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식사나 대접해줘요. 비싼 곳에서 170828 수정
-주 기자님, 접니다. 김재승.
김재승 변호사의 목소리에 내가 곧장 화답했다.
“네 변호사님. 일은 잘 성사되셨습니까?”
-네. 인수금액 600억으로 확정됐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기사로 쓰실 사안에 대해선 잠시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사는 내일, 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 짧은 대화를 끝으로, 통화는 종료됐다.
별다른 내용은 없지만, 이제야 난 웃을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김 변호사의 확실한 의지가 느껴진 덕분이다.
‘어찌됐든 성공했다.’
난 요 며칠 함께 고생한 영기의 어깨를 토닥였다.
“되, 된 건가요?”
영기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응, 수고했어. 영기씨. 이제 기사만 쓰면 돼.”
다음날 오전 7시.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온라인 기사 작성기에 접속했다.
그리고 어제 미리 작성해 둔 기사를 작성기에 등록했다.
[딜리버리 빌런, 배달갑 600억 인수...조기요 한솥밥]
기사는 오후에 김재승 변호사가 알려준 내용들이 담겨있다.
총 600억에 배달갑 지분인수와 배달갑 사무실을 조기요 본사로 이전.
배달갑은 존속되지만 대표는 조기요 나원제 대표가 겸임하게 된다는 것까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닌 일일지라도, 업계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 이야기뿐이다.
특히나 아무것도 모른 채 출근할 배달갑 김대훈 현 대표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겠지.
솔직히 김 대표에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래도······ 고문이라는 직함을 준다하니, 명예는 지킨 걸까.’
난 유해보이던 김대훈 대표의 모습을 떠올렸다.
김재승 변호사에 따르면 딜리버리 빌런 측은, 김 대표를 조기요-배달갑의 고문직으로 임명할 계획이다.
김 대표도 보기 좋게 받아들이겠지.
“어 진형이, 뭘 그렇게 생각해?”
내가 멍하니 머릿속을 헤매고 있던 사이.
김정효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와 있었다.
“아, 팀장. 오셨습니까.”
“어. 뭐 고민거리 있어?”
“아닙니다. 기사 올려놨습니다. 배달갑 취재기사요.”
“오 드디어? 생각보다 빨랐네. 알았어. 바로 확인할게.”
김 팀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바로 노트북을 펼쳤다.
그는 한동안 집중해 화면을 응시했다.
10분 뒤, 김 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거 지금 다른 데는 아무도 안 쓴 기사지?”
흥분을 감췄지만, 역시 떨리는 목소리다.
난 고갤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 제가 아침에 오면서 확인해 봤는데, 비슷한 기사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럼 취재원 확보는? 확실하고?”
“네. 아주 확실합니다. 신원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김 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오케이. 좋아. 바로 출고하자. 빨리 낼수록 좋다. 지금 내도 문제없지?”
김재승 변호사가 요구한 보도유보 시한(엠바고)은 이미 지났다.
아침 일찍 이라고 해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
“네. 상관없습니다.”
“대표한테는 내가 바로 말할게.”
김 팀장은 대표에게 바로 전활 걸어 기사에 대해보고 했다.
2분 뒤, 상황을 파악한 대표의 허락이 떨어졌다.
동시에 기사는 웹으로 쏘아졌다.
[취재 주진형, 박영기 기자]
나와 영기의 이름을 기사작성자로 달고서.
“주진형 기자! 우리 주진형 기자!”
내가 오전업무를 정신없이 하는 도중, 이윤철 대표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 대표는 월드컵 16강 진출한 국가대표를 본 것처럼 소릴 지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오오! 주 기자아! 디지털투모로우의 태양!”
‘으, 오글거려.’
난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리서 일어났다.
이 대표가 마치 날 껴안을 것처럼 팔 벌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어? 주 기자! 주 기자가 또 해냈구나!”
“하하······. 저 말고도 박영기씨도 함께 했습니다.”
날 끌어안는 이 대표의 팔을 슬쩍 밀어내며 내가 대답했다.
뒤쪽에 앉아있던 영기는, 내 지명에 수줍게 고갤 숙여 웃음 지었다.
“그래, 그래! 두 사람 다 오늘 점심 일정 있어?”
“······없습니다.”
왠지 대답하기 싫었으나 하는 수 없다.
“좋아! 오늘 점심은 횡성갈비로 간다! 소고기 먹으러 가자!”
횡성갈비는 사무실 근처에 위치한 유명 한우음식점이다.
평소의 이 대표라면 절대 가지 않을 장소.
이 대표가 돈을 쓴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지난 번에 단독 기사 냈을 때에도, 한우 먹자는 소린 쉽게 안했던 그다.
“와아! 진짜요?”
짝짝짝.
경리팀 여직원들이 박수치며 환호했다.
