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78화 (78/107)

78. 인생 실전이야. 이 조팝나무야

세종대왕상이 보이는 광화문 거리.

평소 이 시간엔 볼 수 없었던 인파가 KGT본사 앞에 몰려있었다.

둥글게 원을 형성한 사람들 가운데에 윤태현이 있다.

상의를 입지 않아 볼품없는 상체를 드러내놓고 말이다.

‘설마 사람들 관심끌려고 저렇게 온건가.’

무서울 정도로 이상한 놈이다.

난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태현?”

반면 영기의 동공은 커졌다.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저런 모습으로 있는지.

그로썬 짐작가지 않겠지.

실은 내가 불러낸 거다.

영기가 보내준 BJ연락처를 보고 연락했다.

-지금까지 계속 윤태현 찍고있었어요. 어디예요? 박영기 기자는?

“네, 지금 나갑니다. 준비하세요.”

내 통화상대는 JDBC 강현아 기자.

어제 윤태현 뉴스를 취재했던 사람이다.

나도 휴대전활 바지에 넣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저기 나왔네! 씨! 야 박영기!”

거리에 서있던 윤태현이 소리쳤다.

우리와 놈의 눈이 마주쳤다.

“어머, 기다리던 사람 나왔나봐.”

“무슨 일 저지르는 거아냐? 아까 막 죽인다고 했잖아.”

“말려야할 것 같은데.”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 소릴 무시하고, 윤태현은 성큼성큼 영기에게 다가왔다.

“박영기!”

분노 가득찬 욕설과 함께 윤태현이 영기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 찰나, 내가 가운데에 꼈다.

날아가던 주먹이 내 손에 붙잡힌다.

“이 새낀 또 뭐야. 야! 저리 안비켜?”

“무슨 짓을 하려고?”

윤태현이 자신의 손을 뺐다.

“아 이 찐따새끼. 어디 같잖은 새끼하나 데려와서 뒤에 숨네 또.”

윤태현은 기가 찬다는 듯, 영기를 조롱했다.

“야 이새끼 치워. 남자답게 맞다이뜨자고! 어?”

“······”

영기는 아무 말없이 윤태현의 고성을 듣고만 있었다.

난 힐끔 영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윤태현 방송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이 굳어있진 않다.

‘고민하고 있군.’

영기도 대충 직감하고 있을 거다.

이게 자신과 윤태현의 마지막 엮임이란 걸.

그렇기에 끝맺음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일단 내가 준비한 시나리오로 가볼까.’

난 영기를 등 뒤에 두고, 윤태현에게 썩소를 날렸다.

“지금 뭐 복수하러 여기 온건가? 미튜브 영구정지 당했다고?”

“이 씨······ 넌 또 뭔데 시비야? 그래, 내가 몇년간 해온 방송이 한 순간에 날아갔는데! 그럼 내가 저새낄 죽여야겠냐, 참아야겠냐!”

내 말에 윤태현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겠지.

이제 BJ로써 자리잡고 잘 살고 있는데, 삽시간에 폭망해버렸다.

그 원인으로 보이는 영기가 얼마나 밉겠는가.

‘근데, 너도 누군가의 인생을 망쳤었단 걸 알아야지.’

난 고갤 끄덕끄덕거리며 윤태현의 속을 긁었다.

“그딴 쓰레기 방송을 지금까지 문제없이 하고 있던게 이상한거야.”

“뭐? 하! 이 새끼도 이거 쳐돈 새끼네!”

어이 없다는 듯 윤태현이 코웃음쳤다.

난 그런 놈에게 피할 수 없는 도발을 건다.

“미안한데, 내가 박영기씨 직장상사거든. 당신 기사, 내가 쓰라고 한거야.”

“뭐?”

“서, 선배!”

내 말에 윤태현 뿐만 아니라 영기도 놀란다.

영기 입장에선 내가 위험하게 윤태현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일거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 계정 영구정지 당했지? 그거 내가 댁 공지영상 신고해서 그래.”

“에? 진짜에요 선배?”

“야이 씨!”

붉은천을 보고 흥분해 날뛰는 들소처럼.

윤태현이 내게 달려들었다.

