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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1화 (11/149)

푸드트럭 (1)

-푸드트럭? 음··· 아직 팔린 건 아냐.

“그래? 그럼 그때 네가 했던 제안 아직도 유효하냐?”

-왜? 푸드트럭 장사하게? 저번에 포차 있다고 안 한다고 했잖아.

“포차··· 접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딜러 매입가로 쳐준다는 거 확실하지?”

-야, 내가 언제 너한테 가라친 적 있냐?

“오케이. 그럼 지금 보러 가도 돼? 바빠?”

-아니, 여유 있다. 올 거면 와도 돼. 나 일하는 곳 알지?

“일산 맞지? 지금 바로 갈게.”

-크크크, 오랜만에 얼굴 좀 보겠네. 너는 인마 세상 너무 바쁘게 산다. 얼굴에 금이라도 발라놨냐? 조심히 와라.

통화를 끝낸 왕호는, 곧바로 간단한 셔츠 하나를 챙겨입었다.

푸드트럭의 품질은 그리 걱정하진 않는다. 종구도 요리를 전공한 사람이고, 자신에게까지 추천할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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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구는 왕호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무척이나 분노했다.

“와따마, 어마어마한 또라이들이네! 세상에 손님 뺏겼다고 불을 질러? 지들 요리 실력이 후달리는 거를 탓해야지 참나.”

마치 자신이 당한 것 마냥, 종구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어찌저찌해서 잘 마무리됐는데··· 포차를 다시 하기가 조금 그렇다······.”

“하, 고생 많았겠다. 그 정도일 겪으면, 나라도 다시 못하겠다. 그래도 잘 생각했어! 트럭 잘 빠졌거든, 너도 맘에 들 거다.”

종구가 왕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힘내라는 제스쳐였다.

종구는 왕호를 데리고 주차타워를 빠르게 거닐었다.

중고차 단지답게 수많은 차들이 빼곡이 자리를 잡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삐까뻔쩍한 고급 외제 차들이 눈을 자극한다. 하지만 주차타워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잘 팔리지 않는 차들만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서야, 왕호는 고대하던 푸드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꽤 크네?”

왕호는 봉고 트럭 정도의 크기를 생각하고 왔지만, 중형 카라반 정도 되는 크기의 트럭이었다.

“물 건너왔거든. 미국에서 타코 트럭으로 생산된 건데, 전 주인이 한국으로 수입했어. 제주도에서 퀘사디아랑 튀김 팔다 온 놈이야.”

“얘도 사연 있는 놈이네. 근데 먼지가 좀 쌓였다?”

유리창을 비롯한 차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왕호는 손가락을 쭉 뻗어, 차의 본넷을 쓱 훑었다. 손이 지나간 자리가 확연히 티가 난다. 나가면 바로 세차를 해야 할 정도다.

“두 달 동안 여기 있었다. 좋은 주인이 잘 안 나오더라고. 이제라도 널 만났으니 얘도 행운이지.”

“내부 한 번 봐도 되지?”

“당연히 확인해야지.”

종구는, 고정대를 풀어 트럭을 오픈했다. 푸드트럭의 용도로 만들어진 트럭답게, 컨테이너의 옆면이 위아래로 개방되는 시스템이었다. 자연스레, 손님들의 바(Bar)와 지붕까지 만들어졌다. 이러면, 비가 오는 날에도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다.

왕호는 내친김에 안으로 들어갔다.

설치된 주방 도구들과 식기들을 꼼꼼히 살폈다. 식기에도 때가 묻고 먼지가 수북했지만, 그럭저럭 쓸만해 보인다.

“한번 다 뜯고 대청소는 해야겠지만, 씻으면 다 쓸 수는 있겠네. 새로 살 필요는 없겠다.”

“당연하지. 내가 그런 것도 확인 안 하고 너한테 추천했겠냐.”

“오븐이 없는 건 조금 아쉽긴 한데······.”

“원래 있었는데, 마나석 오븐이라서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뜯겼다. 대신 가스불이랑 철판은 기가 막히니까, 웬만한 요리는 할 수 있을 거야.”

“엔진은? 차는 내가 볼 줄 모르니까. 네 말만 들을게.”

“오케이. 내려와 봐.”

종구는 본네트를 올려, 왕호에게 엔진룸을 보여줬다.

“미국에서 생산돼서 조금 클래식한 편이야. 대신 성능이랑 내구도는 내가 장담할게. 아직 20만 킬로는 더 탈 수 있다. 여기 엔진 보이지? 힘이 진짜 죽여. 양놈들 성격 알잖아. 머슬카 좋아하는 거.”

“범블비 같이?”

왕호는 어릴 적 재밌게 본 고전 영화 트랜스포머를 떠올렸다.

“맞아! 얘도 전형적인 머슬엔진이야. 8기통이니 12기통이니 하는 거는, 어차피 잘 모를 테니까 그냥 빵빵하다고 생각하면 돼. 관리도 굉장히 잘 돼 있어서 안전할 거야. 내가 보증할게. 대신에··· 옛날 방식이라 전부 기름으로 돌아간다.”

“주방까지 전부?”

