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디저트 (2)
“누텔라?!”
한여름과 김지원이 동시에 외친다.
왕호가 비릿하게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누텔라 초코잼이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악마의 잼. 칼로리가 너무 쌔다 보니, 생각 없이 발라먹게 되면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그 잼. 다이어트를 하고자 한다면, 치킨보다 더 멀리해야 한다는 그 재료다.
푸우욱-
왕호는 누텔라를 과할 정도로 한 움큼 퍼서 생크림에 투하했다. 그리고 다시 휘핑했다.
“저거 먹으면 살 뒤룩뒤룩 찔 거 같아······.”
한여름이 불안함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침샘에서는 침이 마구마구 분비된다.
사실··· 살찌는 게 걱정되면 애초에 디저트를 금해야 한다.
계속해서 크림을 휘젓자, 초코색으로 변한 크림이 질척질척하게 휘핑됐다.
왕호는 동그란 접시에 크레이프를 한 장 깔았다. 그리고 휘핑해놓은 초코크림을 그 위에 슥슥 바른다. 다시 크레이프를 한 장 올린다. 다시 널찍한 칼로 크림을 바른다. 크레이프를 올린다. 크림을 바른다.
올린다. 바른다. 올린다. 바른다···
무려 스무 장의 크레이프가 다 올라가고 나서야 작업은 끝이 났다.
[“악마의 잼 누텔라 크레이프 케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악마의 잼이 들어가 상당히 달콤합니다.]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악마의 잼 누텔라 크레이프 케이크-
[스무 장의 크레이프가 겹겹이 쌓여 부드럽다.]
[악마의 잼 누텔라가 사이사이 발라져 있다.]
[매우매우 달다. 먹는 순간 다이어트는 물 건너간다.]
[칼로리 폭탄을 넘어, 생체 연료 수준이다.]
[효과 :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생성됩니다. 스트레스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세상에··· 크레이프 케익을 직접 만드는 건 처음 봤어!”
“손이 진짜 많이 가네.”
“맛이 없을 수가 없겠다 야.”
“비주얼도 진짜 미쳤다.”
한여름과 김지원은 재잘재잘 얘기를 나누더니, 이내 칼을 들어 크레이프 케이크를 조각조각 썰기 시작했다.
슥슥-
케익을 자르자 더욱 충격적인 비주얼이 나타난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서 누텔라 크림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꺄아아! 이건 찍어야 해!”
소름 끼치게 달달한 비주얼이다. 한여름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찰칵- 찰칵- 차라라랄칵-
“왕호님도 드세요!”
김지원은 네 조각을 잘라 왕호와 강창모에게도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포크로 케이크를 푹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앙-
크레이프 케익이 혓바늘에 닿는다. 겹겹이 쌓인 크레이프가 메모리폼처럼 푹신하다. 턱을 위아래로 움직여본다.
쩝쩝-
푹신했던 크레이프가 뭉쳐지면서 쫀쫀해진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발라져 있던 누텔라 크림이 흘러나온다. 크림은 미뢰세포를 강렬히 자극한다.
찌릿-!
뇌에서 스파크가 뿜뿜 터진다.
“우와아···”
크림은 금세 녹아 사라진다.
증발.
“흐으··· 웬만한 카페 거보다 맛있어······.”
“카페 디저트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맛이라면, 이거는 장인의 손맛 그 자체야!”
그녀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극찬을 마지않았다.
그 모습을 본 왕호는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녀들이 너무 오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장인의 맛은 무슨··· 누텔라 빨인데.’
절반은 맞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 소리는 아니다.
누텔라가 들어갔으니 혀가 마비되지 않는 이상 맛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얇게 잘 부쳐낸 크레이프만 먹었어도 꽤나 괜찮았을 거다. 그래도 레스토랑에서 인정받은 솜씨다. 메인디시에서는 밀리긴 했지만······.
“우오오!”
단 것을 싫어하는 강창모도 인정해야만 했다. 마치 마약처럼 중독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말이 많은 그녀들이었지만, 이번엔 맛있는 디저트를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다. 조잘댈 틈이 없었다.
우적우적-
‘체 하겠네······.’