홧김에 휘두르는 팔.

척봐도 능숙한 움직임은 전혀 아니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주먹이었지만 난 그대로 섰다.

대신 양팔을 올려 얼굴을 가린다.

“이 개같은 새끼!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윤태현은 쌓아놓은 분노를 해소하듯, 내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다 맞아내고 있지만 다행히 견딜만 했다.

‘아, 이거 뼈에 금은 안가겠지? 일부러 두껍게 입었는데도 아프네.’

얼굴은 다행히 맞지 않고 있지만, 발차기가 문제였다.

“그만해!”

드디어 영기가 내 앞으로 나왔다.

내게 날아오던 윤태현의 오른다리가, 영기의 양손에 붙들려있었다.

“윤태현, 그만 해.”

“야, 놔라. 안놔? 와, 이 호구새끼가 쳐돌았나! 확!”

윤태현이 한 대 치려는 듯 팔을 들었다.

영기는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치고 싶으면 때려! 예전처럼! 하지만, 이젠 그냥 맞고 있진 않을거야.”

굳건한 목소리엔 떨림이 없었다.

그간 내가 봐왔던, 움츠러들어있던 영기가 아니다.

“뭐?”

자신이 알던 영기의 모습이 아닌 탓일까.

윤태현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2년 이야. 너한테 괴롭힘당하고 애들한테 인간이하로 무시당하며 학교다닌게. 난 매일 아침이 지옥같았어.”

“찐따새끼가 별것도 아닌 옛날 얘기 꺼내면서 지랄하고 있네.”

‘그 별것도 아닌 옛날 얘기로 방송하며 낄낄대던 놈이 할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의 고통은 한 없이 크게 느껴지지만.

타인이 겪고있는 고통은 별 것 아닌 것럼 보이는 거다.

난 윤태현의 이중성을 보며 비웃었다.

영기는 이런 윤태현의 대답을 무시하곤, 말을 잇는다.

“그 때 널 죽이고 싶단 생각도 했었어. 그래도······ 학교만 졸업하면 되니까······ 널 안봐도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분 일초를 참고 버텼다고! 차라리 그때 내가 널 끊어냈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겠지! 이젠 나도 알았어!”

드디어 영기가 감정을 터트렸다.

10년도 넘게 묵혀왔을, 그 생각과 말들이 입 밖으로 토해냈다.

“아이고~ 개소리한다. 네까짓게 뭘 할 수 있는데? 뭐? 날 죽여? 건방진 새끼가 개허세 떨고있네.”

시답잖다는 듯, 윤태현은 영기를 무시했다.

‘······그래. 그런 시선을 평생 유지해라.’

자신이 타인보다 높다는 일종의 계급의식.

그거야 말로 건방진 생각이다.

난 통증을 참아내며 바지에 넣어뒀던 휴대전활 꺼냈다.

사실 내 전화기는 아직 통화중이다.

아까 로비서, JDBC 강현아 기자에게 전활 걸었던 그 때부터.

“-네, 선배. 네. 아까 불렀다구요? 예 알겠어요.”

“저 새낀 또 뭐하는 거야?”

“?”

내가 전화하는 모습을 보고 윤태현과 영기가 의아함을 표한다.

윤태현을 보며 난 씩 웃었다.

기다렸던 사람들이 드디어 인파를 헤치고 등장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얘길 들어보니까 인과응보가 이뤄졌을 뿐이구만. 잘못은 댁이 저질러놓고 왜 우리한테 그러지?”

“뭐 이새끼야?”

내 말에 윤태현이 다시 흥분했다.

주먹이 또 연신 날아든다.

난 다시 팔을 들고 그대로 그 폭력을 받았다.

그러다가 몸을 재빨리 웅크리고 연기하듯 소리친다.

“으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와, 이 등신 새끼! 왜! 쳐맞으니까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역시 매가 약이지! 앙김우띠다 새끼야!”

사태파악을 못한 윤태현이 웃는다.

그리곤 발로 내 등을 신나게 차기 시작했다.

“거기! 당장 멈춰요!”

낮고 거친 남성 목소리가 급박하게 고함을 쳤다.

