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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88화 (88/143)

< 89화-투기장의 신성 >

미치지 않고는 못해 먹을 짓이라고, 유저명 A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 돈을 얻는다.

그에 돈을 걸고 낄낄대는 인간들이 있다.

가상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통각이 온몸에 전달되어 온다. 솟구치는 피의 온도도, 당하는 상대방의 덜덜 떨리는 동공도.

모두 진짜같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애쓰면서, 눈을 크게 떴다.

“아파···아파···이게 뭐야···그냥 게임, 게임이라면서. 아파···흑흑···.”

눈앞에는 새하얗게 질려 있는 여성의 얼굴이 있었다. 보아하건대 한국인. 이제 갓 성인일까. 앳된 얼굴이 말해 주는 청춘이 눈부시다.

최근, 이 ‘스캐빈저 그라운드’에 들어오는 이들의 나잇대가 어려지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언니. 흑흑···로그아웃이 왜···.”

···A도 처음에는 이런 것인 줄 몰랐다. 그리고 그건 아마 눈앞의 여성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아마추어 리그라고 들었다.

킬당 5만 원이라니. 4킬만 해도 20만 원이잖아? 그런 생각뿐이었다. 고액 알바라고만 여겼다.

잘만 하면, 더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돼. 집안의 빚도 갚을 수 있어.

뻔한 가정 상황 탓에 그 잘하는 올오버조차 자주 못해 본 그녀에겐, 마치 활로가 열린 듯한 감각이었다.

···착각이었다.

타고난 재능으로 첫날에만 6킬을 올린 A.

문제는, 그 다음이었던 것이다.

‘30만 원. 입금 확인해 봐.’

‘네!!’

‘아. 참. 다 좋은데 죽일 거면 단칼에 죽이는 걸 연습해. 1명 진짜 죽었으니까.’

‘···네?’

‘응? 아. 첫 출전이랬지?···아. 귀찮게.’

마치 조금 귀찮은 일을 처리한다는 듯한 표정.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로선,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쇼크로 인한 심정지야.’

‘···그게 무슨.’

‘여긴 통각 제한이 해제되어 있거든. 가끔 일어나는 일이지.’

‘그, 그런 말은 없었잖아요.’

‘걱정 마라. 여기에 접속한 기록은 전혀 남지 않으니까. 증거가 없어. 현행법으론 어떻게 못하는 거지. 죽은 놈이 한국인도 아니고. 가상현실이란 기술 탓에 생긴 법의 구멍···.’

‘···죽었다는 게···?’

‘···뭐야. 그쪽이냐?’

그 뒤는 협박이었다.

어차피 기록이, 증거가 남지 않아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상대는 단순히 캡슐 안에서 심정지로 죽었을 뿐이다. 쓸데없는 발악하지 마라.

받아들여진다고 한들, 어차피 죽인 건 너다.

신고하려거든 해 봐라. 어떻게 되는지.

···정말이었다.

단지 주변에 조언을 구하려고 한 것만으로, 알 수 없는 번호로 살해 협박을 받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그 끔찍한 경험을 그날 하루에 가둬 놓고, 떠올리지 않으려 애썻다.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착각이었다.

투기장 쪽에서 선수로 출전하지 않으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리겠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확인하지 못한 독소조항일까, 아니면···.

모르겠다. 그만 한 돈은 없어. 당장 부모님의 수발을 드는 것도···.

난···.

“···.”

──그만 생각해.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

“살려 주세요···기권. 기권할래요···”

그 일이 있고도 한참. 그녀는 어떻게든 현실을 받아들였다.

다만 그럼에도 저질러 버린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죄책감에 빠져 살지언정 외면하진 않겠어.

그게 A 나름대로 내렸던 결정이었다.

“미안.”

“저, 저는 그냥 아빠 생신에 뭔가 사드리고 싶어서, 그래서···! 죄송해요. 죄송해요···이런 건 줄 몰랐어서···.”

그 목소리가 허공에 의미 없이 흩어진다.

“···.”

부모님.

상대도 나랑 같다.

나에게 그녀를 죽일 권리따윈, 고통스럽게 할 권리따윈 없어.

“···미안. 미안해.”

