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라면 한 그릇 (2)
왕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라면 조리에 들어갔다.
요리사 출신답게, 무척이나 빠른 손놀림이다.
콸콸콸콸-
눈대중으로 생수를 붓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 레시피의 정량인 550mL를 맞췄다. 오랜 경험으로, 눈만으로도 물의 양을 정확히 맞출 정도였다. 미각은 타고나야 하지만, 이런 것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화르륵-
물이 담긴 냄비를 가스 불에 올려놓고는, 바로 도마를 꺼내 파를 썰기 시작했다.
역시 라면엔 파 향이 깊게 들어가야 맛있다.
송송송송-
파의 흰대를 잘게 썬다. 썰기의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고전 요리만화에 나오는 비룡과도 같은 속도다.
‘이런 것도 노력하면 누구나 가능하지.’
보글보글-
물이 끓자 곧바로 면과 스프, 썰어놓은 파를 한 번에 집어넣는다. 강한 불로 빠르게 조리하려는 생각이다.
그리고는 우동 육수를 우릴 때 쓰는 다시마 한 조각도 같이 넣었다. 라면 스프에 MSG가 들어있긴 하지만, 다시마 속의 천연 글루탐산나트륨이 더욱 깊은 맛을 이끌어낼 것이다.
라면이 끓어 오르자, 왕호는 긴 젓가락으로 면발을 올려 공기와 계속해서 접촉시켰다. 이렇게 하면 면발의 쫄깃함이 더욱 살아난다.
오른손으로는 라면을 끓이고, 왼손으로는 또 다른 작업에 들어갔다.
바로 ‘수란’ 만들기.
다른 냄비 속 물이 끓어 오르자, 왕호는 한 손으로 능숙하게 계란을 까서 그대로 투하시켰다.
퐁당-
거기에 식초 세 방울을 떨어뜨린다. 이러면 수란의 모양이 퍼지지 않고 잘 뭉친다.
수란은 금세 익는다.
왕호는 스댕 밥그릇으로 수란만을 따로 건져냈다.
수란이 완성되자 라면도 어느덧 거의 다 익었다.
왕호는 가스공급을 멈추고는 우동 그릇에 라면을 예쁘게 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만들어 놓은 수란을 면 위에 올리고, 노른자 위에 고소한 참깨를 뿌려 라면을 완성한다.
‘역시 라면엔 파송송 계란탁이지.’
“자, 다 됐습니다.”
모락모락-
왕호가 방금 만든 따끈한 라면을 최 영감님 앞에 놓았다. 우동용 나무젓가락도 잊지 않는다.
“끌끌, 내가 왜 라면을 주문했는지 아나?”
“라면이 땡겨서요?”
“아니. 인스턴트 라면은 그 누가 만들더라도 맛이 비슷하지. 이 라면이야말로 네 녀석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음식 아니겠나? 레시피대로만 하면 되니 말이야 껄껄껄.”
호탕하게 웃은 최 영감은 젓가락을 들어, 면발을 흡입했다.
호로록-!
매끈한 면발이 미끄러지듯 영감님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최 영감은 면발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젓가락으로 수란의 노른자를 터트렸다.
반쯤 덜 익은 노른자가 흘러나와 국물을 적신다.
최 영감은 노른자가 섞인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룹-
“크~ 라면은 기가 막히군.”
최 영감의 첫 번째 칭찬이었다. 무려 일주일만의 칭찬이다.
최 영감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왕호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요리를 시작한 이유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덩달아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 이유 하나면 족하다.
“맛있습니까?”
왕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네놈이 맛있게 만든 것이 아니라, 라면 회사 연구원들이 연구를 열심히 한 거다. 라면은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인구의 절반이 죽어 나갈 때, 날 생존케 해준 고마운 요리지. 그때 먹던 라면 한 그릇 이후로 최고 맛있었다. 벌써 60년도 더 지났군. 요리는 추억과 함께할 때 더욱 맛있어지는 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최 영감은 왕호의 요리 스승도 아니었지만, 왕호는 최 영감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추억과 함께할 때 더 맛있다라······.’
왕호도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다.
최 영감은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 진중한 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봤던 추레한 영감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내 자네 요리 하는 걸 일주일 동안 깊게 관찰했네. 처음엔 그저 심란한 마음 달래볼까 들른 작은 포장마차였지만, 자네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더군.”
‘사생팬··· 맞는 거 아냐?’
왕호는 속으로 식겁했지만, 일단은 최 영감님의 말에 집중했다.
“우선, 재료 나르는 것과 정리하는 게 매우 능숙하더군. 포장마차 일을 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다고 했지? 그렇다면 레스토랑 시절 많이 도왔다는 뜻이겠지. 세컨드면 굳이 안도와도 되는데 말이야. 파채를 써는데 속도가 매우 빠르고 두께는 완벽하게 균일했다. 하루 이틀 해서는 안 되는 솜씨지. 기본기가 완벽하다는 것은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받아보는 최 영감의 칭찬세례다. 왕호는 얼떨떨한지, 애꿎은 머리를 긁적였다.
최 영감이 말을 계속 이었다.
“게다가 손이 매우 빠르고 뜨거운 것도 잘 만지더군. 갓 꺼낸 튀김을 맨손으로 만지지 않나, 전 부치는데 손으로 거들지 않나. 그것은 오랜 고통을 겪으며 굳은살이 박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새 젊은 요리사들은 자기 몸 사리기에 바쁘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청결이다.”
