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조금은 이상한 인맥 >
늦은 밤.
[이세린(뿅맛사탕)]
[오늘 방송 고생하셨어요! 여러모로 레전드! 다음에...클리어보상 개봉할 때도 불러주시면..헤헤]
[따봉을 날리는 사자 이모티콘]
[나]
[고생하셨습니다. 재밌었어요]
[지호민(이응이여섯개)]
[수고하셨습니다. 세린이가 불러서 온건데 정말 즐거웠어요. 아마 조만간 큰 곳에서 또 보게 될 거 같네요.]
[나]
[고생하셨습니다. 와주셔서 좋은 경험했습니다.]
[예지]
[오늘진짜대박ㅋㅋㅅㅂ 나 바로 편집하러 감 이틀동안 말걸지마]
[나]
[ㅇㅋㅇㅋ ㅅㄱ]
크로스보우는 몇 개의 메세지에 답장하며 캔맥주를 땄다.
치익-.
"크으."
얼마만에 마시는거지. 한동안은 이런저런 문제 탓에 멀리했던 알콜이다. 지금도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불 순 없지만, 오늘 정도는 괜찮겠지.
그는 맥주를 쭈욱 들이키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올 오버의 공식 페이지에서 주소를 입력해달라고 한 시스템 메세지 때문이다. 뭔지는 몰라도, 받아놓으면 나중에 개봉식이라도 영상으로 찍어 아이튜브에 업로드할 수 있을 터.
[주소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
[3,4일 내로 크로스보우님의 자택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뭔지 알려주지는 않네."
받아보면 알겠지.이미 전세계적인 게임사로 발돋움한 레드홀에서 수상한 걸 보낼 리도 없으니.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창을 닫았다. 모처럼 킨 인터넷이니 잠깐 서핑이라도 하고 끌까.
가끔 방송을 마치고 할 게 없을 때 습관적으로 들어가는 게임 커뮤니티.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게시글들을 살폈다.
그러자 사이트의 메인에 걸려있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어딘가 낯익은 썸네일.
[오늘의 HIT]
[오늘자 레전드 찍은 크보 방송]
[댓글 176개]
[추천 379개]
"...응?"
크로스보우는 의아한 심정으로 게시글을 클릭했다. 크보라는 스트리머 네임을 쓰는 사람이 또 있나?
"...뭐야? 나잖아?"
퍼뜩 놀라 내용을 확인했지만...생각보다 별 내용이 있진 않았다.
그냥 오늘 방송에서 그가 잘한 부분이 영상클립으로 올라와있을 뿐. 저격 장면이나 근접전을 치루는 장면, 그리고 경찰차로 드레이크를 갖다 박는 장면 정도.
그러나 별 거 없다는 건 그의 생각에 불과한걸까.
-ㄹㅇ오늘 본방 못 본 놈들 인생 절반 손해ㅋㅋㅋㅋ
-개쩔긴해?
-뭔 일? 얜 누군데 히트 와있냐
└있음 우체똥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어 씹덕아
└더원그 랭커 출신 스트리머ㅇㅇ 얼마 전에 올 오버 입문함
-방송 보면서 소름돋은거 오랜만이다 ㄹㅇ 이런 애가 프로였음 깝치고 다니는 옆나라들 다 쥐팰텐데
-곧 프로할듯
-ㅋㅋㅋ이색기들 버릇 못 고치고 설레발부터치네
댓글이 불타고 있다. 심지어 이미 불타기 시작한지 좀 된 듯한 느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인가 새로고침을 누르자 추천 수와 댓글 수가 계속해서 증가한다.
심지어 지금까지 달른 댓글들은 모두 오늘 방송을 시청한 듯한 말투. 크로스보우는 조금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당황은 놀람이 되었다.
그야 그럴 법도 하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게시글이 오늘 그의 방송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 게임과 방송에 관련된 게시판이긴하지만, 오늘이라고 해서 다른 방송인들이 방송을 하지 않은 건 아닐 터다. 심지어 늦은 시간임에도 굉장한 화력이다.