설령 언젠가 이곳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겪은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 난 앞으로 폐인처럼 살 게 되겠지.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런 직감이 불현듯 온몸을 달렸다.

···싫다.

좋을 리 없다.

이딴 거 다 때려치우고, 다 잊어버리고 살고 싶어.

어째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하필 왜···.왜!!!

“!!!!!”

그녀는 검을 꽉 잡고, 상대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울먹이던 상대가 질끈 눈을 감는다. A 역시 자신의 검에서 고개를 돌렸다.

소리없는 아우성.

그녀는 마음 속 가득히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

그리고 곧이어, 그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눈앞이 흐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뤄질 수 없는 바램만이 머리에 가득, 차오른다.

누군가, 멈춰 주세요. 이 끔찍한 상황을 멈춰 주세요.

제발.

아무나 좋으니까.

제발···.

그리고.

그 목소리가 신에게라도 닿은걸까.

그 순간이었다.

──카아앙!!!

검격이, 가로막혔다.

“···잡았다.”

구원의 목소리가, 장난기와 함께 속삭여진다.

***

[오? 광대가면!! 싸움에 난입합니다! 두 어린 양들 사이에 난입한 괴한! 헤이. 유! 예아~ 유!]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명.

“예상은 했지만···생각보다 더 악질이었군.”

저급한 해설에 크로스보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원해서 하는 건 아니죠?”

“···! 네···.”

“이름?”

“차, 차지연···!”

“본명 말구요.”

“A···.”

크로스보우는 그녀의 목덜미에 손을 갖다댔다.

“좋습니다. A 씨. 잠깐 아플겁니다. 죽을 일은 절대 없으니 안심하고···앞으론 이런 데엔 얼씬도 하지 마세요.”

“그, 그게···저도 원해서 한 건···”

빙긋, 웃어 보인다.

가면 안쪽의 표정이라 보일지는 의문이었지만.

“걱정 말고 푹 자세요.”

파직.

그런 소리가 난 듯했다.

“흐윽?···아아악!!”

[와우! 자비없는 공격! 이 남자! 진정한 남녀평등주의자다!]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돌려 울먹이던 쪽을 바라보았다.

“자. 집으로 돌려보내 드리죠.”

“시, 시러···!”

“아픈 건 잠깐뿐입니다.”

거부권은 없다.

그는 씨익 웃으며 휘저어지는 팔을 잡았다.

주입.

“──!!!!”

털썩.

크로스보우는 상대의 목걸이를 잡아뜯었다.

이걸로 정확히 10개째.

하부리그로 단번에 승급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하아···목걸이가 되고 싶다···.”

“다 들립니다.”

-“···아무 말도 안했음요.”

“아무렴요.”

이렇게 스캐빈저 그라운드.

간단히 돌파.

[빌런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며 가면남! 하부리그에 단번에 승급하네요!! 쓰레기리그인 스그에서 신성이 탄생한 순간! 목걸이 10개면 바로 대전까지 가능!! 와! 토쟁이들이 뿔났다!]

아직, 밤은 길다.

리그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

“아오. 이제 좀 살겠네. 역시 숙취에는 가상현실이 최고라니까.”

──우와아아아!!

“스그 저쪽은···오늘 텐션 보니까 누구 뒤졌나 보네?”

오랜만이지만,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캐빈저 그라운드가 진행되는 곳을 바라보았다.

“곧 신입들 올라오겠구만···어디서 이렇게 애들이 잘 들어오는 거야?”

덕분에 하부리그도 경기가 많아져서 수입이 짭짤해졌지만, 경기를 치루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오랜만에 한 명 밟아 주고 물이나 빼러 가야겠네.”

대전은 두달 만인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역시, 그래도 가상현실이 최고야.

그는 투덜거리다가도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양감을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남자의 정체는 하부 리그의 선수. 그곳에서도 꽤 오랜 기간 활동한 베테랑이었다.

“한 대 피고 가야겠구만.”

도시처럼 구현된 투기장. 그 어두운 골목.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겠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역시 저 동굴처럼 생긴 천장에 달아 놓은 거대한 샹들리에는 오랜만에 봐도 흉물···.

“응?”

언제부터 천장이 저런 색으로 변했지? 새로 만든건가? 뭔가 가깝다.