왕호는 그녀들의 먹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슬며시 말을 걸었다.
“근데, 두 분은 왜 레이드 뛰시는 거예요? 여기는 그렇다 쳐도, 윗 던전으로 올라갈수록 되게 위험할 텐데요?”
왕호가 말을 건네자, 그녀들은 포크 질을 멈추고는 물티슈로 가볍게 입을 닦았다. 자연스레 먹는 속도도 줄어든다.
한여름이 대답한다.
“아, 저희도 끝까지 레이드 할 생각은 없어요. 레벨 한 50까지만 올릴 생각이에요.”
“50까지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이상은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한눈팔면 정말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럼, 레벨을 올리려는 것이 레이드로 성공하려는 목적은 아니겠군요.”
“그렇죠. 저희는 다른 분야 노리고 있어요. 이를테면 방송계 정도요. 물론, 아직 저희도 마음을 다 정한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레벨은 높을수록 좋으니까, 50까지는 올릴 거예요. 그래야 더 많은 마법도 익힐 수 있구요.”
“그렇군요. 두 분은 마법사니까 어느 분야든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요리계에서도 마법사 셰프가 제일 잘 나가거든요.”
왕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을 응원했지만, 그 미소 속에는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왕호도 마법사 셰프들에게 밀려 요리계를 나왔어야만 했다.
“왕호님 요리하는 거 보니까 너무 멋있으세요! 저도 요리를 배울까 봐요! 요리가 이렇게 섹시··· 아니, 아름다운 과정인지 오늘에서야 알게 됐네요 헤헤.”
한여름이 헤프게 웃는다.
레이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정확히 보여주는 표준 모델이다. 상위 던전으로 올라갈수록 목숨을 담보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열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달다.
하지만 한여름과 김지원은 평생을 부족함 없이 살았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날 만큼 여유가 있다. 굳이 이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 우연찮게 각성했으니, 꿀을 빨 수 있을 만큼만 쭈욱 짜내면 된다.
“아! 왕호님! 내일도 저희랑 같이 파티해요!”
한여름은 마지막 조각을 해치우고는, 기대에 가득 차 외쳤다.
왕호가 아무리 레이드에 필요 없다고 해도, 지금 이 디저트는 모든 것을 상쇄시킬만했다.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한여름의 말에 왕호 또한 고심에 빠졌다.
살코기를 구했으니, 굳이 내일까지 던전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 시간에 몬스터 고기를 연구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허나, 잘 생각해보니 손해는 결코 아니었다.
왕호는 두 눈으로 실버폭스의 움직임을 똑똑히 확인했다. 가장 낮은 레벨의 몬스터라 그런지, 별거 없었다. 지금의 능력치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마리의 어그로를 끌었을 때도,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일단,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인, 부상의 위험이 거의 없다.
게다가 손님이 많이 없다는 브레이크 타임 때 들어가면, 매출에도 크나큰 영향은 없을 거다. 오히려 한여름과 김지원이 마나석을 챙기지 않으니, 엄청난 이득이다. 강창모가 있으니 다중으로 사냥이 가능하고, 거기서 나오는 마나석의 양이 상당하다. 최하급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양을 판다면 적은 돈은 아닐 거다.
계산이 끝났다.
“좋아요! 3시쯤에 점심장사 끝낼 테니까, 그때 들어가는 걸로 하죠. 창모님도 가능하시죠?”
“물론입니다! 왕호님이 가신다면 없는 시간도 빼야죠.”
그렇게 약속을 잡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디저트를 다 해치웠을 때, 한 남자가 트럭으로 다가왔다. 왕호도 아는 얼굴이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 매니저님 아니십니까?”
첫날 왕호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준 스카우트 매니저였다.
“아까는 레이드도 뛰시더군요? 비록 몹몰이 하는 것밖에 확인하지 못했지만, 인상 깊었습니다.”
“보셨습니까?”
“관찰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다름이 아니라, 탱커님과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창모님이랑요?”
“아, 성함이 창모님이셨군요.”
매니저는 강창모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창모님! 길드 영입에 관해서 긴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혹시 시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저, 저요?”
강창모가 어리둥절 어쩔 줄 몰라 했다.
