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77화 (77/107)

77. 시작하면 철저히 끝을 봐야

고글코리아를 겨냥한 JDBC의 뉴스보도는 그대로 태풍이 됐다.

포털 사이트 뉴스기사엔, 수 만개의 댓글들이 달리고.

크고작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인터넷방송의 질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무분별한 인터넷방송을 옹호하는 자들과 비판하는 자들의 뒤섞여, 혼돈 그 자체였다.

“어제 JDBC 뉴스룸 봤냐?”

“아, 미튜브 깐거요?”

다음날 오후 KGT기자실.

내가 조용히 기자실에 앉아 보도자료를 쓰고있는 사이.

주변에서 다른 기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야 그거 디지털투모로우 애들이 취재한거잖아. 논조도 그대로 갔더라?”

그다지 귀기울여 듣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이름이 거론 되니 자동적으로 청각이 예민해진다.

“JDBC도 이슈되는 거 있으면 늘 그런 식이잖아요. 그래도 겉핥기로는 안갔던데.”

이 부분은 나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방송기자는 나름 이 업계에선 엘리트에 속한다.

그런 자들도 이렇게 우라까이를 잘 한다.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근데 그거 주진형이 쓴거 아니더라. 박영기? 첨듣는 이름이던데?”

“아 걔, 주진형이 데리고 다니던 2진일걸요.”

“그래? 그래서 그런가? 기사 스타일이 뭔가 주진형 같아.”

‘스타일이야 내가 퇴고했으니 그렇겠지. ······그보다 내 기사 스타일은 어떻게 아는거야?’

난 고갤 살짝 돌려 누군지 얼굴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들인데.’

시선의 끝엔 정말 낯선 인물 셋이서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디지털투모로우 애들 기고만장하겠는데? JDBC에서 받아쓴거나 다름없고.”

내가 조용히 코웃음 쳤다.

기고만장이라, 정말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아닌가.

‘지금 영기는 그런거 신경쓸 여력도 없다고.’

이 기자실엔 영기도 함께 들어와 있다.

녀석은 어제 내가 지시한 후속기사에 온힘을 다하고 있다.

타인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묵은 자신의 허물을 벗기 위해서다.

“네, 선 부장님.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입니다.”

앞자리에 앉은 영기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시기 좋게 고글 선주경 부장과 통화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주변에서 들리던 수군거림이 멎었다.

당사자들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단 걸, 이제야 깨달은 거다.

“네. 어제 기사보셨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네. 네. ······아, 그래요? 네. 네 알겠어요. 제가 확인해보고 바로 쓰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영기가 내뱉는 말만 들어보면, 꽤나 순조롭게 처리된 것 같다.

윤태현의 처분 말이다.

통화를 마친 영기가 내게 다가왔다.

통화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선배, 방금 선주경 부장하고 통화했는데 윤태현을 비롯해 신고접수된 BJ들꺼. 문제 방송은 다 차단시켰다고 하네요.”

영기의 말을 들은 난 일부러 목소릴 낮췄다.

다른 기자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란 의미다.

“그것뿐? 그냥 방송 몇개 차단하고 끝이래?”

내가 생각하기로 너무 약한 처벌이다.

뭔가 더 있길 바라며 영기에게 물었다.

“네, 거기다가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으로 광고수익을 더이상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하던데요. 지금까지 계산된 수익도 출금금지 될 거래요.”

“오호? 그렇게 됐어?”

원했던 소식에 내가 반색했다.

미튜브BJ들에게 가장 중요한 광고수익이 막힌다는 것.

사실상 윤태현이 미튜브서 더 이상 방송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거나 다름없다.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고도 상대를 그로기로 만든 거다.

“윤태현 입장에선 정말 빡치겠는데?”

자연스레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무래도 TV뉴스까지 탔으니.

고글코리아에서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겠지.

“고글 쪽에서 경고도 보냈데요. 위반사항이 또 적발될 경우 아예 계정정지될 수 있다고”

“아주 좋네. 잘됐어. 그대로 기사 써서 올리자”

“네.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대답한 영기가 제자리로 돌아간 후.

난 노트북으로 미튜브 사이트에 접속했다.

처벌이 이뤄졌다니, 그 결과를 직접 보고 싶었던 거다.

미튜브 검색창에 윤태현을 입력한다.

검색결과에 녀석의 채널이 떴다.

클릭해 들어가자 오늘 게시된 따끈따근한 공지영상이 날 반겼다.

[야 박영기 이 씨**아!]

‘이거 제목부터 아주 강렬한데?’

분노에 가득찬 윤태현의 기분이 잘 드러나있다.

내용은 대충 상상이 간다.

그래도 일단 감상해보기로 했다.

난 노트북에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안녕하십니까, 구독자 여러분. 윤태현입니다]

윤태현이 화를 삭이는 얼굴로 인사했다.

