 나설 일은 아니었을 텐데.

“아, 아뇨. 좀 당황스럽네요. 이적우 대표님이 전화주실 만한 일이 없는데.”

-하하하. 주 기자님, 오늘 내신 기사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합병 기사요.”

-네에. 놀랐습니다. 꽤 자세하게 쓰셨더라구요.

“뭐 운 좋게 알게 돼서요.”

난 웃음기를 섞어 가볍게 대답했다.

사실, 처음 코코아 대표란 소릴 들었을 땐, 어깨부터 목까지 경직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긴장은 풀려갔다.

상대가 코코아의 대표라곤 해도, 어차피 난 기자다.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관심 가져주신 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러 전화 드렸습니다.

“······예?”

그 기사에, 코코아 대표가 감사할만한 이유가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하하. 저희가 메이버 측과 경쟁하기 위한 인수합병으로, 긍정적인 방안이라고 분석하셨더군요.

“예에. 뭐, 관계자 시선도 그랬고.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코코아는 모바일의 강자이나 웹기반은 전무하다.

몇 가지 앱 서비스를 웹서도 사용가능 하도록 구현은 해놨지만, 제한적인 수준이고.

반대로 내일 쪽은 웹의 능력치를 모바일 앱으로 모두 끌어오질 못했다.

메이버가 ‘메이버앱’이라는 하나의 앱을 통해 수많은 국내 이용자를 묶어두는 것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지금은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저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부분.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유를 솔직하게 밝히긴 어렵단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뭐 전 해야 할 일은 한 것 뿐 입니다. 감사는요.”

난 최대한 들뜬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며 답했다.

기업 대표로부터의 감사인사. 그것도 국내 톱 IT기업.

내 우상인 광피리, 김광필 기자 또한 이런 일을 몇 번이고 겪었겠지.

처음 겪는 나로써는 굉장히 감격스런 일이었다.

-참, 기자님. 이미 확인하셨겠지만 저희가 곧 합병식을 열 예정입니다. 그때 꼭 참석해주십시오.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내가 도리어 흥분했다.

“당연히 가야죠! 초대장만 보내주시면 꼭 가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러면 합병식 날 뵙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코코아 잘 봐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내 인사를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난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된 이적우 대표의 연락처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010-50XX-XXX7]

명함조차 교환하지 못한, 일면식 없는 사이.

그럼에도 우린 서로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

과연 대한민국 기자들 중에 이적우 대표의 연락처를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거의 없겠지. 근데 이거 정말 이적우 대표 전화는 맞겠지?’

아직도 얼떨떨했다.

어쩐지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불길한 생각 때문에 더더욱. 실감이 나질 않았다.

“뭐, 내일이면 다 알게 되겠지. 하-.”

난 고시텔 옥상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달, 참 밝다.”

지방서 대학을 졸업한 뒤.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고시텔로 들어 온지도 1년여.

그동안 이곳에서 내가 봐왔던 서울의 밤중, 오늘 달이 가장 밝았다.

[네, 주 기자님. 저희 대표님 전화번호 맞습니다. 어제 연락 받으셨다면서요?]

다음날, 난 출근길에 코코아 정열성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받은 전화의 주인이 정말 이적우 대표가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맞구나. 허.’

그제야 나도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오오, 디지털투모로우의 태양! 주진형 기자!”

회사 사무실에 들어서자 이윤철 대표가 나를 맞았다.

입사 이래로 이 사람이 나보다 빨리 회사에 와있는 건 처음이다.

놀란 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엇,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그래! 주 기자. 어제 기사 정말 대박이었어. 아주 잘했어.”

“과찬이십니다. 저 말고 박영기씨도 크게 도왔습니다.”

“아이고, 겸손까지. 나도 알어~ 박영기, 그 사람이 짐이나 안 되면 다행이지. 저 아무튼, 이렇게 일찍 온 건 주 기자한테 줄게 있어서.”

이 대표가 그 말과 함께 가슴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월급 말고 다른 걸 준다고?’

난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궁금함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난번에 김 팀장 통해서 인센티브는 받았지?”

“아, 네. 받았습니다.”

“뭐 이건 인센티브같은 건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이야.”

오글거리는 대사를 읊으며 이 대표가 내민 건, 흰 봉투였다.

