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62화 (62/149)

< 징크스 (3) >

신이 날 법도 한 것이, 여름이에게 대사가 추가되었다.

-하, 너무 꽃그지만 얘기하니까 심심한데··· 마법사분! 간단한 대사 줄 건데 혹시 해볼 수 있겠어요?

혹시나 하고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여름이의 연기가 뛰어났다.

-오! 연극영화과 출신이야? 되게 자연스러운데? 그럼 우리 꽃거지랑 대화 몇 마디 맞추는 걸로 갑시다!

대박.

편집이 될지도 모르지만, 대화가 두 마디나 있는 엑스트라다. 나중에 필모그래피로도 써먹을 수 있고, 잘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수도 있다.

어깨춤이 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왕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행복해하는 여름이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이쪽 길도 어울리는 것 같네.’

얼굴도 예쁘장하고, 몸매도 괜찮다. 다희처럼 말문이 턱 막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카메라 마사지를 좀 더 받는다면 팬클럽 조공 정도는 손쉽게 얻어낼 만 하다.

관리를 무척 잘 받은 터라 피부가 부들부들하지 그지없고,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러블리 그 자체다. 보고 있노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술술 잘 풀리면, 차세대 로코퀸을 노릴 수도 있겠다 싶다.

왕호는 지금 분장팀에 의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머리스타일도 드라이 된 상태다. 저번에 여름이와 강남 활보할 때 정도는 아니지만, 멋이라는 것이 폭발한 상태.

왕호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싶었다. 탈골이 될 때까지 어깨를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멋지게 꾸며서가 아니다. 꽁돈 때문이다.

출연료는 무려 400만.

-다음 달 정산일에 맞춰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봉 감독이 마치 천사처럼 느껴졌다. 윈윈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개봉은 1년 뒤에나 있을 거니까, 갑자기 유명해지지 않을 겁니다. 편집하다 도려낼 수도 있으니, 기대는 너무 하지 마십쇼. 사장님 액션 씬은 아마 편집되더라도, 마케팅용으로 쓰일 겁니다.

유명해진단다.

나쁠 건 없다. 악역도 아니고, 원 테이크라 악마의 편집이 될 리도 없다.

요리사가 유명해지면, 자연히 몰고 있는 푸드트럭도 유명해지기 마련. 승승장구가 따로 없을 거다.

‘천만 영화에 출연한 푸드트럭 요리사라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왕호가 행복한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을 때,

부릉부릉-

던전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트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헉! 저건 또 뭐야?”

소품 트레일러만큼 거대한 트럭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트럭의 옆면에 쓰여있는 단어를 보고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밥차?!”

영화 촬영장에 빠지면 섭섭하다는 대형 밥차였다.

보조 출연자까지 합치면 300명이 넘는 대규모 촬영팀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을 멕여가며 일을 시켜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대규모 인원이니, 밥차도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저건···’

커도 너무 컸다.

천만 영화 스케일 답게, 거의 헐리웃 뺨 때리는 밥차였다.

밥차는 넓디넓은 공터에 주차를 마쳤다. 그리고 트레일러를 오픈했다. 엄청난 위용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치 직접 뷔페에 온 것 같이, 수많은 반찬들이 원동에 담겨 쭈욱- 늘어서 있다. 고기반찬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급 출장 뷔페였다.

“밥차 떴다!”

우르르르-

밥차가 열리자 스태프들이 득달같이 튀어나온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 점심시간 끝나고 급식실로 몰려드는 학생들마냥 몰려간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학생들과는 다르게 일사불란하다는 점이다. 질서를 지킬 줄 안다.

몇몇 인원은, 소품 트레일러에서 천막을 꺼내 펼치고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도 쫘악 깔아냈다.

순식간에 야외 식당 완성.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 둘씩 줄을 서서, 자율배식을 시작했다.

왕호는 그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요리사로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와, 스케일 장난 없네. 뷔페식이라니······.’

