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2화 (3/168)

[2. 요리사가 되다.]

헌터와 그렇지 않은 자.

무너져 내린 세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둘로 나뉜다.

“야! 나 나간다.”

“‘야’가 아니라 오라버니겠지. 어디 가는데?”

“원정 간다니깐?”

“꼭 가야 해? 어제 B급 괴수도 하나 잡았다며. 이번엔 좀 빠지지?”

헌터는 괴수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이고, 자연스레 멸망한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했다.

당연히 누구나 헌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초월자’라 불리는 알 수 없는 자들에게 후원을 받아야 한다.

이 후원은 축복이라고 불릴 만큼 극소수만이 받았고, 후원을 받지 못한 자 대부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처음으로 2주간 원정 나가는데, S급 헌터인 내가 빠질 수는 없잖아.”

“김요한, 그 사람은? 그 사람도 S급 헌터인데 주둔지에 남아 있잖아.”

“그분은 우리 주둔지의 대표잖아, 함부로 나가면 안 되지.”

“너도 우리 집 대표인데, 함부로 나가면 안 되는 건 똑같지.”

“뭐래? 나 없는 동안, 본인 일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

운이 좋았던 이화와 달리 아무런 후원을 받지 못한 나는 ‘괴수 시체 처리원’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괴수는 이게 참 문제가 많은 게, 살아있어도 문제고 죽어서도 문제다.

괴수가 죽으면, 그 시체를 먹기 위해 다른 괴수들이 몰려든다. 이를 주의하지 않은 근처 주둔지는 시체에 몰려든 괴수들의 습격에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주둔지 근처의 괴수 시체를 멀리까지 옮길 사람들이 필요했고,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나는 그에 지원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버려지는 세상이니까.

“일할 때 잔머리는 그만 굴리고. 그거 들키면 진짜 큰일 난다.”

“걱정하지 마. 아무도 눈치 못 챘어.”

괴수 시체 처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부위를 해체하고,

멀리 옮기고,

도망친다.

다만, 이 간단한 과정에서 또 다른 괴수가 등장하면 게임 오버.

초기에는 시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냄새를 맡고 몰려든 괴수 무리의 습격으로 전멸한 처리팀이 많았다. 그러나, 난 무려 1년 동안 잔머리 하나로 그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 방법은 부위를 해체할 때, 시체 일부를 잘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지니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시체를 옮길 때, 괴수가 나타나면 시체 조각을 우리를 따라나선 작업반장 쪽으로 몰래 던진다.

그러면 괴수의 이목은 작업반장에게 쏠리고, 그사이에 주둔지로 도망치면 된다.

지금껏 이 방법을 써 서너 번 목숨을 건졌다.

“지금은 그래도, 언젠간 들킬걸?”

“작업반장의 임무가 괴수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건데, 당연히 방패 역할을 충분히 해야지.”

“그런 건 방패 역할이 아니라, 버림패 역할이란 거야.”

“저기 죄송한데, 이 방법 처음 듣고 똑똑하다고 칭찬한 사람 어디 갔죠?”

“말을 말자.”

이화는 씩 웃으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진짜 가야 해?”

“응. 아직은 비축해둔 식량이 충분한데, 몇 년 사이에 전부 고갈될 테니까 미리 준비해야지.”

이화의 말대로 앞으로 생존에 있어 제대로 된 음식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지난번 원정 때 저 멀리에서 편의점 하나를 봤었거든.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서 더 멀리까지 탐색해본대.”

아직까진 주둔지 인원 전부가 하루 두 끼 챙겨 먹을 수 있을 만큼 비축해둔 식량이 충분하지만, 그마저도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주둔지에서는 헌터들로 팀을 꾸려 정기적으로 원정을 나가 무너진 도시 이곳저곳을 탐색해 식량을 찾거나 사냥을 해온다.

“무엇보다 식량을 꽁칠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너나 나나, 똑같다니깐. 그럼 잘 갔다 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화는 그때마다 꼭 참여해서 식량 일부를 훔쳐 우리만의 창고에 모아두었다. 앞으로 식량이 고갈될 때의 대비라나.

