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35화 (35/149)

소고기를 맛있게 먹는 101가지 방법 (1)

레드혼 카우의 모습을 보니··· 몸속에 우유를 담고 있다고 해도 젖 짜는 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붉은 눈동자에서는 인간에 대한 살의가 찐득하게 흘러나온다. 뿐만 아니라, 인간만 보면 씩씩거리며 코에서 뜨거운 콧김을 내뱉는다.

드드득- 드드득-

투우처럼 뒷발을 마구 굴려, 언제든지 저 달궈진 뿔로 인간들의 엉덩이를 걷어버릴 기세다.

‘인간을 무슨 철천지원수로 보나?’

눈은 또 왜 저렇게 다들 시뻘건지 모르겠다. 저번 실버폭스도 그렇고······.

소는 본래 눈망울이 참 맑은 짐승이다.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이라면 공감할 거다. 어쩌다 또르르 눈물이라도 흘리는 걸 보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몇 천 년 전부터, 우리네 삶의 중심을 지탱해온 민족의 성물聖物이나 마찬가지다. 한韓민족은 그 옛날 삼국시대 이전부터 소와 함께 밭을 일구어왔다. 격동의 시절에는 송아지 팔아서 자식들 상아탑에 보냈다.

한데, 저 모습을 보라.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마냥 사나워져 있지 않나.

저 붉디붉은 눈동자를 송아지 눈망울처럼 순수하게 바꿀 수만 있다면?

‘젖도 짜고 송아지도 낳고 아예 농장을······.’

도리도리-

왕호는 고개를 휘저어 헛생각을 떨쳐냈다.

가능할 거 같지도 않은 걸로 계속 고민하면 정신력만 낭비된다. 가능하다 해도, 인간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거다. 이제는 몬스터보다 잔인해진 인간들이니까.

“옵니다!”

강창모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눈이 마주쳤던 레드혼 카우 한 마리가 구르던 발을 멈추고 땅을 힘차게 박찬다.

두두두두-

뿔 달린 젖소가 육중한 몸을 끌고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네 발로 땅을 번갈아 박차며, 대가리를 앞으로 내민다. 빨개진 쇠뿔은 전방을 향한다.

“쉴드 프로텍트!”

강창모는 레벨 15가 되면서 새로이 얻은 스킬로, 방패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

이윽고,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강창모가 살짝 밀려난다. 땅에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어, 날아가진 않았다.

날아가지 않자, 작용 반작용 법칙에 의해 레드혼 카우가 휘청거린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여름과 김지원이 마법을 쏘아낸다.

쿠콰광-!

음무어어어-!!!

마법 두 방을 맞자, 레드혼 카우가 고통스레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젖소를 보자, 왕호는 푸춧간 사장님에게 교육받은 내용을 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소를 도축할 때는 소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전살電殺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곡괭이 비슷하게 생긴, 금속 도살 도구로 정수리를 강하게 내리쳐야 해.

-단말마는 없어야 한다. 잘 내려치면 한 방에 죽어. 그것이 소를 위하는 일이지.

비록 그런 도구는 지금 없지만, 큰맘 먹고 구입한 ‘몰리브덴 바나듐강 중식도’가 있다. 저번에는 돈 아끼려고 다이소표 중식도를 썼더니, 단번에 이가 나갔다. 길게 보고 20만 원이나 투자했다.

왕호가 양쪽 뿔 사이 이마를 향해, 중식도를 강하게 내리찍는다.

부우웅-

높은 힘 스탯이 강력한 힘을 식칼에 담는다. 높은 민첩 스탯은 스윙 스피드를 엄청나게 증가시킨다. 높은 손재주 스탯은 정확히 미간을 조준하게끔 도와준다.

그 결과,

콰지직-!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깔끔.

레드혼 카우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와! 마법 네 방은 더 맞춰야 되는데, 왕호님 오니까 금세 잡네요!”

이제는 피 튀기는 광경에 익숙해졌는지, 파티원들이 방방 뛰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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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은 단조로웠다.

