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프 파는 밥차 (1)
몬스터 요리 라이센스가 신설됐으니, 시간 맞춰 찾아와 증명하라는 내용의 통화였다.
‘아니, 라이센스가 식약처장 말 한마디로 뚝딱 만들어지는 거야?’
한여름과는 저녁에 헤어졌으니, 식약처장이 부탁을 받은 시각은 저녁 이후. 그럼,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지시했다고 쳐도···
너무 빠르잖아!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현실이 배배 꼬였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름님께서 과하게 어필하셨나?’
왕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욕심이 났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부탁하긴 꺼려졌다. 혹시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후폭풍이 한여름과 식약처장까지 집어삼킬 수 있다. 물론, 역으로 자신이 책 잡힐 일도 없지 않다.
그래서 가볍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엄밀히 확인해보고, 가능하다고 판단이 서면 그렇게 해주시라고.’, ‘불가능하다면, 귀띔이라도 빨리해주시라고.’ 결과라도 빨리 받아야 영업 방향을 확고히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여름은 알았다고 걱정 마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으로 볼 때, 저렇게 부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마 애교를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니, 이렇게 결과가 빨리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이 의문은 식약청 고위 간부가 대신 해결해줬다.
“안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 중이었는데, 처장님께서 단번에 오케이 하셨습니다. 갑자기 이러실 이유가 없는데··· 혹시 처장님과 어떤···? 하하, 제가 괜한 것을 물었네요.”
처음 식약청에 왔을 때는 대리급 직원을 만나려고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2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이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왕호는 직원의 말에서 의아한 점을 포착했다.
“원래, 논의 중인 사안이었나요?”
“그렇죠. 일반 직원들은 몰랐을 겁니다. 최고 회의에서 다루는 사안이거든요. 사실 처장님과 아는 사이니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암암리에 몬스터 고기가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네? 불법 아닙니까?”
“당연히 범법행위죠. 높으신 분들 식성이 워낙 특이해야 말입니다. 힐러가 마기를 해독할 수 있는 걸 저희 측에서 파악하자마자, 힐러와 요리사를 고용해 몰래몰래 잡쉈죠.”
직원 아저씨의 말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하긴, 있는 분들 습성이야 예전부터 기괴하긴 했다. 남들이 먹기 힘든 희귀한 것들을 진미로 규정해, 자기들끼리의 문화를 즐기지 않았나.
거위의 간을 고통스럽게 키워 만드는 ‘푸아그라’, 사향 고양이를 학대하듯 생산해내는 ‘루왁커피’ 등등··· 그들의 허영심을 채워줄 희소성 있는 요리를 항상 찾아내곤 했다.
몬스터 고기를 해독할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배길 인물들이 아니다. 일반인들 몰래 ‘괴수미식회’를 창립해, 각종 몬스터 고기를 차례로 맛보고 있었다.
이때까지 공론화되는 걸 꺼려서 그렇지, 언젠가는 풀릴 규제였다.
“점점 미식회의 회원이 많아지면서, 통제가 힘들었나 봅니다. 합법화하자는 이야기가 종종 흘러나왔죠. 그럼에도 계속해서 미룬 것은, 합법화하게 되면 희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쉽게 먹지 못해야, 식도락의 쾌감이 더 크다나 뭐라나 허.”
직원 아저씨도 어이가 없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내지었다.
“딱, 애매한 상황에 선생님께서 등장한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민원 순서를 지켜 라이센스가 만들어졌을 텐데··· 처장님께서 당장 만들라고 하시더군요.”
이제야 조금씩 퍼즐이 맞춰진다.
한여름이 부탁했다고 해도 너무 빨랐다. 식약청 대빵이나 되는 사람이, 조카의 애교만으로 이런 중요 사안을 뚝딱 처리했을 리가 없다.
기존에 계속 논의되던 사안인데, 왕호가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어차피 합법화될 거, 한여름을 통해 그 기간을 단축 시긴 게 됐다.
“아, 그렇다고 해독되지 않은 살코기를 매매하면 큰일 납니다. 거기까지 합법화되려면 아직 넘어야 될 산이 많습니다. 해독이 완료된 살코기를 구매하거나, 직접 잡아서 해독하는 수밖에 없죠. 이것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풀리겠지만요.”
직원 아저씨가 이것만큼은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다.
*
왕호는 몇몇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몬스터 살코기 해독을 몸소 증명했다.
-혹시, 힐러십니까?
지켜보던 대부분이 이런 상투적인 질문을 날렸다. 왕호는 그냥 해독 스킬을 가지고 있는 칼잡이라고만 답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었지만, 조롱을 당할 것이 눈에 선했다.