[???: 야 드레이크]
[경찰차가 폭발하는 장면]
-박을게.
└ㅋㅋㅋㅋ
└ㅋㅋㅋ아ㅋㅋ
[오늘 크로스보우 어록]
[동영상]
-ㄹㅇ노희생자 클리어 ㅇㅈㄹ하길래 올오버 뉴비긴하구나 했는데ㅋㅋㅋ뉴비는 나였누?
└뉴비쉑ㅉㅉ
└뭐임마? 나 랭크 다이아거든? 티어 까라
└하여간 입다이아놈들ㅋㅋ
[크보 방송 1부 때 크보까던 블빠들 단체 아닥.jpg]
[1부 채팅창 캡처본]
[2부 시작하고 건카타 액션 이후 채팅창 캡처본]
-크보 피지컬은 인정하는데 그래도 블래드하고 비교는 좀....
└아ㅋㅋ악성블빠놈 또 왔네
"어...."
크로스보우는 벙 찐 심정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쭉쭉 내려도 모두 자신의 얘기 뿐. 가뭄에 콩 나듯 다른 주제의 게시글이 보였지만 정말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크보방에서 운 세나유저 전적]
[트수 평균 크보]
[균방전에 과몰입 시청자가 많은 이유]
[크보가 알려주는 저격총 사용 방법]
.
.
.
[크보 얼굴 공개 공약]
"이건 또 뭐야."
그는 이번엔 황당한 심정으로 게시글을 클릭했다. 저런 공약은 건 적이 없는데?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는 짤]
-월척이다!
└응 너 벤
└얼굴 궁금하긴 해?
"...."
요즘도 저런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구나. 그는 픽 웃으며 웹서핑을 종료했다. 스트리머로써 오랜만에 받은 관심이 썩 달가웠지만, 방금 확인한 사이트는 온갖 인간군상들이 몰려있는 곳.
악플 읽기같은 컨텐츠를 할 게 아니라면 크게 신경 쓸 여력은 없다. 가끔 들어와서 확인 하도록 하자.
지금은 그저 관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말면 끝날 일. 그는 웃으며 방을 나섰다.
조금 바람을 쐬고 싶었다.
***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크로수보우가 늘 방문하는 장소.
건물의 옥상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답답한 일이 아닌 좋은 일로 방문한 곳. 그가 방송에 열중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는 걸 주장하기라도 하는걸까. 여름이 간지 얼마나 됐다고 이 시간에는 꽤 쌀쌀하다.
"...."
별이 조금 보였다.
그는 담배를 물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우는 것은 아니다. 피지 않게 된지도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그나저나 뭐가 오려나.'
소정의 보상.
가전제품 같은 거라도 오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에어프라이어. 뭐 이런 거면 좋겠다. 항상 배달을 시키고 음식이 남아서 처치가 곤란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오. 담배. 진짜 안 피시네요?"
그 때 문득, 난간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던 그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크로스보우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네. 그러네요."
옆집 여자였다. 그는 느릿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몸에 안좋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화륵.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혔다.
"아. 혹시 금연 중이신거면 다른데서 피울까요?"
"아뇨. 금단 증상 같은게 있는 건 아니라서."
"그러시다면야."
그냥 습관 같은 거였을 뿐이다. 오래된 습관.
그렇게 멍하니 별을 세고 있자 여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손을 내민다.
"저, 송다혜라고 해요."
갑자기? 크로스보우는 멀뚱히 그 손을 쳐다봤다.
"...팬이에요."
"...? 아. 네. 그, 어떻게 아시고?"
그제야 그는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웃어보였다. 뭐지? 그러고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다.
"일주일 동안은 긴가민가했어요."
일주일이면 올 오버를 시작했을때부터 알아차렸단 얘기다. 크로스보우는 머리를 긁었다. 저번에 만난 변태같은 팬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대체 어떻게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알아보는거지?
