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양단 (1)
이터블 감정이 알맞은 사용법을 알려준다.
‘두들겨서 커틀릿을 만들고 수육도 해봐야겠다.’
이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된다.
과연 어떤 조건 하에서 스탯의 증가가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허나, 이번에는 손님들에게 실험할 수 없다. 레드혼 카우를 사용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실버폭스는 사람들도 처음 접하는 종류의 고기이며, 몬스터 고기의 유통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에게 먹여봐야 한다.
알맞은 조리법을 사용한 요리와, 그렇지 않은 요리.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와, 과정을 생략하고 대충대충 만든 요리. 먹는 대상을 헤아려서 만든 요리와, 그렇지 않은 요리. 이 모든 것을 분배, 조합해서 요리를 만든다면, 얼추 알맞은 조건을 뽑아낼 수 있을 거다.
이터블 감정의 결과대로 누린내가 심하니 일단 잡내를 제거해야 한다.
피에서 나온 누린내는 쌀뜨물에 담가 피를 제거하면 사라진다. 고기 자체에서 나오는 잡내는 청주에 간 생강을 넣어 재운다. 그러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왕호는 바로 요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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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식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새로운 요리의 숫자 : 6]
‘좋아!’
적은 양이지만 여러 개의 요리를 만들어 결과를 확인했다. 조리법에 따라서는 맛도 맛이지만, 요리의 효과가 크게 달라졌다. 알맞은 요리법을 사용해서 만든 실버폭스 커틀릿이 단순히 직화로 구운 것보다 효과가 배 이상 좋았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대충 만든 요리는 당연하게도 스탯의 버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먹는 대상을 생각하지 않은 요리는 버프가 나올 때도 있고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대상을 완벽히 고려했을 때는 100% 버프가 나왔다는 점이다.
즉, 알맞은 요리법으로 손님을 헤아려서 정성들여 만든 몬스터 요리는, 스탯을 일정 시간 올려주는 버프를 지니게 된다. 아침에 가져온 돼지고기를 이용해 똑같이 돈까스를 만들어봤지만, 스탯의 상승은 없었다. 아무래도 몬스터 고기는 마나를 머금을 수 있다는 성질 때문인 것 같았다. 몬스터 가죽은 마법 인챈트가 가능하지만, 일반 동물의 가죽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직 요리 스킬의 숙련도가 낮기 때문일 수도 있다.
꺼어억-
왕호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꾹꾹 어루만졌다. 실로 오랜만의 폭식이었다.
만들어낸 요리를 많이 먹었음에도, 배가 불러 다 먹진 못했다. 조리대 옆에 랩으로 쌓아 놔두었다. 출출할 때 뎁혀 먹으면 된다.
‘버리긴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일반 재료보다 몬스터 고기가 확실히 맛있다. 저번에 먹은 레드혼 카우보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청났다. 아마 레드혼 카우의 레벨이 더 높았기에, 풍미도 더 깊었을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스탯의 상승 폭은 레드혼 카우가 훨씬 뛰어났으니 말이다.
이것으로도 버프의 모든 조건을 완벽히 파악하진 못했다. 족히 수백 인분은 만들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
그래도 100% 확률로 버프를 생성해낼 수는 있게 됐다.
고로, 본격적으로 몬스터 요리를 만들어 판다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각성자들이 눈을 까 뒤집고 달려들 것이 뻔하다. 고 레벨 던전으로 갈수록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요리 스킬의 숙련도와 경험치도 그에 비례하게 상승한다. 일반 재료보다, 마기가 깃든 재료를 사용해야 클래스적 특성을 111% 살릴 수 있다.
지금 만드는 요리들도 각성 전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인데, 고급 요리 스킬로 진화하게 되면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해.’
식약청에서 안전하다는 인증을 받고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얻어야 한다.
왕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힌다.
아마도,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일 텐데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 처리를 해줄지가 의문이다. 왕호가 경험한 바로는 대한민국 공무원은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일처리가 매우 느리다. 그렇기 때문에 해준다 하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모르는 일이다.
근심으로 인해 왕호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지만, 더 이상 고심할 틈은 없었다. 손님들이 슬슬 밥차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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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많이 와도 그리 불편할 건 없다. 한 개를 만드나 두 개를 만드나 그리 차이는 없다.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니 기쁘기 그지없다. 하지만 눈앞의 손님. 아니, ‘손놈’처럼 이상한 놈이 온다면 얘기가 다르다.