왕호의 말을 믿는다손 치더라도 문제다. 대부분이 죄다 연구원 출신이라 귀찮게 꼬치꼬치 캐물을 가능성이 컸다. 더 나아가 연구에 시간 좀 할애해달라고 들러붙겠다 싶었다. 절대 안 된다. 그럴 시간에, 장사하고 요리 숙련도를 올리는 게 훨씬 낫다.
라이센스는 양식이 완성되는 대로, 등기를 통해 붙여준다고 했다. 물론, 장사는 오늘 당장에라도 가능하다고 확답받은 상태.
‘그럼, 당장 던전 가야지.’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 던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아직 오전이니, 갈 곳을 빠르게 정하면 점심 장사부터 할 수 있을 거다.
‘이번엔 실버폭스 보다 상위 던전으로 가자.’
상위 던전이지만, 손쉽게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곳. 레벨 16의 실버폭스 보스몹을 한방에 넉다운 시켰으니, 그 정도 수준의 던전에 들어가면 안전하게 장사할 수 있으리라.
부르릉-
때마침 트럭에 시동을 걸자, 익숙한 이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까똑-!
이번에도 한여름이다.
[한여름 : 왕호님 어떻게 되셨어요?]
[안왕호 : 여름님 덕분에 빨리 해결됐습니다. 오늘부터 판매 가능하다네요.]
[한여름 : 와, 잘됐네요~. 그럼 던전 가시겠네요?]
[안왕호 : 그렇죠. 안 그래도 던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레벨 15~20 사이 정도로요.]
[한여름 : 그럼 이번에도 저랑 지원이랑 같이 뛰는 건 어때요? 제가 미리 알아봤는데, 레드혼 카우 던전이 괜찮을 거 같아요. 대부분이 레벨 15, 16이고 지금까지 발견된 최고 레벨도 19까지밖에 안 되는 곳이에요!]
익숙한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레드혼 카우.
처음으로 왕호가 요리한 몬스터 고기다. 그때 사용한 레드혼 카우도 레벨 17이었다. 반갑게도, 왕호가 생각해놓은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게다가 소고기와 육질이 매우매우 흡사해, 상품성 있는 요리들을 만들 수도 있다.
[안왕호 : 그러죠.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왕호는 네비에 목적지를 빠르게 찍고는, 힘차게 알셀을 밟았다.
부아앙-
*
‘어?’
뜻밖의 얼굴에 왕호가 놀란다.
던전에 도착하니, 한여름과 김지원 말고도 반가운 얼굴이 또 있었다.
“왕호님! 지원님 연락받고 왔습니다. 전 왕호님 계속 따라다닐 겁니다!”
강창모였다.
“창모님. 길드랑 계약 안 하셨어요?”
왕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한여름이나 김지원은 애초에 길드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목적은 레이드가 아니라, 레벨을 어느 정도 올려 타 업계에 진출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강창모는 다르다. 그는 레이드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탱커 클래스는 여기에 딱 알맞다. 높은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길드에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영입 제안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계약할 거라 생각했다.
강창모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하하, 사실 여러 길드에서 연락 왔었습니다.”
“그런데 왜 도장 안 찍으셨어요? 독점 던전에 들어가서 편하게 레벨 올리시면 될 거 같은데······.”
“무시무시한 오우거와도 싸워보니, 자신감이 활활 타오르더군요. 길드 없이 여름님, 지원님과 같이 레벨 50까지 올리기로 약속했습니다. 뭐, 길드는 나중에 계약하면 됩니다! 고 레벨일수록 계약 조건도 더 좋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왕호님 따라다니면, 맛있는 떡고물도 많이 떨어지니까······.”
마지막 말은 흐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근데, 왕호님 요리를 먹으면 버프가 생긴다는 게 정말이에요?”
이번엔 김지원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무래도 한여름에게 무언갈 듣고 온 듯싶었다.
“예. 몬스터 고기로 요리하면 버프가 생기더라구요. 오늘부터 버프 팔 생각입니다.”
왕호가 인정하자, 옆에 있던 강창모가 갑자기 자신의 무릎을 탁! 하고 내리쳤다.
“어쩐지! 제가 그때 도핑을 한 것처럼 정신이 나갔었는데, 왕호님 그 덮밥 덕분이었군요!”
강창모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기대에 가득 찬 그들의 모습에, 왕호도 조금은 난감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저는 장사를 해야 합니다. 아마, 브레이크 타임이 아니면 같이 다닐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괜찮아요! 저희 셋으로도 충분하거든요. 왕호님은 열심히 장사 대박 내시면 돼요. 중간에 가끔 합류하시구요.”
