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면접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
티마 인수참여를 놓고, 안 그래도 시끄러운 유메프다.
지금도 거짓말쟁이 이미지가 씌워진 상황에, ‘인턴갑질’ 이라니.
진실이 뭐건 간에 악재가 겹치는 일이다.
‘그렇다 해도 내가 걱정해줄 부분은 아니지.’
난 언론사 기자일 뿐, 사보(회사간행물)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런 특 대형 사건은 놓칠 이유가 하나 없다.
‘앞으로 일주일 뒤인가.’
난 이메일 제목 옆에 표시된 발송날짜를 확인했다.
정확히 오늘로부터 일주일 후, 모두가 주목할 만한 사건이 터지는 거다.
난 휴대전화 화면을 눈 가까이 두고, 다시 한 번 보도 자료를 확인했다.
내용을 보면, 논란에 휘말릴 대상자들은 지금 시점엔 MD채용 평가를 받고 있다.
‘3차 면접이 2주간 진행되는 실전평가라니.’
유메프에 게시할 새 상품을 계약하기 뛰어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소셜커머스의 최전방 요원 MD, 상품기획자의 역할이니까.
‘뭐 유메프 측 주장대로라면 해고는 아니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2주간 근무를 시켜놓고 한 명도 안 뽑는 다는 건 너무한 처사지.’
아직 자세한 사정이나 내막은 아직 알지 못하기에 단정 지을 순 없다.
그럼에도 이건 확실히 논란이 일 수 있는 내용이다.
‘자, 그럼 이 11명의 면접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문제인데······’
보고 있던 휴대전활 내려놓고 골똘히 생각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면접자들을 무작정 찾아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유메프 측에 직접적으로 취재요청하기엔 명분이 없다.
대외적 분위기가 나쁜 상황에, 유메프가 취재를 받아들일지도 미지수고.
‘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보를 알고 있다 해도, 무턱대고 돌진할 수 없으니 난감하다.
‘······!’
순간적으로 내 뇌를 스치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에둘러 접근해가는 방법이.
“영기씨.”
난 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는 영기를 불렀다.
한창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하던 영기가 내게 고갤 돌렸다.
“네? 선배.”
“영기씨, 기사 어느 정도 쓸 줄 알지?”
“기사요? 네.”
영기가 입사한지는 이제 두 달 가까이 된 상태.
나와 붙어 다니기 전, 기본적인 기사 작성은 김정효 팀장에게 교육 받은 것으로 안다.
“그럼 연습 삼아서 혼자 취재하고 기사 써볼래?”
“넷!? 저 혼자서요?”
당연히 영기는 당황한다.
그간 좀 나아졌다곤 해도 사람 대하는 것 서툴고, 소심한 건 여전하니까.
“음, 형식적으론 혼자 하는 거지만, 내가 충분히 서포트 할거야. 취재나 기사 모두 주체적으로 영기씨가 하는 것뿐이고.”
“그, 그럼?”
“동행은 할게. 방해는 하지 않고. 필요한 게 있으면 돕고. 어때?”
어차피 영기를 기자로써 키우려면 이런 시기도 있어야한다.
“······그럼, 하, 할게요.”
잠시 머뭇거리며 고민하던 영기가 결국 승락했다.
“오케이. 그럼 팀장한테 보고 할게.”
“네, 넵.”
난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김정효 팀장에게 곧장 전화했다.
몇 번의 수신음이 울린 뒤, 팀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진형아. 무슨 일이야. 기사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팀장. 영기씨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영기? 왜? 뭐 잘못했어?
“그런 건 아니구요. 지금 티마 인수 건은 또 소식 나오기까지 텀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 여유 있을 때 영기씨 취재 교육 좀 시켜 볼까 합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김 팀장이 우호적인 말투로 답했다.
-어어, 그렇지. 이제 예비입찰 마감한 거니까. 본 입찰까지 또 시일 걸리지. 그래 알았어. 근데 뭘 어떻게 하게?
“그래도 유메프나 티마 쪽을 주시는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기씨한테 소셜커머스 관련 기사를 하나 내도록 하겠습니다. 혼자 취재하고 기사 쓰도록 하고. 저는 옆에서 도와주다가 다른 사건 터지면 그쪽으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음······ 좋아, 일단 난 찬성이다. 대표한테 말해볼게.
신입을 기자답게 만들어보겠다는 얘기다.