‘요새 장사가 너무 순탄하다 했다······.’
던전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개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진상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나서는 제대로 된 진상이 한 명도 없었는데, 드디어 지금 나타났다. 오히려 늦게 나타났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게 서민들이나 처먹는다는 그 컵밥인가?”
비싼 마도구들을 치렁치렁 매단 한 남자가 트럭 앞에 앉고는 거칠게 말을 내뱉는다. 허리춤에 긴 장검을 매단 것을 보니, 검을 쓰는 각성자 같았다.
한데··· 말하는 본새가 심히 께름칙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왕호가 웃으며 물었다. 다른 손님들에게 짓는 웃음은 진실에서 우러나온 거지만, 눈앞의 손놈에게는 그런 미소가 나올 리 없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미소였다.
“오랜만에 서민체험 좀 해봐야겠군. 황제 스테이크인지 뭔지 하나!”
명령조로 말하는 것이 영 듣기 거북하다. 그래도 이런 진상 손놈 원투데이 본 것이 아니라, 그냥 요리에 들어갔다.
치이익-
구워지는 요리를 지켜보던 남자는, 자신의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이 알바생! 너도 하나 먹을래? 특별히 내가 사줄게.”
“흠흠, 뭐 사주신다면야······.”
“너 같은 서민 힐러에겐 서민 음식이 어울리겠지. 이봐, 여기 제일 잘 나가는 개밥··· 크크 아니, 컵밥 하나만 더 만들어줘.”
빠직-!
왕호의 이마에서 핏줄이 솟아올랐다.
“말 가려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손님. 이건 개밥이 아니라 누구에겐 든든한 한 끼 식사인 컵밥입니다.”
왕호는 화를 억누르고 남자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크크크, 사장 양반 화났우? 알았어 알았어. 장난으로 한 말인데 왜 발끈하고 그래. 더불어 사는 세상 스무스하게 살아야지. 삼겹살 김치 컵밥이나 하나 더 해줘.”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마에 선 핏줄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런 부류의 진상이 더 골치 아프다. 차라리 화를 내면 쫓아내기라도 할 텐데, 은근슬쩍 사람을 깔보며 그것을 즐긴다. 호방한 척을 하며, 다른 이들을 민감한 사람으로 폄하한다. 뒤에 서 있는 사람도, 진상의 말에 비추어볼 때 그가 고용한 힐러같었다.
힐러를 돈 주고 고용한다? 저 진상은 여기에 쩔 받으러 온 듯 보였다.
한여름, 김지원과는 다르게 나사가 하나··· 아니, 여러 개가 빠진 금수저다.
왕호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고는 요리에 집중했다. 스테이크는 대충 굽더라도 컵밥은 제대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저런 놈을 따라다니는 힐러가 불쌍하다.
요리가 나오고 왕호는 뒤에 서 있는 힐러에게 말을 건넸다.
“힐러님 여기 자리 있습니다. 앉아서 편하게 드세요.”
그러자 진상이 갑자기 끼어든다.
“아냐아냐 우리 알바생은 앉아서 먹으면 체하는 체질이야. 그렇지?”
“아··· 네. 전 서서 먹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사장님.”
누가 봐도 어거지를 쓰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저 힐러는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억지로 인정하는 것일 테고.
뚜둑-!
왕호에게 남아있던 한 줄기의 이성이 툭 끊어졌다. 당신도 서서 먹어야 되는 체질 같으니까 서서 처먹으라고 말하려는 순간,
“왕호니임!”
한여름이 손을 마구 흔들며 밥차로 달려왔다.
덕분에 목젖까지 올라왔던 독설이 그대로 멈췄다.
“벌써 오셨습니까? 아직 한 시간은 더 기다리셔야 되겠는데요? 지원님은요?”
“걔는 약속 있다고 시간 맞춰 온대요! 저는 왕호님 요리 먹으려고 일찍 왔지요! 오늘은 움··· 삼겹살 김치로 하나 만들어 주세요!”
“예. 앉아서 기다리세요. 금방 해드릴게요.”