[제가 이렇게 오랜만에 공지를 올리게 됐는데요.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신고를 당했습니다. 어제 뉴스 나가고 나서 제 방송영상들이 다 차단됐습니다. 더 환장하는 건 제 광고수익까지 다 막혔습니다. 진짜 돌아버리겠습니다]

윤태현은 차분히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카메라 가까이 들이댄다.

[야 박영기 이 씨**아! 네가 한 거 다 안다! 너! 내가 진짜 죽이러 간다, 이 개* 새끼야! 구독자 여러분! 제가 그 장애인 새* 죽이는 것도 실시간으로 방송하겠습니다! 꼭 지켜봐주세요!]

‘워후, 이거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네.’

난 동영상을 일시정지 시켰다.

진짜로 영기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곤란하다.

이제야 오래된 트라우마를 걷어내고 날개를 펼쳐보려고 하고있다.

여러모로 필요한 인재가 돼 가는 영기의 팔이 꺾이게 둘 순 없지.

‘끝까지 가야겠는데······정말 끝까지.’

잠시 고민하던 난, 영상 하단에 표시된 신고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신고이유를 선택하는 창이 떴다.

[신고사유 : 증오 또는 악의적 콘텐츠]

지난 번, 고글 1인 개발자 기사를 준비하며 알게 된게 있다.

고글 시스템엔 일종의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

‘선주경 부장이 괜히 계정정지를 언급한게 아니겠지.’

이미 윤태현을 향한 고글의 경고는 한계치일 터.

지금 내 신고는 방아쇠가 될 거다.

[신고서를 제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고를 마무리하자, 노트북 화면에 완료 메시지가 뜬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영기에게 코코아톡 메시지를 보낸다.

[주진형 : 영기씨 지난번에 고글이 준 BJ연락처 명단있지. 그것좀 나한테 보내줘]

[박영기 : 네,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주진형 : 응 땡큐]

내 요청에 따라, 영기는 메일로 BJ연락처 목록을 보내왔다.

이를 보며 난 사악하게 웃었다.

그로부터 세시간 후.

난 노트북으로 출고된 영기 기사의 조회수를 확인했다.

[저질방송 칼 빼든 고글, 미튜브 관리개시 –박영기 기자]

[조회수 – 69,472]

후속기사는 단시간에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항중이었다.

아무래도 한 번 TV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사안이다.

그 덕분에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거겠지.

[주진형 : 조회수가 거의 7만이던데? 축하해 영기씨]

난 코코아톡 메시지로 영기를 축하했다.

기자실 앞자리에 앉아있던 영기가, 메시질 읽고 내게 웃어보인다.

[박영기 : 다 선배 덕분이죠.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 덕분이란 건 잘 아는 군.

나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영기에게 주기위해 준비한 선물이 몇개 더 있지.

[주진형 : 그나저나 윤태현 미튜브 채널 완전히 막힌 것 같던데? 왠줄 알아?]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영기에게 물었다.

[박영기 : 어? 정말요? 확인해볼게요]

답장이 온지 얼마 안되서.

영기는 선주경 부장에게 다시 전활 걸었다.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진상파악을 위해서다.

“어 선 부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잠시 선 부장과 통화하던 영기가, 노트북 타자를 두드린다.

[박영기 : 선배, 윤태현 미튜브 계정 영구 정지했다는데요?]

[주진형 : 뭐?]

난 이미 다 짐작하고 있던 얘기다.

세시간 전 내가 윤태현의 공지영상을 신고했을 때부터 말이지.

[박영기 : 윤태현, 삼진아웃으로 계정 영구정지 처분 받았대요]

영기는 이를 모른 채 친절히 내게 대답해준다.

선 부장 왈, 윤태현이 최신 영상을 통해 장애인 비하와 살인 협박 등을 내뱉었다.

이는 고글의 연속된 경고를 무시한 처사로, 강한 처벌을 하게 됐다는 거다.

계정 영구정지면, 윤태현은 두번 다시 미튜브에 발을 못붙인단 얘기다.

‘계정을 새로 만들어도 또 정지당할 거고.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해 계정을 만들어도 윤태현임이 밝혀지면 바로 정지겠지.’

즉, 윤태현은 이제 더이상 미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할 수조차 없다.

이게 바로 고글식 시스템이다.

아주 멋지고 더럽지.

[주진형 : 잘됐네. 영기씨. 기사 하나 더 쓰자]

[박영기 : 기사요?]

[주진형 : 그래. 윤태현 계정정지를 메인으로 말야. 이거면 한꼭지 값은 하지.]

본래 유명 미튜브BJ가 영구정지를 당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인기 BJ는 그 자신만 돈을 버는게 아니라, 플랫폼인 고글에게도 큰 수익원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쓰레기같은 콘텐츠를 내보내도 처벌하지 않았겠지만.

여론의 눈에 띈 이상, 고글코리아도 그전처럼은 넘길 수 없는 거다.

[박영기 : 근데······ 윤태현을 너무 괴롭히는 건 아닐까요?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영기에게서 다시 여린 소리가 나왔다.

상대는 여전히 모든 잘못을 당신에게 돌리며, 반성하지 않는데 말이다.