"얼굴만 가리시고, 체형이나 목소리는 그대로잖아요. 헬멧 가리개 올렸을 때 보이는 하관도 똑같고."
의아함을 눈치챈걸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근데 보통 그런 걸로 사람을 알아보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수긍하고 말았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는 것.
"오늘 방송 진짜 잘 봤어요. 마지막엔 울 뻔했다니까요? 아직도 전율이...."
"아. 하하. 네. 감사합니다."
그는 그제서야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했다. 크고 또렷한 눈동자. 시원시원한 스타일의 화려한 이목구비. 그에 대비되는 승무원같은 바른 자세.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에 대비되는 비뚤게 꼬나 문 담배.
"궁금한 게 소정의 보상이 뭐였어요?"
"아. 그거요."
그러고보면 알려주지 않고 방종했었지. 그는 천천히 턱을 쓰다듬었다.
"아직 모릅니다. 공홈 가도 그냥 며칠있다가 도착한다고만 하더라구요."
"그렇구나. 분명 좋은거겠죠?"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러고보니 커뮤니티도 다들 난리났더라구요. 남초 여초할 거 없이."
"그렇군요."
뭔가를 말해주는 사람에게 이미 봤어요 같은 말을 하면 안되는 거겠지? 새로운 사람과 대화해본지 너무 오래된 탓에 잘 모르겠다. 그는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자가 문득 내뱉었다.
"...진짜 잘생기셨어요."
그리곤 자기도 놀랐는지 헙 입을 가린다.
"감사합니다."
팬은 맞나보네.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 하곤 기대고 있던 몸을 난간에서 떼어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뇨끼는 고양이에요 강아지에요?"
"...!!"
두 눈이 커지는 여자. 송다혜라고 했지.
"...저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혹시나해서 던져봤는데. 역시 맞나보네요."
"앗...! 아...."
'옆캡술뇨끼네'.
분석계의 인플루언서 아이튜버. 신예지가 보던, 크로스보우 분석 영상의 제작자. 그가 사는 곳이나, 금연 다짐까지 알고 있는 사람.
크로스보우는 그녀의 화려한 얼굴이 당황으로 물드는 걸 보며 웃었다.
"좋은 말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덜컹─.
그 말을 끝으로 옥상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갔다.
정확히는, 내려가려 했다.
"저, 저기요!"
"네?"
한참을 망설인 듯한 타이밍으로 여자, 송다혜가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돌아보자 어두운 와중에도 확인되는 빨간 얼굴.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호, 혹시 멋대로 영상에 써서 화나셨나요?"
"네? 아...아뇨."
그러고보면 오해할수도 있겠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좋은 말만 해주셔서 감사하죠."
"그, 그럼 혹시...."
"아. 네. 계속 영상감으로 쓰셔도 됩니다. 나쁜 말이라도 쓰실 땐 저한테 말씀해주셔야 돼요."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힐끔 이 쪽을 확인한다.
"그, 그럼, 그...담배."
"네? 아...."
그러고보면 아직 물고 있구나. 그는 입에서 담배를 뱉으려 안주머니를 뒤졌다.
"주시면 안될까요?!"
"...네?"
"주, 주시면 제가 그...."
제가 그...뭐?
크로스보우는 경계하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담배를 달라고요?"
"네, 네. 실례가 안된다면...네?"
"제가 물고 있던 걸요?"
"...?"
뭐가 잘못됐는지 잠시 생각하는 눈초리, 그녀는 그러다 갑자기 앗! 힝! 엨!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정상이 아니군.
"담배가 아니라 번호요! 아. 진짜 입이. 아. 어떡해. 아니. 진짜 그런 거...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러더니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아버리는 송다혜.
그 모습에 크로스보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문에 쪽지로 붙여놓겠습니다."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겠다. 근 며칠동안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사람만 꼬이지?
무서워진 그는 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최대한 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
< 14화-조금은 이상한 인맥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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