레드혼 카우 두셋을 끌고 온다. 강창모가 그들을 막는다. 한여름과 김지원은 원거리 공격을 한다. 왕호가 중식도를 내리찍어 마무리한다.

‘창모님 없어도 내가 충분히 피할 수 있겠어.’

대충 10마리 정도를 상대해보니, 레드혼 카우의 돌진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왕호는 민첩 스탯이 날로날로 올라가면서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몸의 움직임도 움직임이었지만, 동체시력도 더더욱 좋아졌다. 힘차게 달려오는 레드혼 카우의 동선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노련한 투우사들은 달려오는 투우의 박치기를 스텝 하나만으로 유유히 피한다. 왕호도 그런 식으로 가볍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안하게 그럴 필요는 없지. 탱커가 있는데 말이야.’

강창모가 있으니, 거대한 방패 뒤에서 막타나 치는 게 낫다. 그리고 막타를 빨리빨리 쳐줘야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는다. 시간을 조금만 주면, 레드혼 카우가 두 발로 서서 매섭게 공격한다. 원투펀치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540도 뒤돌려차기를 하는 것도 보았다. 진기명기 그 자체였다.

어느덧 시간은 네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저는 다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왕호가 마지막으로 잡은 레드혼 카우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며 말했다. 괜찮은 놈이 잡혔으니, 이제 이놈을 들고 가서 장사해야 한다.

“왕호님 있으니까 속도가 두 배는 빨랐는데··· 어쩔 수 없죠. 저희는 두시간 정도 더 뛰다가 저녁 먹으러 트럭으로 갈게요!”

한여름이 아쉽다는 듯이 한 발로 땅을 쓱쓱 긁었다.

흐잇챠-!

왕호는 축 늘어진 젖소 한 마리를 어깨에 짊어지고 게이트로 향했다.

‘10마리를 넘게 잡았는데, 고기는 고작 한 마리밖에 못 가져가네······.’

솔직히 많이 아쉬웠다.

한 마리를 발골하면 냉장고가 꽉꽉 들어찬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냉장고 용량이 넉넉해도 문제다. 여러 마리를 넣어버리면 냉장 보관하기 쉽지 않다. 마지막에 꺼낸 고기의 육질은 형편없을 거다. 그렇다고 죄다 냉동실에 넣으면 품질이 확 떨어진다.

마나석 냉장고가 그렇게 생각날 수 없었다.

‘삼천만 원이 넘는 건데 무슨 수로······.’

너무 비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 한다. 고기가 다 떨어질 때마다, 그때그때 들어가서 잡으면 된다.

.

.

.

왕호는 발골된 살코기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실버폭스 때보단 쓸만했다.

역시 고유 스킬이라 뭔가 다른 것 같았다.

‘계속해서 숙련도를 올린다면 더 좋아지겠지.’

월수금 저녁마다 마장동에 들리니, 마장 발골의 숙련도 올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왕호는 소의 부산물도 따로 챙겨놨다. 양, 벌집양, 천엽, 막창, 간, 곱창, 대창 등등··· 또한, 뼈도 관절을 다 잘라서 보관했다. 다 쓸 데가 있다.

“해체도 할 줄 아시나 봐요?”

유다희가 트럭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다.

아직 영업 개시하려면 30분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벌써부터 대기 중이다.

“틈틈히 배우고 있습니다.”

왕호는 유다희의 말에 대답을 해주면서, 발라낸 목심, 앞다리, 우둔, 설도살을 도마 위에 올렸다.

퉁-!

도마 위에 올려진 고기가 새빨간 자태를 뽐낸다.

불고기를 만들 생각이다.

불고기용으로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은 고소한 부위를 사용하는 게 좋다.

마블링이 있는 등심, 안심, 채끝은 스테이크용으로 쓸 수 있으니, 남은 부위들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낼 거다.

우선, 도마 위에 올린 고깃덩이를 불고기용으로 적당히 썬다. 슥- 슥-

이제 양념을 할 차례.