옆에 있던 김지원이 강창모의 등을 두들기며 그를 다독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길드에서 컨택이 온 모양이었다.
“잘됐네요 창모님! 일단 가서 조건 들어보세요! 무턱대고 바로 계약하지는 마시구요.”
“아, 예··· 고맙습니다.”
강창모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매니저를 따라 나갔다. 왕호는 그런 강창모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사람 하나 살린 기분이었다.
*
나머지 파티원들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자, 던전을 빠져나갔다. 왕호는 재료가 남았기에, 저녁장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안락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풀썩-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아늑하다. 피로가 스르르 녹는다.
왕호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장사는 나쁘지 않았다. 첫날이라 재료를 많이 가져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 털고 왔다. 물론, 단가를 매우 낮췄기에 순이익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마나석을 팔아 번 돈이, 장사 수익보다 많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장사를 마감하고 업자를 찾아, 가지고 있던 마나석을 모조리 넘겼다. 양이 많았기에 적지 않은 금액이 나왔다. 심지어 오늘 얻어낸 따끈한 것들이라 가격을 더 쳐줬다.
‘이래서 다들 레이드 하려고 하는 거구나.’
하루종일 힘들게 컵밥을 만든 것보다, 몇 시간 레이드 빡세게 뛴 것이 더 수익이 높다.
물론, 파티원들을 잘 만나 거저 먹은 거나 다름없다. 시쳇말로 버스를 탔다고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한여름과 김지원이 마나석을 받지 않아서 2배의 수익을 올렸다. 오늘은 장사 수익보다 부수입이 더 많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요리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맞다.
‘아침 일찍 나가서 준비해야겠다.’
내일은 재료의 양을 좀 더 늘려 많이 팔 생각이기도 하고, 실버폭스 고기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준비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딸깍-
왕호는 침대맡에 있는 알람시계의 알람을 한 시간 빠르게 맞췄다.
*
어제저녁에 계획한 대로, 왕호는 일찍 일어났다. 시장에 들러, 어제의 1.5배가 되는 양의 재료를 트럭에 싣고 바로 출발했다.
같은 자리에 주차를 마친 왕호는 후다닥 재료 손질을 끝마쳤다.
그리고는 냉장실에 넣어놨던 실버폭스 살코기를 꺼냈다.
텅-
도마 위에 떨어진 살코기의 상태가 매우 싱싱하다. 어제 도축을 마쳤으니 싱싱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제독!”
왕호는 제독 스킬을 사용해, 살코기의 마기를 제거했다.
[실버폭스의 살코기를 해독하였습니다.]
[싱싱한 실버폭스의 살코기]
[Lv. 3의 실버폭스를 발골하고 남은 고기다.]
[무언가에 짓눌렸는지, 결이 고르지 않다.]
[쫄깃함이 줄어든 대신, 좀 더 부드러워졌다.]
[마기가 남아 있지 않다.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감정스킬을 사용하자 정보가 후두둑 쏟아진다.
‘어떻게 요리해야 고기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왕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심했다.
레드혼 카우는 소와 매우 흡사해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 소고기를 요리하는 방식대로 요리했었다. 같은 동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부위별로 고기의 특성이 거의 흡사했다. 이 정보는 감정스킬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실버폭스는 다르다. 굳이 같은 동물을 찾으라고 한다면 여우를 들 수 있겠다. 그래서 이름도 실버 ‘폭스’라고 지은 거겠지. 그렇다고 레드혼 카우처럼 닮은꼴과 심하게 닮아있지는 않았다. 레드혼 카우와 소의 싱크가 95% 정도라면, 얘는 한 60%밖에 되지 않는다.
여우와 닮았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왕호는 여우고기로 요리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각종 요리를 시도해가면서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적의 레시피를 알아내는 거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왕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살코기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왕호는 각성자다. 그것도 힐링 “요리사”. 스킬을 이용하면 된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스킬이다.
왕호는 고기를 살짝 잘라 입에 넣고는, 생으로 질겅질겅 씹었다.
[“이터블 감정”으로 섭취한 재료를 파악합니다.]
[누린내가 심합니다.]
[육질이 상당히 두텁습니다. 다져서 사용하거나 부드럽게 삶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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