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그놈한테도 문자 보내. 네 기사 곧 나온다고
나로썬 영기의 판단이 옳다, 그르다 말할 권리가 없다.
경험자 본인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게 전부일 거다.
‘그래도 달라지겠다는 일념만큼은 지금 꼭 필요하니까. 잘됐다고 봐야지.’
난 이렇게 생각하며 영기를 돕기로 마음 먹었다.
“자 발제부터 들어가자, 그럼.”
카페 테이블 위에 서로의 노트북을 맞대놓고.
우린 기사 작성을 시작했다.
난 자료를 보고 기사의 뼈대를 얘기하고, 영기가 이를 구체화한다.
큰 그림을 내가 그리는 꼴이지만, 이 기사에 내 이름을 넣진 않을 예정이다.
“발제는 어떻게 할까요?”
“강렬해야 돼. 단순히 기사를 축약하는 것 이상으로 가보자. 사람들의 뇌리 팍, 꽂힐만한 걸로.”
그간 공들이지 않고 썼던 기사들과는 접근방식부터 다르다.
단순히 전문을 압축해 보여주는 수준으로 써내고 싶지 않았다.
커다란 이슈를 만들고 싶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문장이 필요한 거다.
“인터넷 방송이 폭력과 욕설로 물들었다? 어떤가요?”
영기가 의견을 제시했다.
“음. 나쁘지 않지만 아직 약해. 사람들이 화들짝 놀랄 만한 정도는 아니야.”
난 머릴 굴렸다.
폭력과 욕설, 선정성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누굴까.
‘······학부모들이겠지.’
자기 자식들이 나쁜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 걸 지극히 두려워하는 집단.
이 때문에 그들은 폭력적인 게임이나 만화를 백해무인한 악으로 낙인찍는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정말 거대하다.
“좋아. 청소년 학생들을 넣어서 만들어보자. ‘1인 방송 시대, 청소년들이 무분별한 폭력과 욕설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어때? 학부모들 겨냥해서.”
영기가 급히 내 말을 타자로 옮기며 대답했다.
“네, 좋아요.”
“그럼 도입은 문제가 된 방송들 상세내용 넣어줘. 중간에 인터넷 방송 보는 애들 인터뷰하나 따서 넣고. 사이에 영상 사례 하나 더 넣고, 보고 재밌다고 하는 댓글 반응들 첨부해.”
따닥따닥.
영기는 말 없이 기사 구성안을 노트북에 정리해 넣었다.
“마지막은 따로 방송하는 BJ들 멘트, 고글 관계자 멘트만 넣으면 돼. 자, 대충 잡혔지?”
기사의 처음과 중간, 끝이 모두 그려진 거다.
이제 이 기사에 필요한 재료를 더 모아 조합만 하면 된다.
“네. ······역시 선배에요. 이렇게 빨리 기사를 쓰시다니.”
“아직 쓴 건 아니지. 틀만 잡아논 거고. 영기씨랑 나랑 분담해서 멘트 따야지.”
지금 갖고있는 자료로도 충분히 기사 하나를 만들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질높은 기사를 내려면, 여러가지 의견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학생들, BJ들, 고글의 의견을 물어야 하는 거다.
“영기씨만 괜찮다면 내가 학생들 인터뷰를 따다 줄게. 나머지 BJ나 고글 측 의견은 영기씨가 전화로 물어보면 될거야.”
난 영기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실 이미 인터뷰를 마친 BJ측에 다시 연락을 한다는 건.
영기 입장으로썬 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미 취재했던 사안이 아닌, 다른 기사를 내기 위한 연락이니까.
‘BJ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달갑지 않은 소재기도 하고.’
뭐 모든 BJ들이 저질스런 방송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이란 테두리 자체가 욕을 먹을지도 모르는 사안이니까.
그들이 과민반응을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나서기도 뭐하다.
‘선 취재를 영기가 했는데, 나로 교체됐다고 할 수도 없고 말이지.’
난 영기에게 말을 덧붙였다.
“쪽팔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영기씨가 다시 연락하는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내 말을 들은 영기가 고갤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쪽팔릴 건 없어요.”
영기는 또 예상외의 담담함을 보인다.
정말 이 일에 사활을 건 듯 했다.
“오케이. 그럼 내가 오늘 오후 6시까지, 청소년 멘트는 보내줄게. 영기씬 BJ들 위주로 인터뷰해보고. 고글은 월요일날 아침에 물어보는 걸로 하자.”
