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3화 (3/149)

고생 끝 행복 시작? (1)

왕호는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천장에 그려져 있는 병원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애...산...병원?’

헉! 병원?

벌떡-

왕호가 마치 등에 스프링을 단 것처럼 상체를 들어 올렸다.

왕호의 격렬한 움직임에, 침대 맡에 엎드려 자고 있던 이가 부스스 일어났다.

“···오, 오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왕호의 하나뿐인 여동생. 희영이었다.

희영이는 아까부터 왕호의 오른손을 꼭 쥐고 있는 상태였다. 아마 그대로 잠이 든 것 같았다.

밤새 울었는지, 희영의 눈은 팅팅 부어 있었다.

“으아앙! 어떻게 되는 줄 알았잖아. 이 바보야! 잠깐만 기다려, 의사쌤 데려올게!”

희영은 안도감에 울음을 터트리고는, 의사를 호출하기 위해 후다닥 달려나갔다.

‘뭐, 뭐지 내가 왜 병원에?’

왕호는 어리둥절했다.

“아얏!”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온다. 왕호는 한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어제 있던 일을 되짚어봤다.

‘어제 장사를 하고··· 최 영감님이 준 빨간약을 먹고··· 아! 그 빨간약!’

그걸 먹고 나서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아마, 이것 때문에 여기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왕호가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니, 심각한 수준의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있었다.

그나저나 애산 병원이라······.

‘애산 병원이면··· 진료비가 꽤나 나올 텐데. 여긴 게다가 응급실이니······.’

자신의 몸보단, 많이 청구될 병원비가 더욱 걱정됐다.

절레절레-

왕호는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떨쳐냈다.

어쨌든 병원비보다는 자신의 몸 상태가 우선이다. 왕호는 가장이다. 자신이 아프면, 희영이가 굶는다. 아프면 안 된다. 돈이야 건강하면 다시 메꿀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뭔가 꿈을 꾼 거 같기도 하고··· 하하, 내가 각성했다니 개꿈도 그런 개꿈이 없지.’

정신을 잃은 것도 모자라서, 각성자가 되는 개꿈까지 꿨다.

머릿속에 자꾸 [각성하셨습니다.] 라는 음성이 맴돌았다.

아마 꿈의 내용이겠지.

왕호가 지닌 각성 유전자는 일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여, 어릴 때 이미 각성 가능성 0% 진단을 받은 상태다. 0.01%도 아니고 딱 잘라서 0%다. 일고의 희망조차 없는 확률.

그러니 개꿈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이윽고 희영이가 응급실 의사를 왕호 앞으로 데리고 왔다.

“괜찮습니까 환자분? 무려 9시간을 누워계셨습니다. 수면 상태라서 그냥 놔두긴 했지만···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

의사는 왕호가 맞고 있는 링거 줄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느새, 수액은 다 맞고 떨어진 상태였다.

“아, 예.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왜 쓰러진 겁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피검사를 해보긴 했는데··· 딱히 나오는 건 없군요. 수치도 다 정상이구요. 좀 더 정확한 검사를 위해 뇌CT를 찍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씨, 씨티요?”

왕호가 눈을 부릅뜬 채로 물었다.

지금은 토요일이다. 분명 9시간을 누워있다고 했으니 토요일 아침이 맞을 거다. 그리고 토요일에 찍는 CT와 MRI는 비싸다. 그것도 무지.

아무리 몸이 중요하다고 해도, 귀한 돈을 막 갖다 쓸 수는 없다. 정 찝찝하면 차라리 월요일에 찍는 게 이득이다.

“서, 선생님! CT는 조금 그런데······. 제가 사실 어떤 약을 먹었거든요? 혹시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닐까요?”

“네? 약이요? 어떤 약입니까?”

“그게 다른 사람이 준 약이라.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빨간색 알약이었는데······.”

“허! 환자분! 아무 약이나 준다고 덥석덥석 받아먹으면 큰일 납니다! 몸에 좋다고 해서 막 먹었죠? 약에 대한 알러지가 있을 수도 있고, 치명적인 성분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는데 미련하게 그럼 안 되죠!”

의사가 그런 걸 왜 주워 먹냐며 왕호를 나무랐다.

“저도 왜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영감님이 꼬드기는 바람에······.”

“하, 그래도 혹시 모르니 CT는 찍고 가세요. 영상의학과에 오더 넣겠습니다. 김 간호사! 이 환자분 링겔 좀 빼주세요!”

“그, 그래도 CT는···”

찰싹-!

자신의 등짝을 강하게 내리치는 손길 때문에, 왕호는 말을 차마 다 잇지 못했다.

“아얏! 희, 희영아!”

희영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빠! 지금 오빠 기절했었어! 의사 선생님이 하란 대로 해. CT 찍으러 가자.”

“아, 알았어······.”

왕호는 차마 희영이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했다가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

결국, 비싼 돈을 들여 CT를 찍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에휴, 20만 원이나······.’

건강보험 처리를 했지만, 20만 원이라는 거액을 수납해야 했다.

‘역시··· 각성자들 빼면, 의사가 최고구나.’

분명 힘든 직종이지만, 윤택한 삶을 누릴만한 봉급을 가져간다.

왕호는 희영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런 의사가 되길 바란다. 그래야 자신처럼 몸 써가며 힘들게 살지 않을 테니까. 희영이 학원도 보내고, 뒷바라지 제대로 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해봤자, 요리뿐이다.