“핫핫핫!”
박수 소리에 대표가 의기양양한 웃음소릴 냈다.
“이야, 내가 마이뉴스 박 대표한테 아침부터 축하전화까지 받고 말이야. 핫핫.”
‘그런 이유였나.’
마이뉴스24의 박호창 대표.
한국 온라인 신문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거물이다.
그런 거물로부터 기사를 통해 전활 받았으니, 이윤철 대표가 기쁠 만도 하다.
“주 기자, 박 대표가 주 기자 대단하다고 칭찬하더라. 내가 주 기자 덕분에 요새 어깨를 활짝 펴고 다닌다니까?”
난 귀를 쫑긋했다.
이윤철 대표가 어깨를 펴고 다니는 건,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박호창 대표가 날 칭찬했다는 것.
마이뉴스24는 온라인 언론사 중 대세에 속한다.
디지털투모로우와 비교하면 세 네 계단 위인 종합지다.
‘그쪽까지······ 내가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걸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이윤철 대표나 박호창 대표 모두 같은 전자뉴스 출신 기자로, 서로 친한 사이다.
박 대표 입장에선, 단순히 골골대던 디지털투모로우에서 볼만한 기사가 나온 걸 칭찬한 걸 수도 있다.
‘하긴, 뭐가 진심이든 계속 노력하면 세 계단 점프업도 꿈은 아니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입 꼬릴 살짝 올렸다.
그 때, 책상에 놔뒀던 내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휴대전화 화면을 봤다.
[배달갑 소민영 대리]
그래, 이쯤에서 연락 올 시간이 되긴 했다.
난 통화가 길어질 걸 예상하고, 전화길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네, 소 대리님. 주진형 기자입니다.”
-기자님! 배달갑 소민영 대립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소민영 대리가 말을 기관총처럼 쏟아냈다.
“네. 대리님.”
물론 소 대리가 배달갑 기사 때문에 직접 전활 걸었단 사실은 잘 안다.
그렇다고 내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줄 필요는 없다.
-기자님! 기사 봤습니다! 그거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그러셨구나. 네. 무슨 문제 있나요?”
-아, 아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구요. 혹시 이 기사 내용 누구한테 들으셨는지 좀 알 수 있을까요?
가능할 리가.
“아시다시피 취재원을 보호해야 돼서요. 관계자인건 확실하구요. 내용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아뇨, 아뇨! 잘못됐다기보다도······ 사실 저희도 아직 잘 모르는 내용이라 그래요.
소 대리가 내 말을 끊고 들어오더니, 자폭 선언을 해버렸다.
배달갑의 인수합병은 본인들 일인데, 정작 자신들이 모른다니.
얼마나 창피한 이야기인가.
“잘 모른다구요? 김대훈 대표님도 모른다고 하세요?”
짐작 하고 있었지만, 난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네에······. 그게 저 저희도 투자가 성사됐다는 얘기만 듣고 구체적인 건 잘 모르는 상태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황급히 연락한 모양이군.
본인들도 모르는 얘기가 언론에서 먼저 터져 나왔으니, 당황할 만도 하다.
“그러셨구나. 그래도 일단 취재원 공개는 어렵구요. 내용은 확실할 겁니다. 조기요 측 내용이니까요.”
뭐, 딜리버리 빌런이 곧 조기요니까 거짓말 한 건 아니다.
-조기요요?
“더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네요.”
-아뇨, 아뇨, 주 기자님. 주 기자님!
이틀 전만해도 연락은 홍보대행사 실장에게 취하라던 소 대리다.
그처럼 앙큼하게 굴었던 사람이 이젠 날 간절히 부르고 있다.
-저희가 정말 이사를 가게 되는 건가요? 대표님도 바뀌구요?
사실 확인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건지.
애처롭게 묻는 소 대리에게 난 대답했다.
“네. 제가 아는 한 확실한 정봅니다.”
-그럼 저희 저번 대표님 인터뷰는······
지금 이 상황에 인터뷰를 걱정하다니, 어떤 의미론 대단하다.
“아무래도 대표님이 바뀌시면, 내기가 좀 그렇죠. 저도 아쉽습니다.”
-아······
수화기 너머로 진심어린 탄식이 새어나오고 있다.
홍보팀 입사 후 처음 진행한 언론홍보 일에 실패해서 그런 걸까.
“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인터뷰 기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꼭 내고 싶구요.”
-네에······ 알겠습니다. 주 기자님, 제가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알고 싶은 부분을 모두 들었는지, 소 대리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러세요.”
통화가 끊어진 후, 난 실소했다.
직접 보지 않더라도 지금 배달갑 사무실이 어떤 상태일지 상상이 갔다.
‘그나저나- 김 대표는 인수에 대해서도 못들은 모양이군.’