‘다 같이 살아남으면 좋겠지. 근데 뭐 어떻게 해. 일단은 오빠랑 나라도 살길 찾아야지.’

***

최근 원정에서 우리 세력에게 식량을 빼앗긴 세력이 있다.

그로 앙심을 품었는지, 그들은 우리 주둔지 근처에 괴수의 시체를 버리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들이 하도 열심히 괴수 시체를 버리고 가서,

“현아, 또 우리 주둔지 근처에 괴수 시체를 버리고 갔대. 어서 출근하자.”

“또? 거긴 '적당히'를 모른대?”

이화가 나간 지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세상이 멸망하면 출근 따윈 없을 줄 알았는데, 개소리다.

출근은 오히려 전보다 잦으면 잦았지, 적지는 않다.

“어이~ 현, 또 수연이랑 시근덕대지? 빨리 오기나 해, 왜 또 꾸물대고 있어?”

“또 그러신다. 아니에요, 준비해서 현이 끌고 빨리 갈게요.”

게다가 작업반장이란 놈은 왜인지 몰라도 나를 무척이나 괴롭혀서 복지 환경은 0에 수렴한다. 나랑 동갑인 수연이가 없었다면 나는 이 직장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현아, 그냥 네가 무시해. 맨날 저러잖아. 그러면서도 우리 지켜주는 분이기도 하고.”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수연이와 단둘이서 작업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작업 과정에서 괴수는 언제든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헌터인 작업반장이 항상 따라붙는 것은 이 이유에서다. 보통 작업을 나가면 작업반장과 나, 수연이, 그리고 다른 동료 둘까지 총 다섯 명이 출동한다.

당연하게도 작업반장이 시체 해체 같은 일을 도운 적은 없다. 귀찮은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자신은 괴수만 상대한다.

“빨리빨리 해! 이러다 저번처럼 괴수 몰려오면 너희가 책임질 거야?”

성격까지 어딘가 한 군데 단단히 꼬인 게 틀림없는데, 대체 어떤 초월자가 저런 이에게 후원한 건지 궁금하다.

“좀 걱정되면 돕든가. 편하게 드러누워서 저 지랄하면 도움이 되는지 아나?”

“그러니깐, 저래놓고 음식 배급받으면 자기가 대부분 가져가잖아.”

동현이 형과 서희 누나가 조용히 불평을 토해내는 걸 들으며 시체 해체를 시작했다.

이번에 버려진 시체는 E급 괴수에 속하는 ‘불사조’.

흔히 ‘불사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엄청나게 등급이 높은 강한 괴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멸망 이전에 흔히 상상하던 전설의 동물 중 하나이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는 일반인에게도 피해를 주지 못하는 제일 약한 괴수이다.

생김새는 멸망 이전 주말 밤을 책임지던 ‘치킨’의 원재료, 닭과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라면 그 닭보다는 세 배 정도 크며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

‘불사조’라는 이름으로 헌터 사이에서 불리게 된 이유는 이 괴수는 죽으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신기한 점은 되살아날 때, 시체가 그 자리에서 뿅 사라지고 다른 장소에서 멀쩡하게 돌아다닌다고 한다.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네. 진짜 치킨 생각이 너무 나네.”

날개를 자르며, 동현이 형이 투덜거렸다. 그 말에 군침이 돌았는지 서희 누나와 수연이가 침을 삼켰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전에 술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치킨 튀기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였는데, ‘불사조’를 보니 너무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요. 얼마나 맛있으면 다른 괴수들도 그렇게 몰려들겠어요.”

“맞아. ‘불사조’ 시체에는 괴수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든다면서. 괴수도 ‘치킨’ 맛은 아는 거지.”

“그만 이야기하자. 먹고 싶으니까.”

“‘불사조’로 치킨을 만들면 양도 많고, 얼마나 맛있을까요?”

“현아, 아무리 그래도 ‘괴수’야. 먹으면 어떻게 될지 알고 그런 말을 해. 먹자마자 바로 죽을걸?”

“그냥 그렇다는 거죠.”