난 바로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타자를 쳤다.

마음이 약했기에 지금껏 당하고 살아왔잖은가.

허나 달라지기로 한 이상.

여기서 멈춰선 안된다.

[주진형 : 영기씨. 비단 이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뭘 취재하든. 시작하면 철저히 끝을 봐야돼. 이걸로 윤태현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해? 아니야. 방송 스트리밍 플랫폼은 미튜브만 있는게 아니야. 자리만 옮기면 윤태현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방송을 하겠지]

이건 단순히 영기를 설득하기 위한 내뱉는 말이 아니다.

윤태현이 재기할 가능성은 정말 충분한게 사실이니까.

인터넷 방송 플랫폼은 고글 미튜브 외에도 수 군데.

단순히 미튜브에서 영구퇴출 당한다해서, 윤태현이란 BJ가 ‘끝났다’고 볼 순 없다.

[주진형 : 정말 그런 꼴을 다시 보고 싶어?]

[박영기 : 아뇨······]

[주진형 : 내가 말했지. 탈곡기 가동 한 번 하자고. 아직 내 전원 안꺼졌어. 영기씨 당신도 만족의 강도를 더 높여]

[박영기 : ······네. 알겠어요]

내 맘을 이해했는지, 영기가 수긍했다.

그 직후 우린 인터넷방송 3번째 기사를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욕설논란 미튜브BJ, 계정 영구정지 됐다 –주진형, 박영기 기자]

포털에 공개된 우리 기사를 보며 내가 미소지었다.

난 이 기사에 처음으로 윤태현의 실명을 모두 실었다.

이전엔 윤모씨로만 칭했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알릴 때가 된 거다.

인터넷 방송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는 주범이 그놈이란 걸.

“어? 야 미튜브 계정 영구정지? 이거 뭐지?”

“선배, 그거 어제 윤모씨 걔 아니예요?”

“아! 이 디지털투모로우······!”

“진짜 독한놈들이네. 이번엔 BJ 실명도 공개했다.”

KGT기자실에 남아있던 타 매체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사실 이들 중에 윤태현의 존재를 알고있던 자들은 얼마 없었을 거다.

JDBC에서 윤태현을 인터뷰하긴 했으나, 모자이크에 음성변조였으니까.

내가 이를 공개했으니, 승냥이 떼들이 먹이를 발견한 격이다.

‘그래. 너희들도 날뛰어줘야 그림이 더 커지지.’

난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곧 오후 6시.

‘슬슬 나가야할 때가 됐군.’

난 내 자리에 놓인 짐들을 다 가방에 챙겨넣었다.

그리곤 영기에게 다가가 말했다.

“영기씨. 우리 퇴근하자.”

영기는 기사작성기에 접속해 조회수 추이를 살피고 있었다.

“어. 벌써요, 선배?”

평소보다 이른 퇴근.

영기가 의아하게 물어볼만 하다.

“팀장껜 보고드렸어. 오늘 기사 많이 썼으니 일찍 들어가도 좋다고 하신다.”

내 설명에 영기가 고갤 끄덕였다.

곧 나와 영기는 가방을 메고 KGT기자실을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쌤통이네, 윤태현. 이제 돈벌이 수단이 아예 없어져 버렸으니까. 어때, 영기씨. 이제 좀 개운하지 않아?”

승강기 앞에 서서, 내가 속시원하게 물어본다.

과거의 반성따윈 1도 없이, 인기 BJ로 살고 있던 윤태현.

그놈에게 기사로 저지른 죄의 값을 돌려준 거다.

‘사필귀정, 멋진 복수가 아닌가.’

“그러게요······ 그래도 아직 실감은 안나요. 그냥 기자가 아닌 저로써······, 해야 할일이 남은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

영기는 그리 기뻐보이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거,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복수를 하긴 했지만, 물리적인 반응이 없었으니.

아직 영기는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거다.

윤태현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윤태현을 극복해냈는지.

“영기씬 많이 달라졌어. 이전보다.”

승강기 문이 열린다.

난 승강기에 오르며 영기에게 말했다.

신촌에서 만난 후, 정말 영기는 눈에띄게 달라졌다.

“그래······야죠.”

뒤따라 영기도 탑승하고.

승강기는 1층을 향해 하강했다.

“마지막 관문이야. 이 일은. 넘어갈 준비 됐지?”

“네? ······아, 네.”

무슨 의미인지 모를 내 물음에, 영기가 얼떨떨하게 대답한다.

난 그에게 웃어보였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KGT본사 로비가 나왔다.

우리 둘이 천천히 정문을 향해 걸어나가는 순간.

퇴근시간, 광화문 거리에 가득찬 수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기이한 풍경에 영기가 얼어붙었다.

“뭐, 뭐지 이건.”

그런 영기를 놔두고, 난 휴대전화를 꺼냈다.

통화앱을 켜고, 한번 발신했던 연락처로 전활 걸었다.

“어디예요? 지금 방송 찍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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