누군가가 우리 일에 개입하려는 거다.

난 그게 지금껏 구경하던 관중들은 아니라 믿었다.

“아오! 이 새끼야! 왜 나대! 왜! 깝치는데! 어? 뭔데 찐따새끼들이!”

“아니, 멈추라니깐!”

윤태현은 멈추라는 명령을 들은체도 않고 계속 날 구타했다.

나로썬 아주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야, 이거 안되겠다! 잡어!”

다른 남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윤태현의 발길질이 멈춘다.

“아씨! 놔! 뭐야! 놓으라고!”

당황한 윤태현의 말이 들리고.

“당신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묵비권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의 말이 재판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변호사 선임할 수 있어요. 가만히!”

그제야 나도 고갤 들고 확인한다.

역시나 내가 기다렸던 경찰, 네명이 우리에게 달려와있었다.

경찰들은 윤태현의 몸을 구속 중이었다.

윤태현은 그들을 있는 힘껏 밀치며 반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아 씨! 이거 놔! 야 이 새끼들아! 내가 억울한 사람인데 왜 날 잡아!”

“좀 가만히 있어! 공무집행방해죄 얹히기 전에!”

날선 경찰의 윽박에 윤태현도 결국 체념하고 말았다.

“아! 내 발로 걸어간다고!”

그래도 여전히 자존심은 세우고 있었다.

“서, 선배! 괜찮으세요?”

영기가 날 일으켜세웠다.

내 겉옷은 윤태현의 발길질로 더럽혀졌다.

등은 뭐랄까,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저릿한 통증이 있었다.

“어, 괜찮아. 이정돈 아무것도 아냐.”

난 옷을 털어내며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 몸 이곳저곳이 엉망이긴 했지만.

“내 얼굴, 흠집난 데는 없지?”

“네 선배. 얼굴은 멀쩡해요.”

“다행이네. 멍든 얼굴로 취재다니긴 싫었는데.”

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차도 쪽을 봤다.

경찰차로 끌려간 윤태현은 뒷좌석에 실려들어갔다.

경찰 한명이 다시 내쪽으로 달려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서에 동행해 주셔야겠는데요”

기다려왔던 클라이막스가 찾아온거다.

종로경찰서.

진술은 간단하게 이뤄졌다.

윤태현이 현행범으로 체포된데다가, 명백한 증거자료가 내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와 이 새끼 이거 신명나게도 때렸네.”

난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영상을 경찰에게 넘겼다.

JDBC가 카메라로 촬영해 내게 준 자료다.

나와 영기가 KGT본사 건물을 나서는 순간 부터.

경찰들이 와서 윤태현을 끌고가는 장면까지 찍혀있었다.

“증거 확실하네. 어떻게 하실거예요? 더 시간 들일 필요없는 것 같은데.”

영상재생이 끝난 후.

내 맞은편 자리에 앉은 형사가 물었다.

그가 내게 휴대전활 돌려준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난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 윤태현을 보며 질문했다.

녀석은 날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합의 하실 수도 있고요. 안하시면 병원가서 진단서 끊으시고 제출하시면 됩니다. 그럼 검찰로 송치되구요. 단순폭행이라, 형은 길어야 2년, 벌금은 최대 500만원. 근데 사이즈를 따악 보니까 이거 2년 나오겠는데? 보복폭행 증거 충분하고, 폭력강도를 봐선.”

“2년, 2년이요?”

징역 2년.

경찰의 설명을 들은 윤태현이 되물었다.

놈의 눈빛이 단박에 변해린다.

내겐 아주 즐거운 광경이다.

“영기씬, 어떻게 생각해.”

난 왼쪽으로 고갤 돌렸다.

영기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 응시했다.

“합의를 하는게 낫겠어? 아니면, 그냥 국가의 부름을 받게 할까? 2년이면 뭐. 군대 다시 가는 정도네?”

최대 형이 2년이라니.

실제론 그리 길게 나오진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저······”

영기가 운을 뗐다.

“가능하면 잠깐 윤태현한테 다시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그렇게 하기로 했나.’

영기가 마음 약해져 용서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대로.

난 받아들일 생각이다.