“응. 기름값은 좀 나갈 거야. 대신에 언제든지 마나석 엔진으로 교체할 수 있어. 하고 싶으면 말해. 잘 아는 업체 사장님 소개시켜 줄게.”

“그때까지 푸드트럭 할지는 모르겠다.”

마나석 엔진으로 바꿀 돈이 있으면, 푸드트럭 다시 팔고 상가로 들어가는 게 낫다. 게다가 엔진 바꿀 바에는 주방 도구부터 바꿀 거다. 마나석 냉장고 하나만 있어도, 엄청나게 편해진다.

왕호는 결정을 내렸는지, 손뼉을 한번 마주쳤다.

짝-!

“좋아. 얘 데려갈게.”

“하하, 드디어 좋은 주인 만나는구만. 그럼, 내가 깨끗이 세차하고 주방 도구까지 씻어서 내일 너 있는 곳으로 갖다줄게. 기사님 시켜서 오후까지는 보내마.”

“아니, 그러지 말고 세차랑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10만 원만 빼주라.”

“뭐라고? 크크크, 누가 구두쇠 아니랄까 봐. 발상 진짜 어메이징하다. 얌마, 이거 매입가에 그냥 주는 건데, 10만 원 떼가면 내가 손해야.”

“어차피, 청소 사람 써서 할 거잖아. 거기 쓸 돈 나한테 쓴다고 생각해.”

“크크, 내가 알던 안왕호 확실하네. 알았다. 그럼 지금 가져갈 거야?”

“어, 키 내놔.”

“사무실에 있다. 가지러 간 김에 서류 쓰고 바로 입양하면 되겠네.”

종구는 왕호를 지독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독종 짠돌이 아니랄까 봐, 저런 사소한 것까지 깎아버린다. 같이 요리를 배울 때도, 재료가격 에누리하는 데는 일등 선수였다.

일분일초라도 아낄 겸 왕호는 사무실로 잽싸게 달려갔다. 종구는 그런 왕호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라도 도와줄 수 있으니,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더는 것만 같았다.

사실 왕호가 연락하기 전에, 이 푸드트럭은 캠핑업체 사장에게 넘기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시세보다 약간 높게 쳐준 탓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종구는 왕호의 연락을 받자마자 계약을 파기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캠핑업체와의 신의보다 왕호에게 진 빚이 더 컸다.

종구는 자신의 집안 사정이 극도로 어려워졌을 때, 왕호에게 300만 원을 빌린 적이 있다. 그깟 300만 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왕호의 전 재산이 303만 원이었다. 통장에 3만 원만 남겨두고 전부 보내준 거다. 그에게는 왕호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자신은 절대 그러지 못할 거 같았다. 돈은 예전에 갚았지만, 마음의 빚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왕호도 무턱대고 빌려준 것은 아니다. 종구가 반드시 갚을 사람이라고 판단했기에 빌려줬다. 애초에 떼먹을 놈이었으면,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아, 맞다!”

왕호가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뒤돌아서서 외쳤다.

“종구야! 서비스로 블랙박스 당연히! 달아주는 거지? 맞지?”

“와··· 야 그거 다 옵션이야 인마! 양심은 갖다 팔았냐? 에휴, 알았다! 너니까 해주는 거다. 어디 가서 소문이나 내지 마라. 나 호구 소리 듣는다.”

그렇게 왕호는 중고 푸드트럭을 입양했다.

*

왕호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여고생들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고3인데 이럴 시간 있어?”

받아온, 푸드트럭을 씻으러 집 앞 셀프 세차장으로 왔는데··· 땅강아지 세 명이 졸졸 따라왔다.

희영이와, 희영의 친구 소미와 혜진이었다.

“고3은 뭐, 맨날 공부만 하나? 오늘 일요일이잖아. 청소 힘들 텐데 우리가 도와줄게!”

희영이가 맡겨만 달라면서 소리친다.

그러자, 희영의 옆에 있던 혜진이도 거든다.

“이거 청소 도와주면, 오빠가 세상 제일 맛있는 요리 해준다면서요? 요리로 일당 받고 하는 거니까, 맘껏 부려먹으세요!”

“잉?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아마 희영이가 맘대로 지어낸 말이 분명하다. 뭐, 요리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한 끼로 부려먹을 수 있으니 엄청난 이득이다. 다만, 한창 바쁜 고3 친구들이라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이왕 온 거니···

“알았다. 힘든 건 내가 할 테니까, 간단한 거만 씻어줘. 끝나면 맛난 거 만들어 줄게.”

“앗싸!”

“드디어, 악마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건가?”

악마의 요리?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온 건지, 희영의 친구들이 쾌재를 불렀다.

“야 이 지지배야. 저 오빠가 네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그 오빠야? 키 크고, 잘생기고, 자상하고, 세상에서 요리는 제일 잘한다는 그 오빠?”

혜진이가 희영이를 음흉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응! 대박 멋있지?”

“뭐, 키도 큰 거 같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요리는 이따 먹어보면 알겠고, 네가 자상하다니까 자상하겠지. 근데, 저 헤어스타일은 완전 에바 아냐?”