가상현실의 연초가 주는 몽롱함.

그에 힘입어 남자가 그렇게 생각할 때.

─텁!

“윽···.! 읍?!!”

“조용히─.”

돌연,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여졌다.

“하부 리그 선수. 맞지?”

“──!!!!”

검보라빛의 일렁이는 뭔가가 시야를 가린다.

꽈아아악.

이빨 채로 턱이 함몰될 거 같은 고통.

그에 남자가 고개를 위아래로 마구 끄덕였다.

“좋아.”

목소리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돌연, 혈류가 마구 요동치는 감각.

“───!!!!!”

“참가권을 양도해라.”

끄덕끄덕끄덕.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고통에 못이겨 온몸으로 저항하는 모습.

눈을 뒤집고 부르르 떨던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려지고 말았다.

털썩.

“···여기까진 계획대로.”

크로스보우는, 쓰러진 남자의 주머니에서 하얀빛 카드를 꺼냈다.

-“보험이 너무 격한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가능성을 모두 없애 놔야 하니까.”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

“뭐? 연락이 안 돼?”

-“그렇답니다. 풀다이브로 들어온 기록은 있는데···캡슐에 이상이 생겼나 봅니다.”

“얼씨구. 근데 그게 나한테까지 올라올 얘기냐? 대충 부전승 시켜!”

-“저···그게···베팅 금액이 너무 커서 안될 거 같습니다.”

“···얼만데.”

부하의 대답을 들은 크리스피.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확실히, 적지 않은 액수긴 하다.

“남는 애 없냐? 대타로 내보내면 되잖아.”

-“그게···네이션스 컵 이후로 처음 열린 투기장이지 않습니까.”

“그게 왜. 우리 그동안 다른 것도 잘 팔지 않았나?”

-“···크흠. 오늘은 상하부 리그 모두가 한 번에 열리는 날입니다.”

그 말을 듣고 크리스피는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그게 오늘이었군. 붉은 검신에게 짜증이 잔뜩 나 있다가 받은 보고라 잠시 헷갈렸던 것.

네이션스 컵 때문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투기장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고 일주일.

축제 비슷한 날.

“···흐음.”

이걸 어쩐다.

이대로 부전승을 처리하기엔 이쪽이 먹는 수수료가 꽤 줄어든다.

게다가 완벽주의를 모토로 삼는 그로서, 문제 하나라곤 해도 부하들에게 이런 걸 해결하지 못하는 이미지로 비칠 순 없는 노릇.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기가 막힌 답안을 떠올렸다.

“걱정 말고 재개해. 선수는 내가 알아서 내보낼테니까.”

-“···예? 어, 어떻게.”

“···예? 반문한 거야? 지금?”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지금쯤이면 들어와 있겠지. 크리스피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잠시 후, 하부 리그의 경기가 시작되는 시간.

크로스보우는 관중석에서 가만히 팔짱을 낀 채,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이 선수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니. 뭐야. 내 베팅은!!”

“이대로 부전승이라고? 씨발. 미친 거 아니야?”

“승부 조작이냐?”

주변에서 욕설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크로스보우와 팔짱을 끼고 있던 채은아.

그녀가 조용히 속삭여 왔다.

“허리 말고 어깨 만지세요.”

“그치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뜨거운 연인이 아닌걸요? 컨셉을 잊으면 안됩니다.”

“···꼬, 꼼지락 거리지 마세요.”

수상쩍게 여겨지지 않기 위해 낸 임기응변.

가면까지 쓰고 있으니, 연인을 희롱하는 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사실 틀리지는 않아서, 이쪽을 힐끔힐끔 보던 놈들도 입맛을 다시고 넘어가고 있었다.

다만 관심이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컨셉상 가만히 있기엔 뭐한 것이 사실.

“···으, 으으···.”

“가만히 좀 있어. 나잇값 좀 하자.”

“···응애.”

크로스보우는 그녀의 목덜미를 대충 흩으며 말하다가, 돌아오는 대답에 웃음을 참았다.

“···드립 치지 마시구요.”

“극한의 포상에 정신이 이상해져 버렷···.”

“···.”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는 머리가 아파 오는 걸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 89화-투기장의 신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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