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76화 (76/107)

76. 복수는 아직 시작도 안했어

“팀장, 발제기사 올렸습니다.”

영기가 자신있게 외쳤다.

그 얼굴엔 비장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어. 알았어. 볼게”

팀장의 대답을 들은 나도 온라인 기사작성기에 접속했다.

거기엔 영기의 기사가 출고대기로 올라와있었다.

[욕설․폭력은 기본··· 도 넘은 미튜브 방송 –박영기 기자]

내 이름이 박힌 기사는 아니지만,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가 큰 힘을 발휘하길.

난 진심으로 바랐다.

[선배 윤태현한테 문자 왔는데요 –박영기]

노트북 화면 한 편에 사내 메신저 창이 떴다.

영기가 보낸 메시지였다.

10분 전, 영기가 윤태현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의 답장이 온 모양이다.

[뭐라고? -주진형]

나도 메신저로 물었다.

[맘에 안들면 죽여버리겠다는데요 -박영기]

“풉.”

윤태현은 아직도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왔다.

“우리 주진형 기자 뭐가 그렇게 웃기나?”

멀찌기 대표석에 앉아있던 이윤철 대표가 내게 관심을 가졌다.

근무시간 중에 일은 안하고 무슨 재미난 걸 보다가 웃었냐, 이런 뜻이다.

“아, 아닙니다.”

난 대충 얼버무렸다.

뭐가 됐든 그다지 이 대표와 말을 섞을 사안은 아니다.

[무시해. 어차피 아무것도 못할테니까 –주진형]

단순히 영기를 위로하기 위한 메시지가 아니다.

정말 윤태현은 이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아무 짓도 못하게 될 거다.

‘모자이크 처리 확실하고, 실명언급 안돼있고······그럼에도 너인줄은 알테니까.’

이미 미튜브에 게시된 윤태현의 방송영상 대부분에 신고를 넣었다.

남은 건 기사가 나가고 난 후.

미튜브, 아니 고글의 반응에 달렸다.

“어, 영기야. 이리와봐.”

김정효 팀장이 영기를 불렀다.

“네.”

영기가 빠르게 일어나 팀장 자리로 이동했다.

“이 기사, 깔끔한데? 영기씨 혼자 쓴 거 맞아?”

김정효 팀장의 눈이 힐끔, 날 향한다.

본래부터 기사만큼은 어느정도 썼던 영기다.

하지만 당연히 익숙찮은 기사양식에 맞추느라 흠을 잡히곤 했다.

김 팀장 입장에선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갑자기 깔끔하게 다듬어진 완성본을 보게되니.

“사실, 진형 선배가 도와줬습니다.”

영기가 대답했다.

“진형아. 네가 같이 써준거야?”

저 말뜻은, 기사에 왜 내 이름을 넣지 않았냐는 거다.

같이 작업했다는 것도 알고있고, 기사도 도와줬는데.

왜 박영기 기자 단독으로 기사가 나가냐?

김정효 팀장이 꽤나 날 챙겨주려는 것 같다.

“아닙니다. 저는 검토만 좀 도와줬습니다. 기사는 영기씨가 혼자 다 썼습니다.”

취재에 약간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걸로 생색낼 맘은 없다.

“그래? 알았다. 어, 영기야. 기사 잘썼고. 앞으로도 이렇게 잘 해봐. 알았지?”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영기는 팀장에게 받아보는 첫 칭찬에 감격했다.

사실 지난 번 소셜커머스MD 기사는 초짜티가 많이 났다.

내가 검토해주긴 했지만 구성자체가 엉성해서, 한계가 있었다.

반면 오늘 기사는 내가 봐도 훌륭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냈던 기사들보다 잘 된 것 같은데.’

취재의 의도나 그 질, 그리고 구성까지.

기사가 대형 언론사 못지 않았던 거다.

“대표. 지금 박영기 기자 기사 확인 끝났습니다. 출고할까요?”

팀장이 이윤철 대표에게 가 물었다.

“고글하고 우리 관계가 어떻지?”

“별 거 없습니다. 진형이가 몇번 까는 기사 낸게 답니다.”

“그래? 그럼 기사 바로 내지요!”

이윤철 대표의 허락까지 모두 났다.

영기의 기사는 곧 포털사이트 등지로 전송됐다.

그리고, 그 기사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파장을 사회에 몰고왔다.

4시간 후.

을지로 SGT기자실.

“이거 메이저 언론사 제외하곤 거의 다 받아썼는데?”

난 영기와 함께 노트북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메이버 기사 검색결과,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미튜브 방송’]

[때리고 욕하고······심의없는 인터넷방송 논란]

[콘텐츠 관리 못하는 고글...미튜브 폭력영상 넘쳐]

[“우리 애들이 야동을?”미튜브 이대로 괜찮나]

영기의 기사를 우라까이한 매체가 수십군데.

