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 행복 시작? (2)
왕호는 다시 한번 상태창을 열어 황홀감을 느끼려 했지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는 통에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띠리리링-
“여보세요?”
-어, 왕호야!
왕호의 대학 동기 진종구다.
“종구냐? 오랜만이다? 웬일이냐?”
-야! 너 저번부터 네 가게 하고 싶댔잖아?
“응. 그랬지.”
-이번에 푸드트럭 하나 중고로 매입했거든? 근데··· 이게 좀 연식이 오래돼서 잘 안 팔리네? 예전 방식이긴 한데 아직도 쌩쌩해! 킬로 수도 그리 많지 않고, 게다가 주방 도구도 거의 새거나 다름없다. 어때? 관심있냐? 특별히 너한테는 딜러 매입가에 바로 넘길게.
종구도 원래는 왕호와 같이 셰프를 꿈꾸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각성자 스타 셰프로 물이 고여버린 요리판을 진작에 집어 던지고는, 중고차 딜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본래, 중고차와 핸드폰 그리고 보험 판매는 친구도 믿지 말라는 정설이 있다. 하지만, 종구는 자신에게까지 눈탱이 맞힐 친구는 아니다. 종구에게 있어 왕호는 거의 생명의 은인과도 마찬가지다.
“아, 미안하다. 사실, 나 한 달 전에 작은 포장마차 차렸다.”
-그러냐? 축하한다! 드디어 그 다니엘 킴 레스토랑 때려쳤구나! 진작에 나오지 그랬냐. 실력도 없는 셰프가 마법 쓴다고 티비에서 가오 잡는 거 보면 눈꼴 사나워 미치겠다.
“그래도 사람들은 각성자 셰프라고하면 좋아 죽잖아. 요리는 되게 못하지만.”
-그니까, 어차피 요리는 너 같은 세컨드나 퍼스트들이 하잖아. 어쨌든 장사 시작했다니까 내 한번 들르마. 그럼 이 푸드트럭은 캠핑카로 개조해서 팔든지 해야겠다. 요새 푸드트럭으로 창업하는 사람 없잖냐. 수고해라!
뚝-
‘푸드트럭이라······.’
꽤나 솔깃한 얘기지만, 지금은 포장마차 장사가 꽤 잘 된다. 이걸 늘려서 작은 상가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한 달 전에 연락이 왔다면, 아마 달랐을 수도 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은 각성한 상태. 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푸드트럭 따위 몰 생각은 추호도 없다.
“상태창!”
[안왕호 Lv. 1]
[클래스 – 힐링 요리사]
[각성 후 아직 오리진에 접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리진에 접속해 모든 정보를 다운받으시겠습니까?]
으히히-
왕호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처럼 찢어졌다. 너무 행복하다.
“접속!”
오리진에 접속하자, 다량의 정보들이 왕호의 머릿속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
“크으윽!”
엄청난 두통도 함께 따라왔지만, 왕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버텨냈다.
[개방된 힘에 따라 스탯이 분배됩니다.]
[이제 마나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고유 스탯 “손재주”가 생성되었습니다.]
[공통 스킬 “감정”이 생성되었습니다.]
[공통 스킬 “러닝”이 생성되었습니다.]
[오리진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러닝 스킬을 이용해 오리진 스킬 데이터베이스에서 다양한 스킬을 익힐 수 있습니다.]
각종 정보들이 왕호의 뇌리에 따박따박 박힌다. 왕호는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는 정보였지만, 마치 10년은 익혀온 것처럼 정보를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개중에는 오리진에 관한 정보도 존재했다.
왕호는 머릿속으로 들어온 오리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했다.
오리진 시스템(origin system).
의사, 과학자, 공학자, 그리고 마법사가 만든 이 오리진 시스템은 인간 DNA에 심어졌다. 인간들은 각성하게 되면서 이 오리진 시스템에 자동으로 연결된다. 즉, 각성자들 끼리의 연결망이 생성되는 것이다. 인터넷처럼 말이다.