“네.”
“기사는 일요일날 미리 써놓자. 고글 멘트만 받으면 바로 출고할 수 있게. 만약 고글 쪽 취재가 안되면 그냥 빼고 내도 되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내밀었다.
“힘내자, 영기씨.”
“······감사합니다. 선배.”
난 카페 의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가볼게. 일있으면 연락하고. 알았지?”
“네, 들어가세요.”
영기와 헤어진 후.
난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시텔 근처에 있는 PC방으로 향했다.
PC방 입구 문을 열자, 오랜만에 맡는 매캐묵은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약간 답답한 조명아래엔 게임하는 남성들의 뒤통수가 가득.
“아 답답해! 빼라고!”
“킬각, 킬각! 들어와!”
“힐힐! 힐 줘 힐!”
“정의가 빗발친다 새끼들아!”
예감했던 대로.
PC방 안에는 10대 청소년들이 득실댔다.
“게임하러 오셨어요?”
실내를 둘러보는 사이.
PC방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네. 한 시간이요.”
“카드 들고 가셔서 입력하시면 됩니다.”
직원이 계산대에 올려져있던 카드함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하나 집어 건넸다.
난 그 카드를 들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행히 내 옆좌석에 자리한 무리도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남자애들이었다.
“아 죽었잖아! 야 똑바로 안하냐 진짜?”
“지가 못해서 죽어놓고 정치질하고 있네.”
“아니 거든, 2:1이었거든?”
“그럼 빼야지 바보냐? 앙김우띠~”
‘어?’
분명 생소한 말인데도, 익숙한 그것.
‘앙김우띠’란 소리가 내 귓가에 꽂혔다.
“저기, 학생. 그 말 어디서 나온 말이야?”
“네?”
“앙김우띠라는 거 말이야.”
한 학생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날 보더니, 순순히 대답해줬다.
“그거 BJ 윤태현이라고 인방하는 사람이 주로 쓰는 말이에요.”
어쩐지.
이제야 앙김우티라는, 윤태현 방송의 채팅창 닉네임이 기억난다.
“무슨 뜻이야 그거?”
“아 아저씨. 바쁜데. 아 그거 기분 좋다는 뜻이에요. 일본야동에 나오잖아요. 앙 기무띠.”
허허 요놈 봐라.
아무렇지 않게 야동을 들먹이면서 설명해준다.
코웃음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BJ윤태현 걔 방송 욕설 많고 폭력적이잖아. 그런거 봐도 돼?”
난 아무렇지 않은 듯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저씨 완전 씹선비네? 봐도 돼죠 당근. 그게 무슨 19금 영상도 아니고.”
요즘 세대의 꼰대, 씹선비.
당연히 들어서 기분 좋을 거 하나 없는 단어다.
“그런건 왜 보는 거야?”
내 물음에도 학생은 모니터만 보며 입을 벌렸다.
“아 자꾸. 이것만 묻고 말걸지 마요. 그거 보면 속 시원해요. 좀 또라이같지만 재밌고.”
그렇게 20분 동안.
난 다른 학생들에게서까지 멘트를 다 얻어냈다.
‘이정도면 됐다.’
난 자리서 일어났다.
아직 이용시간은 남았지만, 나가기로 했다.
고시텔 방으로 돌아온 난 노트북을 펼치고 멘트를 정리했다.
[중학생들 또한 이런 폭력적인 콘텐츠를 아무 제한 없이 시청할 수 있었다]
[윤모씨의 인터넷방송을 즐겨본다는 한 남자 중학생은 “앙김우띠란 단어를 인터넷방송에서 배웠다”며 “일본야동에 나오는 말인데 기분 좋음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폭력적 영상을 시청하는 이유에 대해선 “속이 시원해진다”며 “이상하지만 재밌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평소 벨튀(벨누르고 도망치는) 방송을 많이 본다는 중학생 김모군은 “솔직히 웃기기도 하고 쫓아오는 사람들 반응이 재밌다”며 “직접 해보고 싶을 때도 있다”고 답했다]
다 작성한 문서파일은 영기에게 이메일로 전송했다.
그리고 영기에게 코코아톡 메시지를 넣었다.
[주진형 : 영기씨. 인터뷰 멘트 이메일로 보내놨어. 작성한 기사는 내일 오전까지 보내줘. 보고서 같이 수정하자]
메시지를 보낸지 얼마 안돼 영기의 답장이 날아왔다.