믹서기 통에 간장과 물을 1:1 비율로 섞는다. 그리고 설탕과 다진 마늘도 투하한다. 마지막으로 양파와 사과를 적당히 썰어놓고, 믹서기에 돌린다.

위이이잉-

재료들이 갈리면서, 양념이 질척질척해진다.

양념 끝.

“불고기 양념 만드시는 거예요? 와··· 근데 양념이 저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거였나?”

유다희가 신기함에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요리사 같은데··· 몬스터 잡을 때는 요리사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겠다. 손에 쥐고 있는 중식도만 없었으면, 그냥 전사로 착각할 정도.

유다희는 조금 전 왕호가 레드혼 카우를 사냥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특이할 건 없었다.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가 휘두른 공격의 데미지다. 저번처럼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칼날에 서린 힘은 가히 엄청났다. 고수의 눈으로 봤을 때, 높은 능력치로 찍어 누르는 듯한 공격이었다.

레벨 20 정도가 벌써 저런 힘을?

던전 커넥트 사건 때, 왕호는 자신의 레벨을 19라고 말했다. 레벨 19가 왜 생초보 던전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레벨 50의 오우거 다리를 단 두 번의 칼질로 썰어버렸다는 게 중요했다. 비록 스킬을 사용하긴 했지만 말이다.

일도양단 스킬이야, 조건만 해금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오리진 공유 스킬이니 크게 놀라울 건 없다.

신기한 건 고작 19레벨의 스탯으로 레벨 40이나 낼 수 있는 파워를 어떻게 뿜어냈냐는 것이다.

레벨에 비해 스탯이 압도적으로 높거나, 효율적인 자세로 힘을 최대한 끌어모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엔 전투 센스가 엄청나다는 방증이다.

물론, 둘 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고기가 그렇게 어려운 요리는 아닙니다. 집에서 한번 해보시면, 요리에 재미 붙이실 겁니다.”

왕호는 웃으며 철판의 온도를 올렸다.

그리고 야채를 꺼냈다. 칠판이 달궈질 동안 야채를 썰어놓을 생각.

탁탁탁탁탁-

양파, 대파, 당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철판이 달궈지자, 기름을 스윽 두르고 썰어놓은 채소를 투하한다.

치이익-

야채를 잘 볶아준다.

어느 정도 채소의 숨이 죽자, 고기와 갈아놓은 양념까지 넣고 볶는다.

치익- 지글지글-

집게를 이용해 잘 섞으면서 볶는다. 이제 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볶아주면 끝난다.

새빨갛던 고기의 색이 갈색의 맛있는 불고기 빛으로 변했다. 왕호는 다 익은 불고기를 따로 담아냈다.

[“맛있는 레드혼 카우 불고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간이 잘 배어 있습니다.]

꿀꺽-

코끝을 강하게 찌르는 불고기의 향기에, 유다희의 목젖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사장님. 그 불고기 새로이 파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제가···”

“아직 안 끝났습니다. 불고기만 먹으면 너무 심심하죠.”

왕호는 씩 웃으며 유다희의 말을 끊었다.

주섬주섬-

왕호가 새로운 재료를 꺼낸다. 꺼낸 재료의 정체는,

바게트빵.

이 던전에 오기 전, 바게트 잘하는 집에서 뭉텅이로 사 왔다. 겉은 너무 바삭하지 않고 속은 촉촉하게 구운 바게트다. 왕호는 처음부터 이 메뉴를 계획하고 왔다.

“불고기 샌드위치를 만들 겁니다.”

슥슥-

가져온 긴 바게트를 우선 삼등분한다. 그리고 옆구리로 칼을 썰어 넣어 내용물이 들어갈 수 있게 갈랐다.

벌어진 빵 속에 매콤새콤한 할라피뇨 고추를 깔고 그 위에 잘게 썬 양상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불고기를 넉넉하게 담는다. 마지막으로  체다치즈소스를 마구마구 뿌려서 샌드위치를 완성한다.

