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또 한 번 언론홍역을 치르겠군
여전히 인터넷엔 유메프 측 의견이 담긴 기사는 등장하지 않았다.
나 외에도 분명 유메프에 물어본 기자들이 있을 텐데 의아했다.
‘아니면 나처럼 티마 측 의견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난 고갤 들고 KGT 기자실을 한 바퀴 훑었다.
통신담당 기자들이 많긴 하지만, 인터넷 담당 기자들이 없진 않다.
대부분 눈에 익은 선배 기자들은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흐음, 나도 거의 다 쓰긴 했는데······’
노트북 속 워드프로세서에는 5문단으로 구성된 기사가 표시돼 있었다.
[이런 유메프 측의 반론에 대해 티마 관계자는]
맨 마지막 문단의 문장에서 커서는 멈춰 있다.
티마 김서정 팀장의 대답을 듣고 나서 추가로 적을 부분이었다.
‘이제 곧 10분이 지나는데, 연락 올 기미가 보이질 않네.’
난 반응 없는 휴대전화만 내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10초, 30초, 1분.
생각보다 빠르게 제한시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났다.’
내가 김 팀장에게 제안했던 10분이 막 넘어갔다.
난 한숨을 내쉬고 30초를 더 기다려봤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다.
[이런 유메프 측 반론에 대해 티마는 대답을 피했다]
김서정 팀장은 분명 내게 ‘알려주겠다’고 대답하긴 했다.
하지만 난 제한시간을 뒀고, 그건 무리한 제약이 아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고의적으로 대답을 피하고 있다는 거다.
난 완성한 기사를 온라인 작성기에 옮겨 붙였다.
[인수의향서 놓고 의견 엇갈린 티마와 유메프 –주진형 기자]
제목까지 붙인 뒤 그대로 송고했다.
[주진형 : 팀장, 티마하고 유메프 기사 올렸습니다.]
[김정효 : 오케이.]
코코아톡으로 김정효 팀장에게 보고했으니, 이제 기사가 출고되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잠시후,
[김정효 : 진형아. 티마 쪽에서 아직도 연락 없어?]
기사를 다 읽어봤는지 김 팀장이 내게 물어왔다.
[주진형 : 네 팀장. 아직 연락없습니다. 한 번 더 물어볼까요?]
[김정효 : 아니다. 알았어. 지금 출고할게.]
[주진형 : 네.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대로, 곧 기사가 출고됐다.
난 노트북 웹브라우저로 포털 메이버 사이트에 접속했다.
‘티마’로 검색어를 입력해 결과를 봤다.
[티마 “유메프 인수의향서 안냈다...인수는 거짓”]
└[유메프, 티마 인수의향서 안냈나...왜?]
└[티마 “유메프 예비입찰자 명단에 없다”]
└[유메프 티마 인수 거짓이었나, 의향서 제출X]
[인수의향서 놓고 의견 엇갈린 티마와 유메프 –주진형 기자]
기존에 검색되던 기사들 아래에 새롭게 내 기사가 떠 있었다.
기사가 나간지 5분도 되지 않았을 때, 유메프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메프 이일형 팀장]
새로 팀장으로 들어온 이일형 팀장의 전화였다.
“네, 이 팀장님. 주진형입니다.”
-아, 주 기자님! 기사 봤습니다. 감사해요. 저희 쪽 의견 나간 게 없는데 이렇게 실어주셔서.
들어 온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부터, 고생하고 있는 게 보인다.
난 웃으면서 대답했다.
“뭘요. 사실 확인하고 기사 쓴 것뿐인데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저희가 인수생각도 없으면서 무슨 티마를 능욕하는 언론플레이를 했다느니, 자본력 자랑한다느니 말 나오고 있는데. 진짜 답답하네요.
저런 식의 말들을 퍼트리는 주범은 아마 티마겠지.
하지만 딱히 이에 대해 논하며 동조해줄 필욘 없다.
난 그저 이 팀장에게 약간의 위로만 던졌다.
“저런, 많이 바쁘시겠어요.”
-네, 안 그래도 지금 기사 내셨던 기자 분들께 다 연락드리면서 수정요청 드리고 있어요. 하, 근데 쉽지 않네요.
포털 메인, 검색결과 상위에 노출된 기사만 대여섯 개가 넘는다.
노출되지 않았지만 출고 돼있는 기사의 수는 더 많다.
유메프 홍보팀 4명이서 그 매체에 전부 연락 중이란 얘기다.
김봄 대리와 김유동 대리가 죽어나가는 게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알겠습니다. 뭐 기사 나갔으니까 티마 측에서도 반응 있겠죠. 그때까지 고생하시구요.”