사무실 이전이나 대표경질은 김상운 의장도 모르는 부분이니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러나 김 의장의 지분 매각에 대해서조차 모르는 눈치다.
‘엄청난 혼란이겠군.’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약간의 미안함은 있다.
허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게 내 잘못인 건 아니다.
게다가 난 분명 김대훈 대표에게 충고까지 했다.
-대표님도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헤쳐나가시기 바라겠습니다.
김 대표가 부디 이 말을 기억하고 있길 바랄 뿐이다.
점심식사 시간.
“자, 잔 들어요. 잔, 잔.”
여의도에 위치한 횡성갈비 식당 안.
독립된 넓은 방 하나를 차지한 디지털투모로우 직원들이 잔을 들었다.
원래라면 낮술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오늘만큼은 신이 난 이윤철 대표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었다.
“박 기자? 아까 나올 때 기사 조회 수가 얼마였죠?”
이 대표가 영기를 보며 질문했다.
하여간, 조회 수에 따른 광고 수입료를 생각한 거겠지.
“네, 넵. 11만 조금 넘었었습니다.”
기사가 출고된 지 4시간 정도.
그 사이에 11만 명 이상의 독자가 우리 기사를 본 거다.
지금껏 어떤 기사보다 관심도도 높았지만, 반응도 남달랐다.
우리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은 되나 게시는 되지 않는다.
즉 집접 디지털투모로우 사이트에 접속해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아야 한다.
그런 귀찮음을 무릅쓰고도 댓글을 적는 독자들이 꽤 있었다.
“캬아! 11만! 기사 하나로 거의 일주일 조회수가 나왔어요! 우리 고생한 주 기자, 박 기자 위해 건배!”
“건배!”
첫 잔을 모두 비운 후, 막내인 영기와 그의 동기들이 열심히 소고길 구웠다.
이 대표는 신이나 연신 술잔을 비웠다.
과한 음주에 김정효 팀장이 대표를 말릴 지경이었다.
영기는 다 구워진 고기를 집어서 내 접시에 올렸다.
“나 챙기지 말고 영기씨도 많이 먹어.”
“네, 네에.”
영기는 내 말에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동기들 사이서 혼자 선배에게 대접받는 단 사실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영기는 여태껏 날 잘 따라와 줬고, 취재에 많은 도움을 준 후배다.
내가 편애 아닌 편애를 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영기의 동기인 두 사람, 석호와 유정은 혼자서도 잘 기자 일에 적응하고 있다.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지.’
기사가 잘 나오지 않는 석호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알아서 잘하리라 믿기로 했다.
기자들, 사무실 직원들 다함께 시끌벅적 호화로운 식사를 끝낸 후.
이윤철 대표는 디지털투모로우 역사상 처음으로 십만 원 대의 점심식사 비용을 지불했다.
“소고기 먹고 힘내서 또 좋은 취재하라고! 알았지요오?”
신용카드를 손에 쥔 이 대표가, 계산대 앞에서 꼬인 혀로 외쳤다.
분명 몇 달간 소고기 사준 걸로 주구장창 생색내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진형아. 이거 가지고가서 커피 좀 사와라. 애들 데리고.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표 껀 됐어.”
가게를 나서며 김정효 팀장이 내게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넸다.
“알겠습니다.”
난 영기와 그 동기들을 데리고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에 들어갔다.
“나랑 팀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니까, 각자 마시고 싶은 거랑 같이 주문해줘.”
“네.”
영기에게 카드를 건네고, 음료가 준비되길 기다린다.
바리스타가 커피머신에서 샷을 내리고 있을 때.
내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이디넷 김예인 기자 010-23XX-XX78]
김예인이다.
잊고 있었던 인물의 연락과 함께, 우리의 내기도 팟, 떠올랐다.
난 통화버튼을 눌러 예인에게 인사했다.
“여보세요. 김 기자.”
-졌네요. 축하해요.
전화를 받는 순간, 다짜고짜 무감정하고 짧은 두 마디가 흘러나왔다.
‘진짜 4차원스럽다.’
난 피식 웃었다.
이젠 예인의 이런 행태도 조금은 익숙해진 모양이다.
“그래요. 기사 봤어요? 김 기자 기사는 아직이죠?”
-네.
“그럼, 약속했던 대로 내 소원하나 들어주는 건가요?”
-알았어요. 원하는 게 뭔데요.
알았어요, 라니.
본인의 의지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다.
‘뭐 상관없지. 난 뜯어먹을 거만 생각하면 되니까.’
패자의 의사 따위, 내가 고려할 부분이 아니다.
“좋아요······ 그럼 식사나 대접해줘요. 아주 비싼 곳에서.”
자축하는 의미의 값비싼 요리와, 패자를 농락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후후. 날 다신 보고 싶지 않게 만들어주지.’
큭큭, 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