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스테이크 (1)
고기 걸이에, 처음 보는 형태의 고기가 매달려 있다.
“사장님. 저기 걸려 있는 고기는 뭐예요?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아~ 저거? 우리 조카가 레이드인가 뭔가 하는데, 소같이 생긴 몬스터라 갖다 준 거야. 혹시 먹을 수 있는 방법 없나 해서. 근데··· 마기가 많아서 먹으면 탈 나. 마기를 빼낼 방법이 없어. 저기 있는 장 씨도 어떻게 못 하더라. 왜? 관심 있어?”
당연히 있다.
예전에야 각성자가 아니라서 쥐뿔도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몬스터 고기라니! 난생처음 본다.
오리진 시스템이 나오고 인간은 몬스터를 완전히 지배하게 됐다. 던전을 통제하고, 몬스터를 ‘사냥’했다. 생존을 위한 전쟁에서 벗어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눈이 던전을 향했다.
몬스터의 몸은 단 한 군데라도 버릴 것이 없다. 그들 에너지의 원천인 마나석은, 그 등급이 최하급이라도 무척이나 비싸다. 마나석은 마나를 머금을 수 있다. 마나는 에너지다.
전기에너지처럼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그 효율은 이루 말할 수 없을뿐더러, 마나는 ‘마법’을 작동시키는 유일한 에너지다. 때문에, 마나석으로 만든 마도구들은 상식을 초월하는 마법 기능을 인챈트할 수 있다.
이러한 마도구 중 하나가 바로 ‘마나석 냉장고’다. 왕호의 위시 리스트 1호이기도 하다. 보존 마법이 걸려있기 때문에, 여기에 재료들을 집어넣으면 언제나 싱싱하게 유지할 수 있다. 마나만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유통기한의 개념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비싼 탓에, 왕호는 감히 살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마나석을 제외하더라도, 몬스터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들의 가죽은 무척이나 질기고, 뼈는 엄청나게 단단하다. 손톱은 날카롭고, 이빨은 뾰족하다.
심지어 고레벨 몬스터 중에는, 물리적 피해를 전혀 받지 않는 놈들도 있다. 그들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면, 기관단총을 얻어맞더라도 끄떡없다. 물론, 아픈 것까진 어쩔 수 없겠지만······.
게다가 마나석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몬스터의 가죽과 뼈도 조금이나마 마나를 저장할 수 있다. 즉, 인챈트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마나석을 박는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이렇게 몬스터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레이드 사업은 세계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여, 유명한 레이더들은 웬만한 대기업 임원보다 재산이 많다.
하지만 그런 몬스터에게도 딱 하나 쓸모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살코기. 몬스터들은 평생토록 마나를 몸에 품고 살아온 존재들이다. 그 마나에서 비롯된 마기(魔氣)가 그들의 육체에 스며들어있다. 인간은 마기가 깃든 고기를 소화시킬 수 없다. 큰일 난다. 장기가 손상된다.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 빼낼 거 빼내고 남은 고기는 버린다.
지금 그 고기가 왕호의 눈앞에 있다.
“와··· 몬스터 고기는 처음 보네요.”
“음··· 왕호 총각도 요리사니까, 가져가서 한 번 연구 좀 해봐.”
“네? 주시면 좋지만··· 저보고 저 쓸.모.없.는 고기를 사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당연히 서비스겠죠?”
왕호는 쓸모없음을 강하게 강조했다.
“하하, 고깃값도 악착같이 깎는데 내가 설마 왕호 총각한테 돈을 받겠어? 그냥 가져가.”
“헤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저 쓸모없는 고기 처리해주는 거니까, 등심 가격도 당.연.히! 깎아주시는 거죠?”
“왕호 총각 그렇게 가격 자꾸 깎다가는 대머리 된다?”
“거지보단 대머리가 낫죠.”
“하하하, 알았어 깎아줄게.”
‘예쓰!’
왕호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래서 이 집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금만 싹싹하게 굴면, 가격을 잘 깎아준다. 정이 많은 사장님이다.
.
.
.
“흣챠!”
왕호는 받아온 고기를, 트럭 냉장고에 실었다.
이제 파는 일만 남았다.
