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화 (12/149)

푸드트럭 (2)

왕호는 중고차거래계약서에 싸인을 휘갈긴 시점부터, 계속해서 메뉴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토스트?

토스트는 너무 평범하다. 게다가 토스트는 접하기가 쉬워 장사가 안될 게 뻔하다.

그럼 샌드위치?

맛은 일단 자신 있다. 잘 숙성된 살라미 햄을 넣고, 오레가노 향신료로 맛을 낸 이태리식 샌드위치라면 맛은 보장한다. 하지만,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이 샌드위치 시장을 다 잡아먹고 있는 터라 게임이 안 된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왕호는 세 가지 메뉴의 음식으로 범위를 압축시켰다.

이 트럭은 본래가 타코 트럭이다. 전 주인은 제주도에서 퀘사디아를 팔았다. 똑같이 해서 나쁠 건 없다. 첫 번째 후보는 “퀘사디아”.

두 번째는 “수제버거”. 괜찮은 철판이 있으니, 즉석에서 수제버거를 만들어 낸다면 호응은 괜찮을 거다. 일반 버거에 비해 훨씬 고급진 맛이라 경쟁력도 있다. 가격만 합리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 성공은 보장이다.

마지막 후보로는 “큐브 스테이크”. 먹기 좋게 네모난 모양으로 토막 낸 스테이크다. 일단, 고기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스테이크는 기본적으로 비싸다고 느끼기에 많이들 접하지 않는다. 질 좋은 소고기를 좋은 단가에 공수할 수 있으면, 수지맞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왕호는 고기 굽는 것은 거의 장인 수준에 오른 상태다. 스테이크는 다른 요리와는 달리, 크게 재능을 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기의 질. 그리고 굽는 이의 노련함이다.

철판이 달궈지자 왕호는 세 가지 요리를 차례차례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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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다다- 치이이익- 휙- 휙-

“우와아아···”

“대박!”

혜진과 소미는 요리하는 왕호의 모습에서 도저히 눈을 떼지 못했다.

엄청나게 빠른 손으로 거침없이 요리를 하는데, 금세 요리가 완성된다. 청소할 때와는 다르게, 너무 멋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농염하기까지 했다. 특히, 걷어 올린 소매 밑으로 보이는 딴딴한 전완근은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요섹남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그러게······. 나 이상형 바뀔 거 같아.”

마지막으로 잘 구워진 등심살을 담아냄으로써, 세 가지 요리가 전부 완성됐다. 하나같이 다 먹음직스러운 것이, 당장에라도 위 속에 저장시키고 싶다.

꿀꺽-

소녀들은 침을 입 밖으로 질질 흘릴까 싶어, 자기도 모르게 삼켜버렸다.

“자, 다 됐다. 하나씩 천천히 먹고 뭐가 제일 맛있는지 알려줘.”

왕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녀들의 손이 요리를 향한다. 흡사 먹잇감을 사냥하는 암사자의 손놀림이었다.

“잘 먹겠습니다아!!!”

우적우적- 와구와구-

“으허어···”

“느무 마히따.”

막 만든 음식이라 엄청 뜨겁다. 뜨거운 탓에, 소녀들은 낙타처럼 입을 빠르게 오물거렸다. 벌어진 입 사이로 뜨거운 김과 함께 각종 탄성이 새어 나온다.

꿀꺽-

드디어 첫 목 넘김을 끝낸 혜진은, 희영의 팔뚝을 마구 내리치며 괴성을 질렀다.

찰싹찰싹-

“꺄아아! 희영아 넌 정말 축복받았구나! 이런 음식 매일 먹을 거 아냐! 급식은 어떻게 참고 먹었어!”

“야야야! 아파 이년아!”

“아파도 참아! 너무 맛있잖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서도 웃는다는 여고생들이다. 깔깔 웃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왕호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세 요리가 담긴 접시는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야채 하나까지 싹싹 긁어가고 없었다.

“어때? 뭐가 제일 맛있어?”

왕호가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

왕호는 장사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요리사의 생각보다, 손님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피드백을 잘 받고, 신중히 메뉴를 정할 생각이다.

동생들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전부 다 맛있어요!”

기분은 좋았지만, 결정을 해야 하는 왕호의 입장에서는 꽤나 난감했다.

똑똑한 희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 맛있다니까 맛으로 결정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럼?”

“오빠는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잖아. 원재료 가격, 요리에 걸리는 시간, 판매 가격, 비주얼.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골라야지.”

희영이가 전략적으로 분석하자,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오~ 역시 우리 학교 ‘마킹만 제대로 하면’ 전교 1등 답네! 분석력 좋다.”

“희영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맛은 솔직히 다 맛있거든요. 구매 하고 싶은 요리를 파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구매하고 싶은 요리라······.’

왕호는 고심에 빠졌다. 우선, 자신이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세 요리를 떠올렸다.

맛은 모두 다 있지만, 가격은 다 다르다. 아무래도 수제버거와 스테이크는 비싼 편이고, 퀘사디아는 조금 저렴한 편이다.

‘가격적으로는 퀘사디아가 나은데, 어찌 보면 샌드위치랑 다를 게 없네.’

샌드위치 빵 대신에, 또띠야 피를 사용한다는 것만 빼면 되게 비슷하다. 그렇다면 지천에 널린 샌드위치 가게와 싸워 이길 수 있느냐가 문제다. 푸드트럭은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샌드위치 가게도 어디든지 있다.

결국 돈을 조금 더 내고서라도, 쉽게 접하기 힘든 수제 버거나 스테이크에 손이 갈 것 같다.

