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이 몸 등장 (7)세상의 변화는 언제나 급작스럽다.
잠시 시야를 떼면 항상 사건이 발생해 있는 21세기의 지구.
이 시대의 10년은, 강산을 변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세계.
가상현실.
‘유어 캐릭터즈 올 오버’.
혜성같이 나타난 게임.
정말 가상현실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종류의 것이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감각. 그러나 현실과는 다른 몸의 활력. 수많은 캐릭터! 수많은 게임 모드까지.
여기에 기본에 충실한 운영. 핵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
사람이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올오버란 이름의 세계는 수많은 유명인을 낳았다. 현실의 운동선수보다 더한 유명세를 가진.
어느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현실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은 트렌드를 넘어선, 일종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 시대를 관통했다.
제2의 현실이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가상에선 무슨 짓을 해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적을 찾아 죽여도, 잡아서 끌고 다니는 것도, 랜덤 매칭 모드를 통해 눈맞은 남녀가 스킨십을 하는 것도.
모두 가상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
사회적 문제는 어쩐 일인지 줄어들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를 가상현실의 높은 보급률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인류는 같은 인간과 접촉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었고, 대중문화는 점차 개방적으로 변했다.
마음 속 꼭꼭 숨겨 놓았던 음험한 스트레스의 발산지.
인간이라면 본능처럼 갖고 있을 야만,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
가상현실의 순기능.
올오버의 모든 것에 장점만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모든 것은.
────콰앙!!
현실이 아니니까 성립하는 이야기.
띠링!
[경기도청]14:29 경기 부천시 북쪽지역 균열 발생/몬스터 및 재해현상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
게임 속에 존재하던 괴물이 현실로 튀어나오고, 살아남기 위해 현실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어떨까.
“아이고오!! 내, 내 가게!”
“저거 좀 어떻게 해 봐. 학생들!!”
“저, 저희도 몰라요!”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잡으면 되잖아! 저, 저거. 인게임에선 그냥 잡몹이라고!”
“그럼 당신이 해 보든가!!”
“괜히 뒤집어쓴다. 도와주지 마.”
거무죽죽한 괴물이 시내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작은 균열에서 쏟아져나온 괴물들.
그워-하는 끔찍한 소리를 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그 외형이 너무나 혐오스러운 모습.
“아악!! 으아악!”
“주, 죽어!! 죽어랏!!”
돌연 지구상 전인류의 시야에 스테이터스가 나타난 지 어느새 일주일.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불안에 아직 대처 가능한 수준이라 일축….]
[현장에선 인력부족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파업에 관한 표현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투입된 군은 병사들을 더 이상 사지에 몰아넣을 수 없다는 입장….]
[‘균열특수법’이 드디어 발의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대처방안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 각지를 틀어막는 이들이 있었다.
전투, 폭력….
이런 일과는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이들이었다.
[이번엔 충주…게이머가 또 해냈다.]
[왜 싸웠냐고 묻자 ‘집이 무너지잖아요’ 대답한 청년….]
…뭔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괴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초유의 사태에, 국가기관은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
반면 참사가 발생할 뻔한 것을 몇 번이고 막아 내는 민간인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들 중 모두가 게임, ‘올오버’의 고계급에 랭크된 이들이었다.
[아ㅋㅋ게임은 질병이라며ㅋㅋ]
-게임폐인 놈들 없었으면 어쩔 뻔했음 ㄹㅇㅋㅋ
└이거 맏따
└사회가 부숴질 때 일어나는 방구석레전드들ㅋㅋㅋ
└올오버 못잃어…올오버가 이 세상의 중심이다 이 말이야
└이왜진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던 인간들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는가.
이런 뉴스가 퍼질수록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
└근데 생각해보니까 웃기네ㅋㅋ정작 방법 알려준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ㄹㅇ크로스보우 아니었으면 어버버하다 뒤졋을 놈들이 아ㅋㅋ
단적으로 말해, 크로스보우 덕이었다.
└그는 신이야
***
상태창이 떠오르고 3일째.
교문 앞에서 손을 비비며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명찰에는 이름이 반들반들해져 있다. 색깔로 보아 학년은 3학년.
‘반반무마니’. 우스운 이름과 달리 고계급에 랭크되었던 이.