이를 김 팀장이 거부할 리가 없지.
난 밝게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고생해라.
“네.”
김정효 팀장과 전화통화를 끊은 지 3분 뒤.
코코아톡으로 최종결론이 전달됐다.
[김정효 : 대표도 허락했다. 네가 영기 잘 좀 리드해줘라.]
[주진형 : 네, 알겠습니다]
난 다시 영기에게 입을 열었다.
“이야긴 대충 들어서 알겠지? 영기씨, 소셜커머스를 취재 할 거야.”
“유메프, 티마 말하시는 거죠?”
“어어. 주제는 내가 집어 줄게. 내일 연락해서 일정잡자.”
“아, 알겠습니다!”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퇴근 후, 저녁.
고시텔 방으로 돌아온 난, 씻은 후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내 머릿속은 온통 유메프 ‘인턴갑질’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참 어떻게 취재해나갈지 생각하던 중,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010-XX27-52XX]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연락처다.
일단 전화를 받기로 했다.
“네, 여보세요. 주진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주진형 기자님. 티켓마스터 송강욱 홍보실장입니다.
“송강욱 실장님이요?”
난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티마를 담당한지도 꽤 됐는데,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네. 그간 담당기자이신데도 제가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 어······그러게요. 실장님을 한 번도 못 봐서, 계신지 몰랐는데.”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본 적이 없고, 있는 줄 몰랐다.
난 여태껏 김서정 팀장이 티마 내에서 가장 높은 직책의 홍보인원인줄로 알았다.
내 머릿속 티마 홍보팀이, 홍보실로 격상됐다.
-네. 제가 좀 바빠서······많은 기자 분들과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그러셨군요.”
느낌이 온다.
바빠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3류 잡종 매체 기자는 직접 관리하지 않았단 소리다.
-오늘 김 팀장에게 문의 주신 게 있다고 하던데. 바로 확인 못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아, 그것 때문에 연락 주셨습니까?”
설마 이제 와서 답변해주겠다는 건가 싶었다.
이미 기사는 나갔고, 딱히 반박도 없었다.
뒷북을 쳐도 한 참 후에 치는 꼴이다.
-핫핫, 뭐 겸사겸사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주 기자님, 괜찮으시면 근시일 내에 함께 식사자리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저희가 풀어드려야 할 오해도 있고, 아무래도 차근차근 설명해드리려면 날을 잡고 뵙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의도가 뻔히 보이는 식사 권유다.
하지만 송 실장의 말투가 워낙 부드러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원치 않는 기사를 내보내서 그렇겠지.’
저렇게 날 의식한다는 느낌을 팍팍 주는 건, 자신들이 기 싸움에서 졌다는 신호다.
마음을 굳힌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시죠. 시기는 금주나 다음 주 내로. 자세한 날짜는 일정 확인 후에 연락드리죠.”
-네. 그래주시겠습니까.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난 송강욱 실장과 통화를 끊은 후, 왼쪽 입 꼬릴 올려 웃었다.
‘흐응, 이거 무슨 소릴 할지- 기대 되는데.’
그리고 다음날 오전, 사무실.
영기가 자리에 앉아 처음으로 전화길 귀에 대고 있다.
내가 지시한대로 유메프 김 봄 대리에게 전화하려는 거다.
[주진형 : 김 봄 대리에게 오늘 어떠시냐, 많이 바쁘냐고부터 물어봐.]
난 사내 메신저를 이용해 영기에게 지시를 내리기로 했다.
곧, 전화가 연결됐는지 영기가 입을 열었다.
“아, 김 봄 대리님. 저, 저 박영기 기자입니다.”
한껏 떨리는 음성이 긴장했음을 알려준다.
“예? 아,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입니다. 저, 저번에 한번 주, 주진형 선배와 뵀었는데.”
말을 더듬는 것만 빼면 꽤 잘하고 있다.
“아, 네, 네 맞아요. 오, 오늘 어떠세요? 아, 아 그런 말이 아니구요.”
‘어이쿠. 저런.’
뭔가 말의 뉘앙스를 잘못 전달한 모양이다.
난 급히 타자를 쳤다.
[주진형 : 티마 인수 관련해서 바쁘시지 않냐, 물어봐.]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영기가 말을 이었다.
“요, 요즘 티마 인수 관련해서 바쁘시지 않으세요? 아, 아 이제 괜찮으세요?”