물론 영기처럼 디테일한 취재기사는 아니었다.

단순히 미튜브 방송을 캡처해 기사쓴 것들이 대다수였다.

‘하긴 급하게 썼을 테니 따로 취재할 시간은 없었겠지.’

내 옆에 서있는 영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축하해 영기씨. 이거 화려한 데뷔식이네. 오늘 기사 우리 사이트 메인에도 실렸어. 이거 처음이지? 어디 찍어서 고이 모셔놔라.”

도넘은 미튜브 방송 기사가, 디지털투모로우 홈페이지 메인 기사를 장식했다.

이건 종이신문으로 치면 1면 헤드라인.

기자로썬 무척 영광스런 일이다.

“다······선배 덕분입니다······”

영기는 울먹이고 있었다.

난 순간 당황했다.

이 기쁜 순간에도 눈물을 흘리다니.

‘아니지, 기쁨의 눈물도 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내가 영기의 등을 두드렸다.

“울지마, 영기씨. 이정도 일에. 그리고 복수는 아직 시작도 안했어.”

“정말······ 선배 덕분에 이렇게 기사도 썼고. 선배 아니었으면 그냥 또 방에만 틀어박혀있었을거예요.”

“뭐, 그래. 내 덕분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잘해. 실망시키지 말고.”

“······네, 네!”

그나저나 기자실 안 시선들이 그리 곱지 않다.

다 큰 사내 둘이서 눈물 흘리며 보다듬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어선가.

“험험. 자 됐고. 고글 측에 내일 다시 연락해서 문제가 된 방송들 어떻게 처분하고 있는지 물어봐. 그래서 후속기사를 내자.”

여기서 멈춘다면 고글코리아가 조용히 넘겨버릴 수도 있다.  괜히 일을 키우면 미튜브조차 욕먹기 좋은 상황이니까.

그러니까 경고해야지.

덮을 생각 따윈 말라고.

“후속기사요?”

영기가 물었다.

“응. 이렇게 화제가 된 사안이 기사가 나간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알아볼 필요가 있지. 그리고 잘못된 방송을 한 BJ들의 처분도 확인해야하고.”

“아······ 네. 알겠어요.”

“그래. 우선 그걸 내일 발제로 하자.”

그렇게 영기에게 지시사항을 내리는 사이.

내 휴대전화에 진동이 왔다.

[010-X425-29XX]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응? 누구지.’

“영기씨, 자리로 돌아가 있어. 난 통화좀 하고 올게.”

모르는 번호인 것으로 봐선, 오래걸릴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일단 기자실 밖에서 전활 받기로 했다.

난 자리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면서 수신을 수락한다.

“네, 여보세요.”

통화가 연결됨과 동시에 내가 말했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 되지요?

어느정도 연륜이 있는 남성 목소리다.

그리고 명백하게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예. 맞습니다만. 누구신가요?”

정중하게 반문했다.

-마이뉴스24 박호창 대표입니다. 마이뉴스는 알지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내가 아는 친구가 자넬 눈독들이고 있더라고.

-몰랐나? 마이뉴스24 박호창 대표가 내 지인이네.

며칠 전 장 킴 대표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그게 현실로 이뤄진 거다.

물론 내가 김칫국부터 마시는 걸수도 있다.

하지만 매체 대표가 타사 기자에게 전화할 이유가 많던가?

“아,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요 그래. 내가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하고도 잘 알아요. 근데 그 사람한테 몰래 전화한 거예요. 주 기자한테.

박호창 대표의 말이, 내 추측에 신빙성을 더 심어주고 있다.

그렇지만 한 번 더 확인해보기로 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짐작했을지 모르겠지만. 주 기자를 좀 스카웃하고 싶은데. 요즘 화제가 되는 기사는 거의 주 기자 기사더군요. 취재력도 훌륭하고. 마이뉴스24에서 일해볼 생각 있어요? 주 기자 정도면 우리 마이뉴스에서 성장하면 정말 클 것 같은데 말이에요.

마이뉴스24.

국내 IT전문지 중 손에 꼽히는 언론사다.

종이신문으로 시작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자뉴스.

전문기자의 뛰어난 식견과 취재력을 보여주는 아이티타임즈.

미국의 유명IT매체 이디넷의 한국판인 이디넷코리아.

그리고 현재 IT전문지의 강자로 군림한 마이뉴스24.

디지털투모로우에서 두계단, 아니 세계단 점프해야 갈 수 있는 매체.

내가 간다면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 대접과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죄송합니다. 전 아직 1년도 안된 기자입니다.”

이뉴스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난 둥지를 옮길 처지가 아니다.

제안은 정말 고맙지만, 당장은 이직할 ‘신분’이 안된다.

-괜찮아요. 이윤철 대표한테 그 얘긴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아······그러십니까.”