허나 상황을 잘 지켜봐야겠지.

윤태현이 과연 영기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래. 얘기해봐.”

내 허락을 들은 영기가 고갤 돌려 윤태현에게 말을 건다.

“넌······ 정말 나한테 미안하단 생각이 안들어?”

“······”

“넌 네 기분이 틀어지면 날 차고 욕하고······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놓고 그 모든걸 다 내 잘못인양 말했잖아. 정말 그런거야?”

“어- 아니야. 아니야 영기야. 다 내가 잘못했다.”

너무 빠른 태세전환에 난 황당할 정도였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새어나왔다.

윤태현이 자존심을 다 버리고 영기에게 설설 기고 있었다.

“내가, 내가 진짜 잘못했어. 생각해보니까 진짜 나쁜놈이었던 것 같다. 미, 미안하다 영기야. 내가 왜그랬을까? 네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야. 그냥 좀······답답해서 그랬어. 알잖아 인마. 내가 좀 너같은 애들 보면 그냥 못지나가. 너 사람답게 만들어줄라고 그런거야.”

헤헤, 헤실거리며 윤태현이 변명을 쏟아낸다.

가만히 듣고있던 내 이마에 힘줄이 새겨졌다.

지금 위기모면한답시고 저딴 소릴 내뱉는 건가.

“그게 아니라 짜증나서 거슬렸겠지. 나도 댁같은 인간 많이 봤어.”

내가 결국 입을 열었다.

내 말에 윤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부정은 하지 않는다.

내 말이 맘에 들지 않아도, 반박해선 안된단 걸 인지하고 있는거다.

“자기 기분이 나쁘단 이유로, 잘못되지 않은 것들을 향해 억지를 부리고, 폭력을 쓴다는 게 넌센스야. 그거야말로 잘못된 거지.”

나도 이런 유형의 인간들과 다투고 싸웠던 경험이 있다.

그 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약간은 진심이 담긴걸까.

윤태현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난 다시 영기에게 시선을 줬다.

영기는 복잡한 눈동자로 그런 윤태현을 보고 있었다.

“정말 간단하네요. 과정도 사과도.”

“-그렇지?”

영기의 중얼거림에 내가 대답했다.

고작 이정도 사과.

그걸론 영기가 겪은 기나긴 고통의 세월을 모두 보상받지 못할 거다.

“난 너때문에······몇년을 폐인처럼 지냈어.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어. 너한테 당했던 것 처럼, 다른 애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시당할까 두려웠어.”

영기의 대인기피증이란 것.

윤태현이 만들어낸 공포였던 거다.

“근데 지금 그게 너무 우스워졌어. 정말 별것 아니었던 거야. 내가 그렇게 고통받았던 게. 그것도 이렇게 별것 아닌 놈 때문에 말이야.”

난 알아차렸다.

드디어 영기가 마음 속 짐, 윤태현을 덜어냈다는 걸.

“네가 방금 전에 물었지. 내까짓게 뭘 할 수 있냐고.”

“······”

윤태현은 차마 수긍하지 못했다.

“선배······”

“응 말해. 영기씨. 어떻게 할까.”

“합의 하지 마세요. 그냥 송치시켜주세요.”

강경한 판단이었다.

영기가 이렇게까지 나오리라 예상치 못한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야, 야 박영기! 영기야!”

윤태현은 급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영기를 연신 불러댔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어? 괜히 나중에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말이야.”

“네- 후회하지 않아요. 확실하게 결정했어요.”

“흠 그렇단 말이지.”

영기의 말을 들은 난, 곰곰이 생각하는 척한다.

그러다 난 영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드럽게 두 번,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사실- 난 영기씨 말 듣기 전부터 결정했었어. 미안, 영기씨.”

내 말에 윤태현이 고갤들고 반색했다.

놈의 비굴한 눈빛이 잔뜩 기대를 품고 있다.

“그, 그럼······!”

난 윤태현에게 손짓했다.

“이리로.”

내가 가까이 오라 손짓 하자, 윤태현이 목을 내밀었다.

난 놈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친절히 속삭여줬다.

“응, 합의는 없어. 인생 실전이야, 이 조팝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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