방긋방긋 웃는 한여름을 보자, 왕호의 얼굴에서 화가 조금이나마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오~ 예쁜 언니 혼자 왔어? 혼자 왔으면 나랑 파티하자. 힐러도 고용해서 편하게 쩔 받을 수 있어. 레이드 끝나면 강남에 좋은 곳도 데려가 줄게.”
진상은 한여름을 위아래로 연신 훑으며, 삼류 작업멘트를 날렸다. 더러운 눈빛이 심히 역겨울 정도다.
한여름은 어제까지만 해도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마법 방어구를 온몸에 칭칭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별 쓸모가 없었다. 강창모가 탱킹을 기가 막히게 하는 바람에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해서, 오늘은 자신의 매력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테니스 치마를 입고 왔다. 늘씬한 다리가 더욱 도드라진다. 눈앞의 날파리가 꼬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여름의 성격상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성이 호감을 표시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 저 사람은 그걸 넘어섰다. 무례한 수준이다.
“아, 됐어요. 그렇게 좋은 곳이면 혼자 가요. 그리고 저는 이따가 여기 사장님이랑 파티할 거예요.”
“뭐, 밥차 요리사랑? 크하하하.”
진상이 가소롭다는 듯 폭소를 터트린다.
“뭐야······.”
그런 진상을 한여름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마치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요리 좋아하는 거 같은데, 5성급 호텔 레스토랑으로 데려가 줄게. 그것도 vip룸으로. 일반인들은 평생 못 들어가는 곳이지. 그리고 나랑 함께 다니면, 좋은 길드도 소개시켜준다. 레벨 50까지는 거의 쩔만 받으면서 올라갈 수 있어.”
“뭐래··· 아저씨 저도 돈 많거든요? 초면에 반말 찍찍 날리고, 전 예의 없는 남자 혐오해요.”
한여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진상이 조금 당황한다. 그래도 그는 뻔뻔함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오케이!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할게. 다달이 카드 지원해주고. 레벨 올라가면 연예계로 꽂아줄게. 콜?”
진상이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리며 묻는다. 노골적인 스폰 제안이다.
왕호의 가슴속에서 다시 화가 들끓어 올랐다. 당장 사시미칼을 꺼내 쫓아내려 했는데, 한여름이 더 빨랐다. 왕호도 속에서 열불이 나는데, 당사자인 그녀는 오죽했을까.
한여름의 입가가 파르르 떨린다.
“아놔··· 병신 눈엔 병신만 보인다고, 누굴 똑같은 수준으로 보나. 야 이 변태 새끼야! 주제를 알고 나대! 눈치는 또 드럽게 없어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지. 낄끼빠빠 몰라? 어휴 진짜 재수 옴 붙었네.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거랬는데··· 쓰으읍.”
한여름에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예쁘장한 얼굴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맙소사!’
왕호도 놀라고, 뒤에 서 있던 힐러도 놀라고, 멀리서 달려오던 강창모도 놀라 그대로 굳어졌다.
진상의 표정은 가을날 단풍이 든 것마냥 울긋불긋해졌다.
자신의 앞에서 이러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은 여자는 한여름이 처음이었다. 자신의 삐까뻔쩍하는 슈퍼카를 보면 엥기는 게 대부분이다. 도망가는 사람은 있었어도, 이렇게 쎄게 나오진 않았다. 다들 자신의 돈, 그리고 자신의 배경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지금의 사회에선 돈이 곧 실력이자 권력이니까.
“허!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군. 아직 내가 정확히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너 실수하는 거다. 드넓은 아량으로 이번에는 넘어가는데,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거야. 평생 레이드 못 뛰는 수가 있다.”
“뭐라는 거야? 돈만 믿고 깝죽거리는 찌질이가. 어째 너 같은 놈들은 레퍼토리가 매번 똑같냐? 그거 네가 번 돈도 아니지? 엄마카드 들고 그러는 거잖아. 복? 복은 무슨 개뿔. 복날에 개 처맞듯이 처맞기 싫으면, 빨리 처먹고 나가라. 한 번만 더 찝적대면 뚝배기에 구멍 내준다.”
“이런 미친!”
벌떡-!
진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쿵 하고 넘어진다.
진상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간다. 당장에라도 한여름을 한 대 칠 기세다.
그 모습에 왕호의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만약 진상이 주먹이라도 내지르면, 잡아서 손목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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