혜진의 말에 소미가 물개 박수를 치며 동조했다.

“맞아맞아. 옛날에 우리 할머니 집에서 본 고전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았다. 대장금이었나?”

“인정! 레알 단아함 그 자체다. 나도 처음엔 기미상궁인 줄 알았다니까?”

“야! 안 꾸며서 그래. 스타일 좀 내고 꾸미면 그 일본 배우 ‘오다기리 죠죠’ 닮았다고!”

‘쬐끄만 것들이 품평회 왔나······.’

자신의 외모를 품평하는 것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귀여우니까 봐준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하자. 내가 식기랑 도구 뜯어서 내놓을 테니까 그거만 씻어주면 돼. 세차랑 내부청소는 내가 할게.”

왕호는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네! 물 튈까 봐 체육복 입고 왔어요! 막 뿌리셔도 돼요!”

“야, 우리 오빠 약간 결벽증 같은 거 있으니까, 대충하면 빠꾸 당한다. 알았지?”

“나도 한 깔끔 하거든? 걱정은 붙들어 매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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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친구들이 도와준 덕에, 청소를 상당히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처음 가져왔을 때는 꾀죄죄함을 넘어서 골동품 수준의 트럭이었으나, 지금은 아주 번쩍번쩍 광이 흐르는 상태다.

왕호는 이러한 깔끔함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하지만, 희영은 아직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희영이가 고개를 까딱하며 한숨을 내쉰다.

“하··· 이건 아닌데······.”

“뭐가?”

혜진이 물었다.

“너무 밋밋하잖아! 저게 뭐야 그냥 흰색 트럭이야. 누가 저걸 푸드트럭이라 보겠어!”

“그러게······. 누가 봐도 캠핑카네.”

동생들의 말에, 왕호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왕호는 높은 민첩 때문에, 청소를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여, 동생들이 식기를 씻을 때 재빨리 페인트칠을 했다.

지저분한 미국식 로고와 여기저기 색 벗겨진 부분이 있었지만, 왕호가 깔끔하게 흰색으로 다 발라버렸다. 높은 손재주 스탯의 영향인지, 발라진 두께도 거의 균일했다.

그리하여 완벽한 캠핑카(?)로 재탄생한 것이다.

“아, 맞다! 헤헤, 소미야아~”

희영은 무언가 방법을 찾은 듯, 소미의 팔을 껴안았다.

“응? 남사스럽게 왜 이래 갑자기?”

“너 미대 준비하잖아~. 미술학원 에이스라며?”

“에이스는 맞지. 그건 왜 물··· 설마···?”

“웅! 이참에 실력발휘 좀 해주라! 재능기부는 이럴 때 하는 거지.”

“뭐, 어려운 건 아닌데···”

희영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왕호에게 말을 토스했다.

“오빠! 소미는 특별히 곱빼기로 요리해 줘!”

“어? 어! 그럴게.”

얼떨결에 소미는 푸드트럭의 색칠을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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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예쁘다! 소미 대단한데?”

왕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박수세례가 절로 튀어나왔다. 왕호는 소미를 향해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소미의 얼굴이 완전 빨개졌다. 많이 부끄러운 듯싶었다.

소미가 푸드트럭을 도화지 삼아 그린 그림은, 그림에 문외한인 왕호가 봐도 감탄할 수준이었다.

트럭의 흰색 바탕은 예쁘게 피어난 뭉게구름 같았고, 그 구름 속을 귀여운 돌고래 여럿이 자유롭게 유영한다. 그리고 돌고래들이 쫓아가는 것은 오렌지와 아보카도 같은 동그란 과일이었다.

딱히··· 푸드트럭이랑은 상관없는 그림이었지만 가히 ‘예술적’이라고 칭할 만 했다. 사람들의 심미안을 톡톡 자극하는 그런 상상력 넘치는 그림이다.

‘Food Truck’이라는 글씨와 ‘왕호네 밥차’라는 로고가 없었다면, 벽화마을의 아름다운 벽화로 착각할 정도였다.

“움··· 요리 그림이 아니라 죄송해요. 음식은 거의 안 그려봐서요······.”

소미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흐렸다.

왕호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아냐아냐. 너무 예뻐! 솔직히 로고 정도만 기대했는데, 글씨체도 너무 귀엽고 그림은 진짜 눈이 확 트인다. 나중에 유명한 화가 되겠는 걸? 이거 미리 싸인받아놓아야 하는 거 아냐?”

왕호는 칭찬을 마구 내뱉으며 소미를 북돋웠다.

왕호가 환하게 웃자, 소미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소미의 얼굴이 터져버리기 전에, 희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오빠 이제 약속한 일당을 지급하시지?”

“당연히 드려야지! 그럼, 이참에 메뉴로 뭐가 좋을지 다 같이 결정해 보자. 난 세 가지 정도 생각하고 있거든? 한 번 먹어보고 뭐가 괜찮은지 말해줘.”

왕호의 제안에, 혜진이 놀라며 물었다.

“저희랑 같이 결정하겠다구요?”

“그래. 너희들이 왕호네 밥차 첫 손님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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