-네, 기자님. 제가 꼭 나중에 제대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이일형 팀장과 통화를 마친 뒤.
반응이 있을 거란 내 말과 달리, 티마 측으로부터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난 다시 전화를 걸까 했으나, 더 추궁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우린 다시 만나게 될 터다.
“영기씨, 지금 바쁜 거 있어?”
대충 티마 보도자료건을 마무리한 난, 다른 자리에 앉은 영기에게 다가갔다.
“아, 아뇨. 보도자료 쓰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거 아니면 잠시 쉬고 오자. 뭐라도 마실래?”
KGT 기자실 안엔 캡슐 커피머신이 있긴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그간 영기를 살펴 본 바, 이 사람도 커피를 마시진 않았다.
“넵. 좋아요.”
난 영기와 함께 기자실 출입문을 나서려했다.
그때,
“어, 주진형.”
한 남성의 목소리가 날 멈춰 세웠다.
뒤돌아보자, 그곳엔 내게 걸어오고 있는 최경태 선배가 있었다.
“앗 선배,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나와 영기가 허리 굽혀 인사하자, 경태 선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뭘 그렇게 폴더처럼 접혀. 그냥 말로만 해 말로만. 난 그런 거 싫어해.”
“하하, 알겠습니다.”
“너, 그날 잘 들어갔냐? 고작 고량주 몇 병 마셨다고 아주 훅 가버려 가지곤.”
고작 고량주 몇 병이라니.
마신 속도와 잔 수만 생각해도 충분히 치사량이다.
“잘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려다, 예인의 집이 떠올라 말을 흘렸다.
“뭘 잘 들어가 흐흐, 김예인이 너 데리고 가던데. 말짱하네. 별일 없었어?”
“에? 선배, 예인 선배와!?”
옆에서 영기가 더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날 입었던 옷 그대로 착용한 채 일어났습니다.”
난 선서를 하듯 오른 손바닥을 들고 말했다.
물론 서로 말을 놓게 됐다는, 사소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건 넘어가자.
“정말이야? 흐흐.”
“······네.”
이 아저씨가 남의 일이라고 너무 흥미위주로 대하는 거 아냐?
나도 반격에 들어갔다.
“아 선배 근데 너무하십니다. 그렇게 먹여놓고 두고 가시다뇨.”
“뭘, 김예인이 챙긴다니까 놔둔 거지. 그리고 너 우리 집 갔으면 들어가지도 못해. 나랑 같이 노숙해야 된다고.”
더 자세히 듣지 않아도 대충 이유는 알 것 같다.
“어쨌든 그날 김예인이 흑장미랍시고 너 대신 술도 마셔줬는데. 기억은 나냐?”
“네?”
기억이 나기는커녕 처음 듣는 소리다.
그 여자가 왜 나 대신 술을 마셔주나.
“근데 진짜 독하더라. 어떻게 앉은 그 자리로 고량주 4병을 다 비우냐.”
예인과의 술자릴 경험해 본 바가 있는 나로썬, 그다지 놀랄만한 소린 아니다.
“아까 저한텐 고작 고량주라고 하셨잖아요.”
“어허, 뭔 말꼬릴 잡어. 어쨌든, 걔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허참, 성격이 좀 이상하긴 해도 그렇게 예쁜 애가 뭐가 아쉬워서 널······”
‘조금 이상합니까?’
지적해야 될 부분이 굉장히 많지만, 귀찮으니까 가장 중요한 걸 반박하자.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하게 하세요. 저도 나름 잘생긴 축에-”
“그렇다고 하자.”
이거 왠지 부정당한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아무튼, 지금 나가십니까?”
난 화제를 돌렸다.
“아니, 너 보이기에 말 걸어봤다. 참, 방금 네 기사도 봤어.”
“아, 보셨습니까.”
내가 반색했다.
“어, 잘 썼던데? 나도 티마 쪽에 답 달라고 해놨는데, 30분 되도록 답이 없어.”
역시 나만 연락을 못 받은 게 아니었다.
티마 홍보팀은 반론에 대해 무 대응으로 일관할 셈인 모양이다.
“저도 그렇습니다.”
“재밌게 돌아가네, 소셜커머스 판. 한동안 진짜 지루했는데 말이야. 이제 좀 시끄러워지겠어?”
경태 선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사태가 지속되리라 보는 것 같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티마 예비입찰이 시작되면 본 입찰까지 또 파란만장 할 테니까.’
인수예정자가 2-3곳으로 압축될 때까지, 한동안 기습적으로 기사가 튀어나올 거다.
보통 예비입찰은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린다.
“정보차단이 좀 세면, 인수확정까진 큰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한데요.”
난 조심스레 예견했다.
뭐, 예견이라기 보단 다른 쪽을 취재하고 싶은 희망사항에 가까웠지만.