평상시라면 그저 생각으로만 그쳤을 땐데, 왜인지 몰라도 그날은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어찌 되었든, 평상시처럼 남들 몰래 조그마한 고기를 다리 부위에서 잘라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도 작업반장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속으로 중얼거릴 때만 하더라도, 이 선택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전혀 몰랐다.

***

시체를 처리하고 오는 장소는 주둔지에서 멀리 떨어진 버려진 도시.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작업반장 호위 하에 천천히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출몰하는 괴수들은 모두 작업반장이 해치울 수 있는 수준. 게다가 혹시 모를 상황에 써먹을 방법도 있었기에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불사조’의 시체가 괴수를 끌어모으는 능력을.

“반장님, 저 앞에 괴수입니다!”

“귀찮게. 또 일해야 하나?”

당연히 평상시처럼 안전하게 주둔지로 돌아올 줄로만 알았다.

“잠깐만, 근데 그 수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반장님, 괜찮나요?”

“게다가 처음 보는 괴수잖아?”

“뭘 그리 걱정이 많나? 그래봤자 D급 정도겠지. 그 정도면 나 홀로 충분해.”

항상 하던 일이기 때문에, 안심했을 수도 있다.

“멀리 가지 말고 대기해 있어. 어차피 매번 그랬듯이 나한테만 몰릴 텐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괴수가 좋아하는 체질이라도 되나?”

“바, 반장님?”

그런 우리의 안심을 벌하기라도 하듯, 자신만만하게 나선 작업반장은 괴수의 팔에 달린 거대한 칼날에 반으로 썰리고 말았다.

미리 준비한 시체 조각을 던질 틈도 없었다.

“도망쳐!”

다른 일행은 어찌 되었는지 알 겨를도 없이 도망친 나는, 다행히도 어느 건물 안으로 숨을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도망쳤다고 해도, 나 역시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적어도 C급 이상의 괴수들이 불사조 고기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고, 밖에서 살육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저기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굶주려서 죽거나, 괴수에게 발견되어 죽거나. 내 미래는 정해진 듯하다.

그저 이 세상에 괴수를 쏟아부은 존재를 저주하며,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지키지 못할 날 욕할 뿐.

그렇게 차갑게 식은 건물 바닥에 바짝 붙은 채 나흘이란 시간이 흘러갔고 난 의식을 잃었다.

***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흘렀을까?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의식이 돌아왔다.

“나 아직 살아있구나….”

엄청난 허기는 또 한 번 의식을 잃는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을 알리는 듯했다.

괴수에게 들킬 수 있다는 공포감을 허기가 이긴 그제야 나는 몸을 일으켜 내가 들어온 건물을 살폈다.

“여기는!”

익숙한 건물.

한쪽 벽면이 무너진 이 건물은 한때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술집이었다.

“그립네.”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며, 건물 내부를 살폈다. 역시나 먹을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먹을 게 있었다면 당연히 이미 다 가져갔겠지. 아! 맞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주머니를 뒤져 위급상황에 작업반장에게 던지려고 준비한 고기 조각을 꺼냈다.

“그래도 괴수 고기인데…. 이걸 먹는다고? 하긴 배고파서 죽으나, 이거 먹어서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진데 상관없겠지?”

어떤 패기에서인지, 나는 조리실로 이동했다.

가스가 남아 있길 간절히 기도하며, 휴대한 라이터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자 주변이 환해졌다. 즉시 프라이팬을 올려 고기를 익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냄새는 좋네.”

치킨 내음이 나자, 허겁지겁 불사조 고기를 입에 넣었다.

“와~ 녹는다, 녹아. 진짜 너무 맛있네. 이러니 괴수들이 꼬이지.”

고기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살살 녹아내렸다.

[U+2641 행성 최초로 괴수를 섭취하였습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당신의 행동에 관심을 둡니다.]

“어?”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의 후원으로 고유 능력 ‘식탐’이 부여됩니다.]

[고유 능력 ‘식탐’으로 ‘불사조’의 특성이 귀속됩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후원을 받는다고?”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의 후원으로 ‘요리사’라는 직업을 획득합니다.]

[직업으로 인해 모든 스탯이 0에서 더는 증가하지 않습니다.]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