희영이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병의 원인도, 병의 이름도 모른다.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온 단다. 유일하게 드는 약이 하나 있는데, 문제는 이게··· 비보험이다.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아서 약값이 꽤나 나간다.

때문에 홀어머니는 청주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에서 급식 아주머니로 일한다. 왕호도 5년을 넘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했지만, 작은 포차 얻을 만큼의 돈뿐이 모으지 못했다.

이것도 거진 다 빚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영이를 원망하지 않는다. 희영이는 왕호가 삐뚤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나침반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요리를 시작한 이유도 희영의 덕이 컸다.

그리고··· 희영이도 의사가 꿈이라고 했으니, 의사가 된다면 오빠의 인생도 활짝 피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랄까?

하아-

왕호가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희영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오빠. 병원비 때문에 그래? 이번에 지수 가게에서 알바 구한다고 했거든? 내가 그거 하면··· 아얏!”

왕호는 희영이의 머리에 꿀밤을 살짝궁 놓으며 말을 끊었다.

“고3이 무슨 알바야! 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정 돈 벌고 싶으면, 저번처럼 전교 1등 해서 학원비나 어떻게 깎아봐라.”

“히잉. 알았어. 이번에는 진짜 실수 안 할 거야! 마킹은 항상 두 번씩!”

희영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웃었다.

그런 희영의 모습을 보고, 왕호도 따라 웃으려는 찰나.

갑자기 왕호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 큰일 났다! 내 포차!”

아까부터 찝찝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거일 줄이야······.

분명, 영업하다 쓰러졌으니 포장마차는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을 게 분명했다.

불안에 몸서리치는 왕호를, 희영이 달랬다.

“오빠 걱정 마. 내가 새벽에 정리하고 왔어. 다행히 단골 분께서, 119에 신고도 해주시고 포차도 지켜줘서 도난당한 물건은 없어.”

“아, 정말? 다행이다······. 그 단골분 누군지 알겠어? 서비스 많이 넣어줘야겠다. 고마워 희영아.”

왕호는 희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오빠! 의사 선생님 말씀 들었지?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안정을 취하랬잖아. 오늘은 푹 쉬어야 해! 장사 하면 안 돼!”

“오늘은 토요일이라 대목인데······.”

“쓰읍! 자꾸 그러면 나 알바한다! 나 이번 달 용돈 필요 없으니까 좀 쉬어, 이 짠돌아!”

“알았어 인마. 오늘 하루 정도는 쉬지 뭐. 한 달 내내 일했으니까······. 생각해보니까 과로 때문에 쓰러졌을 수도 있겠다.”

왕호는 애써 쓰다듬은 희영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피식 웃었다.

수입이 두 번째로 많다는 토요일에 쉬는 게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달렸으니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을 거 같다. 갑자기 쓰러진 것도 조금 무섭기도 하고······.

‘그나저나 너무 현실 같은 꿈이었어. 아직도 귓가에 맴도네.’

[각성하셨습니다.]

학창시절 이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소리다.

헛된 희망은 마치 독사처럼 정신을 갉아먹으니까······.

‘그래도 한 번 확인해볼까?’

너무 생생해서 아니더라도 확인해보고 싶다. 어차피 더 이상 실망할 것도 남아 있지 않잖아?

“상태창.”

거의 10년 만의 상태창 확인이다.

각종 정보가 담긴 홀로그램 창이 왕호의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창의 내용을 확인한 왕호는 입을 떡 벌린 채, 그 자리에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안왕호 Lv. 1]

[클래스 – 힐링 요리사]

[각성 후 아직 오리진에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리진에 접속해 모든 정보를 다운받으시겠습니까?]

“뭐, 뭐야?!”

왕호의 손이 벌벌 떨렸다.

지금 눈앞에 떠 있는 이 정보들을, 왕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빠! 왜 그래?”

희영이 걱정스런 눈빛을 띠며 물었다.

왕호는 자신의 두 눈을 손으로 벅벅 비비고는 다시 한번 상태창을 쳐다보았다.

“내, 내가 가, 각성자? 레벨이 0에서 1이 됐어······.”

왕호의 동공이 대지진이 난 것마냥 덜덜 흔들렸다.

“각성? 오빠 각성했어?”

“희영아, 오빠 뺨 한 대만 쳐볼래?”

“뺨? 내가 오빠 뺨을 어떻게 때려!”

“제발 한 대만 쳐줘. 지금 이게 꿈인지 아직도 헷갈려서 그래······.”

“알았어······. 주둥이··· 아니, 이빨 꽉 깨물어!”

부우웅-

퍽-!

“억!”

싸다구 한 방에 왕호의 몸이 휘청거렸다.

‘찰싹!’ 소리가 나는 게 보통인데, 희영의 힘은 강했다. 둔탁한 소리가 나며, 왕호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오빠! 괘, 괜찮아?”

“새, 생생해! 꿈이 아니야! 희영아! 오빠 각성한 거 같아!”

“진짜? 그럼, 우리도 부자 되는 거야?”

“당연하지!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꺄아아!”

엉엉엉-

왕호와 희영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기쁨을 표출했다.

방방 뛰는 그들을 주변 환자들이 ‘정신병동 사람들인가?’라며 웅성거렸지만, 왕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너무 기쁜 나머지 신경 쓸 수 없었다.

-------

읏챠-

집으로 돌아온 왕호는 들뜬 마음으로 소파에 몸을 기댔다.

“희영이는 학원 갔고, 어차피 오늘은 장사 쉬기로 했으니까··· 오리진에 접속해볼까?”

숨이 다 하기 전에, 오리진에 접속할 날이 오다니!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