[주진형 : 그럼, 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고 해. 소셜커머스 상품 큐레이션 관련해서 MD분들 취재 좀 하고 싶다고]
내가 쓴 대본대로 영기가 읊어나갔다.
“그, 그럼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소셜커머스 상품 큐레이션 관련해서 MD분들 취재를 하고 싶거든요······아, 그래요?”
‘이번엔 또 뭔데?’
[주진형 : 왜, 무슨 일이야?]
내가 메시지를 보내자, 영기가 통화를 유지한 채 답장을 쳤다.
[박영기 : 김봄 대리가 물어볼 내용을 MD에게 대신 전달해주겠다는 데요? 답도 받아오고]
나 대신 영기를 움직이는 이유는, 바로 이런 대응을 우회하기 위해서다.
보통, 기업은 홍보팀 외의 부서원과 기자를 접촉시키지 않으려 한다.
기자들도 홍보팀이 정제해서 정보나 자료를 갖다 주는 게 편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웬만해선 실무진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은 그렇게 해선 취재가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직접 접촉해야 돼.’
목표인 11인의 MD채용 면접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해당부서 실무자를 직접 볼 기회가 필요하다.
난 빠르게 답장했다.
[주진형 : 안 돼. 봄 대리한테 직접 취재하고 싶다고 해. 단순히 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취재 경험을 쌓기 위한 거라고.]
누가 봐도 신입태가 확 나는 영기다.
그걸 역으로 이용해 보자는 거다.
메시지를 본 영기가 통화를 이어나갔다.
“아······지, 직접 취재하고 싶은데요. 이거 취재 경험 쌓기 위한 거라······ 네. 네? 정확히 어떤 거냐구요?”
영기의 반응만 듣고도 유메프 측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 것 같다.
민감하지 않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기사 주제 인지 파악하려는 거다.
[주진형 : 소셜커머스 상품 선정 기준과 과정, 기사 제목은 “소셜커머스, 상품 이렇게 올린다”]
내 의도를 파악한 영기가 곧장 메시지를 읽었다.
“소, 소셜커머스 상품 이렇게 올린다. 라고요. 소셜커머스 상품 선정 기준과 과정. 네 그, 그 부분을 알아 보려구요.”
[주진형 : MD 직접 인터뷰해서 사실감을 높일 거라고 해]
“어, MD 직접 인터뷰로 사실감을 높일 거, 겁니다. ······네, 네.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연락주세요!”
드디어 통화가 끝났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영기에게 바로 다가갔다.
“어떻게 됐어? 잘 풀렸어?”
“네, 넵. 가능한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 준다고 하네요.”
아직 확정적인 소식은 아니군.
“좋아. 되든 안 되든 우선 영기씨는 유메프로 이동해.”
“네? 저, 저 혼자서요?”
“응. 1층 카페 있지. 거기서 보도자료 작성하고 있어. 난 오후에 갈게.”
“아, 알겠습니다.”
영기를 미리 보내놓는 건, 혹시나 유메프 홍보팀에서 협조를 거절할까 싶어서다.
기자가 사내에 얼굴을 비추고 있으면, 홍보팀으로썬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열심히 얼굴도장 찍는 기자들에게 더 잘해주게 되는 건, 당연 한 거다.
이렇게 하는데도 유메프 측이 거절한다면, 그 땐 막무가내 식으로 휘젓고 다녀야겠지.
그러니까 어쨌든 영기는 유메프로 가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난 오전 11시가 되자마자 김정효 팀장에게 외근 보고를 올렸다.
사무실을 빠져나온 후, 여의도에서 장도현 과장과 짧게 만났다.
이후 지하철을 타, 삼성역으로 이동했다.
“영기씨, 홍보팀 사람들하곤 못 만났어?
30분 후 도착한 유메프 빌딩.
영기는 1층 카페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것도 무척 어색한 모습으로.
“아, 선배, 오셨어요. 네넵, 아직 못 봤어요.”
우연히라도 마주치길 바랐지만, 실패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작전이다.
“영기씨, 식사는 아직 안 먹었지?”
“네,”
이제 오전 11시 40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직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럼 식사해야지. 사람 부르자.”
“예? 누굴······”
난 영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활 꺼냈다.
그리고 전화통화를 걸었다.
“네, 주진형 기자에요. 식사 아직 이시죠? 저 본사인데 점심이나 함께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