“얘들아. 그럼, 퀘사디아는 제외하고··· 수제 버거랑 스테이크 중에 뭐가 더 사 먹고 싶게 생겼어? 가격은 똑같다고 생각하고, 비주얼 같은 걸 봐줘.”

왕호가 가이드라인을 내려주자, 동생들이 각종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비주얼은 둘 다 엄청나요! 굳이 따지자면, 수제 버거가 더 이쁘긴 하죠.”

“맞아. 오빠 근데 수제 버거는 먹기 불편하더라구. 편하게 먹으려면 칼로 썰어 먹어야 되는데, 푸드트럭이라서 들고 먹어야 되잖아. 재료들이 자꾸 흘러나와서 지저분해져.”

“음···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식당들과는 다르게 요리하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고기 구울 때가 제일 섹시··· 아니, 스테이크 구워질 때가 눈이 제일 호강하더라구요!”

“그래?”

왕호는 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자,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수제 버거는 비주얼적으로 심쿵을 줄 순 있지만, 들고 먹기가 힘들다. 게다가 스테이크에 비해 손도 많이 간다.

소고기 큐브 스테이크.

그렇게 왕호네 밥차 첫 번째 메뉴가 정해졌다.

계속해서 한 가지 메뉴만 고집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유행에 카멜레온처럼 적응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더 좋은 메뉴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바꿀 생각이다.

‘일단, 값싸고 좋은 소고기를 구해야겠다.’

왕호가 슬며시 웃었다. 소고기를 구할 좋은 곳을 안다.

*

왕호는 고기를 구하러 가기 전, 시청에 먼저 들렀다. 영업 허가부터 받을 생각이다.

“푸드트럭 하시게요? 그거 유행 한참 지났는데······.”

시청 공무원이 괜한 오지랖을 부린다.

그녀는 왕호가 가져온 서류를 빠르게 훑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 아줌마답게 입이 쉬지를 않는다.

“한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등록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죠. 당장에라도 영업할 수 있을 거예요. 예전엔 너무 바빠서 죽을 뻔했죠.”

“고생하셨겠습니다. 유행이 지났더라도, 맛이 괜찮으면 잘 되겠죠. 하하.”

“사장님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장사를 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은 이런 게 문제라니까요. 닭강정이 유행하면 우르르 닭강정 집 차리고, 핫도그가 유행하면 우르르 핫도그 집 차리고. 이 푸드트럭도 그랬었죠. 자, 여기 허가증 받으세요.”

왕호는 웃으며 허가증을 받아들었다.

“원래 공무원들은 일 처리가 느린데, 선생님은 상당히 빠르십니다. 아름다운 분은 일도 잘한다는데, 사실인가 보네요.”

“호호호. 빈말도 잘하시고, 사장님 장사 참 잘하시겠네. 그럼 조심히 가세요~.”

“네! 수고하세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괜스레 더 챙기고 싶어진다. 이 당연한 진리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장사 시에도 통용된다. 왕호는 이 부분에 있어서라면, 타고난 거상의 기질을 지녔다.

왕호는 따끈따끈한 허가증을 조수석 글로브박스에 고이 보관했다. 그리고는 시동을 걸고 마장동으로 향했다.

‘소고기는 역시 마장동이지.’

마장 축산물시장.

유구한 역사를 지닌 축산시장이다. 서울 시내 전체 육류 유통의 60% 이상을 담당할 만큼,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게다가 육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대형 시장이다 보니, 발골 작업까지 직접 하는 곳이다. 여기 사장님들은 하나같이 숙련된 칼잡이들이다.

당연히 온갖 종류의 고기를 다 살 수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희귀 부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왕호는 이 축산물시장에 들락날락한 지 벌써 5년도 넘었다. 당연히 단골 정육가게가 있다. 사장님과도 무척 친하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왕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기를 손질하고 있던 사장님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왕호 총각! 요새 통 안 보이더니 어디서 뭐 했어?”

“아···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저 업종 바꿨습니다! 헤헤.”

“포장마차 접었어? 상가 들어간 거야?”

“아뇨. 푸드트럭 하나 구입했어요. 거기서 스테이크 팔려구요.”

“하하하. 그래그래. 왕호 총각은 성실하니까 뭘 해도 성공할 거라고! 스테이크면 안심? 등심? 채끝? 어떤 걸로 줄까?”

“음··· 등심으로 주세요. 아! 한우 말고 미국산으로 주세요.”

“그래그래. 스테이크면 미국산도 좋지.”

마장동에서는 한우만 취급하지 않는다. 글로벌화에 맞춰, 미국산 호주산 소고기도 모조리 들여온다.

실제로 스테이크 기준으로는 한우보다 수입산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물론, 왕호는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단가가 좀 더 저렴한 미국산을 고를 수밖에 없다. 한우를 쓰면 가격이 너무 쎄서 쫄딱 망한다.

사장님은 피가 잔뜩 묻은 정육도를 행주로 쓱쓱 닦고는, 냉장고에서 커다란 등심 덩어리를 꺼내 도마에 올렸다.

텅-

“장사할 거니까 많이 필요하겠지? 얼마나 줄까?”

“음··· 일단 꺼낸 것까지만 전부 주세요. 더 가져갔다가, 장사 안되면 아깝잖아요. 오늘이 첫날이거든요.”

“그래그래. 잘 팔리면 더 사면 되지. 어떻게 잘라줄까?”

“적당히 잘라주세요! 디테일한 거는 제가 자를게요.”

“좋아!”

슥- 슥- 슥-

사장님은 날이 바짝 선 칼로 등심 덩어리를 뭉텅뭉텅 잘랐다. 어찌나 날카로운지, 칼이 지나갈 때마다 고기가 부드럽게 잘려나간다.

왕호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 이내 정육점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왕호의 눈에 무언가 특이한 것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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