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3화 (4/168)

[3. 후원 미션 (1)]

[‘허영의 사내’님이 탄식을 토하며 눈길을 거둡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근질거림을 간신히 참아내고 지갑을 집어넣습니다.]

[‘꿈의 정복자’님이 입맛을 다십니다.]

[‘알 수 없는 자’님이 실소를 날립니다.]

“이런 관심, 방종한 이후 오랜만인걸.”

쓴웃음을 지으며, 고유 능력과 직업이 생기자마자 빼곡히 눈앞에 새겨진 푸른 글씨를 읽었다.

고유 능력.

직업.

포인트.

초월자의 후원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건 이 세 가지.

이 중, 가장 얻기 힘들다는 고유 능력을 한 초월자가 후원했으니 다른 초월자의 관심이 자연스레 끌리는 것이다.

“괴수 고기를 최초로 먹은 게 그렇게 눈길을 끌 만한 거였나?”

고유 능력은 단어 그대로 이 세계에서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

하늘을 날아다니며 거대한 괴수를 향해 검을 휘두르거나, 텔레파시를 하는 등. 헌터는 고유 능력을 통해 멸망 이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곤 한다.

고유 능력을 지닌 자는 헌터 100명 중 1명꼴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희귀하다고 볼 수 있다.

이만큼이나 희귀한 고유 능력을 후원했다는 것은 ‘풍요와 파괴의 군주’라는 초월자가 나를 눈독 들였다는 의미.

“근데 ‘요리사’는 또 뭐야? 이런 직업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데.”

후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직업.

고유 능력과 달리 모든 헌터는 첫 후원을 받을 때 직업도 같이 부여받는다. 이렇게 부여받은 직업은 특정 조건을 달성하여 승급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변하지 않는다.

직업에는 전사, 사수, 무투가, 마도사 등의 전투계 직업부터 대장장이, 연금술사 등의 전문계 직업까지 무척이나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러나, 지금껏 ‘요리사’라는 직업을 획득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지금껏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단번에 시선을 주다니…. 확실히 먹방이 재미있기는 하지.”

고유 능력에다가 처음 보는 직업까지.

첫 후원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이 글귀.

[직업으로 인해 모든 스탯이 0에서 더는 증가하지 않습니다.]

헌터의 강함은 흔히 스탯과 랭크로 규정된다.

‘신체의 강도’, ‘힘’, ‘회복력’, ‘지능’, ‘행운’, ‘민첩’, ‘체력’, ‘매력’. 총 8가지로 이루어진 스탯은 본인의 기본 능력치를 각 항목의 해당 수치만큼 상승시켜준다.

이런 스탯의 총합으로 정해지는 것이 랭크다.

총합 1부터 1,000까지가 E, 1,001부터 2,000까지가 D. 이렇게 1,000단위로 상승해 도달하는 최종 등급은 SSS등급이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스탯이 0에 고정된다는 것은 헌터로서 크나큰 약점이다.

“대체 어떤 직업이기에, 이런 페널티가 있는 거야?”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미친 듯이 웃으며 술을 들이켭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분노를 표합니다.]

눈앞에 새겨진 글자를 보며 중얼거릴 때, 이번엔 또 다른 글씨가 붉은색으로 쓰였다.

「‘시련’을 위한 사전 준비가 비로소 끝마쳤습니다.」

「곧 U+2641 행성 ‘지구’에서 ‘시련’이 시작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엄-청 기다렸을 ‘시련’의 진행을 맡은 메인 MC ‘캠비온 녹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캠비온 멀린’님이 반가움을 표합니다.]

[‘워울프 루가루’님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습니다.]

[‘별의 적대자’님이 ‘시련’ 시작을 재촉합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결국 지갑을 열어 5,000만 포인트를 ‘캠비온 녹스’에게 후원합니다.]

“시련은 또 뭐야?”

처음 보는 단어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에도 글씨는 계속해서 새겨졌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 후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만족할 만한 ‘시련’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U+2641 행성 ‘지구’의 인류 전원이 ‘시련’의 ‘플레이어’로 등록됩니다.」

「무대의 난이도를 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에 몸을 최대한 낮춘 채,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가렸다.

「무대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니 ‘플레이어’들에게 공지 하나 때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시련’을 통과할수록 우리 초월자님들의 후원을 받을 일이 많아집니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도 언제든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니 모두 죽기 직전까지 발버둥 쳐주시길.」

「자세한 내용은 ‘시련’이 시작되면 공지 때리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야?”