한여름이 파이팅 포즈를 지으며 응원을 날렸다.
왕호는 그들의 응원에 힘입은 채, 웃으며 칠판을 꺼냈다.
슥- 슥-
이번에는 새로운 문구를 적어 내려갔다.
<버프 메뉴>
-실버폭스 크로켓 : 민첩 10% 증가, 회피율 10% 상승
-실버폭스 햄버그스테이크 : 지력 10% 증가, 마나회복속도 30% 상승
※위 버프의 지속시간은 6시간입니다. 버프는 중첩되지 않습니다.
컵밥 재료가 남았던 터라 그 밑에 컵밥 메뉴도 몇 개 적었다.
점심 메뉴를 실버폭스로 정한 이유는, 단지 실버폭스 고기가 많이 남아서다. 고기가 남았는데,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시간 지나면 육질이 안 좋아진다. 상할 수도 있다. 마나석 냉장고가 있으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없는 걸 어찌하나······.
장사가 잘되면 점심 장사만으로, 재료를 모두 손절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럼, 브레이크 타임 때 레드혼 카우를 한 마리 잡아 와 저녁 메뉴를 바꿀 생각이다.
왕호는 곧바로 점심 준비에 들어갔다.
*
장사는 대박···
을 넘어서 초대박이 났다.
몬스터 요리라고 하니,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잔뜩 모여들었다.
웅성웅성-
“실버폭스 요리? 저거 먹어도 되는 거냐? 몬스터는 마기 때문에 못 먹지 않나?”
“저기 써 있잖아. <마기 해독 가능>, <몬스터 조리 라이센스 보유>.”
“버프 요리라니 넘나 신기하네.”
하나둘씩 모여든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며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꿀떡- 꿀떡-
그들은 요리를 먹고는 경탄해 마지않았다.
“헐, 상태창 켜봐봐. 진짜 버프 걸렸어!”
“와, 이제 무조건 던전 들어가기 전에 이것부터 먹고 가야겠네.”
“레이드도 식후경인 시대인가?”
“믿기지가 않는다 진짜. 오리진에 올려서 공유해야겠다.”
“아, 근데 나랑은 별 상관없는 스탯이 오르네··· 버프도 약한 것 같고. 아저씨! 다른 버프는 못 거나요?”
손님 하나가 물었다.
여기 오는 손님 대부분은 20레벨 이하다. 기본적으로 각 스탯이 거의 20을 넘기지 않으니, 10%의 상승 폭을 보여준다고 해도 고작 1, 2밖에 오르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버프를 받으나 안 받으나 크게 차이가 없다.
“예. 일단은 저 두 종류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왕호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왕호도 다양한 버프. 상황에 맞는 버프. 클래스에 어울리는 버프를 요리에 걸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입맛대로 버프를 생성해낼 수 없다. “힐링 요리사”의 능력이 더 개방된다면 모르겠지만······.
물론, 개방된다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조리법을 다르게 하면 버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쩝쩝-
“야, 근데 존맛인데 이거?”
“진짜 맛있네. 이거 버프 없어도 먹고 가야 하는 부분 아니냐?”
“인정. 돈값 하는 맛이네.”
왕호는 버프 요리의 가격을 컵밥의 두 배 이상으로 책정했다. ‘버프’라는 베네핏이 있으니,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격이라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길드와 계약을 마친 상태다. 던전 초년생이긴 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들. 컵밥처럼 극단적인 박리를 취하지 않아도 팔릴 거라 내다봤다.
결과는 대성공.
버프를 제쳐두고서라도, 맛 때문에 입소문이 났다.
점심 개장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살코기가 동났다. 보스몹의 고기까지 탈탈 털어 사용해야 했다. 냉동고에 오우거 발 한 족이 남았지만, 이건 50레벨이 넘는 고기라 아직 자신의 실력으론 해독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살코기를 조달하는데 사용한 비용이 단, 0원이라는 점이다. 순이익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히죽히죽-
왕호의 입가가 귀를 넘어 하늘에 닿을 듯 찢어졌다.
‘미쳤다. 미쳤어!’
이대로 쭉쭉 나아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하던 이사를 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반지하 투룸 탈출이다.
“저기, 사장님?”
새로이 다가온 손님 하나가, 돈통을 보고 정신이 나가 있는 왕호를 조심스레 불렀다.
왕호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고,
“아, 네··· 헙!”
눈으로 들어오는 인영의 모습에 헛바람을 들이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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