오리진 시스템은 각성자의 육성을 쉽게 도와주는 ‘도우미’ 같은 존재다. 롤플레잉 게임(RPG)에서 소스를 따와 착안한 ‘스테이터스’와 ‘스킬’을 통해 각성자를 빠르게 육성한다. 이 때문에 ‘레벨업 시스템’이라고도 불린다.
오리진 시스템 덕분에, 각성자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데이터베이스 공유에 있다.
각성자들은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공유한다. 각성자들은 집단지성을 활용해 마치, 위키피디아 사전처럼 데이터베이스를 방대하게 구축했다. 거기에 딥 러닝 방식의 신경망을 더하면서, 오리진은 마치 살아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유기적인 시스템을 완성했다.
인간의 위대한 지성이 빚어낸 쾌거라고 볼 수 있다.
이 오리진 시스템 덕분에,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던전’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후후, 나도 이제 각성자가 됐으니 돈 버는 건 시간문제다!’
마치 로또를 맞은 것처럼 왕호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일단, 새로 업데이트된 스탯을 확인해봐야지. ···상태창!”
기대에 잔뜩 부푼 왕호는 파리처럼 양손을 비비며 상태창을 불러냈다.
[안왕호 Lv. 1]
[클래스 – 힐링 요리사]
[체력 : 500/500 마나 : 500/500]
[힘:9 민첩:10 지구력:10 지력:5 맷집:11 손재주:11]
[보유 스킬 : 감정, 러닝]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스탯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리진에 접속하며 생겨난 수치들이다.
정확히 이 수치들이 어떤 수준인지 아직은 모른다.
왕호는 오리진 속의 각종 게시판을 열어,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탐색했다.
마치 인터넷에 들어온 것처럼, 수많은 게시판과 수많은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다!’
<뉴비들은 필독! 기초 상식이랑 각종 필수 정보 알려드림(팩트폭력 주의!)>
왕호는 홀로그램 창을 클릭해, 게시물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오리진에 처음 접속하면 체력, 마나, 그리고 스탯이 분배될 거임. 체력과 마나는 처음엔 500으로 동일할 거고. 체력과 마나는 오직 레벨 업으로만 올릴 수 있음. 참고로 마나는 스킬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에너지고, 체력은 몬스터의 에너지 공격을 버텨낼 수 있는 수치임. 체력이 0이 되면 죽음. 진짜 죽음. 현실에서 죽음. 이건 가상현실 게임이 아님. 아, 그리고 체력과 별개로 심장이 뚫리거나 뚝배기가 날아가도 마찬가지로 죽음. 참고로 뚝배기는 님 머리임. 그러니까 레이드 희망하는 놈들은 잘 생각해보고 항상 조심해야 됨. 보험회사들이 보험 안 들어 주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님.]
“살발하네······.”
설명을 들으니 등골이 축축해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 분배된 스탯은 현재 몸뚱아리에 맞게끔 분배된 것임. 일반인 기준으로는 10이 최고라고 보면 됨. 가끔, 운동선수나 짱구 좋은 천재들의 경우에는 11로 시작하기도 함.]
“어디보자··· 내 힘은 9면 나쁘지 않고, 민첩이랑 지구력은 일반인 최고수준이네.”
아마, 요리를 10년 동안 쉬지 않고 해온 덕분이렷다.
요리사도 운동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일과의 대부분이 육체노동이다. 각종 무거운 도구들을 사용해야 하기에 힘이 높다. 또한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쉬지 않고 일해야 하기에 민첩과 지구력 또한 최상인 것이다.
“지능은 5밖에 안 되네······. 빡대가린가?”
뭐, 공부야 요리 하느라 학창시철부터 담쌓고 살았다. 그래도 5가 평균치라는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요리와 재료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빡대가리라 불릴만한 수치가 나왔을 거다.
“맷집은 11이네······.”
아마, 많이 다쳐봐서 이런 극악의 수치가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왕호의 몸에는 각종 흉터가 가득가득하다. 기름이 튀고, 불똥이 튀어 생겨난 2도 3도 화상을 시작으로, 칼을 사용하면서 생긴 수많은 칼자국까지.