‘어디서 첫 단추를 끼워야 하나······.’
골똘히 생각했다.
트럭은 옮겨 다닐 수 있으니,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집중적으로 노려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주변에 식당이 없으면 더 좋다.
상가와 동떨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왕호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창에 ‘축제’를 입력했다.
*
일단, 가까운 서울에서 진행되는 축제 주최 측에 모조리 전화를 돌렸다. 그중 한 곳에서 부스 자리 하나가 비었다는 확답을 받았다. 수익금 일부를 납부하기로 하고, 부스를 예약했다.
왕호가 도착한 곳은, 젊은이들이 드글드글거리는 야외 공연장이었다.
EDM 페스티벌.
드넓은 공원 벌판 위에, 커다란 무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는 각종 전자 장비들이 자리를 잡았고, 뒤에는 초거대 스크린이 반짝반짝 LED 섬광을 뿜어대고 있었다.
왕호는 지정받은 부스에 트럭을 세우고는, 사람들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다른 공연장들과는 다르게, 의자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전 좌석이 스탠딩이다. 아니, 좌석이랄 것이 없다고 보는 게 옳겠다.
관객의 대부분은 20대였는데, 다들 하나같이 클럽 복장을 입고 매력을 뽐냈다. 그중 꽤 많은 인원은 손에 병맥주를 쥐어 들고 있었다.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을 보니, 야외 클럽이 따로 없다.
‘맥주가 있으니 고기가 더 잘 팔리겠네. 호재다!’
판매 전용 부스에는 다른 포차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회오리 감자나 핫바 같은 군것질거리가 대부분이었다. 이러면 스테이크로 충분히 비빌 수 있다.
왕호는 요리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냉장고에서 등심살을 꺼냈다.
[신선한 프라임(Prime) 미국산 소고기 등심]
[보존 마법을 받아, 다량으로 수입됐다.]
[매우 신선하다. 스테이크로 적합하다.]
[마블링이 촘촘하다.]
왕호는 소금과 통후추로 밑간을 시작했다.
벅- 벅- 벅- 벅-
그라인더를 통해 잘게 갈려진 통후추가 등심 위로 흩날린다. 소금과 어우러져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다.
씨알이 굵은 통후추를 사용해,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슥슥-
뿌려진 소금과 후추를 손으로 비비고 누른다. 이러면 고기에 시즈닝이 잘 밴다.
왕호는 고기를 굽기 전에 미리 이 작업을 진행했다. 다른 손질을 모두 마치면 대충 2, 30분이 지난다. 고기를 숙성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겉과 속의 온도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이유가 더 크다. 지금 이 고기는 냉장고에서 방금 꺼냈다. 바로 구워버리면, 속이 차가워지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왕호는 시즈닝이 묻은 손을 수건으로 슥 닦고는,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서걱- 서걱-
양파는 그릴에 같이 굽기 위해, 적당한 크기로 먼저 썰어놓는다. 아스파라거스도 물에 씻고 미리 손질한다. 파인애플 통조림도 꺼내, 뚜껑을 까놓는다. 고기의 소화를 돕기 위해, 그릴드 파인애플을 곁들일 생각이다.
“고기만 먹으면 심심하니까···”
왕호는 사이드 메뉴로 ‘매쉬드 포테이토(Mashed potatoes)’를 선택했다. 고기만 먹으면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고기의 양을 줄이고 매쉬드 포테이토를 추가해 단가를 낮추려는 음흉한 속셈이 더 크다.
구운 감자를 껍질을 벗기고 으깬다. 삶은 감자는 수분이 많아 눅눅해질 가능성이 크기에, 일부러 구운 감자를 택했다.
으깨진 감자는 다시 한번 채에 걸러 부드럽게 만든다. 커다란 보울에 감자가 걸러진다. 걸러진 감자에 소금을 뿌린다. 그리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버터를 다량으로 투하했다.
슉- 슉- 휘적휘적-
감자와 버터를 적당히 비비고는, 뜨겁게 데운 우유를 살짝 넣어 완전히 섞었다.
이 모든 손질을 고작 15분 만에 끝냈다.
이제 고기만 구우면 되는데··· 트럭 앞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 고기는 5분도 안 돼 구울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지금 당장 굽지 않았다.