실명보다 올오버 닉네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
악성 저격러였다가, 크로스보우의 조언으로 게임을 접은 유저.
수능을 앞둔 고3, 윤유지였다.
“하아…춥다.”
그녀는 중얼거리며 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11월의 둘째 주. 어느새 한껏 다가온 겨울은 입김으로 제 존재감을 알린다.
“…이번 수능…어떻게 되려나.”
정말 오랜만에 이른 하교를 하는 중이었다. 단축 수업 탓이다.
“균열은 괜찮을까 몰라.”
그랬다.
단축 수업의 원인은 학교 주변에 생성된 균열 때문.
학생들의 안위를 걱정한 학부모들의 전화 세례에 결국 교육청이 항복했던 것이다.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그 학부모들 사이엔 자신의 부모는 끼어 있지 않겠지. 가족이지만 차가운 사람들이다. 윤유지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이제는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그들이 딸래미를 신경쓰는 것이라곤 하교 때마다 보내 주는 차가 전부. 이마저도 다른 데로 새서 사고 치지 말라는 뜻이다.
“고생하셨습니다. 타시죠.”
교문 앞에 쭈욱 미끄러져 들어온 고가의 차량에 학생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익숙한 일.
그녀는 별 생각 없이 차에 올라 스마트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크로스보우 아이튜브]
[균열방어전 공략 : 사당역]
화면에 떠오르는 것은 시커먼 헬멧을 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영상 중에서도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 나오는 편집본.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사람.’
이때만 해도 얼굴 공개를 안 하던 때. 그래서 그의 얼굴은 윤유지만 알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였다.
‘그런데 대회를 기점으로 너무 쉽게 얼굴을 공개했지. 다시 생각해도 아쉽다.’
아쉬운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주가가 치솟는 타이밍에 이해가 안가는 행보를 보였다. 기껏 본인이 한국팀을 멱살 잡고 우승까지 끌어올려 놓고, 다른 스트리머들과의 합방 같은 거라든가.
‘…아쉽지만 뭐…다른 거나 볼까?’
자신이 나오는 영상은 이제 편집 자막까지 외울 지경에 다다랐다. 어차피 다른 영상도 재탕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새로운 재미가 있으리라.
그렇게 그녀가 이리저리 스마트폰을 조작하던 때였다.
-새로 고침 중…
돌연 아이튜브의 구독란에 동영상이 떠올랐다.
[크로스보우 아이튜브]
-1초 전
“응?”
기다리던 크로스보우의 업로드. 윤유지는 서둘러 영상을 클릭하려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너무 많다.
-1초 전
-1초 전
-1초 전
.
.
.
-1초 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영상들.
심지어 언뜻 보아하건데 편집조차 되어 있지 않는 모습.
“…뭐야?”
이런 적은 없었는데.
당황한 나머지 윤유지가 소리를 내고, 운전 기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 순간.
“…어?”
그녀는 문득 눈을 의심했다. 마구잡이로 올라온 영상 중, 묘한 제목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균열방어전 – 맵 하나 고등학교 공략]
“…하나고?”
익숙한 이름이다. 균방전 맵이라서 들어본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녀는 균열방어전 유저가 아니니까.
그런데도 익숙한 이유.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하나고는, 자신이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의 이름이었으니까.
삐빅-.
-“전방에 하나고등학교 스쿨존입니다.”
네비게이션 소리가 마치 확신을 더하듯 들려온다.
“…아가씨?”
그리고 운전 기사의 의아한 눈초리.
윤유지는 마치 홀린 듯 영상을 눌렀다. 순간적으로, 극도로 집중에 빠진 채.
이내 재생되는 영상.
편집도 없이 생으로 업로드된 듯한 모습. 심지어 언제나 존재하던 채팅창마저, 없다.
-“크로스보웁니다.”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고등학교. 맵 이름은 하나고등학교입니다.”
소갯말도 없이, 단출한 멘트.
-부우웅.
그런 크로스보우의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도로. 익숙한 정경 속 출현하는 괴물.
그리고 돌연 차량이 하나 공중에서 날아와 땅에 쳐박힌다.
-“오늘은…조금 난폭한 녀석이군요.”
-콰아아앙!!
“…!”
커다란 폭발.
그 모든 모습이 마치 뭔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하필 우리 학교가…?”