[박영기 : 네 알겠어요, 선배. 확인할게요]
영기의 메시지를 읽은 후.
난 좁은 고시텔 방, 침대에 다시 벌러덩 누웠다.
곰팡이 낀 천장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 하루, 쉬지 못했는데. 기분은 개운하네.’
주중에 시달리던 업무가 주말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영기는 내가 바랐던 대로, 담이 커졌다.
다음 주에 낼 기사야 말로, 녀석의 진정한 기자 데뷔기사 일거다.
‘윤태현이란 놈······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난 영기를 패던 윤태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꼭, 저지른 행동의 댓가를 치루게 할 거다.
이틀 뒤 월요일.
평소와 달리, 월요병이 없는 아침이었다.
난 상쾌한 정신과 신체를 이끌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어? 영기씨?”
늘 내가 가장 먼저 사무실 문을 열곤 했는데.
오늘은 영기가 먼저 와있었다.
“오셨어요, 선배.”
“일찍왔네? 웬일이야?”
“외신 빨리 처리하고 기사 준비해야죠.”
영기가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 얼굴에서 어느정도 자신감이 느껴진다.
주말동안 나와 영기는 전화로 의견을 나누며 기사를 작성하고 퇴고했다.
기사의 완성도는 95%.
남은 5%는 고글코리아의 답변으로 채워질 거다.
“드디어 영기씨가 아침마다 발제기사 써야하는 내 고충을 이해한 모양이네.”
난 농담조로 영기에게 말했다.
물론, 난 정말 발제 기사를 위해 일찍 출근하고 있다.
오전 업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내야, 발제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네······ 정말 그러네요. 선배는 매일매일 이러셨을 텐데.”
“이젠 뭐 익숙해졌지.”
난 노트북을 책상위에 놓으며 씩 웃었다.
영기도 언젠가 이 생활에 익숙해질 거다.
“선배 고글코리아 쪽 연락은······”
“영기씨가 하는 게 맞아. 영기씨 기사니까.”
그리고 난 미튜브 담당인 선주경 부장과 아직 대화하고 싶지 않다.
“일단 선주경 부장한테 문자 보내놔. 폭력적인 콘텐츠 때문에 물어볼게 있는데, 시간 날때 연락달라고.”
“네.”
영기는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두드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빠른 답이 올거라 생각은 안한다.
‘고글코리아도 오전엔 회의가 있을 테고.’
그렇게 생각했던 대로.
선주경 부장은 약 1시간 반 후에 영기에게 전활 했다.
“네 선 부장님.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입니다.”
영기와 선주경 부장의 대화가 이어진다.
먼저 영기가 내놓을 기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선 부장 쪽에서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긴, 좋은 기사 내달라고 미튜브BJ를 섭외해줬더니 폭력콘텐츠 운운하고 있으니.’
황당해할만 하다.
그래도 어쩌나.
콘텐츠 관리가 개판인건 한국 미튜브를 책임지고 있는 고글 잘못인데.
“네 오늘 기사 나갑니다. 아뇨. 오늘 발제기사라서요.”
뭐 굳이, 오늘 발제기사라는 것까지 밝힐 필욘 없다만.
난 영기가 선주경 부장에게 하는 말들을 일일이 코치하진 않기로 했다.
“네, 네.”
드디어 영기가 키보드에 손을 대고 치키 시작한다.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네, 알겠습니다.”
그저 겉만 번드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소릴 내놓은 거군.
영기는 그걸 받아서 기사 후미에 추가하고 있었다.
“네, 기사 나가면 말씀드릴게요. 들어가세요.”
영기와 선 부장의 통화가 끝나고.
난 사무실 자리서 일어나 영기에게 다가갔다.
“어때, 원하는 얘기 나왔어?”
“아, 아뇨. 선 부장은 윤태현 방송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자기가 미튜브 홍보담당인데, 모르면 어떡해?”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일단 문제점 파악하고 개선하겠다는 얘길 했습니다.”
어차피 고글 측 답변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얘네들은 기업 규모에 비해 홍보팀의 능력이 너무 아쉽다.
홍보대행사에게 보도자료만 만들게 해놓고, 별다른 언론대응을 못하는 느낌이 크다.
‘상관없지. 우리 회사도 아닌데.’
난 영기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어쨌든 이제 됐어 영기씨. 기사 송고하고, 팀장께 보고드려. 그리고-”
“네?”
“윤태현, 그놈한테도 문자 보내. 네 기사 곧 나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