[‘시련’ 진행 전,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플레이어 정현을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등록합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 정현

- 클리어 조건 : 플레이어 ‘김요한’ 세력의 주둔지로 해가 지기 전까지 복귀할 것.

- 성공 보상 : 직업 전용 장비 지급

- 실패 페널티 : 보유 포인트 1,000 차감

[수락하시겠습니까?]

[Y/N]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플레이어 정현을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황급히 등록합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 정현

- 클리어 조건 : 플레이어 ‘장가영’ 세력의 주둔지로 해가 지기 전까지 복귀할 것.

- 성공 보상 : 전설급 장비 지급

- 실패 페널티 : 보유 포인트 500 차감

[수락하시겠습니까?]

[Y/N]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과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플레이어 정현을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등록하셨네요.」

“미친! 나? 아야-!”

뜬금없이 여기저기에 내 이름이 새겨지자, 당황한 나머지 프라이팬을 놓쳐 머리를 찧고 말았다.

머리를 감싸 안으며 살핀 ‘후원 미션’의 내용은 간단했다.

바깥의 괴수를 피해 내가 지내던 ‘김요한’ 세력의 주둔지로 돌아가거나,

적대 세력인 ‘장가영’ 세력의 주둔지로 가는 것.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자신의 ‘후원 미션’을 선택하라고 플레이어 정현을 다그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여유롭게 술을 마십니다.]

‘후원 미션’이란 초월자가 헌터에게 임무를 주고 그를 해결할 시 보상을, 실패할 시 페널티를 주는 것. 헌터는 이를 수락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대부분 자신을 후원해주는 초월자가 ‘후원 미션’을 줄 경우, 그를 수락한다고 하지만….

“이 조건대로라면 무조건 둘 중 하나만 클리어할 수 있잖아.”

이렇게 클리어 조건이 겹쳐버린 이상, 하나만을 수락하거나 둘 모두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과연 플레이어 정현의 선택은?」

“뜬금없이 적대 세력의 주둔지로 가기엔 아무래도 위험 요소가 많으니까….”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등록한 ‘후원 미션’을 거부합니다.]

“이분의 ‘후원 미션’을 수락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김에 보상까지 받는 편이 낫겠지.”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등록한 ‘후원 미션’을 수락합니다.]

「네. 플레이어 정현은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의 ‘후원 미션’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어차피 시간도 남은 겸, 기다리기 지루하실 초월자님들을 위한 이벤트 하나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벤트란 바로바로 ‘후원 미션’ 성공 여부를 두고 초월자님들의 포인트를 건 베팅!」

「참여하실 분들은 포인트 베팅 부탁드립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한발 늦은 데에 아쉬움을 금치 못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혀를 길게 내밉니다.]

「네, 총 60여 분의 초월자님께서 베팅하셨군요.」

「다만, 베팅에서 그치면 너어무 재미없겠죠? 역배에 거신 분들을 위해 조건 하나를 더 달겠습니다! 베팅에 참여하신 분들은 자신이 후원한 헌터를 통해 이번 미션이 성공하도록 도울 수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후원 미션’의 클리어 조건이 가장 낮은 난이도인 만큼 실패 페널티를 변경하겠습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 정현

- 클리어 조건 : 플레이어 ‘김요한’ 세력의 주둔지로 해가 지기 전까지 복귀할 것.

- 성공 보상 : 직업 전용 장비 지급

- 실패 페널티 : 사망

「그럼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그를 끝으로 붉은 글씨는 더 새겨지지 않았다.

“실패 페널티가 사망? 장난하나?”

저 말은 반드시 ‘후원 미션’을 성공하라는 뜻.

무엇보다 이번 난이도가 쉽다고 한 건, 앞으로 이보다 어려운 미션들이 주어질 것이란 의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작 여기에서 실패해서는 안 된다.

“여기가 주둔지랑 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네.”

우선 바깥의 상황을 떠올렸다. 도망치기 전에는 C급 이상의 괴수가 다섯 있었다. 하지만 건물에 숨어있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아마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말 그렇다면, 주둔지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칠 수 있는 괴수들은 작업반장도 상대할 수 있을 수준에 불과하다.

“내 상태부터 확인할까? 어느 등급의 괴수까지 상대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니깐.”