하필··· 타이밍도 좋지 않게 막 공연이 시작됐다.
대형 스크린에 ‘DJ POO’ 라는 글씨가 휘황찬란하게 그려지더니,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한 민머리의 남자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터질 듯한 근육이 울끈불끈 솟아있는 남자였다. 남자는 타이트한 흰색 라운드 티를 입고, 자신의 페로몬을 뿜뿜 뿜어댔다.
디제잉 기계 앞에 선 그는, 쓰지도 않을 헤드폰을 목에 걸고는 버튼을 눌러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DJ! Drop the beat!!!”
푸킁- 푸킁- 푸킁- 푸킁- 푸킁- 푸킁- 푸킁- 푸킁-
강렬한 일렉트로닉 비트가 공원 전체에 울려 퍼진다. 커다란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하지만 인상 쓰는 왕호와는 달리, 관객들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재끼기 시작했다.
마치 비트라는 합법적 마약에 취해버린 듯, 영혼까지 리듬에 맡겨버린다. 물론, 왕호의 눈엔 그저 정신 나간 좀비 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에너지를 저런 곳에 쏟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 정도 까지 에너지가 남았다면,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더 땡길 수 있는데······.
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처음 보는 진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클럽이라는 곳은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까워,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그런 왕호에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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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히 파리 날리겠네······.’
공연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왕호는 철판의 온도를 뜨겁게 달궜다.
‘고기 굽는 향기로 유혹하자!’
쓱싹- 쓱싹-
시즈닝이 된 고기를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네모나게 토막 낸다.
그사이에 달궈진 철판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연기가 올라오자, 철판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다. 그리고 썰어놓은 고기를 투하한다.
치이익-
고기가 철판에 닿자마자, 기분 좋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왕호는 30초 정도 기다린 후에, 집게를 빠르게 놀려 스테이크를 하나씩 뒤집었다. 뒤집힌 부위의 색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변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들 위로, 통마늘을 손으로 부숴 넣는다. 이렇게 넣어야지 마늘 향이 제대로 나온다.
그리고 미리 손질해 놨던 재료들도, 옆에서 같이 굽는다.
이제 20초가 지날 때마다, 스테이크를 굴려주면 된다. 잘 굴려서 익지 않은 면이 없게 해야 한다.
풍미를 살리기 위해, 로즈마리 잎도 넣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버터! 버터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철판에 투하한다. 버터는 진리다. 버터가 들어간 요리는 다 맛있다.
치이익- 치익-
베이스팅도 잊지 않았다. 녹은 버터와 고기의 기름. 그리고 올리브유가 섞인 액체를, 스푼으로 떠서 고기 위로 계속해서 뿌렸다.
슥슥-
마지막으로, 그릴드된 마늘을 집어 고기 위에 부빈다. 이러면 갈릭 향이 제대로 스며든다.
미디움 레어 정도로 잘 익은 고기를 빠르게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렸다. 상온에서 5분 정도 식혀야 육즙이 제대로 잡힌다. 질감도 더 좋아진다. 레스팅(resting) 과정이다.
[“매쉬드 포테이토를 곁들인 길거리 큐브 스테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미디움 레어로, 고기의 육즙이 살아있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매쉬드 포테이토를 곁들인 길거리 큐브 스테이크-
[소스를 넣어 볶지 않았다. 소고기 스테이크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매쉬드 포테이토, 구운 마늘, 구운 양파, 구운 아스파라거스, 그릴드 파인애플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육즙이 잘 잡혔으며, 풍미가 매우 강렬하다.]
[큐브 모양이라 한입에 먹기 편하다. 육질이 상당히 부드럽다.]
[효과 : 엔돌핀과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해집니다.]
완벽하게 구웠으나, 아쉽게도 초급 요리의 숙련도가 오르지는 않았다. 100%의 벽은 아직도 견고했다.
스멀스멀-
고소한 향기가 퍼져나간다.
고기가 구워지는 기분 좋은 소리는 강렬한 전자음에 묻혔지만, 고소한 냄새까지 묻을 수는 없었다.
후끈한 열기 사이로, 군침을 자극하는 향기가 사람들의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킁킁-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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