“모르지. 지금 티마랑 유메프가 계속 이렇게 언론전 펼치면, 또 의외의 흥밋거리가 생기지 않겠냐.”
“그래도 전 이제 관심 그만 가지려구요. 다른 쪽 일도 봐야죠.”
“햐, 이 미친 탈곡기 녀석, 혼자 특종도 내고 털 거 다 털어봤다 이거냐?”
“하하, 그렇다기보다 제가 담당분야가 두개라 서요. 인터넷 말고 통신 쪽도 봐야 되고.”
내 속내는 경태 선배의 말에 가깝지만, 진짜 그렇다고 하긴 뭐했다.
담당분야가 두 개인 걸 이럴 때 또 써먹어야지.
“아, 정효가 그러더라. 네가 자처했다며? 옆에 애 안 내보내려고.”
“네?”
경태 선배의 말에 영기가 놀랐다.
“뭐야, 몰랐나보네? 넌 인마 진형이 한테 감사해야 돼.”
“아아, 아닙니다. 선배.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내가 재빨리 손사래 치며 부정했지만, 선배는 믿지 않는 눈치다.
“아니긴 뭘 아니야. 정효한테 다 들었는데. 아무튼 고생해라. 너네 매체 그나마 네가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경태 선배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대화가 오가다 보니, 급 피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나가자, 영기씨.”
“네, 넵!”
영기와 난 기자실을 나와 단 둘이 승강기를 탔다.
“선배, 사실인가요? 저 때문에 취재분야 두 개 맡은 거······”
승강기가 1층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영기가 내게 물어왔다.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순전히 영기만 좋은 일이라면, 난 하지 않았을 테니까.
“글세- 뭐. 영기씨가 혼자 취재가 안 되는 게 단초이긴 했어.”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선배.”
영기가 진심으로 내게 감사인사를 했다.
“아니, 고마워 할 건 없어. 나도 내 나름대로 영기씨가 필요했던 거니까. 알지? 잘 부려먹고 있는 거.”
내 잡일 담당으로 영기는 충분히 몫을 하고 있다.
뭐, 영기로썬 기자로써 성장이 더딘 게 문제지, 난 이 관계가 지속돼도 큰 문제없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래.”
우린 KGT 사내 카페에서 차와 음료를 구매한 뒤 휴식했다.
각자 휴대전화길 들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정도지만.
‘흠, 돈 모이는 속도가 꽤 빠르네.’
난 모바일뱅킹으로 내 은행계좌 잔액을 확인했다.
최근 장도현 과장과의 거래로, 거의 매주 예금액이 불어나고 있다.
[함께은행 주진형 예금액 22,560,000 원]
한 달 전만해도 월급을 아껴 모은 1천 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이젠 그 금액의 두 배 이상이 통장에 들어있다.
그만큼 내가 도현에게 공급한 정보의 수가 꽤 많았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미래의 자료를 간추려서 보내 준거다.
‘그리고 인센티브도 남아있지.’
도현에게 얘길 들어보니, 그가 근무 중인 법인영업본부는 자본력 있는 법인의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주식 매매 중개를 한다.
이때 증권사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의 일정 %로 브로커리지 수익을 받는다.
헌데 투자규모가 크다보니 수수료 퍼센트가 낮아도, 실제 받는 금액은 천 만 원 단위라고 한다.
‘작년 인센티브가 4억 원이었다니까. 올해는 적어도 10억 이상 벌어야 할 텐데 말이야.’
도현과 내가 계약한 수수료 배분은 6:4.
내가 60%를 가져가는 만큼 도현의 영업이 잘되길 바랄 뿐이다.
난 휴대전화 이메일 앱을 켜고, 도현에게 또 줄만한 정보가 없나 파악에 나섰다.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고······’
몇 개의 보도 자료를 갈무리하던 와중에,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했다.
날짜를 보아하니 바로 다음 주에서 날아온 이메일이었다.
“어?”
난 제목을 읽다가 황급히 메일을 클릭했다.
도저히 본문을 확인 안할 수가 없었다.
[MD채용과정에 생긴 ‘인턴 갑질 논란’에 대해 설명 드립니다 –유메프 홍보팀]
[안녕하십니까. 유메프 홍보실장 박지윤입니다. 금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인턴 전원해고’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희 MD채용 평가는 총 3단계로 진행했으며 마지막 3차 과정은 2주간 실전평가로······ 그렇기에 문제가 된 11명의 지원자 분들은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것일 뿐, 해고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고강도의 채용과정을 적용한 저희의 기준에 미달하지 못······]
빠르게 읽어나간 보도자료 내용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 유메프가 또 한 번 언론홍역을 치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