감탄해 마지않았다.

물론, 감탄했다고 해서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따라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뷔페식은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지만, 왕호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다.

요리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을 수 없을뿐더러, 남으면 다 버려야 한다.

‘차라리 레스토랑을 차리고 말지.’

트럭 뒤에 대형 트레일러를 붙여서, 고급 레스토랑을 만드는 게 나아 보였다. 달리는 레스토랑을 말이다.

종업원 몇 명을 고용해 진짜 식당처럼 운영하는 거다. 그것도 던전에서. 코스식으로 운영하고, 한 코스당 수십만 원을 책정하면 돈을 갈고리 채로 긁어모을 수 있다.

최상위 던전이라면 분명 사 먹고도 남을 거다.

생각에 잠겨있는 왕호의 눈에, 한 무리의 인영이 다가오는 게 들어왔다.

“어?! 오빠! 저, 저기! 박하진 아니에요?”

여름이도 그 사람들을 포착했다.

맨 처음 던전으로 들어왔던 고급 밴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삼각별 브랜드를 단 그 연예인 밴 말이다.

박하진이라고 하면··· 남자 주연 배우?

한데, 지금은 꼬리가 좀 더 붙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 봤을 때는 코디로 보이는 여자들과 매니저만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박하진의 뒤를 따른다.

트럭 앞까지 다가온 무리들.

“사장님! 사냥 장면은 여러 번 돌려봐도 대단했습니다. 저는 박하진이라고 합니다.”

박하진이 말을 건넸다.

“예. 고맙습니다. 실물로 보니 더 멋지십니다. 던전 베테랑 1편은 저도 잘 봤습니다.”

“하하하, 보셨다니 정말 영광이네요. 잠깐 앉아도 될까요?”

“의자 남았는데 편하게 앉으세요.”

드르륵-

박하진은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런데, 쉽게 앉지는 않았다. 입으로 의자를 불어, 있지도 않은 먼지를 날리고는 손수건을 꺼내 의자 위에 곱게 깔았다.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결벽증?’

왕호는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왕호도 살짝 결벽증이 있다. 저 정도는 아니지만······

자리에 착석한 박하진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사장님께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섭니다.”

“제안이요?”

“사장님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맨몸으로 겪어보니 부조리함이 많더라고요.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캐스팅하긴 하는데, 몇몇 배역을 제외하곤 사실상 인맥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현상이야 뭐, 축구

계에도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정산입니다. 인맥을 이용하려면 소속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신인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가 힘듭니다.”

말을 하던 박하진은 눈앞에 있는 소스 통을 슬슬 돌렸다. 결벽증이 심한 나머지, 소스 통의 오와 열이 살짝 어긋난 것을 참지 못했다.

소스통을 정리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새로운 기획사를 만들었습니다. 전에는 없던 투명한 회사죠. 제 뒤에 있는 분들은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십니다. 연줄은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왕호는 얼떨결에, 양복을 빼입은 아저씨들과 인사를 나눴다.

박하진이 주렁주렁 데려온 이들은, 영화계와 방송가 쪽에 연이 닿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왕호와 인사를 마친 그들은, 박하진과 살짝 얘기를 나누고는 트럭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뭔가요?”

왕호 또한 본론을 요구했다.

“사장님과 마법사분을 저희 회사에 영입하고 싶습니다. 꽃거지 연기했던, 박주혁 군도 저희와 함께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장님 덕에 좋은 인재 하나 발굴했죠. 그 친구가 사장님 칭찬 많이 하더라고요. 요리도 맛있는데, 심성까지 좋다나? 저희 회사에서 가

장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인성과 실력입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인성이 나쁘면 계약하지 않습니다.”

영입 제안이다. 그것도 길드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영입 제안.

왕호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일단, 자신을 높게 쳐줬다는 말 아니겠나.