수년 간 이곳에 몸담았던 선배들이 치를 떨 만큼, 자린고비인 이 대표다.

‘설마 돈이 들었겠어?’

난 봉투를 받아들고 조심스레 확인해봤다.

접혀진 봉투의 입구를 펼쳐서 안을 들여다보자, 거기엔 빳빳한 문화상품권이 여러 장 들어있었다.

‘그럼 그렇지.’

물론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문화상품권은 작년 말 주최했던 컨퍼런스 당시, 사은품으로 쓰고 남은 거였다.

이 대표는 돈 들지 않는 선물을 택한 거다.

난 실망감을 감춘 채, 이 대표에게 고갤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선물을 줬으니, 고맙단 말을 해야지.

“오오, 별거 아냐 별거 아냐. 주 기자! 앞으로도 열심히 해줘요. 디지털투모로우와 함께 커보자고! 핫핫핫!”

별거 아닌 걸아는 사람이, 목소리엔 뿌듯함이 가득 차 있었다.

밉상이긴 했지만, 분명 아직까진 내게 고마운 사람이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뽑지 않았던 나. 그런 날 채용한 사람이니까.

[주진형 : 영기씨, 나 따라 1층으로 내려와.]

세 시간 뒤.

급한 오전업무를 처리한 난, 사내 메신저로 영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영기가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고갤 들어 나를 봤다.

난 그에게 눈짓으로 사무실 밖을 가리켰다.

고갤 끄덕이는 영길 확인하고 난 자리서 일어났다.

영기도 내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무슨 일이에요? 선배?”

“아, 나쁜 건 아니고. 일단 사무실서 나가고 말해줄게.”

승강기 안에서 영기가 물었지만, 아직 대답할 순 없었다.

사무실서 약간 떨어진 건물 안에 들어선 뒤에야, 난 영기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선배.”

“대표가 줬어. 문화상품권이야.”

영기가 신이 나 봉투를 열어봤다.

거기엔 문화상품권 5만원 어치가 들어있을 터.

대표가 준 문화상품권 10만 원 중, 반을 내가 거기에 넣었다.

“대표님이요?”

“어. 어제 기사 쓴 것 때문에 칭찬하고 싶었나 봐. 영기씨도 같이 취재했으니까 받아야지. 잘 써.”

“아 넵! 감사합니다. 선배.”

“뭘. 오늘도 같이 잘해보자고.”

“네, 넵!”

문화상품권 5만원에 사기가 올랐는지, 큰 목소리로 영기가 대답했다.

오늘은 어제 가려했던 KGT기자실로 직행하기로 했다.

딱히 특별한 일정은 없었고, 내일코코아 기사 이후 한동안은 몸을 사릴 작정이었다.

‘세 번 연속이면 됐어. 여기서 더 터트리면 괜한 의심만 사겠지.’

그동안 난 정말 발로 뛰며 기사를 써왔다. 취재흔적도 충분히 남겼다.

그럼에도 쉴 새 없이 특종을 낸다는 건 이상하다.

뭐 이윤철 대표야 별 다른 의심 없이 특종 내는 족족 좋아 날뛰겠지만.

적어도 김정효 팀장이나 다른 동종업계 기자들은 의아함을 품을지도 모른다.

“영기씨, 온 김에 KGT 홍보팀하고 인사나 하자.”

난 잠시 짬을 내, 영기를 KGT측에 소개하기로 했다.

나중엔 취재하느라 바빠, 영기를 챙길 시간이 없을 테니.

“호, 홍보팀이요?”

기자실 내 수많은 선배들 사이서, 주눅 든 채 주변을 살피던 영기가 반문했다.

아까의 기백은 어디가고, 사람을 만나자니까 급격한 거부반응이다.

“응. 전면 취재는 안하겠지만, 2진이니까 메일링도 가입해야 되고. 안면은 터야지. 괜찮아. 딱히 대화 같은 건 안 껴도 돼.”

“네, 넵.”

안심했는지, 영기가 놀란 표정을 바꿨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난, KGT 홍보실서 가장 만만한 박정태 과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어, 과장님. 저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 기자님! 어쩐 일이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박 과장은 심하게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전활 받았다.