“청결이요?”
“요리하는 순간순간 계속 정리를 하더군. 자네의 손이 빠르니 그것도 가능했겠지. 사용한 칼은 다른 요리를 하기 전 바로바로 씻고 말이야. 이틀 전엔 요리하다 머리를 한번 만졌는데, 바로 손을 또 닦더군?”
“그야, 청결은 기본 아닙니까?”
“기본적인 일이지만, 귀찮아하는 놈들이 태반이다. 청소는 영업 다 끝나고 한 번 하는 놈들도 있다. 그리고 자네의 그 머리 스타일도 굉장히 맘에 드네. 머리카락 흘러내리는 걸 막으려고 머리를 뒤로 다 넘겨 묶다니. 요즘은 스타 셰프다 요리하는 남자다 뭐다 해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던데, 자네는 외모보다 위생을 더 챙기는 사람이군. 맞나?”
왕호는 최 영감의 말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그러지 않지만, 요리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예민하다.
해서, 머리카락 한 올도 용납 못 한다. 머리를 아예 밀어버리던지, 길러서 한 번에 묶는 수밖에 없었다. 왕호는 후자를 선택했다. 머리를 정갈하게 빗고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터라, 매우 깔끔했다. 심지어는 ‘단아한’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네. 자네는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야. 그것에 관해서라면, 자네는 내가 아는 최고의 셰프네.”
어느새 최 영감은 왕호를 ‘셰프’로 까지 불러주고 있었다.
“배려요?”
“허허,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몸에 배어 있구만. 우선, 이 괴짜 노인네의 말동무가 되어주지 않았나? 게다가 난 ‘라면 한 그릇’을 주문했을 뿐인데, 자네가 해준 것은 그 이상이었네. 자네는 파를 넣을 때, 파의 흰대만을 썰어서 넣었네. 거기에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수란까지 만들어 넣어주더군. 다시마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야··· 그렇게 끓여야 가장 맛있으니까요.”
“끌끌끌. 그렇게 생각하다니 내 할 말이 없군. 하지만! 자네는 젓가락을 내 왼편에 놓아주었네. 그것도 돌려서 말이야. 그건 내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 놓아준 걸 테지?”
“갑자기 칭찬을 쏟아부으시니 조금 어색하네요.”
왕호는 머쓱함에, 자꾸만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네는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요리사가 아니라, ‘감동을 주는 요리사’라고 하는 게 더 알맞겠군.”
“감동을 주는 요리사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좋은 요리를 대접받았으니, 응당 그 값을 치러야겠지. 자, 이걸 받게나.”
주섬주섬-
최 영감은 바지춤에서 빨간 알약 하나를 꺼내, 왕호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자네를 실력 있는 요리사로도 만들어 줄 특효약이네. 비타민이라고 생각하고 먹게나.”
“예? 이상한 거 아니에요? 먹으면 탈 날 거 같은데······.”
알약을 받은 왕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이상한 노인네가 건네준 약이다. 일주일 내내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남이다. 먹고 어떻게 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설마··· 일주일 동안 날 관찰한 게, 내 장기를 빼내려고? 병치레를 하나 안 하나 그동안 눈여겨본 건가?’
그리고 사실 이 빨간약은 수면제?
별의별 생각이 왕호의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자네가 저번에 그랬지? 요리계에까지 각성자들이 들어와서 너무 힘들다고. 혹시 그거 아나? 그 약이 자네의 ‘잠재력’을 일깨울지. 그럼 이만 이 노인네는 나가보겠네. 그동안 고마웠네. 앞으로도 계속해서 감동을 주는 요리사가 되게나. 껄껄껄.”
술이 거나하게 취한 최 영감은 비틀거리며 왕호의 포차를 빠져나갔다.
‘그래! 나쁜 영감님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먹자!’
최 영감은 왕호의 약점인 ‘희망’을 건드렸고, 그것은 왕호가 무모한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다.
꿀꺽-
왕호는 단숨에 빨간약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순간!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아씨! 영감님 소줏값 안 내고 가셨네!”
소주 세 병과 라면 한 그릇을 공짜로 자셨다. 무려 만 오천 원 어치다. 짠돌이 왕호에게는 피가 생으로 빨리는 기분이었다.
이게 다 빨간약으로 왕호를 현혹한 탓이다.
‘크윽! 역시 사회란 눈뜨고도 코 베이는 곳이다! 집중하자 왕호야!’
별별 수법을 다 쓰는구나!
그리고 바로 그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왕호에게 찾아왔다. 빨간약의 효과가 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커헉!”
털썩-
왕호는 배를 움켜잡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포차의 사람들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주인장!”
“끄으으윽······.”
지독한 고통 때문인지, 왕호의 눈동자는 완전히 돌아가고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헉!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내, 내가 신고할게!”
“누구 여기 심폐소생술 할 줄 아시는 분!”
“일단 119에 전화하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합시다!”
“그럽시다!”
그리고 또 그 순간,
멀어져 가는 의식과 손님들의 다급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음성 하나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띠링-!
[각성하셨습니다.]
[잠재된 힘이 개방됩니다.]
[클래스 “힐링 요리사”로 전직하셨습니다.]
왕호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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