그러나 연예계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요리할 생각입니다. 연기는 제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솔직히 전투 장면 보고, 요리사 컨셉 잡으신 레이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럼, 혹시 요리 프로그램에 나갈 생각은 없으십니까?”

“요리 프로그램이요? 스타 셰프들 나가는 곳 말씀입니까?”

이건 조금 관심이 동한다.

“예. ‘에이스 셰프 코리아’나 ‘내 식탁을 부탁해’ 같은 곳에 나갔을 때 저희가 케어해드릴 수 있습니다. 전속계약이 아니라, 방송 부분만 저희와 계약하는 거죠. 에셰코 문 PD나 내식부 김 PD가 저희 측과 사이가 돈독합니다.”

“그렇군요. 에셰코 같은 경우는 미리 우승자를 정해두고 하는 걸로 압니다. 제가 예전에 스타 셰프 레스토랑에 있었거든요. 대신 내 식탁을 부탁해는 끌리네요. 한데, 여기는 대부분이 오너셰프들이라 제가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혹시라도 생각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저희 회사 공동대표님에게 선생님 말씀해놓겠습니다. 여기 명함입니다.”

박하진은 품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내, 명함 하나를 건넸다.

무척이나 깔끔하고 심플했다. 명함 케이스와 명함에서도 이 남자가 얼마나 강박증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이 사람의 말을 다 믿을 수 있을까? 그동안 입만 번지르르하고, 뒤통수 치는 사람 여럿 봤다.

“투명한 회사라고 자부하시는데, 그걸 확인할 방도는 있습니까?”

“말로만 투명하다고 하면 당연히 믿지 못하시겠죠. 저희는 모든 정산내용을 증빙서류와 함께 뽑아드립니다. 여타 다른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구죠. 이것만 보더라도 저희가 얼마나 정직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빈말은 아닌 듯싶었다.

“아, 예. 그럼 한 번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기 여름이와도 상의해볼게요!”

“긍정적인 답변 기대하겠습니다. 아! 여기 온 김에 한 접시 먹고 가도 됩니까? 매일 촬영 밥차 음식만 먹었더니 조금 물리네요.”

“물론이죠.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

박하진은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메뉴를 확인한 박하진의 동공이 커진다.

“와, 버프 요리? 저게 다 뭡니까? 먹으면 스탯이 올라간다니 대단하군요! 제가 레이드 뛸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50레벨 밖에 못 올렸지만요. 하하, 저는 프리미엄 요리로 먹겠습니다. 제일 비싸고 가장 맛있는 걸로 하나만 해주십쇼!”

역시, 돈 잘 버는 배우라서 제일 비싼 요리를 주문했다. 박하진은 각성자 배우 중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배우다.

‘프리미엄이라··· 그렇다면?’

왕호의 머릿속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살짝만 지켜봤지만, 박하진은 분명 결벽증이 심하다. 머리 스타일까지 자로 잰 듯한 것만 보더라도 확실하다. 결벽증은 대부분 강박증에서 비롯된다. 왕호도 그걸 잘 안다. 예전의 자신도 그러했다.

심했을 때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도 완전히 다 고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완화된 상태다.

강박증은 병은 아니지만, 거기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프리미엄 요리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새로운 힐링 요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만 된다면 새로운 힐링 스킬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의도해서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왠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왕호는 웃으며 질문 하나를 던졌다.

“혹시, 매운 거 좋아하십니까?”

“매운 요리요? 아~주 좋아합니다. 지저분한 것만 아니면 좋아 죽습니다!”

“스트레스가 상당하신 것 같습니다. 매운 요리만큼 스트레스 쫙! 풀리는 것도 없죠. 제가 스트레스 확 날리는 마그마 요리 하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매운 요리에 아주 적합한 재료가 하나 있다.

왕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냉동고에서 재료 하나를 꺼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그 재료다.

이제는 요리할 수 있는 실력까지 올라왔다.

< 징크스 (3)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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