“아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죠, 저야. 그나저나 과장님, 제 2진으로 들어온 기자 좀 소개하고 싶은데.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아아! 그러시구나. 네, 네. 어디계세요?

“지금 KGT 기자실이에요.”

-아, 기자실 오셨어요? 그럼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네. 그럼 안에서 기다릴게요.”

난 그렇게 얘길 하곤 전활 끊었다.

[주진형 : 영기씨, 조금 있다가 박정태 과장이 내려 올 거야. 명함 준비하고. 괜히 긴장 하지말고. 편한 사람이니까.]

[박영기 : 네 알겠습니다.]

난 다른 자리에 앉은 영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업계 관계자들 만나고 대하는 게 서툰 사람이었기에, 미리 주지시켜놔야 했다.

수 분 후. 기자실의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보도 자료를 정리하던 난, 박정태 과장이 왔나 싶어 고갤 돌려 확인했다.

“······뭐야 이 떼거지는.”

기자실 출입문으로 다수의 인원들이 들어오고 있는 게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전부 KGT 홍보2실 직원들이었다.

박정태 과장을 비롯해, 지난 번 식사를 같이한 강동우 차장 등 총 6명.

한 둘이 아니었기에 기자실 내 기자들도 이목을 집중했다.

“주진형 기자님?”

박정태 과장이 날 찾으며 이름을 불렀다.

‘오 이런.’

수많은 선배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름까지 불리다니.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네. 과장님.”

뜨악했지만 난 조용히 일어나 박 과장에게 다가갔다.

여러 시선들이 극도로 부담스러웠으나,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 거기 계셨군요. 주 기자님. 헤헤.”

“주 기자님. 잘 지내셨습니까?”

박 과장 옆에 서있던 강동우 차장이 손을 내밀었다.

KGT요금제 건으로 내게 무장해제 당했던 그다.

난 얼떨떨한 얼굴로 그와 악수하며 본심을 뱉었다.

“아 차장님. 안녕하세요. 근데······ 왜 이렇게 다들 몰려 오신건가요?”

내 물음에 강 차장이 산뜻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아유, 주 기자님 오셨는데, 다 인사드려야죠. 하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KGT요금제 기사 때문이라 해도 과하다.

고작 기자 한명, 아니 두 명 때문에 홍보실 전 업무를 중단하고 우르르 몰려오다니.

그것도 취재 일정이 아니라, 단순히 보도 자료를 작성할 2진 기자 소개 때문에?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내 얼굴 표정에 그런 생각들이 나타난 걸까.

박정태 과장이 화제를 돌렸다.

“참, 주 기자님. 소개시켜주신다던 기자 분은 어디 계세요?”

“아아- 잠시 만요.”

난 고갤 돌려 좌석에 앉아있는 영기를 봤다.

예상대로. 영기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절대불가’란 눈빛을 보내왔다.

‘에휴.’

나도 예상한 바가 전혀 아니었기에, 영기만 탓할 수도 없었다.

“아, 일단 나가서 얘기하시죠. 여기 다른 기자 분들한테 민폐인 것 같으니.”

“그럼, 그러실까요? 나가시죠.”

내 말에 강 차장이 재빨리 수긍했다.

그로써도 다른 경력 있는 기자들에게 밉보이고 싶진 않았을 거다.

난 홍보실 직원들과 기자실을 빠져나온 뒤, 전화로 영기를 불러냈다.

곧 잔뜩 굳은 표정의 영기가 복도로 나타났다.

영기가 직원들과 인사하며 명함을 나눈 뒤, 난 박정태 과장만 콕 집어 사내카페로 이동했다.

“아니 박 과장님, 2진 소개해준다니까 왜 직원 분들을 다 데리고 오셨어요.”

카페에 자릴 잡은 뒤, 난 박 과장을 추궁했다.

박 과장은 머쓱한 얼굴로 웃으며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아, 그게 말이죠. 저희 실장님이 다 가서 인사드리라고 하셔서요.”

“네? 실장님이요? -오영훈 홍보실장님?”

KGT 홍보실의 수장이자, 상무.

“네. 맞아요. 실장님은 회의 들어가셔서 못 오신다고, 대신 저희가 다 왔습니다. 하하.”

박정태 과장의 어딘가 모자란 웃음소리에, 난 얼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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