‘자, 오빠 이거 보라니깐? 얼마나 강한지 보여? 그나저나 신기하지 않아? 상태창이라고 중얼거리기만 해도 게임 마냥 이런 창이 생기고.’

이화가 상태창을 보여주었던 때를 돌이켜보며 상태창이라고 중얼거렸다.

─ ─ ─ ─ ─ ─

성명 : 정현

나이 : 26세

성별 : 남

고유 능력 : 식탐

직업 : 요리사

랭크 : F

신체의 강도 : 0

힘 : 0

회복력 : 0

지능 : 0

행운 : 0

민첩 : 0

체력 : 0

매력 : 0

특성 : ‘CONTINUE?’

스킬 : 無

장비

‘버려진 프라이팬’

- 장비 등급 : 일반

- 내구도 10 공격력 5 방어력 20

- 게임 ‘싸움 그라운드’에서는 좋은 무기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 ─ ─ ─ ─ ─

“랭크 F? 아, 당연히 모든 스탯이 0이니까 F일 수밖에 없지.”

어차피 요리사란 직업과 함께 딸려온 페널티를 알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특성에는 ‘CONTINUE?’라고 적혀 있네. 이게 아마 귀속된 ‘불사조’의 특성이겠지? 효과는 따로 안 보여주나? 이화는 스킬 효과도 막 보여주던데.”

[정보 접근 권한이 부족합니다.]

“식탐은 어떤 고유 능력인데?”

[정보 접근 권한이 부족합니다.]

“망할!”

스탯창을 통해 내려진 결론은 난 E급 괴수조차 잡을 수 없는 랭크 F의 헌터라는 것. 추가로 정보 접근 권한인지 뭔지 하는 망할 시스템 때문에 알 수 있는 건 더 없다는 것.

주둔지로 돌아갈 방법으로 괴수와 싸우지 않고 최대한 숨어서 조심조심 가는 것 외에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다.

“후…. 무기는 준비할 것도 없겠고. 마음의 준비는 끝. 그럼 한 번 출발해볼까?”

[‘열두 과업의 전사’님이 당신의 무모함을 높게 삽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침을 흘리며 시선을 고정합니다.]

결국, 프라이팬 하나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해가 위치한 곳은 하늘의 정중앙. 즉 대략 예닐곱 시간이 내게 주어진 시간.

그 안에 안전하게 ‘김요한’ 세력의 주둔지로 돌아가야 한다.

“걱정되는 건, 괴수 말고도 나를 방해하러 올 헌터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상황을 되짚다 보니 절로 욕이 나왔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라는 초월자가 이딴 직업을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스탯을 높여 상황을 파훼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하겠는가?

그저 변두리 곳곳에 흩어진 건물 파편에 몸을 숨겨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한 발짝 나아가고. 주변을 살피고 다시 나아가고.

성급해봤자 도움 될 건 하나 없다.

“그래도 길을 나서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딱히 별일은 없네.”

그나마 좋은 소식은 길을 나서고 삼십 분 동안 그 어떤 괴수도 헌터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이대로 순조롭게 성공하려나?”

[‘열두 과업의 전사’님이 부끄러움에 시선을 돌립니다.]

[‘현인 반수’님이 이전의 고통에 몸서리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손뼉을 치며 춤을 춥니다.]

이전의 일을 겪고도 금세 안심한 나를 벌하기라도 하려는 듯, 푸른 글씨가 새겨짐과 동시에 땅이 흔들렸다.

“응?”

땅이 갈라지고 생긴 거대한 구멍에서 아홉 마리의 거대한 뱀의 머리가 올라왔다.

아니, 아홉 마리가 아니다.

머리는 아홉 개이지만 몸통은 하나.

[A급 괴수 ‘히드라’가 등장합니다.]

“A급 괴수, 히드라….”

도망치거나 놀랄 겨를도 없었다.

아홉 개의 머리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녹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온몸을 감쌌고, 몸 전체가 타오르는 뜨거움과 함께 숨이 막혀왔다.

[플레이어 정현이 ‘히드라의 맹독’에 중독됩니다.]

“컥…. 내, 가…. 지금, 껏… 떻게… 버텼… 데.”

내가 말하던 문장도 끝마치지 못한 채, 세상은 끝이 났다.

[CONTINUE?]

[최근 저장 지점으로 돌아갑니다.]

[‘이름 없는 자’님이 흥분하며 10만 포인트를 플레이어 ‘정현’에게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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