설마하는 심정에 바깥으로 고개를 돌린 윤유지가 지잉 창문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
문득 현실에서도, 완벽히 똑같은 굉음이 울려퍼졌다.
창 밖을 보자 차량이 굴러가고 있었다. 도로에 마구 상처를 남기며.
쿵, 쿵.
전달되는 진동과 함께 몸을 관통하는 기묘한 확신.
난데없는 비일상에 윤유지는 비명을 지르는 것 대신에 차 문을 벌컥 열어 내렸다.
현실이다.
균방전이 현실이 된거야.
──□□□□!!!!
그 추측에 화답하듯 들려오는 거대한 울음 소리.
멀리 보이는 것은 거대한 침팬지를 닮은 괴물.
“저게…대체…?”
“뭐, 뭐야?”
거대한 몸체가 주는 위압감에 질린 시민들.
윤유지는 저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기간틱 바스타! 레이드 보스가 왜…!’
올오버의 레이드 모드에 등장하는 상위종 몬스터, ‘기간틱 바스타’다.
몇 개월간의 올오버 휴식기가 무안하게, 그녀는 게임 속 습관처럼 무기-유물석 총을 잡으려 손을 등으로 향했다.
“…핫!”
그러나 무기가 있을 리 없다.
캐릭터 패치 이전에 게임을 접은 데다가, 자신에게 떠오른 상태창은 남들과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다.
[윤유지]
[미확인 열쇠 1개]
‘그러니까 미확인 열쇠가 뭐야…!’
“아가씨. 아가씨! 위험합니다! 얼른 타세요!”
잠시 당황하는 그녀에게 허둥지둥 손짓하는 운전사의 모습.
그러나 윤유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쩌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지?
크로스보우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문득 이미 정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로스보우가 방금 올린 영상. 방금까지 보고 있던 영상.
그 안에 답이 있을게 분명하다!
“포, 폰! 스마트폰!”
차에 두고 내렸나…!
“아저씨! 뒷좌석에 제 스마트폰 좀…!”
“네, 네? 핸드폰은 타서 하시지요. 위험합니다!”
이런 젠장.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차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때였다.
─□□□□□□!!!!
문득, 기간틱 바스타가 이쪽을 바라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역한 노린내가 거리를 뚫고 훅- 코를 찔렀다.
“으욱….”
순간 어지럼증까지 불러일으키는 냄새에 코를 막은 순간, 녀석이 펄쩍 도약한다.
쿠웅!!
그리고 착지.
착지한 곳은 윤유지의 바로 앞이었다.
──□□□□□□….
“하, 하하….”
거대한 몸체를 굽혀 윤유지를 바라보는 괴물.
굳은 물감을 닮은 눈동자가 역겹다는 생각이 들 때, 놈이 주먹을 지켜들었다.
“…익숙한 패턴….”
윤유지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게임에선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아군의 후방으로 펄쩍 도약해 힐러부터 끔살하는 패턴.
“───아가씨!!!!”
그리고, 녀석의 공격력은 게임에서도 사람 하나쯤 짓뭉개는 수준이다. 하물며 게임 캐릭터가 아닌 윤유지가 뭉개질 것은 당연.
부웅-.
게임에선 수백 수천 명을 죽였을 주먹이, 그녀를 향해 휘둘러진다.
이러면 꼼짝없이 죽게 생겼네.
──□□□!!!
그녀는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는 감각에 피식 웃었다. 세상이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되는 게 없네.”
수능 끝나면 다시 크보 님 방송이나 보면서…어쩌면 만날 수 있는 기회라도 있길 바랬는데.
번듯한 대학에 입학해서 당신 조언 덕에 정신차렸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는데.
죽기 직전 떠오른 것은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라, 그러한 감상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왔다.
그녀는 어깨를 잡아당기는 큼지막한 손의 감촉에 생각했다.
누구지?
“시선. 잘 끌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늦지 않았네요.”
털썩.
쓰러진 그녀의 눈에, 넓찍한 등이 비쳤다.
“스킬 발동. 해방解放.”
속삭여지는 소리.
낯익은 스킬명에 윤유지의 눈이 크게 뜨였다.
“……크로스보우!!!!!”
그녀의 영웅이 왔다.14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