이외의 대답이 나왔다.

내가 1년도 안된 기자란 걸 안다.

게다가 이윤철 대표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

그런데도 업계의 암묵적인 룰을 저버리고 날 데려오고 싶다는 거다.

“죄송한데, 제 마음이 힘듭니다.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1년 경력은 채워야 이직할 자격이 된다고 본다.

다른 기자 선배들 또한 같은 생각이고.

-지금 연봉의 1.5배를 줄게요.

“네!?”

기어이 놀란 목소릴 내고 만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갑자기 연봉을 50%인상해 주겠다니.

‘1년도 안된 신입기자에게 너무 과한 대우 아닌가?’

지금 내 연봉은 이쪽 업계 신입치고는 꽤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쪽 업계’라는 제약이 있어야 가능한 평이고.

실제론 대한민국 직장인들 평균 초봉정도.

거기서 1.5배를 곱하면, 대기업 초봉 수준으로 격상된다.

“······정말 과분한 말씀입니다만. 그래도 안될 것 같습니다. 아직 떠날만큼 회사에 보답도 못해드렸구요.”

나로썬 무척 고마운 제안이다.

그러나 역시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면, 벌써 이뉴스로 이직했을 거다.

차라리 주식에도 거침없이 손을 댔을 거고.

-그렇군요. 듣던대로 의리가 아주 좋아요. 끈질기게 얘긴 안할게요.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

박호창 대표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은 눈치였다.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박 대표와의 통화를 끝내고.

난 한동안 SGT기자실 밖을 서성였다.

지난 번 이뉴스에서 이직제의가 왔을 때에도 기뻤다.

허나 마이뉴스24의 제의는 차원을 달리한다.

내가 업계 주축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얘기니까.

‘그래, 조금만 더 참고. 그 뒤에 넘어가자.’

아직은 스스로 당당할 자신이 없다.

날 간신히 기자 역할하게 만들어준, 김정효 팀장께도 죄송하고.

3-4개월 정도만 버티면 난 떳떳하게 이직할 수 있게 되니까.

그때까지만 디지털투모로우에 남아있기로 했다.

퇴근 후 고시텔 방.

오랜만에 노트북으로 기사를 보는 대신, TV뉴스를 시청한다.

기자지만 평소 방송뉴스는 그리 보지 않던 나다.

일단 방송국은 속보전에서 인터넷매체에게 이길 수가 없다.

또 방송시간에 한계가있어 전문성을 느낄만큼 내용이 길지 못하다.

‘그래서 배울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가지 부러운 점은 있다.

가공할만한 파급력.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곤 하지만, 방송뉴스가 갖는 권위는 아직 건재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시청자 여러분 JDBC 뉴스룸을 시작하겠습니다]

유명 앵커가 뉴스방송을 시작한다.

금일 주요 뉴스가 2개 먼저 나간 뒤.

내가 기다렸던, 이야기가 전파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 1인 방송이 큰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터넷 방송엔 사실상 심의규정이나 시청규제가 없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강현아 기자가 자세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방송국놈들까지 영기 기사에 휘둘렸다는 게. 왜이렇게 웃기지.’

분명 오늘 기사가 나간 후.

JDBC에서 긴급 회의 소집해 취재를 했을 거다.

[최근 미튜브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한 BJ의 방송입니다]

앵커가 나와있는 데스크에서 화면 전환이 이뤄진다.

기자의 설명과 함께 곧 한 인터넷방송 영상이 모자이크 처리 돼 재생됐다.

음성도 마찬가지.

[아니 씨- 내가 왜 너같은 새-랑 통화를 해야 되냐? 이 빻- -아.]

삐-처리가 수번 반복되며 영상의 부적절함을 강조한다.

제대로 듣지 않아도, 눈살 찌푸려지는 말임이 분명하다.

[아 뭐 보시는 분들이 재밌어 하니까. 솔직히 선비들이나 뭐라 하는거지. 다들 웃고 넘겨요. 괜히 트집잡고 솔직히 존- 어이없다니까요?]

이어서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처리된 한 인터뷰어.

난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윤태현.

말투가 딱 그 녀석이었다.

[아, 진짜 노답새-들. 이거 뭐라한 기자—들 다 찌질이들 뿐일걸요?]

“푸핫하.”

윤태현이 기자들을 싸잡아 욕하는 장면.

난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JDBC에서 왜 저 영상을 실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자들이 아니니까. 신경을 건드렸다 이거지.’

내 예상대로.

다시 카메라는 데스크를 비춘다.

다음 소식은 ‘고글코리아, 미튜브 관리 엉망’이란 타이틀이었다.

[이런 영상들이 아무 문제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작 미튜브를 관리하는 고글코리아 측은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압박 들어간다.

토해내지 못하면 안될만큼 강한 압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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