주방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래서 한시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셰프들이 큰소리를 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스킬은 처음에는 감정 스킬과 러닝 스킬이 있을 거임. 감정은 말 그대로 감정. 감정 스킬로 몬스터의 약점과 전리품, 그리고 각종 장비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음. 러닝은 달리는 러닝(running)이 아니라, 학습할 때의 러닝(learning)임. 데이터베이스에서 스킬을 다운받아 습득시켜주는 스킬임. 예를 들어, 네가 검사로 전직했으면 검법을 익혀야 함. 근데, 어려서부터 해동검도를 배우지 않고서야 검을 잡아나 봤겠음? 이때, 이 러닝 스킬을 이용해 데이터베이스 안의 기초 검술을 익힐 수 있음. 따로 배우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정보가 들어옴. 이해됨? 물론,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고급 스킬들도 있음. 나같이 잘나가는 레이더들은 자신의 고유 스킬을 공유 안 하고 혼자서 꿀빰. 이거는 그 사람한테 따로 가서 배우든지 하는 방법밖에 없음.]
“고유 스킬이라······.”
역시, 이 험난한 사회를 헤쳐 나가려면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다. 지금은 생존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보단, 자신만의 무기를 지니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니까.
[여기서부터는 진짜 뉴비들한테 하는 충고임. 진지하니까 궁서체로 씀. 처음 각성자 됐을 때는 진짜 로또 맞은 것처럼 좋아 죽었지? 부자가 될 망상에 아주 활짝활짝 웃었지? 그거 전부 다 집어치우는 게 좋음. 그건 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허상임. 물론, 비각성자들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님들이 생각하는 그런 해피 라이프는 각성자 중에서도 상위 0.1%만이 누릴 수 있음.]
“헐······.”
예상과는 다른 레이드 관계자의 말이었다.
왕호의 기대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 클래스가 힐러? 축하함! 상위 0.1% 당첨임. 혹시 전사? 탱커계열이면 이것도 축하함! 깡만 있으면 부자 될 수 있음. 그것도 아니라면 이 판도 진짜 재능 싸움임. 상판대기 괜찮으면 영화판 가서 레이드 무비 찍고, 요리에 관심 있으면 요리계로 가는 걸 추천함. 근데, 이것도 마법사 계열이나 가능함. 손에서 불 뿜어서 고기 익힐 수 있음? 그런 퍼포먼스 못하면 여기서도 낙오됨. 지금은 각성자 인플레이션 시대임. 레이드도 몇몇 대형 길드 법인이 독점하다시피 함. 그들의 눈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거나, 아님 레이드 말고 다른 길 찾길 바람. 어쨌든, 각성자가 된 것은 진심으로 환영함. 이상임.]
“여기도 만만치 않은 곳이구나······.”
글 하나 읽었을 뿐인데, 달콤했던 환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이 글의 추천 수와 댓글들을 보니, 이 내용이 100% 현실인 듯싶었다.
씁쓸한 마음에, 왕호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쫄지 마 안왕호! 쫄지 마 인마! 그래도 어쨌든 기회를 얻었잖아. 이렇게 된 이상 갈 데까지 가보자! 아자 아자!”
왕호는 아무도 없는 퀴퀴한 집에서 혼자 손뼉을 치며 의욕을 불살랐다.
왕호는 마지막으로 들었던 최 영감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감동을 주는 요리사가 되라니······.’
최 영감님의 말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영감님이 자신을 이렇게 각성시킨 게 확실해 보인다.
그 알 수 없는 빨간약으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또 무슨 능력으로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준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버릴 만큼 멍청이는 아니다.
“그래요! 영감님 말처럼 최고가 돼보렵니다! 요리사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죠!”
재능의 벽에 부딪혀 현실을 선택한 왕호의 가슴 속에서, 다시금 의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
왕호는 계속해서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어차피 하루 쉬는 날이니,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보가 곧 힘인 시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