[“맛있는 레드혼 카우 불고기”가 “아주 든든한 레드혼 카우 불고기 샌드위치”로 업그레이드됩니다.]

[고소한 바게트가 추가되어 든든합니다.]

[몬스터 식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새로운 요리의 숫자 : 8]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아주 든든한 레드혼 카우 불고기 샌드위치-

[불고기가 알맞게 익었다. 간이 적당하다.]

[바게트와 양상추가 추가되어 포만감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할라피뇨와 체다치즈소스의 궁합이 완벽하다.]

[매우 든든합니다. 맛이 일품입니다.]

[효과 : 맷집이 10% 상승합니다. 최대체력이 10% 증가합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손님이 감동할 시, 효과는 1.5배로 증가합니다.]

꼬르륵-

그리 배가 고프지 않다고 느꼈건만··· 저 압도적인 요리를 보고있자니 유다희의 배꼽시계가 절로 작동한다.

“사장님··· 당장 사 먹을래요. 얼마에요?”

“음··· 만 원만 주세요.”

유다희는 곧바로 만 원짜리 한 장을 돈통에 집어넣고는, 왕호가 만든 불고기 샌드위치를 두 손으로 한가득 쥐었다.

그리고는, 앙-!

한입 크게 베어 문다.

바사삭-!

바게트 겉면이 크런치 소리를 내며, 고소하게 부서진다.

하지만 속은 촉촉.

촉촉함 사이로 불고기의 감질나는 맛이 느껴진다. 이윽고, 새콤한 할라피뇨와 짭쪼름한 체다치즈소스가 완벽한 콜라보를 이룬다.

환상幻想.

흐으으-

유다희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진다.

‘이거··· 중독되겠어!’

궁금하다.

이것 말고도 저 남자가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의 맛이 궁금하다. 유다희의 호기심 상자 속, 왕호에 대한 지분율이 더욱 늘어났다.

왕호가 느끼기에, 10,000원이면 딱 적당할 거 같았다. 일단, 여긴 저렙구간의 던전이니 만 원을 넘기긴 힘들고. 그렇다고 싸게 받자니 소고기와 버프의 가치가 훅 떨어진다.

쭈압쭈압-

맛있게 먹는 유다희의 모습을 보니, 이번에도 잘 팔릴 것 같았다.

[손님이 당신의 요리에 감동했습니다.]

[요리의 효과가 1.5배로 상승합니다.]

너무 빠르게 흡입하는 것 같자, 왕호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맛은 괜찮습니까?”

“괘아나요!”

괜찮은 걸 넘어서 혁명적이다.

꿀꺽-

입에 가득 들어있는 음식을 삼킨 유다희는 내친김에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버프가 걸리는지도 확인했다.

‘진짜네!’

소름이 돋는다.

만약 힐러와 위저드가 걸어주는 버프와 중첩이라도 된다면?

이 버프 요리의 가치는, 아마··· 저 남자가 생각하는 것 보다 배는 더 대단할 거란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사장님! 다른 메뉴도 먹어볼 수 있을까요?”

다이어트고 뭐고, 뱃가죽 터져버릴 때까지 맛보고 싶었다.

“일단은, 불고기 버거와 큐브 스테이크. 그리고 곱창 볶음 생각 중입니다.”

“와, 그걸 한번에 다 하실 수 있으세요?”

“손이 빠른 편이라 금방금방 합니다. 철판도 넓으니까 어렵지 않구요. 냉장고만 더 좋았으면 다른 부가 재료도 이용해서 더 다양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습니다.”

“마나석 냉장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여간 비싸야 말이죠. 3천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제작하면 더 쌀 텐데요? 인챈트 업체 소개시켜 드릴까요?”

“예? 직접이요? 그게 무슨···”

왕호가 아리송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료가 있어야 의뢰를 하지. 고급 마나석이 땅 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어지는 유다희의 대답에, 왕호는 쩍! 하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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